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384화 (384/575)

[384] 디 임팩트 16권 9화

“여기에 있다고?”

카샨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천막 밖으로 향했다.

동굴에서 수련하다가 며칠 만에 채석장 상황을 살피러 온 도현은 탑주가 사람들을 이끌고 채석장에 도착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율리비어스와 쌍둥이 검객도 일행에 포함되어 있었다.

‘한 명씩 제거해 버리면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저들이 한꺼번에 덤비면 어려워.’

도현은 거인의 섬에서 어떤 식으로 저들과 싸워야 할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연구했다.

마법 구조물이 효과를 발휘해 저들이 거인들을 쉽게 처리하면, 도현은 저들 모두와 싸움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금 당장 거인들과 싸우는 것처럼 도현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어쩌면 필패로 향하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싸움은 냉정하게 이끌어 가야 한다. 일부러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 싸울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그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동료들이 포함된 모두의 일이었다.

‘제일 좋은 상황은 저들이 거인들과 싸우다 양패구상하는 건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마지막까지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론의 지팡이가 그의 손에 있어서 저들이 거인들을 이겨도 곧장 마법 결계를 열 수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수풀 속에 엎드려 지그시 채석장을 응시하던 도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흑거미를 타고 온 리타가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다.

“도현, 너무 걱정 마. 내가 꼭 어둠의 마왕을 소환할 테니까. 마왕이 나타나면 도현에게 큰 힘이 될 거야.”

“고마워. 하지만 마왕은 어렵다면서?”

“마법 구조물이 완성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도현이 동굴에서 수련을 하는 것처럼 나도 락제프 님의 도움을 받아서 열심히 공부할 거야.”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리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도현은 피식 웃으며 엎드린 채로 뒤로 물러났다.

“마왕을 꼭 소환할 거라니까?”

“알았어. 조용히 하고 얼른 따라와.”

“응.”

채석장에서 거리를 벌린 둘은 서쪽에 있는 그들의 거처로 향했다.

“도현, 다리 안 아파? 여기 타.”

리타가 흑거미 등을 가리키자 도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얼른. 무거운 짐브리오는 안 됐지만 도현의 무게는 얘도 버틸 수가 있을 거야.”

신법을 발휘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도현은 거듭되는 리타의 권유에 슬며시 호기심이 일어났다.

‘거미 등에 타는 기분은 어떨까?’

도현은 결국 흑거미 등에 올라탔다.

“거봐, 괜찮잖아, 헤헤. 달려라, 거미야! 더 빠르게!”

리타의 손에서 나온 검은 빛을 흡수한 흑거미는 여덟 개의 다리를 놀랍도록 빠르게 움직이며 날듯 이동했다. 그 영향으로 리타의 보라색 긴 머리카락과 도현은 흑발이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렸다.

“어때? 말 타는 것처럼 기분 좋지?”

“그래, 시원하고 좋다.”

“도현, 우리 꼭 씨드도 차지하고 브링틱을 벗어나서 더 먼 곳도 여행하자. 나 아직 안 가 본 곳이 너무 많아. 세상이 더 궁금해!”

도현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씨드와는 상관없이 그가 가진 타투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이 다 소모되면 이쪽 세계와는 단절된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많아야 다섯 달에서 여섯 달 사이. 어쩌면 그 이전에 시간이 다 될지도 모른다.

“왜 대답 안 해? 싫어?”

“아니.”

“아버지 복수를 위해 강해져야 한다고 했지? 그것 때문에 나랑 함께 다닐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래?”

“그런 면도 조금 있고…… 혼자 돌아다니는 여행도 괜찮거든. 리타에게도 그런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아서.”

“뭐야? 결국 나랑 헤어진다는 말이잖아.”

리타가 고개를 돌려 등 뒤에 타고 있는 도현을 흘겨보았다.

“리타 곁엔 좋은 친구가 많잖아. 로나도 있고, 짐브리오도 있고, 어베인과 영주님, 리드만 사제님도 있고. 그들과 함께 여행을 해도 나 못지않게 흥미롭고 즐거울 거야.”

