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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31화 (431/575)

[431] 디 임팩트 18권 6화

그의 말에 도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인간들 중에 너보다 발이 빠른 자는 여태껏 보지를 못했다. 그 발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도현은 바크 드라모스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왠지 그의 말투 속에서 자존심이 상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브링틱으로 공간 이동을 시켜 달라고 요구하면 화를 내겠지?’

지금은 용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상황이었다. 그의 화를 돋울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다.

“잠깐.”

달빛이 흐르는 들판을 걸어가던 도현은 바크 드라모스의 낮은 목소리에 움찔했다.

“할 말이 있으니 나의 집으로 가자.”

“집으로 말입니까?”

“왜, 싫으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도현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정중히 답했다.

“아닙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도현은 눈을 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자 등과 옆구리에서 불같은 통증이 밀려왔다.

어젯밤 바크 드라모스의 검에 당한 부상은 치명적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작은 상처는 아니었다.

바크 드라모스의 시종이 상처를 치료해 줬지만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제 신법을 발휘해 도망칠 때도 사실 통증이 꽤 심했었다. 참고 달렸을 뿐이다.

침대에서 일어난 도현은 흰 천에 감싸인 상체를 부드럽게 풀어 주며 호심공을 수련했다.

얼마 안 돼 땀이 송골송골 그의 이마에 맺혔다.

호심공은 축기뿐만 아니라 몸이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준다.

두 시간 정도 호심공을 펼쳐 부상을 다스리며 심신을 안정시킨 도현은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봤다. 아침의 숲 공기가 훅 하고 밀려들어 왔다.

“동료들이 많이 걱정하겠는데…….”

리타를 비롯한 여러 동료들이 간밤에 그를 찾기 위해 산과 인근 주변을 이 잡듯 수색했을 것이다.

하루빨리 그들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바크 드라모스는 자신에게 아직 볼일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할 말이 있다던 그는 피곤하다며 아침에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별수 없이 도현은 하룻밤을 이곳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도현은 뒤를 돌아봤다.

두꺼비를 닮은 사내가 깨끗한 옷 한 벌과 튼튼해 보이는 가죽 갑옷을 들고 서 있었다.

“입고 나오시오. 주인님이 기다리고 계시니까.”

침대에 들고 온 것을 툭 던져 놓은 그는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나갔다.

쌀쌀맞은 그의 태도에도 도현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의 심정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어제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던 팔이 긴 사내는 3층의 부서진 방을 수리해야 한다며 투덜거렸다. 도현이 그들에게 일거리를 던져 준 셈이었다.

“옷과 갑옷이라…… 기대도 안 했는데.”

피식 웃은 도현은 자신의 몸에 적절히 맞는 새 옷과 가죽 갑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 그 사내가 복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오시오.”

굵은 목소리로 말한 그를 따라 도현은 지하로 내려갔다.

횃불이 켜진 지하로 얼마간 내려가자 문 하나가 보였다.

“주인님! 손님을 데리고 왔습니다!”

“들여보내.”

“네!”

두꺼비를 닮은 사내는 문을 열어 주며 도현에게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고맙습니다.”

도현의 인사에 사내는 헛기침을 하며 모른 척했다.

“들어가 보시오.”

그의 목소리가 약간 부드러워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간 도현은 천장이 높고 폭이 넓은 지하 공간과 마주쳤다. 수십 개의 횃불이 좌우 벽에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 불빛에 수많은 진귀한 보물들이 빛을 반사시키며 도현의 눈을 현혹했다.

‘아, 엄청나구나.’

산처럼 쌓인 금화와 종류를 알 수 없는 보석, 그리고 예술적인 감각성이 부여된 화려한 장신구, 왕관, 지팡이 등 도현으로서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보물들의 세계였다.

“가까이 와.”

바크 드라모스는 보물 앞에 차려진 식탁에서 음식을 먹으며 도현에게 손짓을 했다.

“배고플 텐데 와서 식사해.”

“감사합니다.”

도현은 식탁으로 걸어가는 동안 보물들을 발로 밟고 지나가야 했다. 바닥이 온통 그것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용주가 여길 봤다면 기절할 거야.’

엉뚱한 상상을 하며 식탁으로 접근한 도현은 바크 드라모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의자는 누가 사용했던 건지 몰라도 따뜻한 느낌이 묻어 나오는 비취색 옥이 팔걸이에 커다랗게 장식되어 있었다.

