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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76화 (376/575)

[376] 디 임팩트 16권 1화

달의 여신

제단 부근에서 알 수 없는 힘에 떠밀려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간 여러 명의 용병들은 당황한 얼굴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경험이 풍부한 용병들은 당황한 가운데서도 본능적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윽!”

여기저기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도현을 비롯한 짐브리오, 딘, 리드만, 어베인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용병들에게 급히 다가갔다.

“괜찮은가?”

딘의 물음에 비틀거리며 일어서던 한 용병이 쿨럭거리더니 대답했다.

“온몸이 뻐근하긴 하지만 괜찮은 것 같습니다.”

한 발짝 물러나 딘의 뒤에서 상황을 살피던 도현은 근처에 떨어진 다른 용병들을 둘러봤다. 놀란 기색은 있었지만 고통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괜찮아 보이는군.’

다행히 그들이 떨어진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서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도현은 용병들이 튕겨진 제단 뒤편의 장소에 시선을 뒀다. 그곳에서는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가서 확인하고 싶었지만 용병들의 말을 듣는 게 먼저였다.

“어떻게 된 건가?”

딘의 물음에 용병 중 한 명이 먼지구름이 올라오는 장소를 가리켰다.

“부서진 제단 뒤쪽 바닥에 흙을 조금 걷어 냈더니 약간 기울어진 평평한 바닥 돌이 보였습니다. 기울어진 바닥 돌 사이로 지하 공간이 보이는 것 같아서 동료들과 함께 그 돌을 걷어 냈는데, 그 순간 번쩍이는 빛이 저희들을 강타했습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용병들도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번쩍이는 빛이 어디서 나타났나? 밑에서?”

딘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켰다.

“네, 그랬죠.”

“음.”

양쪽으로 기른 콧수염을 잠시 만지작거리던 딘은 뒤에 서 있는 어베인과 시선을 교환했다.

어베인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딘이 주위로 몰려든 용병들을 향해 말했다.

“수고했네. 자, 다들 오늘 작업은 여기서 멈추고 돌아가 쉬게.”

딘과 어베인의 지시를 받으며 신전을 조사하던 수십여 명의 용병들은 먼지구름이 올라오는 제단 뒤편이 궁금했지만 순순히 지시를 따라 지상으로 올라갔다.

용병들을 발굴지에서 모두 내보낸 딘은 먼지구름이 가라앉은 제단 뒤편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뭔가 찾은 것 같긴 하군. 한번 가 볼까?”

용병들이 현장에서 철수할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린 도현과 사람들은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해 갔다.

용병들을 튕겨 낸 알 수 없는 힘을 경계한 그들은 약간 거리를 둔 채 바닥을 살폈다.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은 제단 뒤편의 바닥엔 작은 지하 공간이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부서진 계단이 위태롭게 아래로 이어진 모습이었다.

“대장, 론의 지팡이는 이 지하에 있는 것 같소. 분위기가 딱 그런데.”

“조사해 보면 알겠지.”

어베인은 말을 하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돌을 지하 입구를 향해 가볍게 던졌다.

돌이 지하 입구 안으로 떨어지려는 순간, 안에서 솟구친 번쩍이는 빛줄기가 돌을 맞혀 외부로 튕겨 냈다.

허공 높이 솟구친 작은 돌은 근처에 서 있는 도현의 머리 위를 넘어 저편으로 날아갔다.

“와우, 빠른데?”

돌을 정확히 튕겨 낸 빛줄기를 목격한 짐브리오는 혀를 내둘렀다.

“일종의 마법이 펼쳐진 것 같군요.”

도현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까짓것, 내가 가 보지. 딱 보니 죽을 정도는 아닌 것 같으니까.”

“짐브리오, 기다리게!”

어베인이 그를 만류했지만 짐브리오는 이미 지하 입구를 향해 몸을 날린 후였다. 몇 걸음밖에 안 떨어진 곳이라 물리적으로 말릴 틈도 없었다.

