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73화 (373/575)

[373] 디 임팩트 15권 23화

“아닙니다. 금방 나갈 겁니다.”

도현은 어베인의 잠잘 시간을 길게 뺏고 싶지 않았다.

“제가 찾아온 건 로나 때문입니다. 몸이 급속도로 약해지고 잠을 자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던데…… 시간이 얼마나 더 남은 겁니까?”

“음, 그것 때문에 온 것이로군.”

어베인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 방 한가운데 서 있는 도현을 응시했다.

“아마 반년 정도일 거네.”

“반년요?”

어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나의 모친도 저런 증상이 시작된 후 반년을 버티다 죽었다고 했으니까, 아마 비슷할 걸세. 그녀의 할머니도 그랬고.”

“그렇군요.”

예상은 했지만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들도 사고나 전쟁으로 얼마든지 일찍 죽을 수가 있네. 하지만 로나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단명할 운명임을 알고 깊은 두려움과 고민 속에 자라 왔네.”

“힘들었겠군요.”

“그런 것치고는 밝은 성격이지.”

어베인은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도현.”

“예.”

“자네가 자신을 위해서 씨드를 구하려 한다는 말, 거짓이 아니라고 믿네. 하지만 로나 때문에 이러는 것도 알고 있어.”

걸터앉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방 한가운데 서 있는 도현의 앞에 섰다.

“고맙네.”

툭 던지는 말이었지만 어베인의 깊은 감정이 그 말 한마디에 다 담겨 있었다.

“주무십시오.”

“자네도 잘 자게.”

조용히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 도현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천천히 걸어올라 갔다. 한 발 한 발 나무 계단을 밟을 때마다 씨드에 대한 그의 집념이 강해져 갔다.

‘반드시 씨드를 손에 넣고 말겠어.’

삐거덕거리는 나무 계단을 다 오른 도현은 로나의 조용한 방을 지나쳐 복도 끝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려던 그는 멈칫하고 뒤를 돌아봤다. 맞은편은 리타의 방이었는데 상당히 시끄러웠다.

-네가 이러고도 나를 스승이라고 부를 참이었냐!

“죄송해요.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도현이 아니었다면 넌 그 율리비어스란 놈에게 죽었을 거야!

“아까도 그 말씀 하셨는데요.”

-지겹도록 들어!

“네…….”

‘락제프에게 혼나고 있군.’

도현은 복도까지 들리는 저들의 대화 소리를 잠시 듣다가 자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 옆 바닥에 내려놓은 가방 안에서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꺼낸 그는 리타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리자 리타가 풀 죽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안해. 시끄럽지?”

“아니, 그것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줄 게 있어서.”

“내게?”

“어. 리타가 준 향신료가 있어서 내가 멧돼지나 토끼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거든. 몬스터 사냥에도 아주 도움이 됐다고.”

“정말?”

“그래서 선물을 준비했어.”

락제프에게 폭풍 잔소리를 들으며 혼나고 있던 그녀는 도현의 말에 얼굴이 환해지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헤헤, 뭘 또 그 정도 가지고 선물까지. 그거야? 내 선물?”

리타는 도현의 손에 들린 묵직한 가죽 주머니에 시선을 두며 물었다.

그녀의 뒤에서 락제프의 불퉁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물은 무슨 선물. 오히려 리타 네가 도현에게 선물을 해 줘야지. 율리비어스에게 죽을 뻔한 걸 구해 줬으니 말이다.

“정말 이러실 거예요?”

리타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뒤돌아섰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도현이 내게 선물을 준다는데 왜 방해하세요?”

-방해 안 했다. 사실을 말한 것뿐이지.

“저는요, 평생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요. 그러니까 도현이 주는 선물, 꼭 받을 거예요!”

“진정해, 리타.”

리타의 방 안으로 들어온 도현은 창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자수정을 응시했다.

“오랜만입니다, 락제프.”

-그래, 몬스터 사냥은 잘 다녀왔나?

“예.”

-알 수 없군, 도대체 어떻게 몬스터를 잡아 그 기운을 흡수하는지.

락제프로서도 도현의 마나 수련법은 미스터리였다.

도현은 몸을 반쯤 틀어서 옆에 서 있는 리타에게 손에 든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받아, 마음에 들지 모르겠지만.”

