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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80화 (380/575)

[380] 디 임팩트 16권 5화

“가 보면 알아, 흐흐.”

음침하게 웃은 짐브리오는 술집 거리를 지나쳐 목조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좁은 골목길로 들어갔고, 도현은 무슨 물건인지 궁금해하며 그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

달이 구름에 가려져 어둠이 더욱 깊어 보였다.

마법사 몇을 대동한 드비오는 용병 시장에 존재하는 여러 암거래 상인 중 한 명을 만나기 위해 골목을 여러 차례 돈 후, 제법 큰 집 앞에 섰다.

용병 시장의 대부분의 건물이 목조로 대충 지어졌는데, 이 집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램프로 앞을 밝히며 암거래 상인의 집까지 드비오를 안내한 사내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이곳입니다.”

“음.”

드비오는 암거래 상인의 집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손짓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그의 수하 마법사 중 한 명이 금화 한 개를 꺼내 안내인에게 건넸다.

“고맙습니다. 그럼 전 이만.”

금화를 받아 챙긴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두운 골목길을 내달렸다.

굳게 닫힌 암거래 상인 집의 문을 바라보던 드비오가 입을 열었다.

“부숴라.”

“예!”

중년의 얼음탑 마법사 한 명이 양손을 앞으로 내밀자, 하얀 기류가 흘러나와 문을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쩌저저적. 콰아앙.

문이 산산조각 났고, 드비오는 부서진 문의 잔해를 밟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넓은 집 안에서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던 10여 명의 암거래 상인 부하들이 깜짝 놀라며 사납게 외쳤다.

“네놈들 뭐야!”

하나같이 험상궂은 얼굴을 한 그들은 문을 부수고 들어온 드비오와 그 뒤의 중년인들을 당장이라도 죽여 버릴 기세였다.

검과 도끼, 단검, 석궁으로 무장한 거친 사내들을 쭉 훑어본 드비오는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희들의 주인을 만나러 왔다. 데리고 와.”

“뭐야? 이 늙은이가 미쳤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기어들어 와서 다짜고짜 그따위 말을 지껄여? 당신 누구야?”

암거래 상인의 부하로 10년 이상을 살아온 사내가 두둑한 배짱을 무기 삼아 걸쭉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허공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얼음 낫이 사내를 두 조각 내 버리고 말았다.

“죽고 싶은 녀석은 함부로 입을 놀려도 좋다.”

드비오의 얼음 낫이 허공을 부유하며 온갖 무기로 무장한 사내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사신처럼 돌아다니는 얼음 낫의 한기에 소름이 돋은 그들은 몸이 굳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실수로 한 사내가 석궁을 발사하고 말았다.

투명한 얼음벽으로 화살을 막은 드비오는 얼음 낫을 움직여 석궁을 발사한 사내의 목을 잘라 버렸다.

피는 흘러내리지 않았다. 잘린 부위가 새하얗게 얼어 버렸기 때문이다.

공포가 집 안을 잠식했다.

“암거래 상인은 어디 있나?”

“위, 위층에.”

“데리고 와.”

“그럴 필요 없소이다. 여기 왔으니까.”

위층 계단에서 암거래 상인이 굳은 표정으로 내려왔다. 죽은 부하들의 시신을 지나쳐 그는 맨 앞에 섰다.

암거래로 먹고살지만 그는 의리가 있었다. 오랫동안 그의 손발이 되어 움직여 준 수하가 처참하게 죽어 있는 모습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는 냉정한 눈빛으로 드비오를 상대했다.

“누구시오? 대체 왜 여기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거요?”

“내가 누군지는 알 필요 없다. 넌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면 된다.”

거대한 얼음 낫이 늙은 암거래 상인의 목 가까이 접근했다.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차가운 기운이 목 주변으로 스며들자, 암거래 상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궁금한 게 뭐요?”

“네가 암시장에서 붉은 수정 지팡이를 구입했다고 들었다. 맞는가?”

“붉은 수정 지팡이라면…….”

“어서 대답해!”

거대한 얼음 낫이 목을 잘라 버릴 듯 밀착됐다.

“그렇소, 구입한 적이 있소.”

