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413화 (413/575)

[413] 디 임팩트 17권 13화

간혹가다 마법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차원 이동 장치가 갖는 기계적 이미지와 너무 상충돼 더 깊게 생각을 끌어가지 못했다. 한데, 조 박사가 먼저 그 벽을 허물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무를 섬기는 자들이 그 지하 제단에서 의식을 치른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야. 스톤에 내재된 마법적인 에너지가 그들의 주문에 반응해 뭔가 힘을 빌려줬기 때문이지. 그래서 내 대답이 예스가 된 것이네.”

말을 맺은 조 박사는 용주가 눈치 보며 따라 준 막걸리를 단번에 비웠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내가 무리한 추측을 한 것 같나?”

“아닙니다, 박사님. 충분히 일리 있는 말씀이십니다. 이계를 경험하고 온 저로서는 공감이 되는 측면도 많고요.”

“그렇지?”

조 박사는 기분이 좋은지 껄껄 웃었다.

“스톤을 초고대 시대의 마법사가 만든 거라면, 이계의 마법사도 스톤을 만들 수 있을까요?”

도현의 질문에 조 박사는 한동안 생각을 하다 답했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이계를 갈 수 있는 자네가 가서 실험을 해 보면 되겠군. 만약 이계의 마법사가 타투의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스톤을 똑같이 만들 수 있다면, 초고대 문명은 기계와 마법이 공존하던 시대라는 내 가설이 증명되는 셈이겠지.”

삼촌의 방에서 나온 도현과 용주는 그들의 방이 있는 위층 객실로 향했다.

“도현아, 삼촌 말씀처럼 지구에도 마법사가 존재했던 걸까?”

“글쎄, 없으란 보장은 없지. 스톤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에너지를 생각해 보면 말이야.”

“지금도 그자들이 존재한다면 대박이겠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번에 이계에 가면 확인해 봐. 나도 정말 궁금하다.”

조지는 서재에서 어른 크기만 한 거대한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총상을 입어 불편해진 다리를 질질 끌며 퍼즐을 맞추던 그의 등 뒤로 도현이 나타났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군요.”

반쯤 채워진 퍼즐판 속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들이 절벽 위의 넝쿨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고 있었다.

동화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다.

“이게 아주 어려운 퍼즐이네. 크기도 크지만, 겹치는 그림과 비슷한 색깔들이 많거든. 특히 여기 일곱 난쟁이들은 너무 흡사해 화가 날 지경이야.”

조지는 짜증 난다는 듯 말했지만 그는 이 어려운 퍼즐을 즐기고 있었다.

“중세 유물을 회수했습니다.”

식탁처럼 길쭉한 테이블 위에서 크고 복잡한 퍼즐을 맞추던 조지는 도현의 담담한 말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물건을 회수했다고?”

조지는 유물을 가지고 있는 필립을 잡기 위해 사람도 풀고 친분 있는 경찰들에게도 도움을 청해 놨다. 한데, 난데없이 저녁에 찾아온 도현이 중세 유물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퍼즐 조각을 내려놓으며 도현에게 말했다.

“놀랄 일이로군. 필립을 찾아낸 건가?”

“네.”

“어떻게 말인가? 나도 찾아내지 못했는데.”

도현은 퍼즐 조각을 하나 들어 일곱 난쟁이 중 한 명의 눈동자에 해당하는 부위에 끼워 맞췄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흠, 내게 뭔가 숨기려 하고 있군. 그러면 안 되지. 난 자넬 돕기 위해 애를 쓴 사람인데 말일세.”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이대로 넘어갔으면 좋겠군요. 때로는 모르는 게 서로에게 좋을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도현은 조지를 보며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그에게 허버트리의 숲에서 벌어진 일을 세세히 설명해 줄 수는 없었다.

“그 유물에 보물섬 위치라도 기록되어 있던가?”

“읽어 보지 않아서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차후 보물과 관련된 게 있다면 약속한 대로 그 보물은 당신과 나누겠습니다.”

거짓 없어 보이는 도현의 태도와 눈빛을 지그시 응시하던 조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러세. 필립은 어떻게 처리했나?”

