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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397화 (397/575)

[397] 디 임팩트 16권 22화

“그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왜요?”

“약초꾼 노인에게 돈을 받았으면 얼마나 많이 받았겠습니까? 그런데도 검을 들고 내 집을 찾아와 갈모아티를 내놓으라고 할 정도의 사내입니다. 돈으로 쉽게 판단 내리기 어려운 사람이에요.”

몽롱해진 눈빛으로 베노아가 말했다.

“돈 말고 다른 게 있다?”

“그렇게 느껴졌어요. 아마 갈모아티가 아니었다면, 그는 내 의뢰를 거부했을 겁니다.”

“음, 그래도 제안이라도 해 봅시다.”

“그것까지야 뭐. 용병이 나중에 오면 내가 물어보겠소.”

베노아는 대답을 하며 환각제가 섞인 남은 술을 비웠다.

히반은 환각제 섞인 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그의 행동을 이해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되니 참 아쉽게 됐소.”

“뭐가 말이오?”

환각제 술을 또 만들기 위해 주섬주섬 흰 가루를 목함에서 빼내던 베노아가 히반을 쳐다봤다.

“대공의 숙부 돈조르니 베일이 얼음탑주와 싸우지 않고 돌아간 것 말이오. 그가 탑주와 싸웠다면 탑주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을 텐데. 그러면 우리 근심은 자연히 사라지는 게 아니겠소?”

“맞는 말씀이오.”

“하필 그 시점에 베일 가문에 내분이 일어나서.”

크샤코 가문이 얼음탑과 손을 잡는 걸 경계하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베일 가문과 얼음탑이 피 터지게 싸우지 않은 게 아쉬울 뿐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론 대공 알조베티 베일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피처럼 붉게 변하는 환각제 섞인 술을 내려다보며 베노아가 물었다.

“나도 그런 소문은 들었소. 하지만 그리 쉽게 당하겠습니까? 다친 것이 와전되었겠지요. 근데 말이오, 베노아, 난 베일 가문의 내분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크샤코 가문이 일을 낼 것 같아서 말입니다.”

히반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표정을 차갑게 만들었다.

“베노아 원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독버섯 같은 존재들을 제거해야 할 필요도 있는 법이오. 우리, 더 이상 고민하지 맙시다. 올라르를 밀어내고 우리들이 브링틱을 통치하는 건 어떻소?”

“셋이 둘이 되고 둘이 하나가 되는 게 세상 이치 아니오?”

“섭섭합니다. 내가 나중에 베노아 원로의 등에 칼이라도 꽂을 것 같아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건 모르는 일 아닙니까?”

히반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하하, 뭘 또 그렇게 정색을 하십니까? 농담 한마디 한 것을 두고. 지켜봅시다. 크샤코 가문이 얼음탑주와 손을 잡고 우리를 공격하려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무슨 사정이 있어서 저리 가깝게 움직이는 것인지 아직은 명확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늦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둘은 죽어도 우리 두 가문에 속한 그 많은 병력과 몬스터들을 그들이 일순간에 다 죽일 수 있겠소? 브링틱 전역에 퍼져 있는데? 올라르가 수명이 다해 죽고, 그 자식 놈들이 늙어서 앞이 안 보일 때까지 우리 가문의 후손들은 그놈들과 전쟁을 계속할 거요.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서 있지 않는 한, 감히 섣부른 행동은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좀 더 지켜봅시다.”

언제 약에 취했느냐는 듯 베노아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음, 원로의 생각이 정 그러시다면야. 사실 나도 손톱 상하기 싫어서 전쟁을 일으키기 싫었습니다.”

“평화로운 게 좋지요.”

두 가문의 수장이자 원로들인 그들은 웃으며 술잔을 부딪쳤다.

술을 마시고 내려놓던 베노아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호위 무사 보링이 둘만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용병이 찾아왔습니다.”

“용병이라니? 어떤 용병?”

보링은 손톱을 내려다보고 있는 원로 히반을 힐끔 살피더니 굵은 목소리로 답했다.

“갈모아티를 가져간 용병입니다.”

“그가?”

“어떻게 할까요? 내일 다시 오라 할까요?”

