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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71화 (371/575)

[371] 디 임팩트 15권 21화

“여우가 늑대를 피할 때는 두려울 때만 피하지 더 이상 두렵지 않으면 여우는 늑대를 피하지 않아, 싸우려 들지.”

율리비어스의 말에 방 안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내가 싸워 보니 인정할 부분이 있어서 하는 말이오. 앞으로 탑주께서도 그자를 상대할 때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뭘 조심하라는 말이오?”

“마법사도 아닌 자가 몸에 마법 보호막 같은 걸 두르고 있었소. 꽤 강력한 마법 공격도 그자의 보호막을 뚫지 못했으니, 탑주의 얼음 마법도 그것 앞에서는 쉽지 않을 거요.”

그러나 탑주는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자신의 얼음 마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병이 폭주하지 않는 이상 탑주는 언제든 용병을 얼음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사실 율리비어스를 대우해 주는 것도 그의 공격 마법 때문이 아니라 그가 가진 마법적인 천재성 때문이었다.

율리비어스는 탑주가 은근히 자신을 낮춰 보는 걸 눈치챘지만 상관하지 않고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 용병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왜 율리비어스의 방을 엿본 건지 그것도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겠소?”

루시앙이 화제를 돌렸다.

그의 말에 탑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의 섬에 있는 씨드를 노리는 이 상황에서 외부인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흘려보낼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율리비어스는 이번 일에 가장 중요한 마법 구조물을 설계한 사람이었다. 다른 장소도 아니고 그의 방을 흑마법사의 까마귀가 엿봤다는 건 매우 수상쩍은 일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율리비어스? 흑마법사의 까마귀가 당신을 엿봤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탑주의 진지한 물음에 묵묵히 술을 마시고 있던 율리비어스는 천천히 답했다.

“내 생각은…… 그저 우연히 그런 것 같소.”

“우연히?”

“그렇소, 우연히.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내 방에 들러 우연히 날 엿본 것 같소.”

율리비어스는 까마귀가 자신의 책상 위에 있던 마법 구조물 설계도를 일전에 보고 간 사실을 탑주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탑주의 방을 찾아다니다 내 방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고. 어찌 됐든 그 소녀 흑마법사와 용병이 같은 일행이라면, 그 목적은 내가 아닌 탑주가 아니겠소?”

“그렇긴 하지만, 당신이 큰 소란을 일으키면서까지 그들을 쫓아간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마법으로 누가 날 지켜보는데, 탑주 같으면 궁금하지 않겠소? 그래서 쫓아간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소.”

딱 잘라 말하는 율리비어스에게 탑주는 더 이상 물을 게 없었다. 그는 탁자 좌우로 앉아 있는 세티앙과 루시앙, 율리비어스에게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주변에 신경을 써야겠소. 우리가 씨드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그 용병 녀석이든 누구든 우리 일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되니까.”

로나는 며칠 전부터 갑자기 몸이 허약해져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잠을 자는 시간도 많아져 하루의 3분지 2 이상은 침대 신세를 져야 했다.

탐스러운 긴 금발은 윤기가 사라졌고, 아름다운 얼굴은 푸석푸석해진 채 생기가 없어 보였다.

리드만의 신성력으로도 로나는 차도가 없었다. 그녀의 모친과 할머니 그리고 그 위의 선조들이 거쳐 간 길을 그녀도 밟고 있는 것이다.

젊은 나이에 원인을 알 수 없이 죽는 가혹한 운명은 지옥의 형벌처럼 끔찍했지만, 단명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전설의 씨드에 한 가닥 기대를 거는 수밖에는.

로나는 힘없이 눈을 떴다.

“언제 왔어요?”

“방금 전에요.”

율리비어스와 쌍둥이 노인을 따돌리고 돌아온 도현은 어베인의 방에 모여 있는 동료들에게 얼굴을 잠깐 비추고는 곧장 로나의 방으로 올라왔다.

그녀가 자고 있기에 내려가려 했는데, 그녀가 눈을 뜬 것이다.

