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402화 (402/575)

[402] 디 임팩트 17권 2화

“말은 잘하는구나. 그래, 맞다. 내가 모든 일의 원흉이다. 네 사부를 문주로 인정하지 않고 수십 년을 다퉜고, 섭상에게는 내 내공의 절반과 심득을 일부 전수해 주었으니까.”

섭상은 무허가 모든 걸 전수해 주고 죽은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를 속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라. 내가 옥룡산에서 네 사부를 수십 년간 막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세상에 나와 온갖 나쁜 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녔을 것이다. 그 악독함을 나는 일찍이 꿰뚫어 보았을 뿐이다. 진정 검선문을 사랑한 사람이 나라는 걸 모르겠느냐?”

“궤변이오. 무허 사숙 역시 욕심과 호승심에 갇혀 사부를 괴롭혀 왔을 뿐.”

“미련한 놈. 검선문의 진짜 해악이 누군지 모르는 네놈은 애초에 대제자의 그릇이 아니었어!”

자리를 털고 일어난 무허는 싸늘한 눈빛으로 청선의 정수리를 노려봤다.

“그날 네 사부가 복면인을 패퇴시킨 무공이 무엇인 줄 아느냐? 그건 검선문의 무공이 아니다. 홍도조의 패천공이라는 것이다. 네가 검선문에 들어오기 전에 불타 사라져 버린 장서고에 기록된 홍도조의 악행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해도 너는 차마 끝까지 보지 못했을 것이다. 개돼지처럼 사람을 도륙하고 피를 즐기는 악인이었으니까 말이다.”

“…….”

“그 무공을 네 사부가 익히고 있다. 앞날이 보이지 않느냐? 조만간 세상은 알 수 없는 잔인한 죽음으로 넘쳐 날 것이다. 그것을 볼 때마다 넌 네 사부를 떠올리면 된다.”

말을 끝마친 무허는 미동도 않는 청선을 내려다보다가 혀를 차며 바위 위에서 내려왔다.

“전대 문주가 남겨 준 오원신공을 익혀 네 사부를 막든지 아니면 이대로 폐인처럼 신세타령이나 하든지 마음대로 해.”

“무허 사숙도 내가 오원신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청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무허를 봤다.

“그럼 아니란 말이냐? 전대 문주님의 임종 후의 모습을 난 잊지 않고 있다. 그 편안한 얼굴. 오원신공을 단절시킨 사람의 얼굴이 절대 아니었어. 그렇다면 누군가 전수받았다는 것인데, 그게 누구겠느냐? 임종을 지킨 너밖에 더 있느냐?”

말을 마친 무허는 움막집처럼 지어 놓은 거처로 들어가 버렸고, 청선은 두 다리가 묶인 사람처럼 꼼짝을 하지 못했다.

“부상이 심해 오늘 밤 나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섭상의 눈을 속인 죽음이 아닌 진짜 죽음을 말이다. 결심이 서면 들어오너라. 태선군과 나만이 아는 비밀을 말해 주마.”

움막에서 흘러나오는 무허의 말소리가 점점 작아지는가 싶더니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날은 금세 어두워졌고, 시간은 무심히 흘러만 갔다.

자정을 넘길 무렵 바위 위에 장승처럼 서 있던 청선이 새끼손가락의 한 마디를 잘라 냈다. 사부에게 파문을 당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던 그와의 관계를 이 한 마디의 손가락으로 마침내 끊어 낸 것이다.

죽어 가는 무허의 움막으로 걸어 들어가는 청선의 뇌리에 오래전 죽은 전대 문주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오원신공은 오로지 일인 전수만 가능한 무공. 네가 전수받으면 어떤 이유로도 다음 전수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무공을 전해서는 안 된다. 설사 차기 문주가 너를 추궁해도 말이다.

-문주님, 제가 감히 어찌 문주 무공인 오원신공을 전수받겠습니까?

-지금 내 옆에 너밖에 더 있느냐?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전대 문주는 그렇게 그에게 오원신공을 전수해 주고 훌쩍 떠나 버렸다.

청선이 움막으로 들어왔을 때는 무허의 몸에서 생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던 참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앉은 청선은 단단한 음성으로 물었다.

“말할 게 있으면 지금 하시오, 무허 사숙.”

