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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24화 (424/575)

[424] 디 임팩트 17권 24화

“어떻게 된 거냐? 일이 잘못된 거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이번 전쟁에 별 도움이 못 될 것 같습니다.”

카샨은 오래전에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복도에서 아버지와 형이 나누는 대화도 모두 들었다. 둘은 얼음탑주와 자신을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큰 요소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쉽게도 얼음탑주는 죽었습니다, 아버지.”

“음.”

올라르는 폐부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신음을 묵직하게 터트렸다.

“같이 간 얼음탑 마법사들 백여 명도 다 익사했고요. 살아남은 얼음탑 사람은 저와 드비오 한 명뿐입니다.”

옆에서 듣던 카심이 급히 물었다.

“씨드는?”

카샨은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천천히 대답했다.

“베일 가문의 용병이 먹었습니다.”

“넌 얻은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냐? 우리의 힘이 되어 줄 얼음탑 마법사들은 다 죽고 씨드는 엉뚱한 놈이 먹고. 정말 그런 거야?”

카심은 낙담한 얼굴로 카샨의 턱을 양손으로 받치듯 붙잡았다.

“카샨, 곧 전쟁이 벌어질 텐데, 얼음탑주가 죽고 너만 홀로 돌아오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 응? 널 돕다 얼음탑과 가까워졌고 그로 인해 저들이 불안했는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카샨은 얼굴이 일그러진 카심을 지그시 노려봤다.

“형님, 이 손 놓으십시오.”

동생의 차가운 눈빛에 움찔한 카심이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래, 너라도 왔으니 다행이다. 너도 대단한 마법사잖아. 전쟁이 벌어지면 너의 얼음 마법으로 놈들을 다 얼려 죽여 버려.”

“그럴 수 없습니다. 전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이 자식이!”

카심이 발끈했다.

“20년간 떨어져 있었어도 난 널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내 동생이니까!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줬다. 아버지를 설득하면서까지! 얼음탑을 우리가 왜 도왔는데! 바로 너 때문이잖아! 바로 너!”

카심은 분을 참지 못하겠는지 방의 벽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그런데 그냥 떠나겠다고?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진정해.”

올라르가 말했다.

“아버지, 이 자식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기가 차지 않습니까?”

“하는 짓이 어릴 때 카샨과 다투던 때와 똑같구나. 나이를 먹었어도 변하지 않다니.”

올라르는 의자를 가리켰다.

“둘 다 앉아.”

아버지의 지시에 카심은 카샨을 노려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카샨.”

서 있던 카샨은 아버지가 부르자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어떻게 된 거냐?”

카샨은 아버지가 따라 준 술을 한 모금 한 후, 차분한 어조로 망각의 숲에서 벌어진 일을 설명해 줬다. 그도 거인의 섬이 호수에 가라앉던 날엔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드비오에게 들은 얘기가 바탕이 되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올라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얻었구나. 얼음탑주가 되다니, 축하한다.”

“탑의 원로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과정이 남았습니다.”

묵묵히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 주던 카심이 동생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물었다.

“가문을 돕지 못하겠다고 한 건 얼음탑을 이어받아야 하기 때문이냐?”

“얼음탑주의 죽음을 탑에 전해야 하는 의무가 제게 있으니까요. 어찌 됐든 전 탑주의 제자니까 말입니다. 만약 탑에 가지 않고 브링틱에 계속 남아 있는다면 탑의 원로들은 저를 탑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탑주도 될 수 없겠죠.”

“빌어먹을 자식, 가문보다 탑주 되는 게 우선이라는 거구나.”

“탑주가 되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마법사가 될 겁니다. 또한 얼음탑의 힘을 제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카샨은 형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힘주어 강조했다.

“그러니 그때까지 절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언제고 돌아와 브링틱 전체를 형님의 손에 쥐여 드릴 테니까요.”

“고맙다만, 그때까지 아버지와 내가 두 가문의 공격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번에 일어날 전쟁을 막으면 되잖습니까?”