“고마워, 도현. 이게 뭐든 난 기뻐할 거야.”

리타는 묵직한 가죽 주머니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단단히 묶인 끈을 풀었다.

안에서 푸른 빛이 은은히 올라와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응? 이건 그거 같은데?”

그녀는 책에서만 보고 실물은 본 적 없는 샤닐의 뿔을 하나 들어 손에 가만히 쥐었다. 응집된 마나의 기운이 뿔에서 느껴졌다.

“정말 샤닐의 뿔이네? 이게 도대체 몇 개야?”

기쁜 목소리로 중얼거린 그녀는 주머니를 뒤집어 안의 내용물을 침대 위에 쏟았다. 언뜻 봐도 스무 개는 넘었다.

“고마워, 도현!”

그녀는 침대에서 풀쩍 뛰어 옆에서 지켜보던 도현의 품에 안겼다. 나이는 그녀가 많았지만 마치 여동생이 오빠에게 안기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이거 구하기 어려운 거잖아.”

도현의 품에서 떨어져 바닥으로 내려온 그녀는 부자가 된 눈빛으로 침대 위의 샤닐의 뿔을 원래 있던 가죽 주머니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모두 스물네 개! 이거 정말 나 주는 거야?”

“응, 마법사에게 도움이 되는 거라고 들었어.”

“맞아. 내 흑마법 중에도 샤닐의 뿔을 이용해 펼칠 수 있는 마법진 같은 게 있어. 그것뿐만 아니라, 내가 마력이 달릴 땐 샤닐의 뿔을 소모해 마법도 펼칠 수가 있고. 가령, 율리비어스에게 쫓길 때 내가 까마귀 마법 때문에 힘이 거의 없었거든. 만약에 그때 이게 내 손안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약한 비골이 아니라 강화된 비골을 소환할 수 있었을 거야.”

‘효과가 상당한 거구나.’

몬스터 재료 상점에서 샤닐의 뿔이 가장 고가의 재료로 거래되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타투에 흡수되지 않아 하나씩 모아 온 샤닐의 뿔은 리타에게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 같았다.

‘잘됐어. 앞으로 위험할 때 이걸 사용하면 리타가 더 안전해지겠지.’

팔면 큰돈이 되겠지만, 도현은 샤닐의 뿔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샤닐의 뿔은 노력하면 또 구할 수 있다. 지금은 리타의 해맑은 웃음에 만족했다.

“선물 고마워.”

“뭘.”

입가에 미소를 지은 도현은 고개를 돌려 자수정을 응시했다. 락제프의 눈동자가 기뻐하는 리타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내가 살던 시대에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는데, 넌 재주가 정말 뛰어나군.

“운이 좋았는지 자주 눈에 띄더군요.”

-그것도 실력이야. 한데, 회색빛 대지 안에 있는 저주에 걸린 사람들을 해방시켜 줬다고?

방 안에 있던 그는 술을 마시고 돌아온 리타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

“예, 혹시 그곳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곳은 오랫동안 존재했지. 회색빛 대지 밖으로 그들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지역 사람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안전했으니까.

“미리 말해 주셨으면 좋았잖아요. 도현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침대 옆 상자 안에 샤닐의 뿔이 든 가죽 주머니를 넣으며  리타가 말했다.

-넌 조용히 해!

“네.”

락제프는 다시 도현에게 말했다.

-난 네가 그렇게 멀리까지 몬스터 사냥을 갈 줄은 몰랐다.

“괜찮습니다.”

-사과하는 게 아니야. 그저 그렇다는 거지.

도현은 까칠한 락제프의 말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검은 용 바크 드라모스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풍문으로 들어 보기는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기록을 통해서 읽어 보기도 했고. 인간의 모습으로 대륙을 떠돌고 있다는 게 대부분이었지. 그런데 정말 그자가 존재할 줄은 나도 몰랐다. 네가 알아 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락제프도 회색빛 대지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바크 드라모스와 연관된 사실을 오늘에야 알게 된 것이다. 바크 드라모스에 관해서는 그도 아는 게 많지 않았다.

“그만 가 보겠습니다. 리타, 잘 자.”

“응! 도현도 잘 자!”

