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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83화 (383/575)

[383] 디 임팩트 16권 8화

짐브리오는 투덜거리며 그들이 내려왔던 산을 되돌아봤다.

뜻밖에도 저 산에 칼라치의 집이 있었다. 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일행은 서둘러 산을 내려온 것이다.

“칼라치가 저렇게 생겼구나.”

로나를 흑거미에 태우고 산을 내려온 리타는 속옷만 입고 방패술을 수련하던 칼라치의 힘 있는 몸동작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그가 얼음탑주로부터 죽을 위기에 빠진 도현을 구해 줬기 때문에 리타는 그에게 특별히 악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씨드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싸우게 될지는 모른다. 가까이할 수 없는 경쟁 상대인 것이다.

“아무래도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습니다.”

도현은 머물 장소 때문에 굳이 자신을 드러내면서까지 칼라치와 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도를 꺼냈다.

그곳엔 망각의 숲과 채석장이 표시되어 있었고, 그들이 거쳐 온 길도 그려져 있었다.

“칼라치가 이쪽에 있는 이상, 이 주변에 우리 거처를 정하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로 마주치면 그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 필히 싸워야 할 테니까요.”

칼라치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카샨과 손을 잡고 있기 때문에 그까지 고려해야만 한다. 그러니 난감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마법 구조물을 이용해 탑주가 거인들을 약화시키기 전까지는 조용히 지켜보는 게 상책이었다.

“북쪽으로 계속 가다간 채석장과 너무 멀어질 것 같고. 채석장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 그곳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죠.”

“흠, 그게 좋겠군.”

딘과 함께 지도를 내려다보던 어베인이 도현의 말에 동의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남쪽으로 내려온 그들은 멀리 채석장이 보이는 곳에서 서쪽으로 이동했다.

가시나무가 많은 숲을 지나친 그들은 야생말들이 뛰어노는 작은 호숫가 들판에 도착했다.

“오, 말이 있네?”

몸통이 크고 다리가 쭉 뻗은 야생말들은 사람들이 다가오자 멋진 갈기를 휘날리며 들판에서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안 잡아먹어, 이놈들아!”

먼지구름을 만들며 사라지는 야생말을 향해 고함을 친 짐브리오는 입맛을 다셨다.

“간만에 말고기나 맛보려고 했더니만, 도망가네.”

작은 호숫가 들판을 지나친 그들은 얼마 후 나무가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채석장과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여기까지 크샤코 가문의 사람들이나 얼음탑 마법사들이 올 것 같지 않은 장소였다.

“먼저 몬스터 정리를 해야겠군요.”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크람빌 서너 마리를 쾌검으로 날려 버린 도현이 말했다.

두 발로 뛰어다니는 작은 키의 크람빌은 예전 도현이 헬스콧에서 상대했던 하급 몬스터의 한 종류였다.

손톱이 날카롭고 주둥이가 길게 나온 몬스터다.

이 산과 주변엔 하이드로우와 같은 거대 몬스터는 없었고 대부분 무리로 다니는 크람빌 같은 하급 몬스터가 많았다.

산을 돌아다니며 빠르게 몬스터들을 제거한 도현은 산 정상에 올라 채석장 방향을 응시했다.

‘얼마나 걸릴까?’

저들이 밤낮없이 일을 하며 석재를 만들어도 마법 구조물을 망각의 숲에 지으려면 그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릴 것이다.

당분간은 매일 감시할 이유도 없었고 며칠에 한 번씩 저들의 진척 상황만 확인하면 될 것 같았다.

‘산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던데, 그곳에 머물며 검을 수련해야겠어.’

마법 구조물이 완성되기 전까지 그는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만 했다.

‘탑주도 조만간 도착하겠지?’

임박

“수고했다.”

채석장을 둘러본 얼음탑주는 흡족한 얼굴로 카샨을 칭찬했다. 산의 반쪽이 사라져 있었다. 없어진 산의 반은 반듯반듯한 네모난 석재들로 변해 채석장 앞에 있는 넓은 들판에 길게 쌓여 있었다. 모두가 마법 구조물에 들어갈 돌들이었다.

탑주의 칭찬에 카샨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며칠이면 마법 구조물에 들어갈 석재들이 모두 준비될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야.”