“아니다. 들여보내.”

잠시 후, 두 원로가 술을 마시고 있는 방 안으로 도현이 들어섰다.

히반은 얘기로만 듣던 도현이 들어오자 관심을 가지며 유심히 살펴봤다.

키가 크고 탄탄한 체격에 전신에 여유가 흘러넘쳤다.

도현은 자신을 물건 보듯 감상하는 히반의 시선을 느꼈다.

‘누구일까? 베노아를 의식하지 않는 자세로 앉아 있는 걸 보면 높은 신분의 사람 같은데. 원로들 중 한 명인가?’

상대가 원로라면 히반일 가능성이 높았다. 크샤코 가문의 원로가 있는 자리에 그를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 때문이다.

“안녕하셨습니까.”

“어서 오게. 생각보다 일찍 보는군. 아직 북쪽으로 출발하지 않았던 건가?”

도현은 대답 대신 히반을 응시했다.

“괜찮네, 이분은 자네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인사하게, 볼란벤 가문의 원로시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네.”

히반은 다소 근엄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도현은 고개를 돌려 베노아를 봤다. 약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반쯤 붉어져 있었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웃는 상이 되어 있었다.

“약은 했지만 정신은 온전히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말하게. 무슨 일로 왔는가?”

“의뢰에 대한 답을 가져왔습니다.”

“벌써 말인가?”

깜짝 놀란 베노아는 탁자 건너편에 앉아 있는 히반과 시선을 교환했다.

조금 전까지 그들은 도현이 의뢰를 완수하는 게 어려울 거라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런데 의뢰를 받은 지 며칠 안 돼 나타나 의뢰에 대한 답을 가져왔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넬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북쪽 미개척 지역을 다녀오고 말하는 건가? 그들은 아주 먼 곳으로 간 게 분명한데, 어떻게 이리 빨리 알아 올 수 있는 건가?”

“제가 어떻게 알아 왔는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원로님이 원하는 답을 가져왔다는 게 중요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건 그러네만, 자네의 말을 신뢰하기 위해선 그만한 보이는 것들이 있어야 해. 빨라도 너무 빠르잖은가?”

“그럼 한 달 뒤에 오면 제가 신뢰할 만한 답을 가져왔다고 믿으시겠습니까? 너무 빨리 와서 오히려 의심스럽다면요.”

베노아는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듣고 보니 또 그렇군. 미안하네. 말해 보게, 자네가 알아 온 것을.”

“카샨이 크샤코 가문의 사람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고, 또 얼음탑주까지 그곳으로 간 이유는 바로 씨드 때문입니다.”

“씨드!”

베노아와 히반이 거의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들이 씨드를 찾고 있었단 말인가?”

“네.”

도현은 북쪽 미개척지 깊숙한 곳에 망각의 숲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안의 호수에 거인들이 지키는 섬이 있다는 것도 말해 주었다.

도현의 놀라운 얘기에 두 원로는 숨죽이며 그의 말을 방해 하지 않고 계속 듣기만 했다.

“많은 인부와 일꾼용 몬스터들이 필요했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입니다. 씨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거인의 섬에 마법을 펼치기 위한 거대한 석조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요.”

“그들이 씨드를 찾았나?”

히반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천만에요. 씨드는 거인의 섬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씨드를 얻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도현의 말이 꼭 틀린 건 아니었다. 실제로 씨드 나무는 있었지만 눈으로 씨드를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비록 그가 씨드가 녹은 것으로 추정되는 샘에서 힘을 얻긴 했어도 말이다.

도현의 말을 몰입해 듣던 두 원로는 씨드가 없었다는 말에 기뻐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배가 아플 뻔했군, 녀석들이 씨드를 얻었다면 말이야. 괘씸한 크샤코 가문 녀석들! 우리 몰래 그따위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니!”

히반이 손으로 술과 음식이 차려진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우저저적.

탁자가 두 조각이 나 버렸다.

“미안하오, 내가 너무 흥분했군.”

히반의 사과에 베노아는 괜찮다는 듯 손짓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네는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알아낸 건가?”