“지금도 가지고 있겠지.”

“그렇소.”

암거래 상인은 순순히 인정했다.

드비오의 안색은 옅게 상기되었다. 그는 용병 시장의 암시장에서 붉은 수정 지팡이를 은밀히 수소문하고 다녔다. 탑주에게 결과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에 건성이라도 해야만 했던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사내로부터 놀랄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붉은 수정이 박힌 지팡이를 한 암거래 상인이 암시장에서 구입해 가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정보였다.

고대 도시의 유물들이 거래되는 암시장에서 론의 지팡이와 외양이 흡사한 붉은 수정 지팡이가 나타난 사실은 놀랍고도 흥분되는 사건이었다.

어쩌면 고대 왕궁이 아닌 다른 곳에서 론의 지팡이가 출토됐고, 아무것도 모르는 일꾼들이 몰래 챙겼다가 암시장에 팔아 버린 것일 수 있는 것이다.

“그 지팡이가 보고 싶군.”

“목적이 그 지팡이라면 대가 없이 주겠소. 대신, 더 이상 문제를 만들지 말고 나가 주시오.”

암거래 상인의 요구에 드비오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도록 하지.”

드비오는 마법으로 만든 거대한 얼음 낫을 없애 암거래 상인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암거래 상인은 뒤로 고개를 돌려 창고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게 했고, 잠시 후 지시를 받은 사내가 가죽에 감싸인 지팡이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마법사 중 한 명이 그것을 받아 와 드비오에게 공손히 바쳤다.

드비오는 지팡이를 감싼 가죽을 천천히 풀어 헤쳤다.

달걀만 한 붉은 수정이 지팡이 머리 부분에 박혀 있었다. 그 모습에 드비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탑주가 고대 기록에서 봤다는 론의 지팡이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었다.

지팡이 머리 부분에 박힌 붉은 수정.

그는 남은 가죽을 모두 벗겨서 지팡이 전체 모습을 감상했다.

론의 지팡이라고 거의 확신하며 바라보던 그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지팡이 하단 부분에 황금 장식으로 치장된 무색의 투명한 수정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왜 여기에 달렸단 말인가!’

론의 지팡이는 오로지 지팡이 머리 부분에 붉은 수정이 박혔을 뿐이었다. 이렇게 지팡이 하단에 화려한 장식과 무색 투명한 수정이 달려 있지 않았다.

그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탑주가 강조하며 말했으니 틀림없을 것이다.

‘그놈이 날 속였군! 이런 망할 녀석을 봤나!’

암시장에서 정보를 팔았던 사내에게 금화 서른 개를 주었다. 녀석은 처음부터 지팡이에 붉은 수정뿐만 아니라 무색의 투명한 수정도 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붉은 수정보다 큰 이 수정이 지팡이 아랫부분에 턱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못 봤을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드비오가 관심이 가는 것만 얘기해 주고 중간에 돈을 받고 사라진 것이다.

“찾아서 박살을 내 주마!”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진 드비오는 들고 있던 지팡이에 마나를 주입했다.

지팡이는 힘없이 부서졌고 붉은 수정과 무색의 투명한 수정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확실히 아니야. 론의 지팡이라면 이 정도 마나에 부서질 리가 없겠지.’

드비오는 분노한 눈빛으로 앞을 봤다.

암거래 상인과 그 부하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암시장에서 산 붉은 수정 지팡이는 그것이 확실하오. 원한다면 창고를 다 보여 줄 수도 있소.”

“그럴 필요 없다, 네 말을 믿고 있으니까.”

“그럼 이제 그만 나가 주시오.”

“그럴 순 없지, 나의 실망감을 해소할 대상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드비오의 말에 안색이 변한 암거래 상인이 급히 외쳤다.

“모두 피해라!”

강한 마법사로 보이는 자들과 정면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빠른 판단을 내린 암거래 상인은 알아서 살라는 주문을 내리며 그 자신도 몸을 피하려 했다.

“네놈들은 여기서 한 놈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두 눈이 투명하게 바뀐 드비오가 지팡이를 휘두르자 벽과 천장이 얼고 창문마저 꽁꽁 얼어서 두꺼운 얼음벽을 형성했다.

