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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82화 (382/575)

[382] 디 임팩트 16권 7화

“없으면 없는 대로 노력해 봐야겠지.”

탑주는 론의 지팡이를 찾는 일을 거의 단념한 것 같았다.

신전을 발굴하고 경계하는 데 고용된 7백 명의 용병들이 줄지어 떠나고 있었다. 나무 방벽 위에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담담히 지켜보던 영주 딘은 눈가를 슬쩍 훔쳤다.

“나의 부하들이 떠나는군.”

많은 용병들을 말 한마디로 부렸던 지난 두 달은 영주 시절의 기분을 떠올리게 해 주는 꿈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망각의 숲으로 떠나기에 앞서 발굴지에서 용병들을 내보내는 이별의 시간이 그에겐 진한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만 좀 하시오. 계약이 끝나고 떠나는 용병들을 보고 뭐 하는 행동이오? 창피하게.”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나?”

“지금 눈물을 흘리지 않았소?”

짐브리오가 손가락으로 딘의 눈을 가리켰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영주는 엄하면서도 때론 마음이 따뜻해야 해. 돈으로 계약을 맺은 사이라 하나 그들과 내가 정이 든 시간이 적지 않은데, 이 정도의 감정은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영지 없이 떠돌아다니더니, 감성만 충만해서는.”

“어허, 이 사람이 정말!”

“영주님, 진정하십시오.”

곁에 있던 리드만이 서둘러 딘을 말렸다.

“흐흐, 농담이오, 영주. 우울해 보이기에 내가 생각 없이 지껄인 말이니 이해하시오. 어서 내려갑시다. 우리도 그만 출발해야지.”

방벽 아래에는 세타이움 장검을 허리 양쪽에 찬 도현과 작은 가방을 멘 리타, 금발의 로나, 어베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시죠.”

도현이 앞장서자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다.

고대 도시를 떠난 도현과 그 일행은 망각의 숲을 향해 며칠째 이동 중이었다.

몸이 약해진 로나가 있었기 때문에 일행은 무리해서 속도를 내지 않았고, 휴식도 자주 취했다.

가는 길이 험했고 하루 중 로나가 직접 걸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기 때문에 일행이 교대로 그녀를 업고 가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로나를 업고 가는 건 꼭 사람만의 일이 아니었다.

“헤헤, 편하다.”

말보다 좀 더 큰 흑거미를 소환한 리타는 로나와 함께 거미 등에 올라타 편하게 길을 갔다.

좁은 길도, 비탈진 길도, 심지어 산을 넘어가야 할 때도, 다리가 여덟 개인 흑거미는 등에 올라탄 리타와 로나를 안전하게 태우고 이동했다.

흑거미 마법은 붉은 흑마법서 열두 권 중에서도 난이도가 있는 것으로, 까마귀 소환술을 익힌 이후 리타가 새롭게 터득한 흑마법 중 하나다.

많은 마나가 한꺼번에 소모되는 까마귀 마법과 달리 이 흑거미 마법은 마나가 적게 소모된다. 대신 흑거미에게 끊임없이 마나를 주입해야 하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무한정 오래 사용할 수는 없었다.

언덕을 넘어 숲으로 들어가는 길에 짐브리오가 무섭게 생긴 거미를 힐끔거렸다.

“리타, 나도 한번 타 보자.”

“안 돼. 짐브리오는 무거워서 못 견딜 거야.”

“튼튼해 보이는데 뭘.”

“보기만 그래. 나와 로나만으로도 거미가 힘겨워하고 있다고.”

“치사하다, 치사해.”

짐브리오는 말을 하면서 슬쩍 흑거미 등에 올라탔다. 그 순간, 흑거미가 펑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거봐, 사라졌잖아!”

“뭐가 이리 약해?”

짐브리오는 미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다가 로나를 봤다.

“다친 데 없지?”

“괜찮아요.”

로나는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 냈다.

선두에서 길을 개척하며 걷던 도현은 뒤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에 미소를 짓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짙은 구름이 빠르게 하늘을 점령하고 있었다.

“한바탕 비가 오겠어.”

어베인의 말에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 같습니다.”

쏴아아아.

