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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06화 (406/575)

[406] 디 임팩트 17권 6화

“넌 어쩌고?”

잔뜩 긴장한 도로시가 애런을 쳐다봤다.

“난 조금 있다가 나갈게.”

“같이 가.”

“걱정 말고 어서 나가. 그래야 나도 편하게 이곳을 벗어날 수 있어. 어서!”

남자 친구의 다그침에 도로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내들을 지나쳐 집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집 밖 복도에는 루퍼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딜 가시나?”

도로시의 뺨을 후려친 루퍼트는 그녀를 발로 걷어차 집 안으로 거칠게 밀어 넣었다.

바닥에 엎드려 있던 루퍼트의 패거리는 옆에 쓰러진 도로시를 방패막이로 앞세우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황한 애런이 소리를 쳤다.

“그녈 놔줘!”

“총 먼저 내려놔. 아니면 이년 머리가 날아갈 테니까.”

집 안으로 들어온 루퍼트는 품에서 권총을 꺼내 도로시의 관자놀이에 댔다.

“루퍼트! 정말 이럴 거야!”

“돈 벌게 해 주겠다는데 왜 조직의 분위기를 흩트리고 나가나? 응?”

“춤추고 음악을 즐기려고 모임에 가입한 거지 네 부하가 되려고 한 게 아니니까.”

“돈이 있으면 즐길 게 더 많아져. 그 돈을 벌게 해 주겠다고 하는 거야.”

20대 중반인 루퍼트는 도로시의 머리카락 냄새를 맡으며 미소를 지었다.

“냄새가 좋군. 이 머리카락에 피가 스며들면 안타까울 것 같아.”

“이 개자식!”

“총 내려놔, 애런. 이 여자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면.”

겁에 질린 도로시의 얼굴을 바라보던 애런은 결국 총을 바닥에 내려놨다.

“그 여잔 보내 줘, 이건 내 문제잖아.”

“네 앞날이나 걱정해.”

루퍼트의 부하들이 달려들어 애런을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그만해!”

도로시가 울며 외쳤다.

“넌 뭔데 애런을 꼬여서 조직에서 나오게 했어? 너도 좀 맞아야겠어.”

루퍼트는 도로시의 뺨을 좌우로 계속 때렸다. 입술이 터지고 볼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지만 그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평생 음식을 씹어 먹지 못하게 해 주지.”

휘청거리는 도로시를 일으켜 세워 다시 또 때리려는데 등 뒤에서 부하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본 루퍼트는 미간을 찌푸렸다. 애런을 구타하던 부하들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그 옆에 낯선 동양인 두 명이 서 있었다.

루퍼트는 품 안에 넣었던 권총을 다급히 꺼냈다.

“너희들 뭐야!”

총구를 겨누던 루퍼트의 얼굴이 굳어졌다. 유령처럼 다가온 동양인 사내가 그를 가까이서 노려보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겨 봤지만 그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엄청난 고통이 그의 전신을 관통했다. 권총을 든 손 전체가 으스러진 것이다.

손의 뼛조각들이 살갗을 뚫고 나왔다. 잔인한 그 모습에 놀란 도로시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비명을 지르며 애런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으어어어.”

너무나 큰 고통에 루퍼트는 울음 섞인 소리를 흘리며 주저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발로 걷어찬 도현은 천천히 허리를 굽혀 고통에 신음하는 루퍼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전신의 뼈를 그 모양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어.”

감정 없이 바라보는 도현의 시선에 루퍼트는 몸을 떨었다. 길거리 싸움으로 다져진 독기 있는 성격이었지만, 그동안 그가 겪어 본 거리의 패거리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였다. 마치 열흘은 굶은 늑대와 마주친 기분이었다.

“저들이 잘못되면 넌 죽는 거야.”

도현은 도로시와 애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말 이해했나?”

“아, 알겠습니다. 손 떼겠습니다.”

도현의 말뜻을 이해한 루퍼트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꺼져.”

루퍼트와 그의 패거리가 썰물처럼 사라지자 도현은 현관문을 닫고 뒤돌아섰다.

도로시와 애런은 서로 손을 잡고 긴장한 모습으로 거실에 서 있었다.

“얘들 왜 이렇게 긴장했지? 우리가 구해 줬으면 좋아할 일이지.”

용주는 쓰러진 의자를 바로 세우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정말 수상해.”

용주는 지그시 도로시의 눈을 들여다봤다.

사실, 도현이 워낙 작게 말했기 때문에 도로시나 애런은 루퍼트가 어떤 경고를 듣고 집을 떠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새로운 적이 나타나 그들을 위협하려 한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 온 청부업자들이라고?”

“응.”

도로시는 부어오른 입술로 작게 말했다.

그녀는 이들이 갑자기 나타나자 너무 놀라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주변을 조심하면서 왔는데, 어떻게 따라왔는지 의아했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루퍼트 일당을 어린아이처럼 다루고 쫓아낸 것이다. 망가진 손을 다른 손으로 받치고 나가는 루퍼트의 겁먹은 얼굴은 당분간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린 고문을 당할 수도 있어.”

그녀의 겁에 질린 목소리에 애런이 급히 물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고문이라니?”

“그게 말이야.”

애런에게 속삭이던 도로시는 도현이 앞으로 다가오자 입안으로 말을 삼켰다. 찢어진 입안이 쓰라렸다. 피어싱한 입술과 코가 너무 아팠다. 피어싱을 한 게 처음으로 후회됐다.

“이름이…… 애런이던가?”

도현의 나지막한 물음에 애런은 여자 친구를 한번 본 후 침을 꿀꺽 삼켰다.

“네.”

“넌 도로시고.”

“아, 아시잖아요, 내가 누군지.”