“도현을 기다리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어요.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그녀는 딘과 함께 돌아온 짐브리오와 리타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잠이 들었었다. 도현이 걱정됐는데 눈을 떴을 때 그가 있자 그녀는 안심이 됐다.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로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다.

“괜찮겠어요?”

걱정이 된 도현이 물었다.

“하루에 몇 시간은 괜찮아요.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요.”

파리한 안색의 로나는 건조한 입술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헝클어진 금발이 창피한지 도현이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이용해 머리를 손본 후 침대에서 내려와 겉옷을 걸쳐 입었다.

방문이 조금 열리며 리타가 고개를 내밀었다.

“일어났네?”

“응.”

“같이 술 마실래?”

“좋아.”

몸이 허약해지고 잠자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로나는 자신의 즐거움까지 버리진 않았다.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는 것.

그것은 그녀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줬다.

아래층 넓은 회의실 겸 식사를 하는 장소엔 어베인과 딘, 리드만, 짐브리오가 술과 음식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돌아온 도현과 술을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율리비어스에게 부상을 입은 짐브리오는 리드만의 치료를 받아서 언제 다쳤냐는 듯 멀쩡해져 있었다.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군.”

어베인은 로나와 도현을 차례로 본 후, 술잔을 위로 들었다.

“오늘 비록 위험한 일이 있었지만, 다시 또 이렇게 무사히 모였으니 술잔을 높이 들지 않을 수 없군. 건배합시다.”

“건배.”

방 안의 사람들은 로나가 몸이 아프고 탑주의 곁에 강한 자들이 모였지만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다 같이 서로를 격려하는 얼굴로 술잔을 높이 들며 건배를 했다.

첫 술잔을 비운 그들은 서로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도현, 마법 구조물을 만든 그 노인이 율리비어스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

어베인이 도현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물었다.

“고대 도시로 돌아오다가 북쪽 미개척 지역에서 헬구스를 만났습니다. 그가 탑주 주변에 있는 강자들에 대해서 제게 말해 주더군요.”

“그 사람이 어떻게 알고서?”

“칼라치에게 들었다고 합니다.”

“칼라치?”

도현은 술을 한 모금 한 후, 차분한 목소리로 헬구스로부터 들은 카샨과 칼라치의 관계, 마법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망각의 숲으로 가는 크샤코 가문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 주었다.

그의 얘기를 다 들은 방 안의 사람들은 얼음탑주의 제자 카샨이 스승을 배신해 칼라치와 손잡은 사실에 놀라워했다.

“카샨 그 녀석도 보통 놈이 아니군, 칼라치와 손을 잡다니. 그나저나 마법 구조물을 이용해 거인들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단 말이지……. 의심은 했지만 정말 그럴 의도였군.”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리던 짐브리오는 어베인을 응시했다.

“대장, 도현도 왔으니 이제 그의 의견을 들어 봅시다. 얼음탑주 놈이 마법 구조물을 이용해 거인들을 어떻게 해 보려는 게 확실해졌으니 말입니다.”

“흠, 그래야겠지.”

어베인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도현을 지그시 응시했다. 몬스터를 잡으며 수련을 하고 돌아온 그는 얼굴 살은 빠져 있었지만, 눈빛은 더 깊고 맑아져 있었다.

“탑주가 강자들을 끌어모아 거인의 섬을 노리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생각하네. 그들보다 앞서가느냐, 아니면 그들을 앞서 보내고 우리가 뒤를 치느냐.”

“뒤를 친다는 말씀은…….”

“락제프는 자네가 아무리 강해졌어도 이대로 거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강조하더군. 우리의 힘을 더해도 달라질 게 없을 거라면서 말이야.”

도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은 락제프였다. 론의 지팡이를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무작정 거인의 섬에 진입해 결계를 향해 뛰어간다는 것은 무모해 보일 수도 있었다.

“탑주가 마법 구조물을 이용해 거인들과 싸울 때 기회를 보자는 것이네. 아직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야. 자네 생각은 어떤가?”

