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9] 디 임팩트 16권 4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래, 그랬을 수도 있겠어. 이렇게 감격스럽고 위대한 신의 은총이 또 어디 있겠는가!”
리드만은 그 자리에서 신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10년 전 모습으로 회귀한 리드만의 놀라운 변화에 사람들은 다들 놀라워했다.
“내가 끌어안고 자야 했는데. 아무튼 축하합니다, 사제님.”
짐브리오와 어베인, 리타, 로나가 제 일처럼 기뻐했다.
“미안하네, 로나. 성물이 자네에게 힘을 줬어야 하는데 말이야. 일이 이렇게 돼 버렸군.”
“아니에요, 사제님. 성물의 신성력은 사제님이기에 그 능력이 전가됐을 거예요. 전 신경 쓰지 마세요.”
“일곱 신은 자네를 버리지 않을 걸세. 희망을 갖게.”
“물론이죠.”
파리한 안색의 로나는 활달한 얼굴로 대꾸했다.
1층 회의실 겸 식당에서 리드만의 사건을 화제 삼으며 동료들과 아침을 먹은 도현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조만간 이 방과도 이별이군.”
어제 술을 마시며 동료들과 앞으로의 일정을 상의했다.
론의 지팡이를 찾은 이상 신전 발굴지에서 볼일은 다 끝이 난 상황이었다.
며칠 내로 망각의 숲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곳에서 마법 구조물을 만들려는 탑주 세력의 움직임을 살피며 거인의 섬에 있는 씨드를 획득할 생각이었다.
‘이제 한고비를 넘은 셈이야. 앞으로가 중요해.’
얼음탑주와 율리비어스, 세티앙과 루시앙이 있는 저 막강한 세력을 어떤 식으로 상대할지 고민해 봐야 한다. 더구나 칼라치까지 엮여 있어서 어떤 돌발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
“도현, 안에 있나?”
방문 밖에서 들리는 딘의 목소리에 도현이 문을 열었다.
“영주님?”
“잠시 들어가도 되나?”
“그럼요. 들어오십시오.”
영주 딘은 방문을 닫기 전 얼굴을 내밀고 복도 주변을 훑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문을 닫고 뒤돌아섰다.
“큰일이야, 아주 큰일이야.”
“왜 그러십니까?”
“그게 말일세, 허허 참.”
뒷짐을 진 채 잠시 도현의 방 안을 초조하게 거닐던 딘은 도현의 앞에 섰다.
“자네만 알고 있게. 약속하게.”
심상치 않은 그의 눈빛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합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실은 내가 어젯밤에 약간 취해 있었네. 론의 지팡이를 찾았다고 우리가 꽤 술을 마시지 않았는가?”
로나와 리드만 사제를 제외하곤 다들 그렇게 많이 마신 게 사실이었다.
“내가 장난을 좀 쳤어.”
“장난요?”
“그래, 순전히 장난이었네. 내가 성물을 리드만의 침대에 올려놨거든, 일어나서 깜짝 놀라라고 말이야.”
“영주님이 성물을 리드만 사제님의 침대에 옮겨 놨던 겁니까?”
도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렇게 쳐다보지 말게, 나도 술김에 한 행동이니까.”
“일곱 신이 성물을 움직인 게 아니고요?”
“지금 말하지 않았나, 내가 침대에 뒀다고.”
성물이 평범한 나무 여신상으로 변한 게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간신히 벗어난 리드만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꽤나 시끄러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자네만 알고 있으라는 내 말뜻을 이해하겠지? 말하면 난 큰일 나네.”
“알겠습니다. 이 사실은 영원히 함구하죠.”
도현의 굳은 약속에 딘은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침상에 걸터앉았다.
“자네에게라도 사실을 털어놓으니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아침에 리드만이 성물의 기운을 흡수해 저렇게 변한 것을 보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는가?”
“그래도 좋은 쪽으로 변한 게 아니겠습니까? 10년은 젊어지셨으니까요. 건강해지신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하하하!”
딘은 시원하게 웃었다.
“일곱 신도 리드만을 그만큼 부려 먹었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영주님.”