“물론 잘 알지.”

도현은 도로시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집에 있는 남자가 조 박사 사건과 관련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조직에서 나가려는 청년이었을 뿐이다. 그렇다 해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순 없었다.

“도로시, 난 강도당한 그 유물을 회수하러 온 사람이야. 찾을 때까지 난 런던을 떠나지 않을 거고, 아버지의 가게도 자주 방문하게 되겠지. 너도 지켜볼 거고. 물론 오늘처럼 불쑥 나타나 너를 위기에서 구해 줄 수도 있어. 너에겐 좋은 일이 되겠지.”

도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손에 묻은 루퍼트의 피를 휴지에 닦아 냈다.

“도로시,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으면 사실대로 말해 줬으면 좋겠어.”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루퍼트의 손을 엉망으로 만든 걸 목격한 그녀는 상당한 압박감을 받았다.

“지금 협박하는 거죠?”

“진짜 협박은 이런 식으로 안 해. 지금은 대화로 하는 거지.”

도현은 도로시가 뭔가 얘기할 듯 말 듯 망설이는 모습에 그녀가 이 사건에 대해 알고 있다는 확신을 점차 굳혀 갔다. 어쩌면 직접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

“내 눈을 봐, 도로시. 난 그 유물을 되찾기만 하면 돼. 돌려주면 이대로 끝낼 수도 있어. 경찰도 개입하지 않고, 우리끼리의 이야기로만 지나치는 거야.”

“미안하지만 그 유물은 내게 없어요. 아버지에게도 없고. 하지만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어요. 전부 말해 줄 테니 약속해 주세요, 우리 아버지는 해치지 마세요.”

그녀는 손에 힘을 꽉 주고 용기 내어 말했다.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쳐다보고 있는 도현에게 모른다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해치지 말라니, 아버지가 배후인가?”

“아니에요! 아버지는 조 박사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고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루이스는 초인종 소리에 일어나 현관문으로 향했다.

입술이 찢어지고 얼굴에 멍든 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깜짝 놀란 그는 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도로시! 어떻게 된 거냐 이게! 누가 이랬어!”

소중한 딸의 얼굴이 엉망이 된 모습에 화가 난 그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진정하세요, 아빠. 절 이렇게 만든 사람은 손이 으스러졌으니까요.”

“뭐?”

“아까 가게로 찾아온 한국인들이 절 구해 줬어요.”

“그들이?”

도로시는 집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탁자 위에 놓인 술병과 술잔을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약이 든 상자를 들고 오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오다가 약 발랐어요.”

“친구가 아프리카에서 보낸 준 약이 있어. 상처에 효과가 좋아.”

도로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연고를 입술을 비롯해 전체 얼굴에 넓게 펴서 바르는 아빠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빠, 아프리카의 그 친구분과 결혼할 거예요?”

“너만 허락하면.”

“엄마와 이혼한 게 그분 때문이죠?”

“……그건 아니다.”

약을 다 바른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자세히 설명해 봐. 그 한국인들이 구해 줬다는 건 또 무슨 소리고?”

“애런 아시죠?”

“그 녀석을 아직도 만나는 거냐?”

루이스는 인상을 쓰며 술잔에 손을 가져갔다.

“동네 친구잖아요.”

그녀는 애런이 몸담았던 패거리 애들에게 맞을 때 한국인들이 나타나 패거리를 혼내 줬다고 설명했다.

“그 사람들 아니었으면 아빠 딸은 큰일 날 뻔했어요.”

“음, 고마운 일이긴 한데,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나타난 거지?”

루이스는 술을 한 모금 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빠, 불안하시죠?”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사람들에게 다 말했어요. 아빠가 어떤 남자에게 위협을 당해서 조 박사와 거래한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루이스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그는 술병에 손을 뻗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알고 있었구나.”

“친구 생일 파티에서 먹은 음식이 잘못됐는지 배가 아파서 밤에 깼거든요. 하지만 끝까지 화장실은 가지 못했어요. 거실에서 권총으로 위협당하는 아빠가 걱정돼서요.”

“도로시.”

“경찰에 신고를 할까, 아니면 손에 잡히는 물건을 들고 괴한의 뒤통수라도 칠까 별의별 생각을 다 했어요. 어느 것도 선택을 못 하고 자꾸 시간만 갔죠. 너무 두려웠거든요. 뭘 하든 아빠가 더 위험해질 것 같아서요.”

눈물을 보이는 딸을 루이스는 가만히 안아 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그건 살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그때 괴한이 총이라도 쐈으면 큰일이었잖아요. 전 용기 내어서 뭐든 했어야 했어요. 미안해요, 아빠.”

“내 사업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네 잘못이 아니지. 오히려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하구나.”

루이스는 눈을 감고 소파에 머리를 기댔다.

그의 목숨보다는 집 안에 있던 딸의 안전이 걱정돼 괴한에게 조 박사에 대해 털어놓고 말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사실은 그들과 같이 왔어요. 아빠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해서……. 너무 걱정 마세요. 그 사람들, 아빠에게 해를 입히지 않기로 저랑 약속했으니까요.”

“방에 가서 좀 쉬어라. 그 사람들과 얘기하는 데 넌 없어도 될 것 같으니까.”

루이스는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 화나신 거 아니죠?”

“천만에. 오히려 시원하다. 겁 없이 그날 일을 말하고 돌아다니는 네 용기를 보면, 내가 없어도 넌 충분히 잘 살아가겠구나.”

“화나신 거잖아요!”

“하하하, 아니래두!”

루이스는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도현과 용주가 서 있었다.

“미안합니다, 그날 일을 숨겨서. 들어오시죠.”

정중한 그의 행동에 도현과 용주는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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