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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28화 (428/575)

[428] 디 임팩트 18권 3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번개를 맞은 듯 찌릿했다. 전신의 감각이 긴장하며 깨어났고 손끝은 자꾸 허리에 걸려 있는 세타이움 장검으로 향하려 했다.

이런 긴장감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불길과 함께 나타난 흑발의 중년인은 어떠한 말도 없이 계속해서 도현을 하늘에서 내려다봤고, 시간이 갈수록 도현의 몸으로 쏟아지는 무형의 압박감은 늘어만 갔다.

긴장감으로 굳어지는 손을 억지로 풀어 주며 도현은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상대가 누구든 검으로 헤쳐 나간다.’

무형의 압박감에 흐트러지려는 정신과 몸을 다잡기 위해 그는 혀를 강하게 깨물었다. 뜨거운 피가 금세 입안에 가득 찼다.

“널 혼내 줄 거야!”

도현이 무형의 압박감에 대항하는 동안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서 있던 리타는 하늘에 떠 있는 중년인을 향해 뾰족한 고함을 내질렀다.

“어둠의 마왕아, 나오너라!”

검게 변한 눈으로 그녀가 음산하게 외치자 허공이 갈라지며 신장이 10미터가 넘는 마왕이 나타났다.

쿠우웅.

땅을 진동시키며 착지한 마왕은 서서히 고개를 쳐들어 소환자인 리타를 응시했다.

거대한 창을 든 마왕은 눈이 파란색으로 불타올랐고 등엔 인간의 뼈로 만든 날개를 달고 있었다.

“저자를 먼지로 만들어 버려!”

리타는 냉정한 어투로 하늘을 가리켰다.

콰앙.

땅에 먼지 돌풍을 만들며 하늘로 비상한 마왕이 공중에 떠 있는 바크 드라모스를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며 창을 휘둘렀다.

마왕의 창에서 비명을 지르는 악령들이 튀어나와 바크 드라모스를 갈가리 찢어 놓으려 했다.

가까이 다가오는 악령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바크 드라모스는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악령들의 몸이 폭죽처럼 터지며 일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가 또 한 번 손을 휘젓자 땅에서 거대한 손이 툭 튀어나오더니 그를 공격하려던 마왕을 덥석 붙잡아 땅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캬아아아아!

마왕은 인간의 뼈로 만든 날개를 펄럭이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땅속에서 튀어나온 바위 손은 마왕의 날개를 부수며 기어이 땅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결국 마왕은 힘 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소멸되어 버렸다.

“리타,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어베인을 만나서 내 말을 전해. 이곳으로 오지 말고 멀리 피해 있으라고.”

톨리핀의 집은 이곳에서 멀지 않다. 조금 전 불길이 만든 굉음은 밤공기를 타고 그곳까지 틀림없이 전달됐을 것이다.

하늘에 떠 있는 정체불명의 중년인은 이제껏 봐 왔던 그 누구보다도 강한 자 같았다. 이런 자와 싸워야 한다면 전심전력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싸워야만 한다. 지켜야 할 대상이 생긴다면 그만큼 도현에게는 부담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리타가 머뭇거리자 도현이 조금씩 하늘에서 내려오는 중년인을 보며 빠르게 재촉했다.

“어서! 내가 왜 이러는지 짐작하잖아. 날 믿고 동료들과 함께 피해 있어. 절대 날 돕기 위해 오지 말고.”

“치이…… 몰라! 동료들과 함께 올 거야!”

흑거미를 소환한 그녀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올라탔다.

사사사삭.

리타를 태운 흑거미는 부서진 폭포를 넘어 산 위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바크 드라모스는 산속으로 사라지는 리타에게는 관심이 없는지 여전히 도현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허깨비처럼 허공을 날아서 조금씩 땅으로 내려오던 바크 드라모스는 깃털처럼 가볍게 땅에 착지했다.

“놀랍구나, 내 위엄을 견디고 그 자리에 두 발로 서 있다니.”

바크 드라모스는 용의 기세를 견뎌 낸 도현의 정신력에 약간 감탄했다. 이쪽 세계에서 용의 기세를 견딘 인간이 그동안 몇 명이었는지 그가 생각할 때, 도현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지?”