“도현이 있으면 더 즐겁겠지. 아무튼 씨드 찾고 우리 다시 얘기해. 씨드를 먹으면 엄청 강해진다잖아. 그거 먹고 아버지의 복수를 하면 되잖아. 그러면 시간이 많아질 테고, 우린 함께 즐겁게 여행을 할 수 있겠지.”

희망 섞인 리타의 말에 도현은 깊은 눈빛으로 옆을 봤다. 석양이 작은 호수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그래, 노력해 보자.”

도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바람에 휘날려 사라졌다.

며칠에 한 번씩 마법 구조물의 진척 상황을 파악하는 걸 제외하곤 도현은 동굴에서 살다시피 했다. 식사는 물론 잠도 동굴에서 해결하며 치열하게 자신을 채찍질한 것이다.

‘두 번의 기회란 없다.’

거인의 섬에서 벌어질 싸움을 대비하며 동굴에서 수련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넘고 있었다.

호신강기는 더욱 단단해졌고, 대력금강수의 깊이는 더욱 깊어져 동굴 벽엔 온통 그의 손자국이 가득했다.

그 많은 손자국 사이로 일정한 깊이의 줄이 거미줄처럼 그어져 있었는데, 그 줄은 도현이 검을 참오하며 무의식중에 휘두른 검의 궤적이었다.

이미 생각과 동시에 검이 펼쳐지고 마음에 따라 검이 흐르는, 지극히 높은 검의 경지에 올라 있는 도현은 동굴 벽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손에 든 검을 부드럽게 휘둘렀다. 세타이움 장검이 태풍처럼 동굴 내부를 휩쓸며 도현이 남긴 수련 흔적을 말끔히 없애 버렸다.

동굴 밖으로 나온 도현은 나무 사이로 내리쬐는 강한 햇빛을 잠시 올려다보다 일행이 머물고 있는 통나무집으로 향했다.

도현은 가는 도중 산에 핀 꽃밭에 앉아 있는 짐브리오를 발견했다. 도현은 조용히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벌들은 괜찮습니까?”

“더 이상 죽지는 않는데, 어제 두 마리가 가출했다.”

벌통에 가둬 놓을 수만은 없고 해서 짐브리오는 산에 핀 야생화 사이에 벌들이 돌아다니게끔 조치를 취해 놨다. 한데 벌통의 벌을 세어 보니 하루 사이에 두 마리가 줄어든 것이다.

“동굴 수련은 끝내고 내려온 거냐?”

“네.”

“그럼, 이제 망각의 숲으로 들어가야겠지?”

마법 구조물이 완성될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어서 그들은 준비를 해야 했다.

수백의 일꾼 몬스터는 물론, 전투 몬스터까지 석재를 운반하는 데 동원한 저들은 도현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마법 구조물을 세워 갔다. 그래서 그 완성이 목전에 이른 상태였다.

“로나는요?”

“안 좋아. 몸에 열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어. 젠장.”

열흘 전부터 로나의 몸이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었다. 치료의 권능이 있는 리드만 사제로서도 그녀를 어찌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불안한 하루가 매일 이어지고 있었다.

“술 있지? 깜빡 잊고 안 가지고 왔네.”

속상했는지 짐브리오는 술을 찾았다.

품에서 마법 주머니를 꺼낸 도현은 그곳에 손을 넣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마법 주머니 안에 보관되어 있는 여러 물건들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술병은 금화 상자 옆에 기울어진 채 놓여 있었다.

술병을 꺼낸 도현은 마개를 열어 짐브리오에게 건넸다.

“크흑, 좋다. 마법 주머니 안에 보관된 거라서 그런지 술맛이 더 좋네? 하하하!”

로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찡그려져 있던 짐브리오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아니야, 잠깐 기다려. 벌들이 벌통으로 다 돌아왔으니까, 같이 내려가자.”

그들은 얼마 후 산속에 자리 잡은 통나무집에 도착했다.

집 앞 공터에선 어베인과 딘이 검을 겨루고 있었다.

독사처럼 날카롭고 예리한 어베인의 검과 우아해 보이는 딘의 검이 연속으로 부딪치며 불꽃을 만들어 냈다. 도현이 동굴에서 수련할 동안 이들 역시 다가올 싸움을 대비하며 검을 수련한 것이다.