‘독특한 취향이군, 보물 속에서 식사를 하다니.’

너무 많은 보물들이 있자 도현은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보물로 어지럽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그는 차려진 음식을 약간의 술을 곁들여 말없이 먹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크 드라모스가 술을 따르며 말했다.

“거인의 섬에 있던 씨드는 네가 차지한 것이냐?”

고기를 씹던 도현은 흠칫하며 바크 드라모스를 응시했다.

“놀랄 거 없다. 몬스터의 기운을 흡수해 강해졌다고 하지만 그런 힘만으로는 내 검을 막을 수 없다.”

“씨드 나무의 샘에서 힘을 흡수하긴 했지만, 그것을 씨드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도현은 순순히 인정을 했다.

“멍청하구나, 그것이 씨드다. 씨드는 여러 형태의 물질. 거인의 섬에 있는 씨드는 물의 형태로 존재했을 뿐이다.”

“그렇군요.”

도현은 바크 드라모스의 말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이 씨드의 힘을 온전히 흡수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거인의 섬이 가라앉아 있던데, 어떻게 된 것이냐?”

술을 한 모금 한 바크 드라모스가 물었다.

“이야기가 좀 깁니다.”

“그럼 줄여서 말해.”

“……네.”

도현은 술로 입을 헹군 뒤 거인의 섬에 있는 씨드를 두고 벌어진 얼음탑주와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설명했다.

“율리비어스, 그 녀석 짓이었군. 인간 주제에 마법적 재능이 뛰어나서 내가 한때 흥미를 가졌던 녀석이지.”

“그를 알고 계시는군요.”

“내가 이 집에만 머물고 있는 줄 아느냐? 그렇다면 내가 인간들의 세계에 지낼 필요가 없겠지. 재미없게.”

바크 드라모스는 집을 비울 때가 많았다. 세상을 돌아다닐 때는 지금의 모습인 아닌 다양한 모습과 신분으로 활보했다.

“네가 날 위해 한 가지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제가 말입니까?”

도현은 살짝 긴장하며 마시려던 술잔을 내려놨다. 아침 식사도 같이하고 씨드 얘기도 부드럽게 진행이 돼서 검은 용과 친분이 생기는 건 아닌지 내심 기대를 했는데, 역시 공짜 식사는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을 말입니까?”

“베일 가문에 내분이 일어난 건 아느냐?”

“얼핏 듣긴 했습니다.”

대공의 숙부가 병사들을 이끌고 브링틱에 왔다가 그냥 물러간 게 그 때문이라는 소문을 도현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 소문이 떠돌 당시에는 씨드 때문에 다른 일에 관심을 기울일 형편이 안 됐기 때문이다.

“네가 가서 베일 가문의 대공 측을 도와 내분을 잠재워라.”

“예?”

뜻밖의 요구에 도현은 잠시 동안 말문이 막혔다. 대영주 가문의 싸움에 개입하라니.

‘베일 가문과 무슨 관련이 있나? 왜 대공을 도우라고 하는 거지?’

도현은 정신을 수습하며 바크 드라모스에게 말했다.

“직접 도우시지 않고 왜 제게 그런 요구를 하시는 겁니까?”

“인간들의 큰 분쟁에 개입 안 한 지 오래야.”

바크 드라모스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얘기한 뒤 술을 마셨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왜 제겐 베일 가문의 대공을 도우라고 하는 겁니까?”

“그럴 일이 생겼으니까.”

내키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처럼 바크 드라모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도현을 응시했다.

“베일 가문의 여자와 잠시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그 인연의 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베일 가문을 한 번은 도와줘야 해. 하지만 내가 나설 순 없다. 내가 인간들의 전쟁에 개입할 때마다 이 세상은 큰 변화를 겪었거든.”

“큰 변화요?”

“그래, 큰 변화. 나로서도 예측하지 못하고 막을 수 없는 변화 말이다. 그런 변화는 아주 좋지 않아. 나를 노리는 자들에게 명분을 주거든.”

“누가 노린단 말입니까?”

“누구긴, 저 위에 있는 거만한 자들이지.”

바크 드라모스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린 지하 보물 창고의 천장 방향을 가리켰다.

“인간들에게 신이라 추앙받고 섬김을 받는 존재들. 그들은 나를 눈엣가시처럼 보거든. 공격할 명분을 그들에게 줄 순 없지.”