“그는 그의 세상에서 조용히 살게 될 겁니다.”

“그의 세상이라……. 듣기에 따라 참 무서운 말이로군. 뭐, 어찌 됐건 물건을 회수했다니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일이 해결됐으니 약속대로 내 친구 마크와 검술 대결을 해 주겠지?”

도현은 스코틀랜드 시골에 살고 있는 마크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사실 이번 일을 해결하는 데 조지의 도움이 컸다. 그가 아니었다면 필립과 롤란드 일당을 찾아내기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자네도 퍼즐 맞추는 데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데, 어떤가? 나와 같이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퍼즐을 완성하는 게?”

도현은 반이나 남은 커다란 퍼즐을 쓰윽 훑어보았다.

“재밌겠군요. 같이하시죠.”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퍼즐이 완성됐다. 도현이 귀신같은 솜씨로 어려운 퍼즐 조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척척 맞춰 버렸기 때문이다.

“자넨 눈이 열 개라도 달렸나? 이 복잡한 걸 어떻게 그렇게 빨리?”

놀라는 조지에게 도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즐거웠습니다, 조지. 내일 마크를 보러 가죠. 그럼.”

스코틀랜드에 사는 조지의 친구 마크를 만나고 런던으로 돌아온 도현은 공항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 용주에게 말했다.

“박사님과 먼저 가. 난 들렀다 갈 곳이 있어.”

“어디?”

“월터.”

“아, 그분. 알았어. 너무 늦지 않게 와라. 비행기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지만 그분 집이 조금 멀잖아.”

“늦지 않을게.”

택시를 탄 도현은 런던 교외에 사는 월터의 집으로 향했다.

그가 든 가방 속엔 중국차를 좋아하는 것 같은 월터를 위해 구입한 고가의 차가 들어 있었다.

원로 학자 월터는 필립을 찾는 단서를 줬고, 훌륭한 저녁까지 대접해 줬다. 한국으로 가기 전, 작게나마 보답을 하고 싶었다.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택시를 대기시킨 도현은 차에서 내려 울타리가 쳐진 월터의 집으로 걸어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월터 대신 검은 옷을 입은 중년 여인이 나타났다.

“월터 스미스를 찾아왔는데요. 안 계십니까?”

“그분은 어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다소 무뚝뚝한 그녀의 대답에 도현은 뒷머리를 가격당한 것처럼 살짝 충격을 받았다.

“예? 며칠 전까지 괜찮아 보이셨는데.”

“연세가 있으시니까요. 그런데 누구시죠?”

월터의 친척으로 보이는 그녀는 집 안을 정리하다 나왔는지 옷소매가 위로 올라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백도현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그분을 만났었죠.”

“그러셨군요. 들어오시겠어요?”

도현은 그녀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집 안 광경을 힐끔 쳐다봤다. 몇몇 사람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닙니다. 그럼.”

중년 여성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도현은 가라앉은 얼굴로 월터가 없는 그의 집을 나왔다.

돌아선 그는 월터에게 주기 위해 사 온 차를 울타리 한쪽에 내려놨다.

“끔찍했던 일은 그만 잊어버리시고 영면에 드시길.”

그날 저녁 식사 때 월터는 그가 참전한 전쟁 이야기를 해 주며 삶이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한동안 커튼이 쳐진 월터의 집을 묵묵히 바라보던 도현은 차 문을 열고 택시에 탔다.

“히드로 공항으로 가 주십시오.”

#패천공

무저갱처럼 깊은 동굴에서 패천공을 수련하던 태선군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검붉은 기류가 그의 전신을 감싸며 회오리쳤다. 바닥을 기어 다니던 벌레들은 그 기류에 먼지처럼 부서졌다.

돌 조각들이 사방팔방으로 날리는 가운데, 나선형으로 회오리치던 검붉은 기류가 점차 태선군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허공에 떠 있던 태선군은 나비가 내려앉듯 동굴 바닥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두 눈을 뜬 그는 무거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역시 이 방법으론 안 되는 건가?”

패천공은 4성에서 답보 상태였다.