“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구일 것 같나?”

바크 드라모스는 말과 동시에 손을 슬쩍 움직였다. 마왕을 소멸시킨 거대한 바위 손이 땅에서 재차 솟아나 도현의 전신을 감싸려 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바위 손이 폭발하며 산산조각 났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니까 물어봤겠지.”

검을 휘둘러 거대한 손을 파괴시킨 도현은 강렬한 눈빛으로 바크 드라모스를 쏘아봤다.

“잘 생각해 보아라. 나는 이유 없이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니까.”

도현은 의혹 어린 시선으로 전방의 바크 드라모스를 응시했다. 상대는 자신을 알고 찾아왔지만 그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대방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생각이 안 나면 내가 좀 도와주도록 하지.”

바크 드라모스가 양팔을 펼치는 순간 도현은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어지럼증을 느껴야만 했다.

‘몸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야.’

잠시 후, 도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 전경이 모조리 다 바뀌어 있었다.

‘아니, 여긴…….’

주위를 둘러본 도현의 눈이 커졌다.

방금 전까지 그는 산에 있었는데, 지금은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처참하게 부서지고 땅속으로 매몰된 성의 중심부에 서 있었다.

“바크 드라모스에게 저주를 받았던 고대 성주의 성…….”

도현은 달빛이 쏟아지는 폐허의 성을 둘러보며 침음성을 터트렸다.

부서졌지만 눈에 익숙한 성주의 집무실 건물이 보였다.

눈을 비비고 봐도 이곳은 그가 저주를 풀어 준 언덕 위의 고대 성이었다.

‘그자가 이곳으로 날 이동시킨 건가? 그 먼 거리에서?’

정체불명의 중년인의 능력에 도현은 거듭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범상치 않은 강자라고 느꼈지만 공간을 초월해 단숨에 이곳으로 보내 버릴 정도의 능력자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인간의 마법 능력을 초월해 버린 듯한 무서운 힘이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겠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도현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흑발의 중년인이 표정 없는 얼굴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설마 당신이…… 바크 드라모스?”

“바보는 아니었군.”

도현의 심장에 전율이 흘렀다. 막상 그로부터 대답을 듣자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과 긴장감이 도현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전설의 검은 용이 실제로 그의 눈앞에 나타나다니.

“이제 왜 내가 너를 찾아왔는지 이해가 됐겠지?”

“이 성에 걸린 마법을 풀어 줘서입니까?”

“잘 아는구나. 신의 세계로 가 버린 성주 놈의 영혼은 더 고통받았어야 하는데, 네가 풀어 줬다. 벌을 받아야겠지?”

“전후 사정을 모르고 싸웠을 뿐입니다.”

“그런 말로는 나의 실망감과 분노를 잠재울 수가 없다.”

바크 드라모스의 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도현의 바로 옆에 스르륵 나타났다. 그는 차가운 어조로 귓속말을 했다.

“네가 대신 저주를 받아 영원히 이 폐허가 된 성에 남도록 해라.”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군요.”

도현이 눈썹을 올리며 검을 번개처럼 뽑아 횡으로 그었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크 드라모스의 옷자락이 조금 잘려 나갔다.

바크 드라모스는 피한다고 피했는데 옷자락이 잘리자 살짝 놀라움을 표현했다.

“빠른 검이로구나.”

“나를 몬스터로 만들 생각이라면, 당신 역시 죽을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두 자루 검을 모두 뽑은 도현은 전의를 불태우며 바크 드라모스를 노려봤다.

“당돌한 녀석. 너는 내 옷자락을 베었지만 나는 너의 고향을 베어 버렸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것을 보아라.”

바크 드라모스가 오른손을 펼치자 황금색으로 물든 기하학적인 모양의 문양이 그의 손바닥 위에 약간 떠서 나타났다.

그것은 도현의 팔에 새겨져 있던 타투였다.

도현은 가슴이 철렁했다.

소매를 걷어 올려 보니 차원 이동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 그의 타투가 사라져 있었다.

‘빌어먹을!’

도현은 분노한 눈으로 바크 드라모스를 응시했다.

