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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00화 (400/575)

[400] 디 임팩트 16권 25화

홍영은 그림 속 산 밑에 작은 집을 짓고 도현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상상을 해 봤다.

저 나룻배에 둘이 타고서 강물의 고기를 잡는 것이다.

한동안 그림을 바라보던 그녀는 용주가 들어오는 소리에 몸을 돌렸다.

“퇴근해야죠.”

용주의 말에 그녀는 시계를 봤다.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내일도 힘차게 검 수련을 하려면 적당한 잠이 필요하죠.”

유쾌한 용주의 말에 홍영은 맑은 미소를 보였다.

도장에 용주가 없었다면 도현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후, 관장실에 불을 껐다. 그리고 지하 도장의 천장 등도 끄려다가 말았다. 도현이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등은 끄고 싶지 않았다.

“가요.”

문 앞에서 기다리는 용주와 함께 홍영이 지하 도장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허공이 갈라지며 도현이 불쑥 튀어나와 바닥에 착지했다.

“어! 도현아!”

“도현 씨!”

홍영은 신발을 벗어 던지고 그대로 뛰어가 도현과 포옹을 했다.

얼음탑주라는 위험한 적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녀는 다른 때보다 도현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초조했었다.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모습을 보니 눈물이 핑 돌 만큼 기뻤다.

도현은 자신을 기다렸다는 듯 홍영과 용주가 지하 도장에 서 있자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포옹을 한 홍영의 등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

그가 이계에서 홍영을 그리워했듯 홍영도 이 작은 지하 도장에서 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알 수 없는 감동에 코끝이 시큰해졌다.

“잘 있었어요?”

“네, 용주 씨랑 열심히 수련하면서 지냈어요. 도현 씨는요?”

“난 몬스터랑 놀았어요.”

둘이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던 용주는 도현의 말투를 흉내 냈다.

“난 몬스터랑 놀았어요. 아, 자식, 유치하기는.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홍영이 포옹을 풀고 옆에 서자 용주는 도현을 사내답게 크게 한번 안아 주고는 뒤로 물러났다.

“잘 다녀왔냐?”

“어.”

“얼음탑주는?”

도현은 옆에서 바라보는 홍영과 시선을 한번 주고받은 뒤 답했다.

“끝냈어.”

“킬?”

용주는 자신의 목을 치는 시늉을 했고,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탑주를 제거했다는 말에 용주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속이 다 후련하네. 역시 받은 건 돌려줘야지. 아니, 근데 이번에도 빈손이네?”

도현의 위아래를 살피던 용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꾸 이러면 곤란한데.”

“누가 빈손이래?”

도현은 품에서 복주머니처럼 생긴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리타가 만들어 준 마법 주머니였다.

“뭐 값진 보석이라도 많이 챙겨 왔냐?”

도현의 당당한 태도에 용주는 혹시나 했다.

“직접 봐.”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주머니 안을 살펴본 용주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홍영에게 가죽 주머니를 넘겨줬다.

“홍영 씨, 보세요. 아무것도 없죠?”

“네.”

홍영은 미소 띤 얼굴로 답했다. 용주가 진짜 돈이 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이계를 다녀온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용주만의.

“줘 봐.”

도현은 마법 주머니를 돌려받은 후 손을 집어넣어 금화 상자를 꺼냈다.

쿠웅.

도장 바닥이 묵직하게 울렸다.

“어! 이게 뭐야? 아무것도 없었는데, 작은 주머니 안에서 어떻게 이렇게 큰 상자가 나올 수가 있어?”

도현의 손에 있던 가죽 주머니를 빼앗듯 채 간 용주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주머니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용주는 물론이고 홍영도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특별한 주머니거든.”

도현은 금화 상자를 열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상자의 뚜껑이 열리자, 수천 개의 금화가 빛을 반사하며 등장했다.

“금화잖아?”

용주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표정으로 금화 상자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홍영 씨, 가까이 와서 봐요. 엄청 많다고요, 하하하!”

용주는 금화 상자에 손을 푹 집어넣어 금화들을 허공에 뿌렸다. 찰랑거리는 금속성과 함께 수십 개의 금화들이 반짝이며 용주 머리 위로 떨어졌다.