일행은 쏟아지는 비를 피해 서둘러 숲으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거목들이 비를 막아 주는 곳에서 점심을 먹은 그들은 비가 잦아들자 다시 길을 떠났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잠을 자도록 하죠.”

해 질 무렵 큰 산을 앞에 둔 도현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몸이 약해진 로나를 데리고 어두운 산을 급하게 통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는 게 좋겠군. 리타, 오늘도 맛있는 고기구이를 해 줄 거지?”

공터에 자리 잡은 딘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묻자, 리타가 팔짱을 끼고 약간은 거만하게 답했다.

“영주님 하는 거 봐서요.”

“내가 어떻게 해 주길 원하나?”

“노래해 주세요.”

“노래?”

당황한 딘이 껄껄 웃었다.

“영주는 함부로 노래를 부르지 않아.”

“안 하면 맛있는 고기는 없어요.”

“거, 노래 한 소절 하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공터에 모닥불을 피우던 짐브리오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딘을 째려봤다.

어제는 그가 노래를 불러서 리타의 향신료가 듬뿍 뿌려진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 오늘 저녁도 그 고기를 먹을 생각에 오전부터 하루 종일 즐거웠는데, 영주 때문에 고기를 먹지 못할 위기가 왔다.

어둠이 내려앉고 공터엔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그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딘을 응시했다.

그는 노래를 하지 못하겠다고 끝까지 버텼고, 그래서 모닥불에 고기가 놓이지 않았다.

“영주님, 여기서 노래한다고 해서 체면이 깎일 일은 아니잖습니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리드만이 우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없네. 알잖은가?”

“그래도 모두 기다리잖습니까? 어제 먹은 리타의 맛있는 고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음.”

딘의 눈앞에 향긋한 고기가 떠올랐다. 한번 맛보면 계속 생각나게 하는 마법 같은 맛이었다.

한동안 침묵하던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중후한 음색의 노래는 악마에게 끌려간 자식을 구하고 돌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꼭 성악가처럼 부르시는군.’

도현은 딘의 노래를 들으며 바리톤 가수가 생각났다.

마지못해 부르는 것처럼 시작한 딘의 노래는 처음엔 잔잔했지만 중반 이후엔 양 주먹을 불끈 쥐고 공터가 떠나가라 부를 정도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악마를 물리친 그는 마을의 영웅이 되었도다! 악마는 사라졌네! 악마는 사라졌네! 악마는…… 사라졌네!”

목에 핏대가 올라올 정도로 노래에 몰입해 열정적으로 부른 딘은 노래를 마치며 헛기침을 했고,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어릴 적 성에 들어온 음유시인에게 이 노래를 배웠지. 듣기 괜찮았는가?”

“최고였습니다.”

도현의 칭찬에 딘은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어제 맛보지 못한 새로운 향신료를 더 첨가할게, 영주님의 노래에 감동했으니까.”

리타가 웃으며 마법 주머니 안에서 가죽에 쌓인 멧돼지 고기를 꺼냈다.

‘이곳에 다시 왔어.’

도현은 깊은 눈빛으로 동쪽에 펼쳐진 숲을 응시했다.

칙칙하고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거대한 회갈색 숲은 처음 본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그대로였다. 고대 도시를 떠나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 끝에 마침내 망각의 숲에 도착한 것이다.

“어쩐지 으스스하군. 안에 검은 악령이 돌아다녀서 그런가?”

짐브리오는 성벽처럼 높은 나무들이 가득한 망각의 숲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도현과 락제프를 제외하곤 다들 이곳이 처음이라 호기심 짙은 눈빛으로 광활한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안에 호수와 섬이 있어도 여기서는 알 수 없었다.

“스승님, 망각의 숲을 다시 보니 기분이 어떠세요?”

-아무런 기분도 들지 않는다.

락제프는 마치 세상사를 달관한 사람처럼 답했다.

“씨드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관심 없다. 씨드는 과거 속의 나와는 인연이 없는 물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너희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자수정에 맺힌 락제프의 눈동자가 스르륵 사라지자, 리타는 입술을 삐쭉이며 자수정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속으론 궁금하시면서.”

