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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87화 (387/575)

[387] 디 임팩트 16권 12화

망설이던 짐브리오는 노를 버리고 호수에 뛰어들었다. 육지와 얼마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몇 번 헤엄치자, 곧 땅이 밟혔다.

그사이 해일과 같은 거대하고 높은 물결이 그들의 바로 뒤까지 쫓아왔다.

“리타!”

도현이 달리면서 손을 내뻗자 물에 흠뻑 젖은 리타가 그의 손을 잡았다. 도현은 그녀를 등에 업고 바람처럼 내달렸다.

“숲 깊숙이 들어가야 하네! 해일이란 것은 육지로 한참 들어와서야 멈추니까! 방심하면 안 돼!”

딘이 소리치며 달리다가 옆을 보았다.

방금 전까지 옆에서 달리던 도현과 짐브리오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깜짝 놀란 그가 뒤를 돌아보려 할 때, 저만치 앞에서 짐브리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주, 뭐 하는 거요! 살기 싫소! 어서 뛰어오시오!”

“아니, 언제 그 앞까지 갔나!”

홀로 뒤처져 있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딘은 그제야 전력을 다해 앞으로 달려갔다.

망각의 숲으로 들어간 그들은 우렛소리를 내며 숲을 잠식하는 거대한 물결에 쫓겨 쉴 새 없이 도망쳤고, 한참이 지나서야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완전히 폐허로 변했어.’

호수의 물이 침범한 숲은 멀쩡히 서 있는 나무가 드물 정도로 부러지고 쓰러져 있었다.

바닥은 온통 흙탕물이었고, 물은 무릎까지 차서 움직일 때마다 첨벙거리는 소리를 내야 했다.

숲의 상당 부분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했던 호수의 반란에 도현을 비롯한 딘과 짐브리오, 리타는 의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이런 자연현상이 벌어진 걸까? 호수 깊숙한 곳에서 지진이나 화산 폭발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도현은 석연치 않은 눈빛으로 주위를 쓸어 보다가 그나마 멀쩡한 나무 위에 올라서 마법 구조물이 있던 방향을 응시했다.

숲의 나무들보다 훨씬 높은 높이를 자랑했던, 웅장한 모습의 마법 구조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해일처럼 거대한 물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나 보군.’

도현의 시선이 호수 쪽으로 이동했다.

‘안개가 걷혔다, 섬이 보여.’

아주 먼 곳에 위치한 섬이 하나 보였다. 거인의 섬으로 추정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섬을 바라보고 있는 도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급히 나무에서 내려와 숨을 돌리고 있는 일행에게 다가갔다.

“안개가 사라진 덕분에 호수 안에 있는 섬이 보입니다.”

“그거 잘됐군. 안개 때문에 헤매지 않아도 되겠어. 어서 배를 만드세.”

딘과 짐브리오는 부러지거나 뽑힌, 적당한 나무를 잘라서 뗏목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도현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섬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뭐가 흔들려?”

“거인의 섬요. 심상치 않은 징조입니다.”

표정이 굳어진 짐브리오와 딘은 도현이 조금 전에 올라갔던 나무 위로 기어올라 갔다.

“젠장, 정말이네! 영주, 당신 눈에도 저 섬이 흔들리고 있는 걸로 보이오?”

“음…… 내 눈에도 그리 보이는군. 워낙 거리가 멀어서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해.”

밑으로 내려온 그들은 도현 앞에 섰다.

“물이 넘치고 섬이 흔들리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거지?”

“혹시 섬이 가라앉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리타의 대답에 짐브리오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섬이 가라앉는다고?”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대다가 결국 물속에 잠겨 죽듯이 섬도 그런 거야. 물속에 잠기기 전에 세상에 알려 주는 거라고.”

“재수 없는 소리 하고 있네. 멀쩡한 섬이 왜 가라앉아!”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나도 걱정되니까 하는 소리 아냐. 숲을 망가트린 거대한 물결을 보라고. 이상하잖아.”

섬이 가라앉는다는 말은 비약이 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섬에 변화가 일어난 건 분명했다. 도현은 그 변화를 일으킨 요소가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봤다.