약간의 아픔도 있었지만 용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많은 금화들을 비처럼 머리 위에 뿌렸다.

“중동의 거부들은 가끔 이렇게 하고 논다더라. 아, 정말 끝내준다. 이게 대체 몇 개야?”

“3천 개.”

“와아! 젠장, 욕이 나올 만큼 기쁘네. 홍영 씨, 이리 와 봐요.”

“괜찮아요. 여기서 봐도 충분히 즐거우니까요.”

“에이, 그럼 안 되죠. 도현이 고생하며 벌어 온 금환데.”

용주는 금화를 양손에 수북이 담아서는 홍영의 머리 위로 뿌렸다.

홍영이 웃자 용주는 거보라는 듯 도현을 쳐다봤다.

“봐 봐, 도현아, 홍영 씨도 금화 좋아하잖아, 하하하!”

“아직 안 끝났어.”

도현은 마법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또 하나의 금화 상자를 꺼냈다.

쿠웅.

묵직한 울림에 용주는 설마 하며 기대감에 찬 얼굴로 도현을 봤다.

“이, 이것도 금화냐?”

“응, 브링틱 원로에게 의뢰비로 받은 보석들을 금화로 교환했지.”

도현이 한쪽 무릎을 꿇고 상자의 뚜껑을 열자, 보기 좋은 누런색이 용주의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나 오늘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겠어. 미치겠네.”

용주는 큰대자로 누워 심장이 아픈 표정을 지었다.

“저거 다 합하면 몇 개나 되지?”

“6천 개 정도.”

“6천 개면 금 시세가 한창 떨어지고 있어도 40억은 넘겠는데. 너 이번에 완전히 대박 치고 왔구나? 하하하!”

용주는 벌떡 일어나서 도현의 마법 주머니를 손으로 가리켰다.

“근데 그놈, 정체 뭐냐? 어떻게 이 상자들이 그 안에서 줄줄이 나온 거지?”

“어떻게 된 거예요?”

홍영도 궁금했는지 마법 주머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마법 주머니예요. 이계에서 사귄 친구 중에 리타라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녀가 만들어 준 거죠.”

도현은 마법 주머니가 어떤 물건인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도현의 설명을 들은 그들은 신기한 마법 물건에 넋을 잃을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굉장한 거네. 나는 못 사용한다고?”

용주가 도현의 마법 주머니를 자세히 살펴보며 물었다.

“이건 각인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거든. 물건을 넣는 것도 빼는 것도, 주머니의 주인이 아니면 사용할 수가 없어.”

“그렇구나.”

“용주야, 가방 줘 봐.”

용주는 도장 바닥에 던져 놓은 자신의 가방을 들고 왔다.

“넣어 보려고?”

“어, 시험해 볼 게 있어서.”

만약 지구의 물건이 이 주머니 안에 들어가면 이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차원 게이트로는 이곳의 물건이 못 넘어갔었기 때문에 그 결과가 궁금했다.

‘들어가라!’

마음속으로 의지를 담아 용주의 가방을 마법 주머니를 향해 끌어당겼다.

‘안 된다.’

도현은 다시 시도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세타이움 장검을 풀어 똑같이 해 봤다. 검은 마법 주머니 안으로 쉽게 들어갔다.

“이곳의 물건은 안 되나 봐요.”

홍영의 말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요.”

락제프가 창안한 마법 주머니는 이계의 물건만 받아들이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래도 대단하다. 그런 신기한 물건이 다 있다니.”

용주는 마법 주머니를 손으로 몇 번 만져 보다가 도현에게 다시 되돌려줬다.

주인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지구의 물건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는 그저 잘 만들어진 가죽 주머니일 뿐이었다.

“아무튼 이 금화들 가지고 오느라 수고했다. 보는 즐거움이 꽤 있었어. 일단 그 주머니에 보관하자, 천천히 처분하게.”

용주는 어지럽게 뿌려진 금화를 싹싹 쓸어 담아서 금화 상자에 도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도현 씨, 술 냄새가 많이 풍기는데, 오기 전에 그곳에서 술 마시고 온 거예요?”

“그럴 일이 있었거든요.”