도현은 막연하게 느껴진 신의 존재를 직접 언급하는 바크 드라모스의 말에 까닭 모를 소름이 돋았다.

“아무튼 그래서 난 직접 나서기 어렵다. 내 시종들을 보낼까 했지만, 하는 짓들이 영 바보스러워서 말이다. 네가 나서 줘야겠다.”

“하지만 전…….”

“대가 없이 시키는 일이 아니다.”

“보상이 있다는 겁니까?”

“당연하지, 난 계산이 철저한 존재니까.”

바크 드라모스는 투명해진 눈동자로 도현의 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네 몸속에 있는 혼돈의 마나의 찌꺼기들을 정화시켜 주겠다. 폭주의 불안감에서 널 해방시켜 주겠다는 뜻이다.”

의외의 보상 제안에 도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실 수 있습니까?”

“그 정도쯤이야.”

바크 드라모스는 반쯤 남은 술잔의 술을 느리게 비웠다.

“고대인들 중 몇은 이계의 수정이라는 것으로 혼돈의 마나의 부작용을 제어하려 했지만, 사실 그것은 근본적인 치유책이 못 된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지.”

폭주를 해결해 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에도 도현이 고민 깊은 얼굴로 앉아 있자 바크 드라모스가 넌지시 말을 덧붙였다.

“폭주가 가끔 너를 위기에서 구해 준 적이 있겠지만, 결국엔 널 삼킬 악마다. 폭주의 힘에 도취되는 순간, 넌 끝난 것이야. 네 주변도 파괴할 것이다, 잔인하게.”

예언과 같은 불길한 바크 드라모스의 말에 도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눈앞의 용이 없는 말을 지어낼 존재로는 보이지 않았다.

“베일 가문의 대공을 도우려 해도 제가 할 수 있는 능력과 역할은 한계가 있습니다.”

“벌써부터 죽는소리를 할 필요는 없다. 넌 용의 검을 막은 사내가 아니더냐?”

“그쪽 형편이 어떤지도 전 모릅니다.”

“그리 좋진 않겠지, 나를 찾아와 도움을 청할 정도면.”

바크 드라모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씨드의 힘을 얻고 검술이 뛰어난 너를 보내려는 게 아니겠느냐?”

“이 일을 시키려고 어제 절 죽이지 않은 겁니까?”

“천만에. 죽이고자 했으면 그냥 죽이고 말지, 널 이용하기 위해 살려 두진 않는다.”

술잔에 시선을 두고 생각에 잠겨 있던 도현은 고개를 들어 바크 드라모스를 응시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떠냐, 하겠느냐?”

여기서 싫다고 말하면 그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안 됐다. 한편으론 폭주의 해결이 도현도 필요하긴 했다.

‘이걸 기회라고 봐야 할까…….’

속으로 쓴웃음을 흘린 도현은 결정을 지었다.

“제 동료 중에 한 명이 저처럼 혼돈의 마나를 몸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도 정화시켜 주시면 대공을 돕겠습니다.”

리드만 사제와 딘이 세상을 떠돈 건 폭주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다 지금은 반쯤 포기한 상태다.

새 영지를 구하는 일과 폭주를 해결하는 일.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아마 그들은 폭주를 먼저 해결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것이 딘을 섬기는 리드만 사제의 궁극적인 목표였고, 도현은 그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좋다. 일이 끝난 후 이곳으로 그 녀석을 데리고 오면 함께 정화시켜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식사는 다 했나?”

“네, 훌륭했습니다.”

도현은 식탁 위에 놓인 천으로 입 주변을 닦았다.

“이곳의 위치는 내 시종에게 들어서 알고 있겠지?”

“어제 물어봤더니 대답해 주더군요.”

상처를 치료해 주던 팔이 긴 사내는 큰 비밀이 아니라는 것처럼 위치를 설명해 주었다.

이곳은 북부 대륙의 중서부에 위치한 ‘구름이 쉬어 가는 숲’이었다.

도현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바크 드라모스는 에디보르의 목걸이를 꺼내 도현에게 건넸다.

“베일 가문의 돈조르니 베일을 찾아 그 목걸이를 보여 줘라. 제라이즈가 보내서 왔다고 하면 그는 널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돈조르니는 대공의 숙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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