‘어베인의 검은 군더더기가 없어.’

오랜 시간을 모험가이자 도둑으로 대륙을 떠돌아다닌 어베인의 검술은 실전적이고 위력적이었다. 마나도 익혔기 때문에 웬만한 상대에게는 굴욕적인 모습으로 도망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씨드를 노리는 탑주를 비롯한 여러 강자들과 맞서 싸우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약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하나같이 대륙을 뒤흔들 만한 최강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검술 대련을 짐브리오와 함께 잠시 지켜보던 도현은 조용히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기다란 통나무집은 방이 모두 세 개였는데, 그중 한 곳에 로나가 누워 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온몸에서 열을 내뿜는 로나의 모습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갑자기 이렇게 심해지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가 수련하는 동굴 주변을 기웃거리며 산책까지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엄습한 몸의 열기는 그녀를 두 발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만들었다.

“어떻습니까?”

“정신력이 워낙 강한 여자라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언제까지 이 열기를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 사람 몸을 이렇게 뜨겁게 만들다니.”

리드만 사제가 물에 적신 천으로 로나의 머리를 닦아 주며 말했다.

잠이 든 상태에서도 그녀는 매우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흘렸다.

‘몇 달은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씨드를 보고 달려온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이제 곧 결실을 맺으려 하고 있었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한데 그 결과를 보기까지 그녀가 버텨 낼지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 정도로 그녀의 상태는 심각했다.

앙상해진 그녀의 손을 가볍게 쥐고 마음속으로 그녀를 응원한 도현은 밖으로 나와 공터 앞 나무로 걸어갔다.

나무 그늘에 어베인과 딘, 짐브리오, 리타가 둘러앉아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나무 그늘에 도현이 앉자, 어베인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로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우린 흔들려선 안 되네. 그녀가 견뎌 낼 걸로 믿고, 계획대로 탑주가 마법 구조물을 이용할 때까지 기다리세.”

다소 냉정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씨드를 얻지 못하면 모든 게 허사였다.

불사의 거인을 지금 모인 이 인원만으로 어떻게 해 보려다가 잘못되면, 기회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는 씨드를 얻을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사용하는 게 옳았다.

로나를 마음 깊이 사랑하는 어베인으로선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도현 역시 모르지 않았기에 침묵으로 동조했다.

“대장, 망각의 숲으론 언제 떠나는 게 좋겠소?”

짐브리오가 벌통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틀 후에.”

“로나는요? 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잖아요. 망각의 숲에서 저들을 감시하며 계속 움직여야 하는 상황인데.”

리타의 걱정에 어베인이 눈가에 주름을 깊게 만들며 답했다.

“여기에 두고 가야겠지.”

“누가 돌보고요? 리드만 사제님이요?”

“리드만은 나를 따라오고 싶어 하겠지만, 내가 얘기하면 그는 로나를 위해서 남을 거야.”

딘은 그러지 않아도 리드만을 떼어 놓을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두 사람만으론 안 됩니다.”

도현은 말을 하며 바닥에 있는 작은 돌을 집어 들어 나무 뒤편을 향해 던졌다.

캐캥 소리를 내며 사납게 생긴 늑대가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우리가 모두 떠나면 로나와 사제님은 누가 보호하겠습니까? 맹수나 다른 위험으로부터 로나와 사제님을 보호해 줄 사람이 같이 남아야만 합니다.”

맞는 말이었다.

“음, 그것도 그렇군. 하면 누가 좋겠나?”

나무 그늘에 둘러앉은 다섯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둘러봤다.

무력이 제일 강한 도현은 빠질 수 없었고, 흑마법사인 리타도 마법으로 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빠질 수가 없었다.

영주 딘은 제대로 실력을 보여 주지 않아서 그렇지, 도현을 제외하고는 여기서 제일 강하다. 그러니 그도 가야만 한다.

남은 사람은 짐브리오와 어베인이었다.

“난 이 벌을 움직여야 한다고. 탑주나 쌍둥이 검객들을 잡는 데 이게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할지 나중에 보면 깜짝 놀랄 거라니까! 난 무조건 가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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