죽이 척척 맞은 그들은 방 안에서 큰 소리로 웃었다.
“뭐 하십니까?”
방문이 열리며 리드만이 나타나자 도현과 딘은 웃음을 거두며 헛기침을 했다.
“그냥 웃고 있었네.”
“그래요?”
리드만은 뭔가 수상하다는 듯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딘과 도현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영주님, 용병들을 해산하기 전에 서른 명 정도만 선별해 주십시오.”
“무슨 일로?”
“신전 지하에서 찾은 고서와 그림이 담긴 상자들을 남부 대륙에 있는 시아니안 신전으로 보낼까 해서요.”
시아니안 신전은 리드만이 사제로서 교육을 받고 공부한 곳으로, 꽤 멀리 있었다.
가려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남부 대륙에 간 후, 그곳에서 다시 상당한 시일을 내륙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리드만은 고서와 그림 들을 그곳의 사제들이 연구하며 보관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판단 내렸다. 신학에도 큰 보탬이 될 자료들이었기 때문이다.
“알겠네. 적절한 용병들을 선별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왜 웃으셨습니까? 도현도 크게 웃던데요.”
“어허,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그러네. 자, 그만 나가세.”
딘은 리드만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방을 나가자 도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영주님의 장난이었다니. 그래도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야.”
어쩌면 딘의 그런 장난도 리드만이 섬기는 일곱 신의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벌
밤늦은 시각, 용병 시장의 대장간 거리에 후드로 얼굴을 가린 도현과 짐브리오가 나타났다.
술집과 도박장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 났지만, 이 시간 대장간 거리는 한산했다. 한낮의 뜨거운 날씨와 싸우며 불과 쇠를 다루던 대장장이들은 적당한 휴식 시간이 필요했는데, 지금이 그때였다.
대장간 거리에 불이 켜진 곳은 몇 없었고, 그들 중에서도 망치질 소리를 내는 곳은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야간에 대장간 시설을 빌려 쓰는 떠돌이 대장장이 그랜트의 대장간이었다.
왕실 대장간 출신인 그는 쇠를 두드리다가 도현과 짐브리오가 대장간 안으로 들어서자 천천히 망치질을 멈추었다.
“어서 오시오.”
“안녕하셨습니까.”
도현은 차분한 어투로 인사를 했다. 일주일 만에 다시 본 그랜트의 얼굴은 어딘지 피곤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랜트, 어디 아프시오?”
짐브리오의 물음에 그랜트가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픈 게 아니고 체력이 달려서네. 세타이움이 들어간 검을 다루는 일은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거든.”
세타이움이 들어간 대검을 녹여 두 자루 장검을 만드느라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한 것 같았다.
“좋은 검이 나왔겠구려.”
“글쎄, 검 주인이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군.”
도현을 힐끔 쳐다본 그랜트는 대장간 안쪽에서 길쭉한 나무 상자를 들고 와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상자에는 똑같이 생긴 검 두 자루가 들어 있었다.
“확인해 보시오.”
그랜트는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세타이움 장검을 상자 밖으로 꺼내 도현에게 내밀었다.
상자 안에 있던 검 중 하나를 받아 든 도현은 외관이 평범해 보이는 검은 빛깔의 검집과 손잡이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검을 뽑았다.
순간, 뜨거운 대장간의 온도가 은색 검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운에 급속도로 식어 버리는 듯했다. 검의 예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내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것 같군.’
도현은 그 자리에서 검을 좌우로 휘둘러 보았다. 그가 바라던 대로 무게는 적당했고 검신의 형태도 주문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만들어졌다.
‘강도를 확인해 볼까?’
임시로 차고 있던 허리의 검을 뽑아 허공에 띄운 도현은 세타이움 장검으로 그것을 내리쳤다.
번쩍이는 은빛이 허공에서 떨어지던 검을 스치듯 지나갔고, 불꽃과 함께 그 검은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검을 자른 세타이움 검날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세타이움 장검의 검신을 가까이서 살피던 도현은 손가락으로 검신을 두드려 봤다. 맑은 금속성이 묵직하게 흘러나왔다.