“아버지께서 대화로 그들의 마음을 돌려 보신다고 했지만……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난 오늘의 대화가 그들의 명분 쌓기용이라고 보거든.”

카심은 말을 하며 아버지 눈치를 봤다.

“그들을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습니까?”

카샨의 물음에 올라르는 창밖 어둠을 봤다. 그가 응시하는 쪽으로 가다 보면 웅장한 규모로 지어진 원로관이 나온다.

브링틱의 현안을 회의로 결정하는 원로들의 집.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네가?”

“예.”

카샨은 술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나서서 증언하겠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우리 일을 알고서 전쟁까지 일으키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분노를 녹여 보겠습니다. 그 이후 그들을 달래는 선물을 던져 주면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흠,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올라르와 카샨이 함께 원로관으로 가려 하자 카심이 급히 물었다.

“아버지, 제게 지시하신 전쟁 준비는 어떻게 합니까?”

잠시 고민하던 올라르가 답했다.

“시행해. 일이 잘 안 풀렸을 경우엔 전쟁을 벌일 수밖에.”

“대장, 분위기가 어째 이상하지 않소?”

정보 상인을 만나러 브링틱 성내에 들어온 짐브리오와 어베인은 성내에 감도는 뭔지 모를 팽팽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얼굴이 다른 때와 달리 긴장됐고, 성내의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듣기 위해 슬그머니 다가가면 경계를 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평상시처럼 성내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불안함과 긴장감이 분명 존재했다.

“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기운들은 큰 사건의 징조 같은데. 대장, 우리 4년 전에도 이런 기분을 느껴 보지 않았습니까?”

“사에티로 성 전투 말이지.”

어베인은 상점 거리의 모퉁이를 돌며 말했다.

“맞습니다, 사에티로 성 전투. 그때 그 녀석들 싸움에 휘말려서 얼마나 곤혹스러웠습니까?”

“처절했었지. 성의 주민들이 지지하는 영주의 두 아들을 위해 양쪽으로 갈라져 죽이고 죽는 싸움이 날이 새도록 이어졌으니까.”

“그곳 상인에게 물건을 팔러 갔다가 봉변만 당하고. 미친놈들이 성문을 걸어 잠그고 싸우다니……. 성의 주민들 반은 죽었지 않습니까?”

“그랬었지.”

어베인은 대답을 하며 골목을 힐끔 쳐다봤다. 건장한 사내들이 골목에 모여 뭔가 은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그때와 비슷해. 사에티로 성의 주민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거든, 두 영주의 아들 중 한 명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이 성의 주민들도 그때와 비슷한 선택을 하려는 것 같아.”

“성에 전쟁의 기운이 감돌다니, 세 가문이 갈라졌나?”

짐브리오와 어베인은 거리의 분위기를 파악하며 허름한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달빛이 겨우 들어오는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돈 그들은 새와 쥐가 그려진 문 앞에 멈춰 섰다.

문을 두드리자 2층 창문이 열리며 줄에 매달린 통 하나가 내려왔다.

짐브리오는 그 안에 금화 세 개를 넣었고, 통은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새와 쥐가 그려진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철문을 연 사람은 짐브리오처럼 거구의 근육질 사내였다.

금화 세 개는 정보 상인이 제공하는 제일 값싼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일종의 입장료로 철문 뒤의 공간엔 대륙의 많은 정보들이 담긴 소식지가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느 영지에 무슨 싸움이 일어났고, 누가 영주가 됐고, 어디서 고대 유적이 발견됐고, 비싸게 팔리는 각 지역의 토산품은 뭔지 등 갖가지 이야기들이 소식지 안에 기록되어 있었다. 심지어 현상금 이야기도 존재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따로 돈을 지불하면 소리 내어 읽어 주는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었다.

정보 상인의 집엔 서너 명의 입장객들이 짐브리오와 어베인보다 먼저 와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 원하는 정보를 벽에 걸려 있는 소식지를 통해 얻고 있었다.

“대장, 왼쪽 벽은 제가 보죠.”

“그러게. 난 창가 쪽 벽을 확인하겠네.”