한동안 망각의 숲을 외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다시 길을 떠나 얼음탑의 채석장을 찾아 나섰다.

망각의 숲에 지금 들어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얼음탑의 움직임을 살피며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채석장이 망각의 숲의 남쪽에 있을 수도 있었고, 동쪽이나 서쪽에 있을 수도 있어서 다 찾아봐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자식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짐브리오의 입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나올 때쯤, 까마귀 마법을 발휘해 하늘에서 정찰을 하던 리타의 눈에 뭔가가 포착됐다.

수백 마리의 거대한 일꾼용 몬스터들이 곡괭이질을 하며 산 하나를 통째로 박살 내고 있었다.

그들이 찾던 얼음탑의 채석장이었다.

도현의 등에 업혀 있던 그녀가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찾았어.”

“어딘데?”

짐브리오가 기쁜 얼굴로 물었다.

“저쪽 강 너머에 작은 산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곳이야.”

그녀의 설명을 들은 도현과 짐브리오는 일행과 떨어져 채석장으로 향했다.

위치가 밝혀진 이상 굳이 모두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물이 허벅지까지 오는 작은 강을 건넌 그들은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어둠을 틈타 채석장에 접근했다.

밤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채석장에선 일꾼용 몬스터의 돌 깨는 소리와 인부들이 돌을 여러 모양으로 다듬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마법 구조물에 쓰일 석재를 밤낮없이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인부들이 죽을 맛이겠군. 횃불 밑에서 밤늦도록 일을 해야 하니까.”

풀숲에 엎드려 불이 환한 채석장을 살피던 짐브리오가 속삭였다.

“그러게요. 하지만 저들이 힘든 만큼 마법 구조물은 빨리 완성되겠죠.”

표면이 매끄럽게 다듬어진 사각형 석재가 채석장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카샨 그놈도 독한 자식이야. 탑주를 배신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이렇게 말을 잘 듣는 척하고. 정말 탑주를 배신할 생각이 있긴 한 걸까? 칼라치가 합류했어도 힘에서 밀릴 거라고 생각할 텐데.”

“기회를 보는 거겠죠.”

“카샨 그놈은 반드시 죽여 버려야 돼. 대장과 로나를 고문하고 로나의 손가락까지 없애 버렸잖아. 네가 구해 주지 않았다면, 카샨은 리타의 흑마법을 빼앗으려고 대장과 로나를 분명히 희생시켰을 거야.”

살기에 찬 짐브리오의 말에 도현은 묵묵히 전방을 봤다. 멀리 카샨으로 보이는 자가 채석장에서 걸어 나와 인근에 있는 목조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임시로 지낼 집 같았다.

당장이라도 그를 없애 버릴 수 있지만, 거인들을 상대할 마법 구조물을 만드는 일에 지장을 줄 수는 없었다. 도현은 그것을 유리하게 이용해야 할 입장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때가 올 것이다.

“그만 돌아가죠. 저기 전투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채석장 주위를 순찰하는 전투 몬스터를 발견한 도현은 짐브리오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도끼를 든 전투 몬스터는 붉은 눈동자로 도현이 숨어 있는 들판을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멋모르고 채석장 주변을 얼쩡거리는 곰 한 마리가 있었다.

캬아아아!

사나운 전투 몬스터의 고함 소리에 놀란 곰이 도망치다 전투 몬스터가 집어 던진 도끼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졌다.

전투 몬스터는 곰의 시체를 질질 끌고 가 모여 있는 순찰병 앞에 내려놓았다. 녀석은 아주 말 잘 듣는 사냥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채석장 상황도 파악했으니, 이제 지낼 만한 곳을 찾아봐야겠습니다.”

도현의 말에 짐브리오가 턱을 매만졌다.

“어디가 좋을까? 채석장 주변은 아무래도 위험하겠지?”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게 좋겠죠. 필요할 때 저들을 감시하면 되니까요.”

채석장을 우회해 북쪽으로 이동한 도현과 일행은 지내기 적당해 보이는 산을 발견하고 들어갔다가 황급히 쫓기듯 내려왔다. 그들에 앞서 자리를 선점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저 녀석은. 우리가 있을 곳에 먼저 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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