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 디 임팩트 17권 5화
“아빠, 저 사람들 괜찮겠어요?”
“저 사람들이라니?”
루이스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골동품을 꺼내며 딸을 돌아봤다.
“조금 전에 다녀간 사람들요. 그 한국인들, 우릴 의심하는 것 같잖아요.”
“난 또 무슨 소리라고. 이거나 저쪽에 진열해 놔.”
도로시는 아버지가 준 토기를 유리 진열대 안쪽에 놓으며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아빠는 불안하지도 않아요?”
“뭐가 불안해.”
“저 한국인들은 조 박사란 사람이 보낸 한국의 청부업자들일 수도 있다고요. 조금 전에 밖에서 날 노려보는데 섬뜩했다니까요!”
“넌 어려서부터 참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했지.”
아버지가 웃으며 말을 하자 도로시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6만 파운드는 큰돈이잖아요. 어쩌면 물건값을 되돌려 달라고 우리를 협박할 수도 있어요.”
“돌려 달라고 하면 돌려주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
“정말 그러실 수 있어요? 돈 돌려줄 수 있느냐구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골동품 상자를 정리하던 루이스는 초조한 얼굴로 서 있는 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넌 이 일에 왜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거냐?”
“그, 그게 걱정되니까 그러죠. 경찰도 찾아오고 오늘은 저런 사람들까지 찾아오고. 내일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잖아요.”
딸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던 루이스는 다시 아프리카 골동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코에 한 피어싱은 언제 제거할 거냐? 세 개나 한 건 심하잖아.”
“제 개성이에요.”
“보기 불편해. 한 개만 줄여 봐.”
“싫거든요.”
도로시는 재킷을 챙겨 가게 문으로 향했다.
“어디 가는 거냐?”
“약속 있어요.”
“오늘 저녁은 함께 먹기로 한 것 같은데.”
“죄송해요.”
문을 꽝 닫고 딸이 나가자 루이스는 굳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아내와 이혼한 후 딸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도로시가 뭘 알고 있는 걸까?’
강도 사건에 유독 신경 쓰는 딸의 행동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 가게를 나온 도로시는 주위를 한번 살핀 뒤 조명이 들어온 골목 상점 거리를 걸었다.
그녀가 지나친 카페 안에서 도현과 용주가 나타났다.
“젠장, 급히 나오다가 커피 흘렸네.”
바지에 묻은 커피를 손수건으로 닦아 내며 용주가 투덜거렸다.
“옆으로 붙어.”
도현의 말에 용주는 재빨리 사람들 사이에 숨으며 골목 벽 쪽에 몸을 붙였다.
앞서 걸어가던 도로시가 몸을 돌려 그들이 있는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벽에 붙어 있는 도현과 용주의 앞을 스쳐 지나간 그녀는 아버지 가게에 들어갔다 금방 다시 나왔다. 아무래도 뭔가를 놓고 나온 모양이었다.
도현과 용주는 골목을 빠져나가는 그녀 뒤를 거리를 두고 뒤쫓았다.
“저거 보라고, 뒤가 구리니까 저렇게 주변을 살피면서 걷잖아. 분명 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니까!”
루이스가 범인일 거라고 주장했던 용주는 지금은 그의 딸이 수상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도현이 보기에도 그녀는 어딘가 불편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 때문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조사해 볼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도현의 마음 한구석엔 루이스가 보여 준 미묘한 것들도 의심이 되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람의 눈이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의식을 하든 못하든 그 사람의 심리 상태가 눈을 통해 일정부분 드러나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겉으로 보기엔 대화할 때 눈동자의 흔들림도 없었고 말투도 자연스러웠다.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그러나 일반인들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떨리던 그 눈동자의 움직임을 도현은 정확히 캐치해 냈다. 루이스는 뭔가 감추는 게 있는 듯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번 사건에 개입됐다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의미일까?’
도현의 깊은 시선이 지하철을 기다리는 도로시에게 꽂혔다.
루이스의 눈동자가 알게 모르게 미세하게 움직이다 크게 흔들린 순간은 바로 도로시가 사전에 거래 정보를 알고 있었느냐고 질문을 던졌을 때였다.
“기다려.”
지하철을 타려던 용주의 팔을 도현이 붙잡았다.
“왜?”
도현은 도로시가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지하철 객실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이 사람들 사이로 언뜻 보였다.
“얼른 타자, 놓치기 전에.”
“잠깐만, 다시 내리고 있어.”
“뭐?”
“몸을 돌려.”
도현과 용주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척했고, 지하철이 출발하기 직전에 내린 도로시는 피어싱한 입술을 손으로 만지며 주변을 훑어봤다.
중국인 여행객들이 보였지만 그녀는 별다른 의심 없이 다음 지하철을 기다렸다.
“한국분인데 중국어를 잘 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도현은 적당히 대화를 맞추며 도로시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녀는 한결 편안한 얼굴로 다음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이 출발하기 직전에 내린 그녀는 자신을 따라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안심을 한 것 같았다.
“설마 이번에도 저 여자가 탔다가 내리는 건 아니겠지?”
“글쎄, 그건 장담할 수 없지.”
“그럼 조금 전엔 어떻게 알았고?”
“찍었어.”
도현은 지하철에 올라탔다. 도로시는 마지막까지 시간을 끌다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에야 지하철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굉장히 조심하는데. 경찰에 쫓기는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어서 와.”
도현은 달리고 있는 지하철 안에서 다른 객실로 옮기고 있는 도로시를 지켜보다가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이동했다. 그러다 덩치 큰 백인 세 명에 의해 가로막혔다. 그가 옆으로 움직이자 그들 중 한 명이 또 가로막았다.
“좀 지나가겠습니다.”
“지나가고 싶으면 내 밑으로 지나가.”