기세 좋게 지하 입구로 뛰어들던 짐브리오를 기다리는 건 지옥 같은 통증이었다.

“으악!”

거센 압력을 동반한 빛줄기에 하복부 급소를 얻어맞은 짐브리오는 얼굴이 흰 눈처럼 창백하게 변한 상태로 뒤로 튕겨졌다.

쿠웅.

허공에서 떨어진 그는 바닥을 데구루루 구르며 하복부 급소를 손으로 감쌌다.

“이런! 젠장!”

눈물을 쏟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보며 사람들이 혀를 찼다.

“아프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영주님.”

“리드만, 저건 치료가 안 되나?”

“글쎄요. 한번 해 보겠습니다.”

리드만은 땀까지 흘리며 신음하는 짐브리오에게 걸어갔다.

“손 치워 보게. 치료해 줄 테니.”

리드만이 주름진 손을 급소에 데려 하자 짐브리오가 기겁을 하며 외쳤다.

“미쳤소! 손 치우시오!”

“창피해할 것 없네.”

“됐다니까 그러시오. 아이고, 나 죽네.”

짐브리오는 억지로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두 다리가 후들거리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도현은 그의 어깨에 한 손을 걸치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짐브리오를 안됐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아무래도 리타를 데려오는 게 좋겠습니다. 이곳에 마법이 설치되어 있다면 그녀의 조언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락제프도 있고요.”

“그렇게 하도록 하세.”

딘과 어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그녀를 데리고 오도록 하죠.”

경사진 길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가던 도현은 동료들이 서 있는 제단 부근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호신강기를 펼치면 지하 입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과정 중에 지하 입구가 손상되거나 내부가 망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론의 지팡이가 보관된 장소일지도 모르는 이상, 행동에 주의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리타를 불러오려 한 것이다.

“야! 올 때 술도 좀 가지고 와!”

저 밑에서 짐브리오가 급소를 부여잡고 그에게 외치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왔다.

지하 입구를 노려보는 리타의 눈은 완전한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얼굴도 아주 싸늘하게 변해서 웃음기 많은, 장난스러운 그녀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하 입구에 펼쳐진 마법을 알아내기 위해 수준 높은 흑마법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어둡고 음산한 소녀 흑마법사였다.

“너, 리타 얼굴이 침대보다 크게 변한 거 본 적 없지?”

숨죽이며 지켜보던 짐브리오가 도현에게 작게 물었다. 도현은 짐브리오의 말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굴이 침대보다 크게 변해?’

도현이 무슨 뜻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짐브리오는 큰 몸동작으로 리타의 손과 얼굴이 거대하게 변해서 자신을 괴롭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주 그냥 사람 놀라게 하는 데 재주가 있어. 너도 봤으면 아마 까무러쳤을 거다.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마법이라나, 뭐라나.”

“재밌군요.”

“재밌긴. 커다랗게 변한 리타의 얼굴이 널 한입에 삼키려 한다고 상상해 봐라. 아, 가만, 얼굴만 둥둥 떠다녔는데 날 삼키면 내 몸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냥 뒤로 나오나?”

“나중에 리타에게 물어보죠, 어떻게 되는지.”

“됐다. 물어보면 또 거대 얼굴을 만들어서 날 삼켜 본다고 할 거야.”

짐브리오가 질색하는 모습에 빙그레 미소를 짓던 도현은 리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막 뒤돌아서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리타는 알아낸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떤 힘이 입구를 보호하는 건 맞아. 그런데 마법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이상해.”

“무슨 의미야?”

도현이 묻자 그녀는 팔짱을 끼며 고민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그게 말이야, 마법진이 힘을 발휘하려면 주변의 마나를 자꾸 끌어다 써야 하는데, 저곳엔 그런 마나의 힘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거든. 마법진이 없다는 뜻이지. 대신 다른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었어.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뜻이야.”