“아주 흥미로워.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지만 나처럼 이계에서 넘어온 존재를 만난 건 네놈이 처음이거든.”

“문양을 다시 돌려주십시오.”

“어떻게 미완성 마법진에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이지?”

바크 드라모스는 도현을 보자마자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봤다. 호기심이 생겼다. 그 호기심이 아니었다면 벌써 그는 산에서 도현을 없애려 했을 것이다.

“내가 묻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바크 드라모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도현은 바크 드라모스를 노려보다가 천천히 검을 회수했다. 힘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상대는 고대부터 존재해 온 인간의 탈을 쓴 용이다. 그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타투까지 그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그 문양을 원래대로 해 놓으시면 이야기해 드리죠.”

도현은 말을 하며 왼팔을 내밀었다.

바크 드라모스의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며 회전하는 황금색 타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는 셈이었다. 생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 앞에서 조건을 달려 하다니, 널 붙잡아 고통을 주며 알아낼 수도 있어.”

“해 보십시오, 뜻대로 될지.”

도현은 굽히지 않는 눈빛으로 바크 드라모스를 응시했다.

바크 드라모스는 땅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옷 조각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너는 운이 좋은 녀석이야,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의 집으로 널 초대하겠다. 헤패라시어스!”

그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도현은 또다시 아찔한 현기증과 함께 새로운 공간으로 점핑했다.

구름이 쉬어 가는 숲

‘비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군.’

말을 타고 며칠을 달려온 돈조르니 베일은 숲을 벗어나 강둑 앞에 멈춰 섰다.

나무로 만든 다리는 홍수 때처럼 불어난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떠내려가고 있었다.

쿠쿠쿵!

천둥소리가 강물을 바라보는 돈조르니의 고막을 때렸다.

“자네 뭐라고 했나?”

돈조르니는 같이 말을 타고 온 에이저를 돌아봤다. 그는 에이저가 하는 말을 폭우와 천둥소리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했다.

등에 은색 활을 찬 늙은 궁수 에이저가 송곳처럼 날카로운 어조로 말했다.

“말이 강을 넘지 못할 거라고 말했네! 물살이 너무 세!”

“그 말을 했군.”

“말을 풀어 주고 강을 건널 텐가?”

“그래야겠지. 전쟁터에서 고생하며 우릴 태워 준 이 말을 수장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비로 축축하게 젖은 수염을 손으로 훔친 돈조르니는 말을 풀어 주고 강둑 앞에 섰다.

“이쯤이 좋을 것 같군.”

은색 활의 활시위를 당긴 에이저가 손가락을 놓자 화살이 넓은 강을 가로질러 반대편 나무에 깊숙이 박혔다.

화살 끝엔 작은 홈이 있어 아주 가느다란 실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에이저는 그 실을 근처의 나무에 묶었다. 강을 건너는 데 도움이 되는 외줄 다리가 생긴 셈이다.

비록 실이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쇠줄처럼 튼튼해서 여간해서는 끊어지지 않는다. 젊었을 적 에이저는 이 실을 이용해 돈조르니와 위급한 상황을 여러 번 넘기기도 했다.

비바람에 조금씩 좌우로 움직이는 실 위를 두 사람은 평지 밟듯 빠르게 타며 순식간에 강을 건너 버렸다. 몸의 균형이 완벽히 잡히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에이저는 나무에 꽂혀 있는 그의 화살을 회수하며 친구이자 대공의 숙부인 돈조르니를 응시했다.

돈조르니는 바다처럼 펼쳐진 넓은 숲을 보며 답했다.

“이 숲 어딘가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야겠지. 고모님도 정확한 위치는 내게 설명하지 못하셨네.”

노인이 된 돈조르니가 고모라고 칭한 사람은 베일 가문의 어른으로, 이미 수십 년 전에 죽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생전에 모험가였던 돈조르니를 무척 좋아했는데, 임종을 맞이할 때 젊은 돈조르니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구름이 쉬어 가는 숲에 가면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게다. 그의 이름은 제라이즈.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니, 내 이름을 대고 목걸이를 보여 주면 한 번은 널 도와줄 것이다. 가문에서 소외받는다 하여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세상을 즐기며 살 거라, 돈조르니. 지금처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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