4성의 벽을 깨기 위한 방법을 그는 알고 있다.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는 이유는 그 위험성 때문이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지상으로 올라왔다. 사방이 절벽으로 막힌 분지 위로 작은 시냇물이 흘렀다.

뒷짐을 진 그는 흐르는 물속에 자신의 모습을 비췄다.

“많이 늙었군. 어찌 이리 늙었나. 난 시간을 가볍게 보낸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회한이 섞인 눈빛으로 태선군은 자신의 얼굴 이곳저곳을 쓰다듬고 만졌다.

“젊음, 그것이 필요해.”

오원신공을 창안한 검선문 7대 문주 이연백이 반로환동을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태선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제2의 이연백이 되고 싶은 욕망은 커져만 갔고 어떡하든 이연백의 뒤를 따라가고 싶었다.

단, 그는 반로환동을 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젊음을 유지하며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 싶었다.

그것을 위해 오원신공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결국 차지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건 패천공밖에 없었다.

패천공이 극에 이르면 반로환동처럼 외모가 젊어진다고 하니 무슨 수를 써서든 극성으로 익혀 이 주름 가득한 얼굴에 새 생명력을 불어 넣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패천공 4성의 벽을 먼저 깨야만 한다.

“어쩔 수 없지,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은 그 방법을 쓰기로 결단을 내린 그는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장풍으로 날려 버리며 분지 밖으로 나갔다.

절벽이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의 발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분지 밖은 높고 울창한 산이었는데, 신비로운 운무가 떠다니고 있었다.

산을 몇 개 넘은 그는 어둠 속에 보이는 작은 마을을 응시했다.

‘멀리 갈 필요가 없겠지.’

태선군은 벽곡촌을 향해 몸을 날렸다.

“퇴마사님, 가진 게 이것뿐입니다.”

중년 여성이 떨리는 손으로 돈이 든 상자를 건넸다. 상자를 열어 본 모석청은 이마에 주름을 만들었다.

구겨진 지폐가 수북이 쌓여 있어서 언뜻 보면 큰 액수 같지만 사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뭐야 이거, 10위안짜리밖에 없잖아!’

눈대중으로 1천 위안이 조금 넘어 보였다. 산골 오지 마을에 오기 위해 그가 들인 노력을 생각해 보면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당장 호북성에서 이 산골 마을이 있는 절강성까지 오느라 쓴 교통비와 식비만 해도 상당했다.

“허허, 정성을 보일수록 내 퇴마술이 빛을 발하거늘. 자식 걱정이 되지도 않는가?”

그는 염소수염처럼 자란 턱수염을 훑어 내리며 집 안을 재차 살폈다. 빈곤한 티가 집 안 곳곳에 배어 있었다.

“이 벽곡촌은 당나라 때부터 생성된 마을이라는데, 오래된 물건은 없는가?”

3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벽곡촌은 낭떠러지 같은 절벽 잔도를 지나야 나오는 산속 오지 마을로, 마을의 역사는 당나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깊었다.

‘돈이 없으면 물건이라도 받아야지.’

모석청은 집주인인 중년 여성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죄송하지만 오래전 마을에 큰 화재가 나서 오래된 물건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 집도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다시 세운 것이고요.”

“어쩐지 터가 안 좋더라니.”

콧방귀를 뀐 모석청은 집주인이 내온 차로 입안을 헹궜다.

“다음에 보세.”

집 밖으로 나가려는 모석청의 허리를 집주인이 끌어안았다.

“퇴마사님, 그냥 가시면 어떡하십니까! 제 자식 좀 살려 주십시오!”

“어허, 정성이 부족한데 내가 어찌 힘을 쓸 수 있나? 이거 놓게.”

매몰차게 밖으로 나온 모석청은 어둠에 잠긴 마을을 둘러봤다. 길이 워낙 험하고 산속 깊이 있는 오지 마을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이곳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모습이다.

“나를 속이다니. 괘씸한.”

도현에게 전수받은 석실의 검법을 석 달가량 수련한 그는 좀이 쑤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다시 퇴마행을 하기 위해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벽곡촌 출신이라는 남자를 만나 그로부터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듣게 됐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