“그 이유를 일일이 말씀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딱 부러진 도현의 대답에 베노아는 그 문제를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그 망각의 숲이라는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나?”

“그건 돌아오고 있는 크샤코 가문의 사람들을 통해 알아보십시오. 2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녀왔으니 정보를 빼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지금 오고 있나?”

“예, 머지않아 도착할 겁니다. 그쪽에서의 일은 끝난 것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베노아와 히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도시에서 연합 세력을 붕괴시키고 얼음탑주와 맞서 싸우기까지 한 용병이었다. 그가 가지고 온 정보는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수고했네. 기대 이상의 정보야.”

베노아는 밖에서 대기 중인 보링을 불러 보석을 가지고 오게 했다.

“약속한 대로 금화 3천 개 가치의 보석이네.”

금화 1백 개 정도로 교환 가능한 보석이 서른 개나 들어 있었다.

도현은 마다하지 않고 보석 주머니를 챙겨 품에 넣었다. 그의 정보는 이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럼 이만.”

도현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는데, 베노아가 말했다.

“브링틱에는 몇몇 버려진 성이 있네. 오래전 멸문한 가문의 성이지. 그중 하나를 주겠네, 그 성에 딸린 농토도 주고. 영원히 말일세.”

베노아가 의자에서 일어나 도현에게 다가갔다.

“영원히 자네 성과 땅이 되는 걸세. 브링틱 안에 자네만의 공간이 생기는 것이지. 어떤가? 2년만 우리들을 도와주겠나?”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는 할 일이 있어서 조만간 브링틱을 떠나야 합니다. 그럼.”

도현이 나가려 하자, 호위 무사 보링이 검을 반쯤 뽑은 상태로 외쳤다.

“감히 원로님의 말씀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나가려 하다니!”

“당신의 충성심은 언제 봐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

도현의 칭찬에 보링이 목에 힘을 주었다.

“당연하지! 허억!”

복부를 얻어맞은 그는 허리를 숙였다.

“제발 끼어들지 마십시오, 원로가 지시하기 전까지는.”

“네놈이! 거기 서라!”

호위 무사 보링은 방에서 멀어져 가는 도현을 쫓아갔지만, 그는 금세 사라져 버렸다.

우정

‘씨드는 어떻게 됐을까? 누가 가지고 갔지?’

모닥불을 바라보는 이디언의 눈빛은 복잡했다. 자신 때문에 씨드를 포기한 칼라치에게 감동은 받았지만 그것은 잠시, 뒤이어 밀려오는 견딜 수 없는 미안함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 때문에 씨드를 가질 수 있는 기회조차도 사라졌어. 그를 위해서 따라왔는데, 내가 그를 망쳐 놓은 거야.’

열렬한 사랑은 이성적인 판단조차도 힘들게 만들었다. 그녀는 모든 게 자신 때문에 어긋났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칼라치의 것을 가지고 간 자들을 다 죽이고 싶어.’

그녀는 몸을 움츠리며 두 무릎에 머리를 파묻었다.

‘나를 구해 줬다는 그 용병이 가지고 갔을까? 아니면 탑주나 다른 자들이?’

모닥불 앞에 있었지만 그녀는 몸이 너무 추웠다. 얼음처럼 차가운 호수에서 의식을 잃었을 때, 그 소름 끼치던 공포감이 다시 엄습했다.

핏기 없이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덜덜 떨던 그녀는 주변에서 자는 헬구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코를 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칼라치는 씨드를 얻지 못했는데 당신은 편하게 자고 있군. 그러고도 친구야? 돼지 같은 녀석.’

모닥불 앞에서 몸을 떨던 그녀는 불이 붙은 나무토막을 들고 천천히 헬구스에게 다가갔다.

동산만 한 배를 내놓고 자는 모습이 역겨웠다.

‘너 같은 녀석은 두 눈이 아까워.’

그녀는 헬구스의 눈을 향해 불이 붙은 나무토막을 힘껏 찔렀다. 하지만 조금 움직이다 말았다. 누군가 뒤에서 강한 힘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것이다.

뒤를 획 돌아본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칼라치가 무거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디언.”

“이거 놔요.”

“이러지 마시오.”

“놓으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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