짐브리오와 어베인은 서로 떨어져 대륙의 정세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들을 취합해 갔다.

북부 대륙의 변방에 위치한 브링틱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낸 그들은 대륙 본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먼저 파악해야만 했다. 딘이 새 영지를 찾는 건 대륙의 정세와도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딜과 이안이 힘 있는 대영주와 혈연관계를 맺었다면 단순히 그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대영주까지 물리쳐야 한다. 대영주가 도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관계라면 대영주는 누가 영주가 되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우월한 위치를 새로운 영주가 인정해 준다면 말이다.

“이야, 우리가 브링틱에 처박혀 있는 사이 대륙에 큰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네?”

짐브리오는 베일 가문의 대공이 반란군에 의해 성을 빼앗기고 붉은 성에서 싸우고 있다는 소식지 정보를 보며 혀를 찼다.

대공과 반란군을 지지하는 여러 세력들이 뒤엉키면서 싸움은 베일 가문을 넘어 북부 대륙 전체로 전개되는 양상이었다.

“굉장하군. 대체 몇 개 영주들이 이 싸움에 달라붙어 있는 거야?”

벽에 붙은 종이엔 이 싸움에 휘말린 수십 명의 영주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쪽도 베일 가문의 싸움 이야기가 많군.”

창가 쪽 정보를 다 확인하고 온 어베인이 말했다.

“저쪽도 그렇습니까?”

짐브리오의 물음에 어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의 숙부가 얼음탑주와 싸우러 왔다가 물러갔다고 하더니 진짜 큰 싸움이 벌어진 것 같아.”

“그러게 말입니다. 북부 대륙이 시끌시끌합니다.”

꼼꼼하게 대륙의 전반적인 정세를 파악한 그들은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선 정보 상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물론 거기서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

“어서 오시오. 뭘 도와 드릴까?”

코가 지나치게 긴 노인이 책상 뒤에 앉아 미소를 보였다.

“아는 사이에 처음 보는 것처럼 말하지 맙시다.”

“짐브리오, 알은척한다고 해서 정보료를 깎아 주지는 않아.”

“암살자 그만두고 정보 상인이 됐다더니 브링틱에 자리를 잡은 거요?”

짐브리오는 그의 집안과 가끔 왕래가 있었던 코가 긴 노인 픽스에게 물었다.

“다른 곳은 경쟁자들이 많아서 돈벌이가 시원찮더군. 그래서 이곳으로 왔지. 온 지 얼마 안 돼.”

“손님은 많소?”

픽스 책상 위에 놓인 땅콩을 허락도 받지 않고 한 움큼 집은 짐브리오는 옆에 앉은 어베인에게 반을 나눠 주고 남은 건 한입에 털어 넣었다.

“먹고살 만큼. 큰돈은 되지 않아.”

“돈은 암살자가 많이 버는데. 아직 현역으로 뛸 체력은 되지 않소? 실력도 좋으면서.”

“크크크, 그거야 그렇지.”

픽스는 화살촉처럼 생긴 긴 코를 손가락으로 훑어 내리며 음산하게 웃었다.

“그래, 무슨 정보를 원하나?”

“영주 커딜과 이안에 관해 쌓아 둔 정보가 있으면 보여 주시오.”

“어디 보자, 커딜과 이안이라…….”

픽스는 서랍을 열어 둘둘 말린 수많은 종이 묶음 중에서 커딜과 이안의 정보를 찾아냈다.

“이게 몇 년 된 거라서 자네를 만족시킬지 모르겠군.”

책상 위에 커딜과 이안의 기록을 올려놓은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정보들은 누구에게 산 겁니까?”

“정보 상인을 그만둔다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이 수집한 정보를 내가 몽땅 구입했지.”

짐브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의 종이를 집으려 했다. 그러나 픽스의 손이 먼저 종이 위에 올라가 있었다.

“정보료는 두 개 해서 금화 스무 개네.”

“뭐요? 금화 스무 개?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오래된 정보라면서.”

“영주들의 정보는 원래 비싸잖은가?”

픽스가 헛기침을 하며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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