강서성 남부에 위치한 오지의 험산을 한 사내가 오르고 있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사내는 주성하였다.

아침이면 운무가 뿌옇게 끼는 신비로운 절경을 자랑하는 험산은 그 주변 일대가 대부분 깎아지른 절벽이어서 차로 접근할 수 없는 험지 중의 험지였다.

세상을 등진 사람들조차도 살기엔 버거워 보이는 그런 험한 산을 한 달 넘게 탐사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바로 담기량의 은거지를 찾는 주성하와 료쿄의 사람들이었다.

위험한 산 지형을 극복하며 옛 무인의 흔적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지칠 만도 했지만, 주성하가 큰 보상을 약속했기에 수십 명의 사내들은 묵묵히 그 일을 해 오고 있었다.

어두워질 무렵 탐사 캠프에 도착한 주성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주일 전쯤 이곳을 떠날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왜 이렇게 어수선해?”

“오셨습니까.”

주성하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건장한 사내가 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로프가 끊어져 절벽 밑으로 여러 사람이 추락했습니다.”

부하의 대답에 주성하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사상자는?”

“부상자는 없고 모두 사망했습니다.”

“후우, 몇 명이나.”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묻는 주성하의 말투엔 짜증이 깊게 배어 있었다.

“여섯 명입니다.”

“여섯 명…… 많이도 죽었군. 모두 우리 쪽 사람들인가?”

“예.”

탐사대엔 료쿄의 집안사람과 주성하의 부하들이 혼재되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원들 중 일부는 일본에서 온 자들이 로프에 손을 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손을 대다니? 그들이 로프를 자르기라도 했단 말이야?”

“물증은 없지만 추락해 죽은 대원들이 공교롭게도 일본에서 온 자들과 사소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온 말 같습니다.”

“음.”

담배를 입에 문 주성하는 탐사 캠프를 길게 둘러봤다. 비탈진 산중에 여기저기 쳐진 야영 텐트 주변으로 료쿄의 사람과 그의 사람이 은연중에 반목해 대치해 있는 모습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탐사 성과는 있었나?”

“아직 없습니다.”

“한 달 넘게 여기 들어와서 지내다 보니 다들 민감해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일본 쪽 애들에게 감정을 풀 필요는 없어. 돈 받고 있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목숨이 위협받다 보니.”

“증거 없잖아, 이 새끼야! 일본 애들이 그랬다는 증거 있어!”

버럭 고함치는 주성하의 목소리가 탐사 캠프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 서슬이 하도 시퍼레서 일본 쪽 사내들도 바짝 긴장을 했다.

“앞으로 일에 집중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신경 쓰는 새끼들은 내가 책임지고 죽여 줄 테니까 그렇게들 알고 있어.”

검선문에서나 막내고 약한 존재였지, 바깥세상에서 주성하는 무서울 게 없는 사내였다.

캠프 주변에 흩어져 있는 수십 명의 부하들에게 경고를 한 주성하는 료쿄가 텐트에서 나와 숲으로 걸어가자 그녀 뒤를 쫓아갔다.

“일본 쪽 애들 단속을 좀 해야겠습니다.”

“로프가 불량일 뿐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어.”

“확인해 봤습니까?”

“그래, 절벽 밑으로 내려가서 끊어진 로프들을 다 확인해 봤어.”

“아니라니 안심이 되는군요. 나중에 불량 로프를 판 놈들을 찾아가 손 좀 봐야겠습니다. 그 로프를 나나 구사저가 사용했다면 큰일 날 뻔했지 않습니까?”

얼마 전까지 이곳에 머물며 함께 절벽을 타고 탐사를 했던 주성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운이 없었다면 세상을 즐기지도 못하고 황천길로 갈 뻔했다.

“고 사형이 왜 찾는 거지?”

캠프에서 조금 멀어지자 료쿄가 걸음을 멈추며 뒤돌아섰다.

주성하는 일주일 전쯤, 고진영의 호출을 받고 산을 내려갔었다.

“섭 사형의 재산 때문에요.”

“그건 일전에 정리해서 넘겨줬잖아.”

“믿지를 못하는 거죠.”

주성하는 인상을 잔뜩 쓴 채 발로 담배를 비벼 껐다.

“섭 사형의 재산을 빼돌린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더군요. 사부를 모셔야 한다고요.”