창문을 부수고 달아나려던 사내들은 단단하게 언 창문의 얼음벽에 가로막혀 몸만 상한 채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검과 도끼로 얼어붙은 벽과 창문을 부수려 했지만, 어찌나 단단한지 마치 쇠를 치는 것 같았다.

결국 암거래 상인과 그 부하들은 도망치기를 포기하고 싸우기로 결심했다.

“약속을 저버리는 염치없는 자 같으니!”

암거래 상인의 맹렬한 비난에도 드비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었다면 기쁜 마음으로 너희들을 살려 줬을 것이다. 하지만 없으니 너희들이 내 손에 죽을 수밖에.”

드비오는 집 안의 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한데 뭉쳐 있던 암거래 상인과 부하들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잠시 후에는 그들의 수염에 고드름이 맺혔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부하들과 작별 인사를 한 암거래 상인은 몸이 완전히 얼어붙기 전에 칼이라도 한번 휘두르고 죽으려 했다.

“가자!”

늙은 암거래 상인이 용감하게 단검을 들고 달려가자 그 뒤를 부하들이 따랐다.

넓은 집 안이라 해도 드비오와는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그들은 눈앞에서 솟구친 투명한 얼음벽에 가로막혀 드비오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었다.

“이 개자식!”

암거래 상인이 주먹으로 투명한 얼음벽을 후려치며 분통을 터트렸다. 바로 앞에서 드비오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곧 너희들의 몸은 얼음으로 변할 것이다.”

“지옥에서 널 기다리겠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실핏줄이 터진 암거래 상인의 두 눈가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조차도 얼어붙으려 했다.

가공할 추위였다.

암거래 상인과 그 부하들은 집 안 한쪽에 갇혀 몸을 덜덜 떨었다. 이제는 몸을 움직이고 말을 내뱉는 것도 힘에 부쳤다.

“당신들은 정말 답이 없군.”

뒤에서 들리는 묵직한 목소리에 드비오가 흠칫하며 재빨리 뒤를 돌아봤다. 후드를 쓴 사내 두 명이 집 입구에 나란히 서 있었다.

“웬 놈들이냐?”

“누구긴 누구야, 이 얼음탑 개자식아! 형이지!”

짐브리오가 손가락 사이에 껴 놓았던 비수를 번개처럼 날렸다.

세 군데로 날아간 비수는 드비오를 수행하는 세 명의 마법사들 이마를 향했고, 그중 한 개가 정확히 박혔다.

“허억!”

눈을 까집은 마법사 한 명이 허무하게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다른 두 명의 마법사들은 비수를 피하며 반격을 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마법을 발휘하기 전에 도현의 눈부신 쾌검이 그들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컥!”

짧은 신음 소리를 내며 마법사들은 허수아비처럼 앞으로 고꾸라졌다.

도현은 세타이움 장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뿌리며 고개를 돌렸다. 후드가 뒤로 젖혀져서 도현의 가려졌던 얼굴이 제대로 드러났다.

“너, 넌, 베일 가문의 그 용병!”

“드비오, 여기서 다시 만났군.”

도현의 차가운 눈빛에 드비오는 오금이 저려 왔다. 차기 탑주 후보로 뽑힐 만큼 뛰어난 노마법사지만 베져스와 후투를 죽이고 탑주까지 부상을 입힌 도현과 정당하게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도현은 얼마 전에 율리비어스와 싸우면서도 유유히 사라졌던 인간이었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저렇게 강해졌는지 존경심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사람을 죽이는 게 그렇게 즐거운가?”

도현이 다가오자 드비오는 다급히 얼음벽을 만들었다.

콰앙!

도현의 주먹 한 방에 얼음벽이 박살 나고 말았다.

“괴물 같은 놈!”

지팡이로 집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얼음 뱀을 만든 드비오는 그것으로 도현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얼마 안 돼 도현의 대력금강수에 박살이 나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쿠웅!

벽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도현이 거대한 얼음 뱀을 상대하는 그 짧은 사이에 드비오가 도주를 한 것이다.

“저런 겁쟁이 마법사 놈 같으니라고! 넌 자존심도 없냐!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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