탑주는 그의 좌우에 서 있는 율리비어스, 세티앙, 루시앙 형제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카샨이 안내하는 건물로 향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엔 몇 개의 방과 회의실이 존재했는데, 그들을 위한 임시 거처였다.

율리비어스와 쌍둥이 검객이 각자의 방에 짐을 풀 동안 탑주는 회의실에서 카샨과 향후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나와 저들은 하루 정도 쉬었다가 모레 망각의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마법 구조물을 세울 장소를 물색하시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그들이 거인의 섬을 보고 싶다고도 했고.”

“호수의 안개 때문에 물가에서는 거인의 섬이 보이지 않잖습니까?”

“그거야 호수에 배를 띄워 가까이 가면 되는 것이고.”

탑주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섬에 상륙만 하지 않으면 거인들과 부딪칠 일은 없을 것이다.

“마법 구조물이 세워질 장소가 정해지면, 저들과 석재가 운반될 숲길의 악령들을 없애고 나올 테니 그리 알고 있어.”

“예. 한데 스승님, 그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일이라니?”

“론의 지팡이 말입니다.”

“음, 아쉽지만 찾지 못했다.”

카샨은 깜짝 놀라며 탑주를 봤다.

고대 왕궁을 차지하기 위해 적지 않은 희생이 있었다. 베일 가문과는 다시없는 원수처럼 돼 버렸고. 그런데 론의 지팡이를 찾지 못하다니.

‘죽은 베져스와 후투가 들으면 지옥에서 억울해하겠군.’

고대 왕궁을 빼앗기 위해 싸우다가 도현에게 죽은 그들을 잠시 떠올린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군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거인의 강함으로 보아 마법 결계 역시 보통이 아닐 텐데요.”

“상관없다. 거인들을 없애면 섬은 우리 차지가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법 결계를 반드시 파괴하고 씨드를 차지할 테니까.”

탑주가 입을 크게 벌리며 강한 어조로 말하자, 도현에게 맞아 부러진 앞니 부분이 휑하니 드러났다. 우스운 광경이었지만, 카샨은 감히 탑주 앞에서 마음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카샨.”

“예.”

“넌 씨드가 탐이 나지 않느냐?”

전에도 이런 비슷한 질문을 받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질문은 그 느낌이 달랐다.

예전의 질문이 나뭇가지로 쿡 찔러보는 정도의 강도였다면 지금은 예리한 칼로 폐부 깊숙이 푸욱 찔러 오는 느낌이었다.

‘뭘 알고 물어보는 걸까?’

긴장을 한 카샨은 대답을 궁리하다가 천천히 답했다.

“제가 감히 스승님이 원하시는 물건을 어찌 탐하겠습니까? 다만 율리비어스나 쌍둥이 검객이 씨드를 차지한다면, 그건 마음이 아플 것 같습니다.”

“하하하, 당돌한 대답이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는 듯 탑주는 크게 웃다가 서서히 웃음을 그쳤다.

“전처럼 씨드에 욕심이 없다는 뻔한 대답을 했다면, 나는 너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이 욕심이 없을 수는 없지, 능력이 안 되니 몸을 낮추고 참을 수밖에.”

탑주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저들을 데리고 온 건, 단지 그들의 능력이 필요해서다. 그들 역시 내가 좋아서 찾아온 게 아니라 씨드를 보고 온 것이고. 그런데 마법 결계를 열어 씨드가 하나나 혹은 두 개뿐이라면 어찌 될 것 같으냐?”

“싸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래, 맞다. 저들도 그걸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손을 잡았지만, 결과에 따라선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일어나겠지. 그 아귀다툼 속으로 진정 들어오고 싶은 게냐?”

말을 하는 탑주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넌 내 제자다. 내가 네게 씨드를 보장하는 얘기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건, 앞일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씨드가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일 수도 있고, 혹은 단 하나도 없을 수도 있으니까.”