사람들의 시선이 지하 입구로 향했다. 단순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네 마법으로 못 없애나?”

짐브리오가 물었다.

“해 볼 수는 있지만…… 잠시만 스승님께 여쭤 볼게. 스승님, 스승님!”

-듣고 있다.

자수정 속 락제프의 눈동자는 지하 입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미 이들의 대화를 호주머니 안에서 듣고 있었던 것이다.

“저 지하 입구에 대해 알고 계세요?”

-모른다. 하지만 네가 말한 힘의 정체는 알 것도 같다.

“정말요? 뭔데요?”

-신전 대사제가 신성력을 발휘해 입구를 보호한 것이다.

“신성력이라고요?”

곁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리드만의 놀람은 더욱 컸다.

-신전 대사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신성력으로 입구를 보호하는 건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분이라서 잘 아시는 거군요.”

리타가 친구라는 말을 언급하자 고대의 인물인 락제프는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너무 긴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의 얼굴도 가물가물하다.

“슬퍼 마세요, 스승님. 제가 있잖아요.”

-너 때문에 더 힘들다. 네가 날 돕는 길은 하루라도 빨리 날 소멸시켜 주는 것이다.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스승님, 저 안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신성력을 제 흑마법으로 없애고 들어갈 까요?”

-안 될 건 없겠지.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할 게다.

“예에? 목숨요?”

섬뜩한 그의 대답에 리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성력이란 아주 무서운 것이거든.

“하지만 리드만 사제님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잖아요. 그게 그렇게 무서운 힘이에요?”

-그의 재주가 그것밖에 되지 않으니, 치료하는 데만 사용하겠지.

락제프의 눈동자가 스르륵 움직여 딘의 옆에 서 있는 리드만을 올려다봤다.

리드만은 헛기침을 했다. 신성력을 발동시킬 때는 약간의 마나가 필요할 뿐, 나머지는 오로지 신을 섬기는 깊고 깊은 신앙심과 내면의 통찰을 통한 정신적인 깨달음만 필요했다. 그는 이 신성력을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데 사용해 왔고,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고대에는 신성력을 여러 용도로 사용했나 보군요.”

-그렇다. 물론 그럴 만한 능력자들은 아주 드물었지만 말이야. 내 친구인 이곳의 대사제는 그런 능력자 중 한 명에 속했기 때문에 리타의 흑마법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고.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오. 그렇게 대단하오?”

짐브리오는 말을 하며 자신의 급소를 어루만졌다. 아직 부어 있었지만 치명적이진 않았다. 신성력이라서 그런지 사람을 살상하기보다는 입구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정도의 힘만 발휘한 것 같았다.

-구름은 한 방울의 빗방울을 떨어트릴 수도 있고, 홍수가 날 만큼 큰 비를 뿌릴 수도 있다. 작은 비를 맞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제가 가면 어떻겠습니까?”

조용히 듣고만 있던 도현이 물었다. 리타가 위험할 수도 있다면 굳이 그녀를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없었다.

-음, 너의 단련된 칼이라면 그 친구의 신성력도 무리 없이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락제프의 반응에 도현은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그가 들어갈 태세를 보이자 락제프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힘들여 싸우지 않고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정말요?”

리타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어떤 방법인데요?”

-아마 그 친구는 신전의 대사제로서 들어올 사람과 들어오지 못할 사람을 구분해 놨을 것이다.

“무슨 기준으로요?”

-그야 당연히 신성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겠지.

그의 대답에 사람들의 시선이 리드만에게 쏠렸다. 이들 중에 신성력이 있는 사람은 리드만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더구나 일곱 신을 믿으며 성장시킨 그의 신성력은 고대 신전이 모시는 신과도 그 뿌리가 같았다.

“리드만, 자넨 좋겠네, 고대 신전 대사제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이라서.”

딘이 슬쩍 등을 떠밀자 리드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영주님, 괜찮을까요? 락제프 님도 추측을 말한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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