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디 임팩트 15권 25화
그녀가 가죽 주머니 안에서 뭔가 꺼내는 시늉을 하자 사라졌던 도현의 침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나타났다.
“어때?”
“놀라워, 정말 놀라워!”
도현은 리타의 손에 들린 작은 가죽 주머니를 보며 감탄을 계속했다. 리타가 마법 주머니라고 할 만했다.
“이걸 만드느라 요 며칠간 밤새워서 공부했던 거야?”
“응, 도현이 준 샤닐의 뿔을 이용해서 만든 거야. 자, 이건 도현 거.”
그녀는 품에서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가죽 주머니와 비슷하게 생긴 것을 꺼내 도현에게 내밀었다.
“내 거라고?”
“응. 받아, 처음부터 도현에게 주려고 마법 주머니를 만든 거야.”
리타는 빨갛게 충혈된 두 눈을 빛내며 어서 받으라는 듯 눈짓을 했다.
“난 마법사가 아닌데, 사용할 수 있어?”
“그럼. 이건 마법사만 사용하는 게 아니거든.”
도현은 신비롭게 보이는 마법 주머니를 받았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돈주머니였는데, 어떻게 이런 놀라운 효과가 부여됐는지 놀랍기 그지없었다.
“이건 오직 주인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주머니야. 그래서 각인을 해야 돼.”
“각인?”
“응, 가죽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으면 돼. 처음 손을 넣는 사람이 이 마법 주머니의 주인이 되는 거지.”
도현은 리타의 말대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순간, 가죽 주머니 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도현을 감싸더니 잠시 후 사라졌다.
“제대로 각인이 됐는지 확인해 보자. 침대로 가서 조금 전에 내가 했던 것처럼 따라서 해 봐.”
침대 옆에 선 도현은 마법 주머니를 침대에 가까이 붙였다.
“이대로 그냥 침대를 잡고 잡아당기면 돼?”
“아니, ‘얍!’이라고 외쳐. 이게 주문이야.”
“그래?”
도현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녀가 시키는 대로 주문을 외우며 침대를 마법 주머니 쪽으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얍!”
끼이이익.
침대가 사라지지 않고 앞으로 끌려오자 도현은 머쓱해졌다.
“왜 안 되지?”
“주문을 더 크게 해야지. ‘얍!’ 하고 말이야.”
“알았어. 다시 해 볼게.”
도현은 이 신비로운 마법 주머니를 꼭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게 있으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거야.’
“얍!”
“더 힘 있게.”
“얍!”
“왜 안 되지? 다시 한 번.”
“얍!”
얍 얍 소리를 아무리 내 봐도 침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당황하는 도현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리타가 큭큭대며 배를 잡고 웃었다.
“아이고 배야. 락제프 님, 리타 좀 살려 주세요. 도현이 하는 행동이 너무 웃겨요.”
-장난 그만치고 제대로 알려 줘.
그녀의 호주머니 속에서 락제프가 말했다.
“미안해, 도현. 실은 얍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장난친 거야.”
도현은 빙그레 웃었다.
“왜 웃어? 화난 거 아니지?”
“화나긴. 얍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 나도 이미 눈치챘어.”
“응? 정말? 그런데 왜 계속 그렇게 한 거야?”
리타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네가 고생해서 이걸 만들었으니까, 잠 못 자고 술도 안 마시고. 이 정도 장난으로 네가 기뻐한다면 얼마든지 속아 줄 수 있어.”
따뜻한 도현의 말에 리타는 코를 훌쩍였다.
“락제프 님, 보세요, 도현은 이렇게 마음이 넓어요.”
-시끄럽고, 어서 제대로 알려 주기나 해.
“네…….”
눈물을 훔친 그녀는 침대 옆에 서 있는 도현의 곁에 섰다.
“이 마법 주머니를 사용할 때 마음속으로 말을 해야 돼.”
“마음속으로?”
“응, 넣을 땐 ‘들어가라!’, 안에 있는 걸 뺄 땐 ‘나와라!’ 하고 말이야. 간단하지? 이제 해 봐.”
도현은 그녀 말대로 마음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침대 끝을 잡아 마법 주머니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 순간 침대가 사라졌다.
“됐어!”
도현이 기뻐하며 리타를 돌아봤다.
“축하해, 마법 주머니의 주인이 됐어. 리타가 만든 마법 주머니 2호의 주인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1호는 당연히 너고?”
“응, 마법 주머니 1호의 주인은 나. 2호는 너!”