190은 넘어 보이는 거구의 백인은 자신의 가랑이를 벌렸다.
“이 새끼가 지금 미쳤나.”
용주는 괜한 시비를 거는 그의 행동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 도현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거구의 백인이 갑자기 픽 쓰러졌다. 도현이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가볍게 짚은 것이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르던지 근처에 서 있던 승객들은 도현의 움직임을 파악하지도 못했다. 그들이 보기엔 거구의 백인이 저 혼자 쓰러졌다.
“야! 정신 차려!”
거구의 백인이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하자 좌우에 서 있던 그의 친구들이 그의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라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사이 도현은 그들을 지나쳐 도로시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그녀는 객실을 계속 옮겨 다니고 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타며 런던의 동부 쪽으로 이동한 도로시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을 구입한 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밤거리를 걸었다.
가난한 서민과 이민자 들이 몰려 사는 주택 지역을 걷던 그녀는 노후된 4층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외관의 모습은 멋스럽게 느껴졌지만 막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계단을 이용해 꼭대기 층에 해당하는 4층까지 올라간 그녀는 어두운 복도의 끝 방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애런, 나야.”
문이 열리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나타났다.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는 손에 든 총을 허리 뒤에 꽂으며 문을 완전히 열어 주었다.
“따라오는 사람 없었지?”
“응, 조심했어.”
도로시의 대답에도 불안했는지 그는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복도 전체를 살폈다.
4층 복도는 오가는 사람 없이 조용했다.
문이 닫혔고 복도는 정적에 휩싸였다. 그 정적을 깨며 스르륵 다가온 도현이 도로시가 들어간 방문 앞에 섰다.
‘조금 전 사내는 누굴까?’
도로시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곳에 오며 보여 준 필요 이상의 조심성은 의심을 살만 했다.
건물을 빠져나온 도현은 밖에서 기다리는 용주와 함께 지저분한 골목길로 향했다. 그 골목길은 도로시가 들어간 건물의 옆면에 해당했다.
“올라갈 수 있지?”
“당연하지.”
용주는 보란 듯이 내공을 발휘해 허공으로 높게 점프를 했다. 수 미터를 점프한 그는 건물의 벽면 이곳저곳을 발로 밀어내며 도현이 알려 준 4층 창가에 도착했다.
밑에서 용주의 행동을 올려다보던 도현도 가볍게 몸을 날렸다.
도로시가 들어간 집의 창문 좌우에 매달린 그들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내부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젊은 사내와 도로시가 사 온 햄버거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 있을 거야?”
“그놈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애런의 대답에 도로시는 걱정 깊은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언제인데?”
“몰라 나도. 언젠간 날 잊겠지.”
무신경한 그의 대답에 도로시의 눈빛이 바뀌었다.
“넌 예전부터 그게 문제야, 생각을 하고 움직여야지!”
“왜 이래, 도로시. 체하겠다.”
햄버거를 두 개째 먹는 그에게 도로시가 언성을 높였다.
“난 너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넌 지금 될 대로 되라는 거잖아!”
“걱정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잖아.”
애런은 도로시의 눈치를 보며 남은 햄버거를 마저 입에 넣었다.
“허리 뒤에 있는 총은 뭐야? 널 잡으러 오면 그걸 사용하려고?”
“앉아서 당할 순 없잖아.”
“아, 머리야. 정말 짜증 난다. 너 같은 애랑 내가 왜 사귀어서 정말.”
도로시는 공기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기운 없어 보이는 그녀에게 애런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오늘 이상하게 예민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니긴. 말해 봐, 무슨 일인데?”
도로시는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올려다봤다.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어 있었다.
“아빠에게 일이 생겼어.”
“너희 아버지에게? 무슨 일?”
“됐어, 네가 이런 꼴인데 내가 걱정거리를 말해서 뭐해.”
도로시는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가려고? 더 있다 가지?”
애런이 도로시의 손목을 붙잡았다.
“놔, 이럴 기분 아니야. 그리고 당분간 여기 못 올 것 같아.”
“진짜 일 생겼구나.”
애런은 겉옷을 걸쳤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네 집에 일이 생겼는데 내가 여기 숨어 있을 순 없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가 도와줄게.”
“고맙지만 네가 그럴 형편은 아니잖아. 그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잘 숨어 있어. 연락할게.”
애런을 만류한 도로시는 현관문으로 걸어가다 문손잡이가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누군가 집 밖에서 문을 열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
애런은 권총을 꺼내 현관문 쪽을 겨냥했다.
그 순간 문이 튕겨지듯 열리며 대여섯 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권총을 겨누고 서 있는 애런의 모습에 움찔하며 집 안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고 멈춰 섰다.
“먼저 다가오는 놈이 제일 먼저 죽는 거야!”
애런의 위협에 루퍼트 패거리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돌아와. 조직을 탈퇴하면 어떻게 되는지 너도 잘 알잖아.”
“너희들끼리 그 잘난 조직 유지해, 난 관심 없으니까.”
애런은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루퍼트 패거리에서 나오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처음엔 힙합과 춤을 추는 모임이었다. 그러던 모임이 어느 순간부터는 범죄 조직으로 변질되는 중이었다.
그 중심엔 길거리 싸움에 능한 루퍼트가 있었다. 그가 모임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렇게 된 것이다.
루퍼트는 모임의 리더가 되었고 지금은 보스가 되었다.
“다들 바닥에 엎드려. 엎드리라고 했어!”
애런이 권총을 들이대자 루퍼트 패거리는 하나둘 그 자리에서 바닥에 엎드렸다.
하지만 눈은 애런을 노려보고 있었다. 기회만 되면 공격하려는 독사의 눈빛이었다.
“도로시, 밖으로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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