도현은 미소를 지으며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샤워 좀 하고 나올게요. 이번에 많은 일들을 겪어서 얘기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요.”

“도현아, 야식 하나 시키자. 네 얘기는 뭐 먹으면서 듣는 게 제일 좋거든.”

용주와 홍영은 치킨에 맥주를 먹으며 도현이 그곳에서 수개월간 겪고 온 흥미로운 이야기에 빠져들어 갔다.

“그 검은 용, 바크 드라모스 완전히 무서운 존재인데?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좀비처럼 만들지? 그리고 너도 독종이다, 그 많은 좀비들을 다 없애다니.”

“잘했어요, 도현 씨. 그 사람들의 영혼은 이제 편안해졌을 거예요.”

홍영은 치킨을 한 손에 들고서 좋아했다.

“세타이움 장검이 그거냐?”

“응.”

도현은 도장 바닥에 내려놓은 세타이움 장검을 용주에게 건네줬다. 마법 주머니 안에 있던 한 자루도 빼서 홍영에게 줬다.

스르릉.

평범한 검집에서 뽑혀 나온 세타이움 장검의 예기가 도장 안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야, 칼 죽인다! 나중에 이 검으로 태선군의 목을 베어 버리면 되겠네.”

“좋은 검 같아요.”

홍영과 용주는 검을 검집에 다시 넣어 도현에게 돌려줬다.

마법 주머니 안에 세타이움 장검을 보관한 도현은 아껴 놓았던 거인의 섬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뭐? 그게 정말이냐? 씨드 나무의 샘에서 힘을 흡수했다고?”

용주는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으며 놀란 눈으로 도현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씨드가 녹아 있는 물 같았어.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강력한 힘이 내게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니까.”

“잘했다, 정말 잘했어! 탑주 패거리들을 밀어내고 먼저 기연을 얻다니, 하하하!”

통쾌하다는 듯 시원하게 웃던 용주는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태선군은 어때? 그자와 다시 맞붙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싸워 봐야 알겠지만, 그자가 폐관 수련에서 큰 변화 없이 나온다면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도현이 신중한 얼굴로 말하자 용주와 홍영은 크게 기뻐했다.

옥룡산에서 도현은 태선군의 패도적인 무공에 패하고 돌아왔다. 그 무공을 극복하고 태선군을 잡기 위해선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기연을 얻어 단번에 강해져 온 것이다.

“야야, 건배하자.”

용주는 도현과 홍영의 맥주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친 후 원샷을 했다.

“크흑, 좋다. 내가 어제 꿈이 좋더라고. 차를 몰고 가는데 도로가 그냥 온통 소똥밭이야. 그래서 복권을 살까 했는데, 오늘 좋은 소식이 딱 왔잖아. 엄청난 금화에, 너는 기연을 얻었고.”

도현은 피식 웃으며 용주의 빈 잔에 맥주를 따라 줬다.

“그런데 씨드가 없었으면 로나는 어떻게 된 거예요? 설마 죽은 건 아니죠?”

홍영은 도현이 기연을 얻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그녀가 걱정됐다.

“씨드 나무로 만든 약을 먹고 다 나았어요.”

“다행이에요.”

“아까 술 얘기 했었죠? 게이트 넘어오기 전에 술 마셨다고요. 로나의 완치를 축하는 자리에서 마신 술이었어요.”

“너 술김에 돌아온 건 아니지?”

용주의 농담에 도현이 소리 내어 웃었다.

“보고 싶어서 온 거야. 그리고 여기가…… 내 집이잖아.”

“잘 왔어요, 집에.”

홍영이 웃으며 치킨 조각을 도현에게 건넸다.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도현과 홍영의 모습에 용주가 슬그머니 일어나며 말했다.

“도현아, 나는 그만 가야겠다. 남은 치킨, 홍영 씨하고 다 먹어라.”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시간도 늦었는데.”

“됐어, 인마. 홍영 씨한테 혼날 생각 없다. 홍영 씨, 전 갑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용주가 도장을 나가자, 둘만 남았다.

“홍영 씨.”

“네?”

“고통스러워하는 로나를 보면서 당신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더 보고 싶었어요.”

“고생했어요. 그리고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서로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짓던 그들의 입술이 서서히 포개졌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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