사람들은 모두 도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실질적으로 그가 제일 앞장서서 싸우고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의 의사가 가장 중요했다.

한동안 깊게 생각하던 도현은 고개를 들어 넓은 탁자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거인의 벽을 넘는 데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면 탑주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요. 락제프가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 우리 힘만으로 거인들을 넘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우리 생각도 그러네. 탑주와 주변의 강자들이 부담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끼리 거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됐건 우리가 이곳에서 론의 지팡이를 찾으면, 그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입장이 되니까 말일세.”

“근데 마법 구조물이 결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안 되잖아요?”

리타가 살짝 걱정을 하자 로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진 않을 거야. 그랬다면 지금 저렇게 고대 왕궁에서 론의 지팡이를 찾고 있진 않겠지. 율리비어스가 만든 마법 구조물은 거인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분명해. 그러니까 우린 저들이 거인들을 끝까지 상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를 치든가, 아니면 저들이 거인들을 다 정리하고 결계를 어떻게 풀지 궁리하는 순간에 빈틈을 노리면 될 것 같아.”

“그럼, 그럼. 그 얼음탑 자식들 깜짝 놀라게 뒤통수를 한번 쳐 주자고.”

짐브리오가 술잔으로 바닥을 탕 치며 호탕하게 말했다.

“생각해 봐. 얼음탑 녀석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당했냐고? 로나는 손가락이 얼어서 깨져 왼손가락이 네 개고, 도현은 얼음탑주에게 죽을 뻔했고, 베일 가문의 땅을 빼앗기는 바람에 받기로 한 금화 12만 개 중 반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기도 하잖아. 이 자식들은 뒤통수 맞는 기분을 제대로 느끼게 해 줘야 돼.”

“맞아, 내가 앞장설게!”

짐브리오와 리타는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벌써부터 통쾌한 듯 소리 내어 웃었다.

“자아, 그럼 론의 지팡이를 찾으면 여기를 떠나 망각의 숲으로 가서 저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대응하는 걸로 결정을 내리세.”

어베인의 말에 도현도 동의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신전 발굴은 며칠 안에 끝날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신전의 잔해에서 론의 지팡이가 나오지 않았지만, 남은 신전의 구역에서 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중이었다.

“율리비어스와의 싸움은 어땠나?”

앞으로의 일정이 대략 정해진 것 같아 조용히 듣고만 있던 딘이 물었다.

“해볼 만했습니다. 그가 전력을 다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요.”

“자네가 좀 겸손한 편이라는 걸 내가 잘 알지. 해볼 만했다는 그 속뜻은 이길 수 있다는 말이지?”

“끝까지 가 봐야 알 수 있겠죠.”

도현은 담담히 말하며 술잔을 입에 가까이 가져갔다. 확실히 원거리 공격을 주로 하는 마법사와 싸우는 데는 호신강기가 힘이 됐다. 비록 내공 소모는 컸지만.

“아니, 근데 아까 그 대검은 뭐냐? 떠날 땐 장검 두 자루를 차고 갔잖아?”

짐브리오가 자신의 술잔에 물을 몰래 붓고 있는 리타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물었다.

“차고 간 검들은 모두 망가져서요. 그 대검을 사용했습니다.”

“용병 시장에서 사 온 그 검들은 꽤 좋은 물건인데, 튼튼하고. 얼마나 몬스터를 많이 잡았기에 검이 망가질 정도냐? 아, 가만, 그러고 보니 너 그 대검은 또 어디서 구했어? 저기 미개척 지역에서 몬스터 사냥을 했을 텐데? 고대 유적이라도 발견했냐?”

“그렇지 않아도 그와 관련해서 얘기할 게 있습니다. 잠시 만요.”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2층 자신의 방에 놔두고 온 대검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도현이 들고 서 있는 대검에 시선을 집중했다. 탁자 위의 촛불 빛에 은색 대검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대검은 몬스터로 변한 고대의 성주가 사용하던 검입니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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