리타는 며칠간 잠을 설치며 배운 락제프의 마법이 효과를 발휘하자 몸이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이제 안에 있는 걸 빼 봐.”
“그래.”
도현은 마법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마법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는 침대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마음속으로 ‘침대야 나와라.’ 하고 중얼거리며 마법 주머니 안에서 손을 빼자, 침대가 원래 있던 것처럼 방 안에 다시 등장했다.
“도현, 이번엔 여러 가지를 넣고 하나씩 빼 봐.”
리타가 사용법을 제대로 알려 주려는 것 같아서 도현은 그녀의 말을 따랐다.
침대도 넣고 가방도 넣고 지난번 가지고 가려다가 못 가지고 간 금화 3천 개가 든 청동 상자도 넣고 술병도 넣었다.
“그런데 이 마법 주머니는 제약이 없이 다 들어가는 건가?”
도현이 방 안에 있는 물건을 마법 주머니에 하나씩 넣으며 물었다.
“아니, 마법 주머니의 전체 공간은 침대 네 개 정도 들어가는 크기야. 침대 네 개가 들어가면 꽉 차서 다른 건 못 들어간다는 뜻이지.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살아 있는 생명체는 처음부터 못 들어가. 사람이나 동물이나 몬스터 같은 거. 그 외에는 다 돼.”
“식량이나 물 이런 것도?”
“응. 그런데 오래 두면 상할 수도 있어. 마법 주머니는 무게와 크기를 왜곡시켜서 들어가게 해 줄 뿐이거든.”
“그래도 대단해. 이 작은 주머니 하나면 많은 걸 보관하고 가지고 다닐 수가 있잖아.”
방 안에 물건을 마법 주머니에 제법 많이 집어넣은 도현은 이제 빼내기 위해 그 안에 손을 넣었다. 그가 리타와 대화하며 집어넣었던 여러 물건들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차례로 하나씩 꺼내 볼까?’
술병, 가방, 침대, 금화 상자, 신발, 촛대 등 그는 실수 없이 모든 걸 완벽한 상태로 꺼낼 수 있었다.
몇 차례 넣고 빼는 연습을 더 한 그는 잠을 제대로 못 자 피곤해 보이는 리타 앞에 섰다.
“고마워, 리타. 정말 잘 쓸게.”
“아니야. 사실 샤닐의 뿔을 도현이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만들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이 마법 주머니 만드는 마법은 락제프 님이 알려 주신 거고.”
그녀는 호주머니 안에서 자수정을 꺼냈다.
“락제프 님, 고마워요.”
-됐다. 네가 그 마법 주머니를 만들기 위해 마법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까, 난 그걸로 만족한다.
“앞으로도 이런 유용한 마법을 많이 알려 주세요.”
-이 녀석! 마법 주머니를 만드는 방법은 내가 수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을 자수정 속에 갇혀 있으면서 간신히 깨달은 것이다. 또 이런 마법이 있겠느냐?
“화내지 마세요. 저도 느끼고 있어요.”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 마법 주머니는 역사를 바꿀 만큼 대단한 마법이다. 넌 내게 그 마법을 배운 유일한 사람이고. 앞으로는 함부로 마법 주머니를 만들어선 안 돼.
“네.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리타가 자수정을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락제프.”
도현도 조용히 인사를 했다.
-마법 주머니를 잃어버리면 그 안에 든 물건도 잃어버리는 거니까, 관리를 잘하는 게 좋을 게다. 난 그만 들어간다. 리타, 너도 이제 그만 자도록 해.
“네, 스승님. 쉬세요.”
자수정에 맺힌 락제프의 눈동자가 사라지자, 리타는 호주머니에 자수정을 넣었다.
“리타, 마법 주머니 만드는 데 샤닐의 뿔이 들어간다고 했지?”
“응, 필수야, 없으면 안 돼. 이건 샤닐의 뿔을 이용한 마법으로 만드는 거니까.”
“이런 마법 주머니 한 개를 만드는 데 샤닐의 뿔은 몇 개가 들어가는 건데?”
도현이 침대를 원래 있던 자리로 바로잡으며 물었다.
“열한 개. 주머니 두 개 만들면서 모두 스물두 개를 소모했어. 뿔은 이제 두 개 남았고.”
“내가 또 구해 오면 만들 수 있는 거지?”
“쉿!”
그녀는 손가락으로 입을 가렸다.
“락제프 님 들어. 조금 전에 옆에서 들었잖아, 함부로 만들지 말라고. 나중에 얘기해. 갈게, 잘 자.”
