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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30화 (430/575)

[430] 디 임팩트 18권 5화

돈조르니와 에이저는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귀족의 별장처럼 지어진 제법 큰 집을 둘러봤다. 길도 제대로 없는 숲 속에 이 정도 석조 건물을 지으려면 꽤나 정성이 들어갔을 것 같았다.

쌀쌀한 날씨 속에 비를 맞으며 기다리던 그들의 귀에 낮지만 위엄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라이즈를 찾아왔다고?”

“그렇소. 본인이시오?”

돈조르니가 한 발 나서며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응시했다. 목소리는 문 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내가 제라이즈다.”

인정하는 그의 대답에 돈조르니와 에이저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설마 했는데 아직까지 그가 살아 있었다.

“너희들은 누군데 그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냐?”

“난 에디보르 베일의 조카인 돈조르니 베일이고 같이 온 사람은 내 친구인 에이저요.”

“네가 에디보르의 조카라고?”

“그렇소.”

“그녀는 오래전 죽었는데 무슨 일로 날 찾아온 것이냐?”

품에서 에디보르의 목걸이를 꺼낸 돈조르니는 닫혀 있는 문을 향해 목걸이를 보였다.

“이 목걸이를 가지고 가면 한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찾아왔소.”

“음…….”

문 뒤에서 목소리가 끊기자 에이저가 돈조르니에게 불쾌한 얼굴로 속삭였다.

“이게 대체 뭔 짓인지 모르겠군, 우릴 빗속에 세워 두고 신비한 척 문 뒤에서 말을 하다니.”

에이저는 자존심이 상했다.

“참게. 도움을 청하러 온 입장이 아닌가?”

이때 문이 반쯤 열리며 두꺼비처럼 생긴 사내가 걸어 나왔다.

“목걸이를 주시오. 주인님께서 목걸이가 진짜인지 확인해 보신다 하오.”

“우리가 들어가서 보여 주면 안 되겠소?”

“안 되오.”

단호한 사내의 대답에 돈조르니는 별수 없이 목걸이를 건넸다.

‘참으로 까다로운 자군. 고모님이 이런 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니, 대체 어떻게 생긴 자인지 얼굴이 궁금해.’

문이 닫혔고, 잠시 후 바크 드라모스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녀의 목걸이가 맞군. 말해 보거라, 원하는 게 뭔지.”

“베일 가문에 내분이 생겨 대공의 위치가 위태롭소. 반란군들을 몰아내는 걸 도와주시오.”

긴 침묵 뒤에 바크 드라모스가 말했다.

“알겠다. 그만 돌아가라.”

“도와주시겠다는 거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알겠다고 말했다.”

더 이상 문 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자군. 그만 돌아가세.”

에이저는 싸늘한 눈빛으로 집을 둘러본 뒤 몸을 돌렸다. 생각 같아서는 집 안에 쳐들어가 제라이즈란 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번 일은 돈조르니의 소관이었다.

돈조르니는 굳게 닫힌 문을 잠시 응시하다가 앞서가는 에이저를 따라잡았다.

“목걸이를 돌려주지 않는 것을 보니 그는 내 부탁을 들어줄 것 같네.”

“그거야 두고 봐야지. 세상에서 제일 강한 자란 자네 고모님의 말씀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그때 증명되겠지.”

“난 진짜였으면 좋겠네. 그래야 어서 전쟁이 마무리되고 우리가 편해질 수 있지 않은가?”

“전쟁에서 패하면 그 즉시 나는 이곳으로 와 저 문 뒤에 숨어서 말을 한 제라이즈의 목에 화살을 꽂을 거야. 먼저 간 자네 고모의 뒤를 따라가게.”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겠네.”

숲으로 들어가던 돈조르니는 고개를 돌려 어둠 속에 서 있는 석조 건물을 다시 한 번 눈에 담아 뒀다. 그의 고모가 저곳에서 한때 생활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올라왔다.

복도를 걷던 바크 드라모스는 벽면에 걸린 어느 젊은 여자의 그림 앞에 멈춰 섰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엄숙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말괄량이 기질을 눈빛으로 토해 내는 여성.

그는 활달하고 꾸밈없던 이 여자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렇다고 마음 깊이 사랑했던 건 아니다. 잠시 이 집에서 함께 머문 정도.