검을 든 도현은 지그시 눈을 감고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음미했다.
‘아름다운 무늬 하나 없는 단조로운 검신이지만, 아주 마음에 들어. 장인의 숨결이 쇠와 같이 단련된 것 같아.’
세타이움이 들어가면 명검이 된다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검에서 풍기는 특별한 느낌이 손잡이를 통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완성시키는 사람이 시원찮으면 재료의 특성을 뛰어넘지 못한다. 하지만 도현이 들고 있는 검은 세타이움이라는 재료의 특성을 뛰어넘어 장인의 힘이 깃들어 빛이 나고 있었다.
비록 그 빛이 외부로 뿜어져 나오지는 않았지만, 검신 내부에 가득한 그 힘을 도현은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좋군요. 마음에 듭니다.”
도현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자, 긴장된 눈빛으로 지켜보던 그랜트는 비로소 안도했다. 그가 아무리 검을 잘 만들어도 정작 검을 사용할 검 주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에 든다니 나도 기분이 좋소. 화려하고 보기 좋은 문양과 무늬를 검신에 집어넣으려다가, 당신은 눈에 보이는 외관보다는 검의 순수성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소. 대신 그 시간에 검신을 두드리는 데 더 집중을 했지. 아마 다른 세타이움 장검과 부딪치더라도 웬만해선 그 검이 물러날 일은 없을 거요.”
그랜트의 음성에는 강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기대 이상입니다.”
두 번째 검도 확인한 도현은 정중하게 그랜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적당히 해도 좋은 검이 나왔겠지만, 그랜트는 최선을 다해 준 게 분명했다.
“험, 돈 받고 한 일인데 너무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 없소. 오히려 좋은 검을 만들 기회를 줘서 며칠간 아주 흥분하면서 지냈으니까.”
“그렇습니까?”
도현은 담담히 웃으며 짐브리오를 쳐다봤다.
짐브리오는 도현이 사용하게 될 세타이움 장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며 나름 감상하고 있었다.
“짐브리오.”
“응? 아, 돈을 줘야지.”
도현의 말에 정신을 차린 짐브리오는 검을 그에게 돌려주고 품 안에서 미리 준비해 온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세타이움 장검 제작 비용으로 금화 백 개를 주기로 계약을 맺었었다.
“계약금으로 준 돈을 제외한 나머지 돈이오.”
“고맙네.”
금화 주머니를 받은 그랜트는 금화를 세 보지도 않고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놨다. 그의 관심은 두 자루 세타이움 장검을 허리 양쪽에 차고 있는 도현에게 집중돼 있었다.
자신이 만든 검이 격에 맞는 좋은 주인을 찾아간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하고 기뻤다.
피곤해 보였던 그랜트의 얼굴은 어느새 생생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몸을 돌려 망치를 잡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까앙! 까앙!
대장간을 울리는 망치질 소리를 들으며 도현과 짐브리오는 그곳에서 나와 거리를 걸었다.
“무뚝뚝해도 검 하나는 잘 만드는 노인이야. 그렇지?”
“네.”
도현은 자신의 손에 맞게 제작된 외날의 세타이움 장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조용한 곳에서 마음껏 검을 휘둘러 보고 싶었다. 그의 내공과 검술을 온전히 버틸 만한 검을 얻은 건 앞으로 있을 싸움에서 그에게 큰 힘이 되는 일이었다.
“이제 검도 찾았으니, 그를 만나러 가 볼까?”
“누구를요?”
“있잖아, 그 암거래 상인.”
도현은 짐브리오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금방 이해가 됐다. 일전에 이계의 수정 문제로 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고대 도시에서 이계의 수정이 출토돼 암시장으로 흘러들어 오면 사려고 그에게 의뢰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현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고대인인 락제프는 이계의 수정이 고대 왕궁이든 고대 도시든 없을 거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 찾아가는 건 이계의 수정 때문만은 아니야. 네가 수련을 갔을 동안 내가 암거래 상인에게 한 가지 물건을 의뢰해 놨거든. 그것을 받으러 가는 길이지.”
“어떤 물건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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