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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14화 (414/575)

[414] 디 임팩트 17권 14화

-벽곡촌에 가서 장만리를 만나 보시오. 그 여자 아들이 악귀 때문에 고통받는데, 아마 고쳐 주면 큰 보답을 받게 될 거요.

“큰 보답은. 이 사기꾼 녀석.”

모석청은 벽곡촌 전체가 가난하다는 걸 이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감지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남편과 사별해 아들과 산다는 장만리를 조금 전 만나 봤는데, 예상대로 그녀는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다.

퇴마검이 든 죽통으로 바닥을 몇 번 때리던 그는 뒤를 돌아봤다. 집주인 장만리가 그의 눈치를 보며 서 있었다.

“사실대로 말해 보게, 나를 이곳에 보낸 자와 아는 사이지?”

“모릅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퇴마 의식을 해 줄 것이고, 아니면 그냥 갈 거야. 그자와 아는 사이지?”

“……예.”

장만리가 고민을 하다 조심스럽게 인정했다.

“이런!”

속은 것이 분해 화를 벌컥 내려던 그는 장만리의 눈물에 욕을 입안으로 삼켰다.

여기에 오기 위해 산을 이틀이나 탔다. 위험한 절벽 잔도에서 떨어질 뻔도 했고.

가난한 벽곡촌의 사정을 잘 아는 퇴마사들은 이런 곳에 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랬기에 이곳 사정이 어두운 외지의 퇴마사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모석청인 셈이다.

‘젠장, 백 관장이 충고한 대로 산속에 처박혀 더 수련이나 할 것을.’

그는 장만리를 노려봤다.

“호북성에서 절강성 이 오지까지 밤낮없이 달려왔네. 여비만 해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아는가? 근데 1천 위안이라니? 나보고 무료로 퇴마 의식을 해 달라는 심보 아닌가?”

“죄송합니다, 퇴마사님.”

“심지어 저기 절벽 길을 걸어오다 추락해 죽을 뻔했어. 자식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나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만들어서야 쓰나!”

모석청의 쓴소리에 장만리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눈물을 흘리기만 했다. 그 모습에 슬며시 마음이 약해진 모석청은 헛기침을 했다.

“어서 전기가 들어와야지, 마을이 왜 이리 어둡나. 허험, 그만 울게. 왔으니 퇴마 의식은 치러 줌세.”

그의 말에 장만리가 엎드리며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퇴마사님.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어서 일어나게. 퇴마 의식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장만리가 눈물을 닦으며 일어설 때 집 안에서 낫을 들고 나온 청년이 모석청에게 갑자기 달려들었다.

“누가 우리 엄마 울려!”

청년의 눈매와 입꼬리는 하늘로 올라가 있어서 마치 웃고 있는 상이었지만 눈빛은 살기가 가득했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청년이 낫을 흘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퇴마검이 든 죽통으로 머리를 후려쳐 장만리의 아들을 기절시킨 모석청은 그 자리에서 퇴마 의식을 시작했다.

‘잘돼야 될 텐데.’

그의 퇴마 실력은 열 번 해야 한 번 정도 성공할 확률이다. 검을 알려 준 한국의 백 관장이라면 손쉽게 퇴마를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일종의 운에 맡겨야 했다.

“썩 나오지 못할까!”

부적을 활활 태워 기절한 청년의 몸 위에 던진 그는 고풍스러운 검을 뽑아 퇴마검법을 펼쳤다.

도현에게 배운 검법으로 인해 그의 퇴마검법은 순리를 따라 물 흐르듯 이동했고 달빛에 검신이 번쩍거렸다.

기절했던 청년이 눈을 뜨며 몸을 좌우로 비틀었다.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아들의 모습에 장만리는 아들의 손을 잡아 주기 위해 접근했다.

“떨어지시오!”

모석청의 호통 소리에 놀란 그녀는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크아아아아!”

온몸의 핏줄이 터질듯 부풀어 오른 청년은 늑대처럼 달을 향해 포효를 하더니 잠시 후, 축 늘어졌다.

스르릉.

검을 거둔 모석청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아 냈다.

‘성공한 건가?’

그는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는 청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위에서 내려다봤다.

“이보게, 이보게!”

청년을 흔들어 깨우던 모석청은 청년이 눈을 뜨자 흠칫했다. 두 눈이 흰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크아아아!”

괴성을 지른 청년은 주먹으로 모석청의 얼굴을 후려쳤다.

“어이쿠.”