“그래. 고마워, 잘 자.”
리타가 자신의 방으로 건너가자 도현은 마법 주머니를 내려다봤다.
말을 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이 주머니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락제프도 정말 대단한 마법사구나.”
자수정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마법사로서의 그의 무게가 새삼 강하게 느껴졌다.
도현은 금화 3천 개가 든 상자 옆에 마법 주머니를 가까이 대고 끌어당기는 시늉을 했다. 금화 상자는 순식간에 마법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갔을 때, 금화 상자 놓고 왔다고 용주에게 구박받는 일은 더 이상 없겠어.’
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누웠다.
잠시 후, 리타의 코 고는 소리가 그의 방까지 전달됐다.
“이게 말이 되냐고. 왜 나는 안 만들어 주는 건데?”
“샤닐의 뿔을 가지고 와, 그럼 만들어 줄게. 열한 개 필요 하니까, 잊지 말고.”
리타가 점심을 먹으며 대꾸했다.
아침에 마법 주머니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장난을 친 리타는 단번에 위대한 마법사로 대우받게 됐다. 특히 짐브리오는 마법 주머니를 몹시 탐내서 점심을 먹고 있는 리타의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너, 그러면 안 된다. 율리비어스에게 쫓길 때 내가 죽음을 각오하고 널 구하려고 했는데, 벌써 잊은 거냐?”
“그건…….”
리타가 머뭇거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짐브리오는 웃으며 말했다.
“안 잊었겠지? 내가 그때 가시넝쿨에 휩싸여서 얼마나 아팠는데.”
“미안해, 짐브리오. 내가 잊은 건 아닌데, 샤닐의 뿔이 없으면 정말 못 만들어. 도현이 사냥 가서 구해 온 걸로 딱 두 개 만들었다고.”
“그럼 네 거라도 나 주면 안 될까?”
얼굴에 철판을 깐 짐브리오의 요구에 리타가 혀를 날름 내밀었다.
“마법 주머니는 한번 주인이 정해지면 다른 사람은 사용 못해. 아까 말했잖아.”
점심을 다 먹은 리타는 식탁 앞 의자에서 일어났다.
“리타, 뿔 두 개 남았다면서! 그거라도 이용해서 작은 거라도 만들어 줘. 나 정말 마법 주머니가 갖고 싶다.”
“미안해. 최소한 샤닐의 뿔 열한 개는 있어야 돼. 그게 시작이거든. 나중에 짐브리오가 샤닐의 뿔을 구해 오면, 내가 틀림없이 멋진 마법 주머니를 만들어 줄게.”
리타가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가자, 짐브리오는 입맛을 다시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망각의 숲에 가면서 샤닐의 뿔을 구할 수 있으려나?”
점심이 차려진 1층 방을 나서던 그는 복도에서 도현과 마주쳤다.
“어디 가냐?”
“신전 발굴지요. 저도 오늘부터는 그쪽에서 론의 지팡이를 찾아보려고요.”
“같이 가자. 론의 지팡이가 제때에 나와야 우리가 탑주 녀석을 어떻게든 이용해 먹을 수가 있는데 말이다.”
그들은 얼굴을 가린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신전 발굴지엔 딘과 리드만, 어베인이 믿을 만한 소수의 용병들과 함께 론의 지팡이를 찾고 있었다.
“짐브리오, 나중에 제가 샤닐의 뿔을 구해 볼게요.”
길을 걷던 도현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에 마법 주머니를 부러워하던 짐브리오의 눈빛을 도현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냐, 그게 구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구해지는 것도 아니고, 신경 쓰지 마. 내가 뭐 그까짓 거 없다고 울고 다닐 사람도 아니고.”
짐브리오의 대답에 도현은 별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나저나 그랜트가 네 검을 잘 만들고 있나 모르겠다.”
검을 만드는 데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으니, 이틀 정도 후에 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도현은 자신의 허리를 내려다봤다. 임시로 사용할 검 한 자루가 걸려 있었다.
‘어떤 검이 나올지…….’
얼마 후 그들은 신전 발굴지 현장에 도착했다. 경사진 길을 따라 지하로 내려간 그들은 신전 제단이 있는 성소 부근을 발굴하고 있는 사람들 곁에 섰다.
“왔는가?”
영주 딘과 리드만이 위에서 내려온 도현과 짐브리오에게 말을 거는 순간이었다.
쾅!
제단 안쪽에서 폭발음과 함께 용병들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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