‘율리비어스의 마법 구조물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그의 마법이 발동된 이후에 벌어졌기에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현은 검을 뽑아 쓰러진 나무의 가지를 재빠르게 쳐 냈다.

“어서 배를 만들죠. 지금으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섬에 가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으니까요.”

“그러세.”

반듯한 여러 개의 통나무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밧줄!”

짐브리오가 외치자 리타가 마법 주머니 안에서 준비해 온 튼튼한 밧줄 뭉치를 꺼냈다.

섬이 흔들리고 있는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행여나 저러다 섬이 진짜로 가라앉기라도 한다면, 땅을 치고 분해할 일이었다.

“이 빌어먹을, 율리비어스 놈! 설마 그 자식이 마법을 잘못 사용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완성된 배를 물이 깊은 호수 방향으로 밀며 짐브리오가 욱하는 심정으로 말했다. 도현처럼 그들도 율리비어스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깊은 호수 위로 배가 진입하자, 좌우 양쪽에서 도현과 짐브리오가 노를 저었다.

그러나 파도처럼 출렁이는 호수의 물결이 그들을 계속 방해해서 뗏목은 그들 마음만큼 빠르게 가지 못하고 있었다. 흔들리는 섬의 영향으로 호수의 물결이 심해진 탓이었다.

‘이 속도로는 한참 걸리겠어. 다른 수단을 강구해 봐야 돼.’

도현은 딘을 바라봤다.

“영주님, 노를 잡아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딘은 두말없이 도현 대신 노를 잡았다.

뗏목 뒤에 자리를 잡고 앉은 도현은 손바닥을 펼쳐 부드럽게 호수의 물을 내리쳤다. 물기둥이 솟구치며 뗏목이 앞으로 쭉 밀려 나갔다.

“어어!”

뗏목이 갑자기 속도를 내자 당황한 짐브리오가 균형을 잡으며 도현을 돌아봤다.

콰아앙.

도현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와아, 무지개다!”

리타는 도현이 만든 물기둥을 통해 무지개가 보이자 이 와중에도 즐거워했다.

“배가 좀 빨라졌죠?”

도현의 말에 짐브리오가 씨익 웃었다.

“세 배는 빨라졌다. 그런데 그거 마나가 많이 들어가는 일 아니냐? 힘을 아껴야 하는데.”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도현은 말을 하며 다시 한 번 호수의 물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뗏목은 도현의 도움을 받아 빠른 속도로 섬으로 향할 수 있게 됐고, 딘과 짐브리오는 도현의 부담을 덜어 주고자 열심히 노를 저었다.

멀리만 보였던 섬이 어느새 눈에 잘 보일 만큼 가까워졌다.

우우우우우.

섬 전체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요동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기분 나쁘고 섬뜩했다.

게다가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섬의 동물들 시체는 섬에서 큰일이 벌어질 거라는 전조와 같았다.

“이 녀석들은 다 익사한 거야. 섬이 흔들리니까 두려워서 호수에 뛰어든 것 같아.”

짐브리오가 뗏목으로 밀려드는 사슴과 토끼 시체를 노로 밀어내며 말했다.

‘정말 심상치 않다. 리타의 말처럼 이 섬이 가라앉게 되는 걸까, 아니면 지나가는 일일까?’

도현은 무거운 시선으로 가까워지는 섬을 지그시 응시했다.

“이런, 저쪽에 탑주가 나타났군.”

왼쪽에서 노를 젓던 딘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왼편으로 향했다.

얼음탑주가 호수의 물을 얼리며 그 길을 따라 미끄러지듯 섬으로 향하고 있었다.

“배가 없으니 마법으로 호수를 얼리며 가고 있군. 괴물 같은 자식.”

섬으로 가는 인원은 탑주만이 아니었다. 율리비어스와 쌍둥이 검객이 탑주가 앞서가며 만든 호수의 얼음길을 따라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들도 섬이 요동치는 심상치 않은 모습에 상당히 서두르는 것 같았다.

도현과 탑주의 시선이 멀리서 교차했다.