그래도 함께 있을 동안은 즐거웠다. 그녀에게 목걸이 선물을 할 정도로.

“당신은 여전히 날 귀찮게 하는군.”

죽은 그녀의 조카가 찾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자네를 한 번 더 떠올려 달라고 하는 건가, 에디보르…….”

바크 드라모스의 얼굴에 그녀를 그리워하는 빛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곧 무심한 얼굴로 돌아와 도현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놈 봐라?’

방 안에 좌정을 하고 있는 도현의 행동에 그는 감탄했다.

두 자루 검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데, 자세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고 그 주위로 무형의 기세가 은은히 회오리치고 있었다. 몸과 마음, 검이 하나가 되어 극도의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전투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군. 도망갈 궁리 대신 오히려 최선의 상태로 싸울 준비를 했다는 건가?’

투쟁심이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그만 일어나라.”

감았던 눈을 뜨며 도현이 일어나자 바크 드라모스의 검이 소리 없이 다가왔다.

‘어둡다.’

도현은 바크 드라모스의 검이 실체 없는 어둠처럼 느껴졌다.

‘어둠 너머를 봐야 해.’

찰나간 도현의 눈이 수백 배나 밝아지며 어둠을 뛰어넘었다.

어둠의 장막 뒤에 도사린 것은 보기에도 섬뜩한 용의 얼굴이었다.

거대한 이빨과 음산한 눈을 가진 용이 입을 쩍 벌린 채 그를 한입에 삼키려 했다.

‘보인다, 용이 다가오는 모습이!’

호흡을 멈춘 도현의 검이 용의 형상을 만들며 다가오는 바크 드라모스의 검을 정확하게 막아 냈다.

콰아앙!

3층 방이 부서지며 도현이 빠르게 뒤로 튕겨져 나갔다. 막긴 했지만 검에 실린 바크 드라모스의 힘을 완전히 해소하진 못한 것이다.

건물 유리창을 박살 내며 숲으로 떨어지는 도현을 쫓아온 바크 드라모스는 냉정한 얼굴로 다시 한 번 검을 날렸다.

도현이 떨어진 숲 일대가 한순간에 먼지처럼 변했고, 불길에 휩싸였다.

치이이익.

쏟아지는 비에 불길이 점차 잡혀 가자 입가에 피를 흘리며 서 있는 도현의 모습이 보였다.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했지만 바크 드라모스의 검은 그의 호신강기조차 찢어발기며 타격을 준 것이다.

“이것이 용의 검이군요.”

“대단하구나, 나의 검을 막아 내다니.”

“막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아주 짜릿하군요.”

“더 막아 보겠느냐?”

바크 드라모스가 붉은 빛을 발산하는 검을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불에 탄 숲의 잔해들이 좌우로 튕겨져 나갔다.

점점 다가오는 그를 보며 도현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당신의 검을 경험했으니, 이제 제 검을 보여 드리죠.”

파앙.

가볍게 땅을 박차 오른 도현은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부드럽게 검을 휘둘렀다.

태선군이 사용한 천검술을 고된 노력 끝에 자기 것으로 소화한 도현은 그 검술의 이치와 기존의 호검술을 합해 하늘도 놀랄 만한 신묘한 검술을 펼쳤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가 뭉쳐지며 수십 미터 크기의 검으로 변해 바크 드라모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쿠쿠쿠쿵.

거대한 물의 검이 떨어지는 소리가 꼭 천둥소리와 같았다.

“흥!”

대단히 위압적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물의 검을 보며 차갑게 코웃음을 친 바크 드라모스는 허공으로 비상하며 붉은 검을 길게 휘둘렀다.

콰앙!

큰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물의 검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고 그 뒤에 존재하던 도현의 검이 드러났다.

채채채채챙.

허공에서 수십 번 칼을 겨룬 그들은 땅에 떨어지자 재차 근접해서 검을 교환했다.

사사사삭.

두 자루 검을 폭풍처럼 휘두르며 바크 드라모스의 전신을 노리던 도현은 등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고통에 이를 악물며 뒤로 재주를 넘었다.

그가 있던 자리의 땅이 폭발하며 흙이 비산했다.

쫓아오는 바크 드라모스를 행해 도현의 검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채챙.

도현이 날린 비검술을 막아 낸 바크 드라모스는 바람처럼 다가와 비검술을 날려 빈손이 댄 도현의 옆구리를 베어 버렸다.