바닥을 한번 구른 모석청은 재빨리 일어나 청년을 피해 다녔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

“누가 괴롭혀, 이 녀석아!”

“죽인다!”

청년이 돌멩이를 던지자 모석청은 검집으로 돌을 쳐 냈다. 장만리는 모석청을 쫓는 아들을 잡아 간신히 진정시켰다.

“괜찮으니까, 집에 들어가 있어.”

모석청을 노려보던 청년은 씩씩대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숨을 돌린 모석청에게 장만리가 다가왔다.

“퇴마 의식이 소용없군요.”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 아들은 악귀에 들린 사람이 아니오. 그러니 내 퇴마술이 통할 리 없지.”

“그럴 리 없어요.”

장만리는 퇴마 의식에 실패한 모석청이 핑계를 댄다고 생각했다.

“진짜 악귀에 잠식당한 사람은 당신의 말에 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소. 반항을 하며 거칠게 대하지.”

모석청은 풀어 놨던 퇴마용품을 가방에 주섬주섬 집어넣으며 안됐다는 눈빛으로 장만리를 응시했다.

“아들이 도시에서 일하다 직원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했다고 하지 않았소? 아마도 그 후유증이 당신 아들을 저리 만든 것 같소.”

“집에 돌아왔을 땐 괜찮았어요. 저건 머리가 다친 게 아니라 악귀 때문일 거예요. 그러니 다시 한 번만 해 주세요.”

울음 섞인 그녀의 말에 모석청은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퇴마 의식을 다시 한 번 해 봅시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험, 배가 고픈데 먹을 것 좀 있소?”

늦은 저녁을 장만리의 집에서 해결한 그는 검을 들고 나섰다.

“어디 가냐?”

장만리의 아들이 대뜸 반말로 물었다.

“검 수련 하러 간다. 따라올래?”

“싫다. 난 집이 좋다.”

모석청은 장만리의 아들이 집어 던지는 돌을 피해 마을 옆으로 펼쳐진 숲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좋겠군.”

적당한 공터가 보이자 그는 손전등을 내려놓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이 땅을 스치면서 먼지바람을 일으켰고 상체를 검으로 막으며 반격을 시도했다.

막힘없던 검 동작들이 열 번째 동작에서부터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숨도 찼다.

그는 느릿느릿 열다섯 번째 검 동작까지 이어 간 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숲에 쓰러졌다.

“그자는 괴물이 분명해, 이렇게 힘든 검법을 하루 밤 사이에 다 익힌 후 내게 전수해 주다니. 그것도 내가 어려워할까 봐 일부만 말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도현을 생각하던 그는 마을 방향에서 들려오는 뾰족한 비명 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소리야?”

선명한 비명 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개 짖는 소리도 요란하게 났다.

검을 챙긴 그는 숲을 빠져나와 벽곡촌으로 들어가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했다.

비명 소리에 잔뜩 위축된 그는 주변을 살피며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바로 눕혔다.

“이보시오. 허억!”

온몸의 수분을 다 빼앗긴 사람처럼 말라 죽은 시신이었다. 썩지 않은 미라가 꼭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입을 쩍 벌린 채 고통스러운 얼굴로 죽은 마을 남성을 손전등으로 비춰 보던 그는 황급히 손전등을 껐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오싹한 비명 소리가 또 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태선군은 뒷짐을 지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람의 선천지기를 흡수했다.

“사, 살려 주세요.”

죽은 남편의 시신을 보며 아내는 방구석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인자한 얼굴을 한 노인이 미소를 지으며 남편을 죽이는 모습이 너무도 무서웠다.

“고통은 순간이다.”

사신처럼 다가온 태선군의 손바닥이 여자의 얼굴을 감쌌다.

숨이 막힌 그녀는 입을 벌리고 몸부림을 쳤지만 태선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몸을 부르르 떨며 선천지기를 흡수한 태선군은 쓰레기 버리듯 말라비틀어진 여자의 시신을 내동댕이쳤다.

꽝!

지붕을 부수고 허공으로 솟구친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마을 밖을 벗어나는 자들이 있는지 살폈다.

도망치는 자들은 없었고 오히려 손전등과 횃불을 든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이고 있었다.

아직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마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한데 모여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었다.

태선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으아아악!”

“누구야! 커헉!”

바람처럼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선천지기를 흡수하던 태선군은 총소리에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엽총을 든 노인이 위아래로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아, 악마. 죽어라!”