진정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탑주의 말에 카샨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법 구조물이 완성되면, 넌 너희 가문의 병력을 데리고 브링틱으로 떠나야 한다. 마법 구조물이 발동된 이후에는 율리비어스와 나, 쌍둥이 검객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제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네가 무슨 재주로 힘이 된다는 말이냐? 율리비어스와 쌍둥이 검객은 단 한 수로 너를 죽일 만한 능력자들이다. 그러니 씨드에 대한 욕심은 접고 탑주 자리와 내가 전수해 줄 고대 마법에 만족해.”

카샨은 혼란스러웠다. 거인의 섬에 같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탑주는 마법 구조물을 짓고 떠나라고 했다. 그것도 자신을 위하는 듯 말하고 있었다.

‘정말 날 걱정하는 건가? 지난 20년 동안 내게 따듯한 말 한마디 해 주지 않은 분인데.’

카샨은 양피지 하나를 건네받았다.

“초대 얼음탑주가 남긴 고대 마법의 일부를 내가 오는 길에 기록한 것이다. 일단 이것을 익힌 다음 탑으로 돌아가 탑의 상층부에 거주하는 원로들에게 이 마법을 보여 주어 탑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받아라. 그들이 탑주에게만 허용되는 마법 서재로 들여보내 줄 것이다. 너의 능력이 닿는다면 나보다 훨씬 많은 고대 마법들을 배우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탑주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양피지를 받아 든 카샨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가 탑주를 배신하려고 한 이유는 꼭 씨드에 대한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를 남 보듯 대하는 탑주의 냉정함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탑주의 진심이 묻어나는 듯한 말과 한 장의 양피지는 그런 그의 마음을 살며시 흔들어 놓았다.

“20년간 너를 지켜보았다. 내가 너를 모를 성싶으냐? 불확실한 씨드에 목숨을 걸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 마법 구조물을 짓고 떠나거라. 네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회의실을 나온 카샨은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자네, 무슨 일 있었나? 땀을 왜 이리 흘려?”

드비오가 말을 걸었지만 카샨은 굳은 얼굴로 대꾸 없이 건물을 나섰다.

“저 사람이?”

드비오는 카샨의 뒤를 따라가 말을 다시 붙였다.

“채석장 상황을 보니 여기 도착하자마자 밤낮없이 일을 한 것 같군. 피곤해서 그런 건가?”

“조금.”

짤막하게 답한 카샨은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갔다. 탑주가 오기 전까지 나무 건물에 머물렀지만, 그가 오자 건물에서 나와 천막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다.

“고대 왕궁에 론의 지팡이가 없었단 이야기를 탑주에게 들었는가? 힘만 낭비한 꼴이 아닌가? 뭐, 찾았다 한들 우리에게 득이 되는 일은 없었겠지만 말일세.”

드비오는 열심히 말했지만 카샨은 듣는 둥 마는 둥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건가?”

“듣고 있습니다.”

“내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 주지. 자네가 떠난 후 베일 가문의 그 용병이 나타났었어. 베져스와 후투를 죽인 그자 말일세.”

“그가?”

카샨이 반응을 보이자 드비오는 지팡이로 바닥을 몇 번 두드리며 율리비어스와 용병이 싸운 일과 암거래 상인의 집에서 만났던 이야기까지 해 주었다.

“등에 꽂힌 그 녀석의 비수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네. 놈은 얼음탑에 대한 적의가 상당해. 아마 자네도 그자 눈에 띄면 위험해질 수 있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말을 하는 드비오의 얼굴에서 두려워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고, 카샨은 술을 한 모금했다.

‘탑주의 말대로 마법 구조물을 짓고 떠나는 게 좋을까? 탑으로 돌아가 탑주의 지위를 인정받고 고대 마법을 배우게 된다면…… 적어도 그 용병 녀석에게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탑주의 말을 곱씹을수록 그가 처한 현실이 냉정히 다가왔다.

요행을 바라고 칼라치와 씨드를 노릴 것이냐, 아니면 눈앞에 다가온 보장된 탑주 자리를 손에 넣느냐.

그는 강해지고 싶은 욕망과 대륙에서 제일가는 대마법사가 되고 싶은 야망이 있었다. 씨드의 유혹이 상당했다.

하지만 조금 전 경고하듯 말한 탑주의 얼굴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그 녀석이 우리 뒤를 몰래 따라와 이 주변에 숨어 있을 수도 있어. 경계를 철저히 하는 게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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