가죽 갑옷이 벌어지며 붉은 핏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바크 드라모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몸을 번개처럼 회전시키며 도현의 목에 검을 찔렀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냉혹한 손 속이었다.

그의 검이 도현의 목을 관통하려는 순간, 뱀처럼 땅을 타고 기어온 한 자루 검이 벼락처럼 솟구쳐 바크 드라모스의 턱 밑을 공격했다. 도현은 비검술을 끝까지 유지해 바크 드라모스를 위험에 빠트린 것이다.

별수 없이 바크 드라모스는 검을 회수해 훌쩍 뒤로 물러났다.

그사이 도현은 비검술을 거두고 다시 손에 두 자루 장검을 움켜쥐었다.

등과 옆구리의 부상으로 인해 그의 발밑은 핏물이 홍건했다.

“넌 왜 멍청하게 나와 싸우는 것이냐? 내 손에서 벗어나면 널 쫓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을 텐데.”

“용의 검술이 궁금했습니다.”

“목숨을 걸 정도로?”

“죽지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

“틀렸다, 너는 죽을 것이다.”

바크 드라모스는 도현의 피가 묻은 검을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싸워 보니 당신의 검은 대단하지만 발은 좀 느리더군요.”

“뭐라?”

“약속을 지키십시오. 당신 손에서 벗어나면 저와의 은원은 사라지는 겁니다.”

말을 끝내자마자 도현은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어차피 용과 싸워 이기려는 생각은 없었다.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아온 존재인가.

힘을 비축해 둔 도현은 놀랍도록 빠른 신법을 이용해 드넓은 숲 속을 빠르게 돌파했다.

“감히 내 발이 느리다고! 네놈을!”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도현은 뒤를 힐끔 돌아봤다.

앞에 거치적거리는 숲의 나무들을 모조리 박살 내며 바크 드라모스가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다. 눈에서 불을 토하는 모습이 굉장히 화가 난 듯했다.

‘살려면 죽도록 뛰어야겠군.’

절정의 신법을 발휘했는데도 바크 드라모스를 따돌리지 못했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니 정말 답답하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도현을 한동안 쫓던 바크 드라모스는 짜증이 왈칵 밀려왔다.

마법을 사용했다면 손쉽게 도현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뱉어 낸 말은 지켜야 한다. 바크 드라모스는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꾹 억누르며 끈질기게 도현을 추격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비는 그쳤고 비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등장해 세상에 빛을 뿌렸다.

쉬이이익.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가던 도현은 구름이 쉬어 가는 숲을 마침내 벗어나 흙탕물이 흘러가는 강에 도달했다.

‘대체 여긴 어디지?’

넓은 숲을 벗어나 강을 앞에 뒀지만 지리적으로 이곳이 어디쯤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브링틱과 달리 쌀쌀한 기온으로 보아 브링틱과 멀리 떨어진 본토의 어느 지역 같긴 했다.

‘설마 남부 대륙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북부 대륙의 변방에 위치한 브링틱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도현은 거세게 흐르는 강물 위를 발끝으로 툭툭 밀어내며 폭이 넓은 강을 순식간에 건넜다.

뒤를 돌아보니 바크 드라모스도 어렵지 않게 강을 넘어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끝까지 따라올 기세인데.’

도현은 들판을 달리며 외쳤다.

“도대체 어디까지 쫓아올 생각입니까? 이쯤이면 제가 당신 손에서 벗어났다고 봐야 하는 게 아닙니까!”

“어림도 없다!”

“저는 사흘 밤낮을 이대로 달릴 수 있습니다. 이제 그만 절 놓아주십시오!”

“나는 영원히 이대로 달릴 수도 있다.”

“그럼 왜 제게 그런 약속을 한 겁니까! 그 기준이 뭡니까!”

도현의 따지는 듯한 목소리에 바크 드라모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의 검을 피해 도현은 멀리까지 도망쳐 왔다. 용의 검 아래 살아남아 이 정도까지 피해 왔다면 그의 기준으로 봤을 때 도현의 승리나 다름없었다.

바크 드라모스 입에서 용의 마법어가 튀어나왔다.

공간 단축 마법을 쓰자 그의 몸이 도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법을 사용했군요.”

“널 놓아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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