사냥용 엽총의 방아쇠를 재차 당기려던 노인의 눈이 커졌다. 그의 손이 잘려 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고통에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던 그의 얼굴을 태선군의 손바닥이 감쌌다.

무표정한 얼굴로 엽총 노인을 미라처럼 만들어 버린 태선군은 도망가는 마을 사람들을 순식간에 잡아 남김없이 선천지기를 빼앗았다.

그는 이제 마을 북쪽으로 향했다.

콰앙!

문이 잠긴 집의 벽을 뚫고 들어간 태선군은 옆에서 내려치는 칼을 손가락으로 부러트린 뒤 사내의 목을 움켜잡았다.

“마을 사람은 모두 몇 명이지?”

“마, 말하면 내 자식은 살려 주실 겁니까?”

태선군은 겁에 질린 열 살 남짓한 소녀를 힐끔 쳐다봤다.

“고통 없이 죽여 주지.”

“퉤! 지옥에나 가라, 이 미친 자식아!”

그러나 사내의 악에 바친 목소리는 잠시 후 비명으로 변했다. 태선군이 그를 아주 고통스럽게 죽이며 선천지기를 흡수한 것이다.

툭.

사내의 시신을 바닥에 버린 태선군은 넋이 나간 소녀에게 번개처럼 다가가 망설임 없이 그녀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안 돼! 량이를 놔줘!”

장만리의 아들이 낫을 들고 태선군을 뒤에서 덮쳤다.

태선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등으로 장만리의 아들을 후려쳤다.

얼굴이 반쯤 함몰된 장만리의 아들이 창문을 박살 내며 집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소녀를 죽인 태선군은 지붕을 부수고 위로 올라갔다.

그의 손에 얼굴을 다친 청년이 마을 가장 외곽의 집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손에 묻은 피를 소녀가 입고 있었던 옷으로 닦아 낸 그는 마을 전체를 천천히 둘러봤다.

서쪽 산으로 몇몇 마을 주민들이 도망가는 게 보였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오늘 밤 다 죽을 목숨이었다.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지붕 위에 서 있던 태선군은 얼굴의 반이 날아간 청년이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와 만나는 장면을 잠시 지켜보다가 허공을 둥둥 떠서 그곳으로 날아갔다.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구나.”

태선군은 장만리와 그의 아들을 향해 양손을 내뻗었다.

원래 조용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은 몸서리치도록 적막했다.

마을 우물 안에 숨어 대살육의 밤을 보낸 모석청은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차가운 물속에서 몸을 떨며 버텼다.

입술이 새파랗게 변한 그는 우물에 걸쳐진 줄을 타고 올라왔다.

“악마가 다녀갔어. 사람이라면 이렇게 할 수가 없지. 어떻게 이런 짓을.”

어린아이들의 시신을 보며 모석청은 눈물을 흘렸다. 돈을 밝히는 퇴마사지만 그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아니었다.

“찢어 죽일 새끼.”

분노의 눈물을 흘린 그는 북쪽에 있는 장만리의 집으로 뛰어갔다.

장만리와 그녀의 아들이 손을 잡고 나란히 죽어 있었다.

그들 앞에 무릎을 꿇은 그는 낮게 흐느껴 울었다.

마을엔 생존자들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지독한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나만 살았어.’

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태선군은 지난밤 마을 사람의 수를 정확히 계산했고, 그 수에 맞는 시신을 확인하고서야 떠났기 때문이다.

만약 외부인이 들어온 사실을 태선군이 알았다면 우물 안에 숨어 있던 모석청은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얼굴을 자세히 봤어야 했는데, 너무 어두웠어.’

그는 유일한 사건의 목격자였다. 하지만 마을 사람을 죽이며 바람처럼 이동하던 그의 얼굴을 제대로 못 봤다.

‘어쩌지. 한 사람이 마을에 들어와 이런 짓을 했다고 하면 공안이 믿어 줄까? 나조차도 믿기지 않는데.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였을까?’

모석청은 미라처럼 말라 버린 모자의 시신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만리의 집에 놓아둔 그의 짐을 챙긴 모석청은 무거운 얼굴로 마을을 벗어났다.

‘공안에 내가 본 걸 알려야 할까, 아니면 모른 척해야 하나?’

좋은 일을 하려다 죄를 뒤집어쓰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오지 마을의 이 엽기적인 대학살극이 알려지면 사건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자 할 것이고, 그는 뜻하지 않게 누명 아닌 누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모석청은 뒤를 돌아봤다.

눈물이 자꾸 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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