샤닐의 뿔을 선물로 받은 리타는 도현이 그의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뒤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도현이 그의 방으로 완전히 들어가자, 리타는 문을 닫은 뒤 서둘러 침대에 누워 두 눈을 꼭 감았다.

-아직 얘기가 덜 끝났다.

“졸려요, 락제프 님. 저 술 많이 마셨다고요.”

-샤닐의 뿔을 이용한 유용한 마법을 알려 주려고 했더니 어쩔 수 없지. 자거라.

“뭔데요?”

눈을 감았던 리타는 호기심이 생겼는지 한쪽 눈만 뜨고 슬쩍 물었다.

-누구나 받으면 아주 기뻐할 특별한 물건을 만드는 마법이다. 아마 도현도 이걸 받는다면 매우 좋아할 것이다.

“정말요?”

리타가 벌떡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어떤 물건인데요?”

신기한 물건

수십 개의 웅장한 돌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원로관 안에서 회의를 마친 세 명의 원로들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수고들 하셨소. 내일 봅시다.”

“그럽시다, 올라르.”

원로 베노아와 히반은 원로관 계단을 내려가는 올라르의 등을 지그시 응시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가 없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고대 도시 너머 북쪽 미개척 지역에 대규모 병력과 인부들을 파견하다니.”

“원로께서도 사람을 붙이셨지요?”

베노아의 물음에 히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른 명 정도 보냈는데, 연락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비슷하군요. 나도 그 정도 사람을 붙였는데, 며칠 안 돼 연락이 끊겼어요. 아마도 크샤코 가문이 뒤를 단단히 살피며 이동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점점 멀어져 가는 올라르의 뒷모습을 차갑게 응시했다.

“고대 도시에 중립을 지키라고 요구했더니, 엉뚱하게 미개척 지역에 많은 병력과 인부를 보내고. 크샤코 가문의 의중이 뭔지 통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난 한 가지 짚이는 게 있긴 있어요.”

원로 히반이 잘 다듬어진 손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요? 어떤 겁니까?”

베노아는 히반에게 질문을 던지며 손으로는 향로를 들고 원로관 밖에서 기다리던 시녀를 불렀다. 향로엔 상인에게 구입한 파로야라는 환각 열매 가루를 태운 연기가 몽실몽실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향로를 든 시녀가 바삐 뛰어오고 있을 때 히반이 대답했다.

“그 무리에 카샨이 끼어 있었다고 합니다.”

“카샨이?”

향로의 연기를 코로 흡입하려던 베노아가 행동을 중단하고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다. 히반은 손톱을 보며 계속 얘기를 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오래전 얼음탑주가 수십 명의 마법사들을 데리고 북쪽 미개척 지역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습니까? 목적지가 밝혀지지 않았지만요.”

“그런 일이 있었다고 밑에서 보고가 올라왔지요.”

“이번엔 그 제자인 카샨이 탑주처럼 북쪽 미개척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안의 많은 병력과 인부들을 대동하고요. 이게 우연의 일치 같습니까?”

“흠…….”

베노아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숙여 향로의 연기를 깊이 흡입했다. 얼굴에 약간 홍조가 든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크샤코 가문의 일이 아니라 얼음탑의 일이로군.”

환각 성분의 연기를 흡입한 베노아가 단정 짓듯 말했다.

“잘 보셨소.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겁니다. 올라르는 얼음탑주의 제자인 자신의 아들 때문에 얼음탑주를 돕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럼 우린 이제 어쩌면 좋겠습니까?”

환각에 서서히 빠지기 시작한 베노아가 약간 몽롱해진 눈빛으로 히반의 의견을 물었다.

“생각을 좀 해 봅시다. 이대로 모른 척해야 할지, 아니면 우리 두 가문을 배제하고 얼음탑주와 뭔가를 하려는 크샤코 가문에 경종을 울릴지.”

고대 도시와 멀지 않은 곳에 생성된 용병 시장엔, 술집과 도박장 같은 향락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밤거리는 술 취한 사람과 여자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했고, 때때로 주먹이 오가는 싸움이 벌어지며 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했다.

“윽!”

패싸움을 벌이던 용병들 중 한 명이 얼굴을 얻어맞고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짐브리오와 함께 대장장이를 찾아가던 도현은 뒷걸음질 치는 용병이 자신을 향해 몸을 부딪쳐 오자 슬쩍 몸을 피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