청선 대신 대제자가 된 고진영은 명목상 태선군 핑계를 대며 죽은 섭상이 이룬 막대한 부를 가로채려 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전에 보고한 그 재산이 전부라고 했죠. 그러고 나왔습니다. 대제자가 되더니 아주 안하무인이 됐어요. 내가 자기 부하인 줄 아나. 빌어먹을 자식이.”

주성하가 보기에 고진영은 능력으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섭상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뒤처지는 인물이었다.

“숨겨 놓은 섭 사형 재산이 있지?”

폐부를 찌르는 듯한 료쿄의 시선에 주성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긴 한데, 엄밀히 말하면 그건 섭 사형의 재산이 아니라 내 재산입니다. 내가 섭 사형 밑에서 수년간 일한 대가니까요. 그 정도는 나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얼마나 숨겨 놓았는데?”

“반 정도.”

“반이나?”

생각보다 주성하가 빼돌린 섭상의 재산이 많았다.

“그렇게 많으면 들통이 날 텐데.”

“섭 사형이 음지에서 관리해 온 재산이기 때문에 나 아니면 아무도 몰라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래도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고 사형은 어수룩해 보이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만만히 볼 사람은 아니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하루빨리 담기량의 은거지를 찾아야 하는데, 영 진척이 없네요.”

담기량의 은거지가 표시된 옛 지도를 구했을 때만 해도 담기량의 무공이 당장 수중에 들어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바다에 빠진 작은 구슬 하나를 찾는 것처럼 막막했다.

가능성 높은 일곱 곳을 선정해 하나씩 수색하고는 있지만 끝이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때론 천재지변으로 인해 담기량의 은거지가 이미 사라진 건 아닌지 의심도 됐다.

“며칠 전에 백도현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래?”

료쿄는 관심을 보이며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선 주성하를 쳐다봤다.

“사부에 관해 묻기에 아직 폐관 수련에 들어가서 연락이 없다고 했죠.”

“담기량 일은 묻지 않았나 봐?”

“웬걸요. 마지막에 전화 끊기 전에 낮은 목소리로 물어보는데, 은근히 긴장이 됐습니다. 별 진척이 없다고 하니까 약간의 침묵이 있었거든요. 그 침묵이 이상한 압박감으로 다가와서.”

“신경 쓰지 마, 우린 그를 속이는 게 없으니까.”

료쿄는 검을 뽑아 주변의 수풀을 향해 가볍게 휘둘렀다. 검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일정하게 잘린 나뭇가지와 풀 들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구사저, 담기량의 은거지를 찾으면 백도현을 배제하고 우리끼리 그의 무공을 익히고 싶은데, 그건 미친 생각일까요?”

“주 사제, 백도현을 감당할 자신 있어?”

주성하는 사부인 태선군과 맞서 싸우던 도현의 신들린 듯한 검술과 몸동작을 잠시 떠올렸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옥룡산에서 사부에게 패했지만 그것으로 끝낼 인간이 아니었다. 백도현의 가장 큰 특징은 매번 짧은 시간 동안 말도 못하게 강해져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검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여러 조각 낸 료쿄는 칼을 거두고 생각에 잠긴 주성하를 응시했다.

“내가 느낀 백도현의 성격은 모든 게 분명한 사내라는 거야. 우리가 약속을 지키면 그는 우리를 존중해 줄 거야.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약속을 저버리면, 그는 사부에게 맞춰진 칼끝을 너와 내게 돌릴 게 분명해.”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습니다. 검으로 모든 걸 해결할 필요는 없지요.”

주성하는 도현을 상대하는 데 꼭 검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자 료쿄는 피식 웃으며 주성하가 기댄 나무 옆에 섰다.

“얼마 전 일을 잊은 거야? 총과 폭탄으로 우리가 사부님을 죽일 수 있었어?”

“그건…….”

괴물 같은 사부는 침소에서 터진 폭탄과 저격수의 총알을 뚫고 상해의 저택을 빠져나갔었다. 그리고 다시금 제자들을 휘하에 거두었다.

“욕심은 적당히 부려, 네가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백도현에게 그리 호락호락하게 죽을 것 같습니까? 담기량의 무공을 익히면 백도현을 상대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섭 사형도 너처럼 자신만만해하며 사부를 쳤지. 그리고 지금 그의 재산을 고 사형과 네가 나눠 가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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