“싸울 준비를 해야 하나?”

“아닙니다. 그는 우리보다 섬에서의 일이 급할 겁니다. 저희도 그렇고요.”

도현의 예상대로 탑주는 방향을 바꿔 도현에게로 오지 않고 그대로 섬으로 직진했다.

뒤따르는 율리비어스와 쌍둥이 검객 역시 힐끔 쳐다만 볼 뿐 탑주가 만든 얼음길을 이탈하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들이 지나친 얼음길은 부서지며 호수의 물에 잠기고 있었다.

“젠장, 저놈들 뒤통수치며 깜짝 놀래 주려 했는데, 이젠 어렵게 됐어.”

짐브리오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섬이 이렇게 불안하게 흔들리는 이상, 저들을 기다렸다가 뒤를 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지.”

쿠쿠쿠쿵.

그때 호수와 맞닿은 섬의 절벽가가 갈라지고 돌이 비처럼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갈수록 격렬해지는 섬의 진동은 섬 주변의 물결을 수 미터나 높게 만들었고 뗏목으로는 더 이상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뒤집어질듯 요동치는 뗏목의 중심을 잡으며 도현이 급하게 외쳤다.

“배를 대는 건 위험합니다!”

“그럼 어쩌지?”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같이 들어가야지!”

짐브리오가 흔들리는 뗏목 위에서 소리쳤다.

“맞아, 우린 같이 목숨을 걸고 왔잖아! 같이 들어가서 싸워야지!”

리타는 말을 하다가 요동치는 뗏목 위에서 데구루루 구르고 말았다.

“조심하게.”

“고마워요, 영주님.”

딘의 손을 잡고 간신히 호수에 빠지는 걸 면한 리타는 도현을 다시 쳐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 이제 어둠의 마왕을 소환할 수 있게 됐어. 충분히 도울 수 있다고.”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섬에서 발생한 압도적인 굉음에 파묻혔다.

쿠콰콰콰콰콰콰!

섬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젠장! 섬이 가라앉다니!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

짐브리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거칠게 흔들리는 뗏목 위에서 터져 나왔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도현을 응시했다.

“어느 쪽에 씨드가 있냐? 저쪽이냐 아니면 저쪽이냐?”

거인의 섬을 다녀온 적이 없는 짐브리오는 양쪽으로 갈라지고 있는 섬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씨드를 찾기 위해 그 고생을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섬이 무슨 이유인지 부서지며 가라앉으려 했다. 참을 수 없는 아쉬움과 도전해 보지 못한 분노가 그의 온몸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저대로 씨드가 섬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도현아!”

“짐브리오, 잘 들으세요. 지금은 모두에게 혼란스러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절 믿고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제 발이 빠르다는 건 잘 아시죠? 짐브리오나 리타를 데리고 가는 건 제 발을 묶어 놓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가고 있으니까, 우리도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합니다.”

“도현아…… 난 로나가 죽는 걸 보기 싫다. 진짜 너무 싫다. 그래서 씨드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난 죽어도 너랑 가고 싶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에게만 무거운 짐을 맡겨야겠다. 미안하다.”

거한 짐브리오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비추자 뗏목 위의 사람들은 마음이 너무도 무거워졌다.

딘은 조금씩 가라앉는 섬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가서 힘이 되고 싶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군. 우리가 오히려 짐이 되는 건 피해야겠지. 어서 가게, 더 늦기 전에. 조심하고.”

“예.”

도현은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리타가 불안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마왕은 다음에 보도록 하자. 다녀올게.”

“로나만큼 도현도 내겐 소중해. 죽지 마, 꼭 돌아와.”

“그래.”

도현과 리타 사이에 짐브리오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

“이 작은 병은 마비벌을 자극하는 향이 들어 있고, 이 병엔 벌이 들어 있다. 자존심 내세우지 말고, 싸우다 적당히 이용해.”

“잘 사용하겠습니다.”

도현은 짐브리오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벌을 품 안에 넣었다.

어느새 섬이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저기까지 가려고? 헤엄쳐서?”

“아니, 물 위를 날아서.”

“정말?”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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