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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32화 (432/575)

[432] 디 임팩트 18권 7화

브링틱에 다녀간 그의 이름을 도현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맞다. 어젯밤에 나를 찾아온 녀석이지.”

도현은 빗속에 서 있던 두 노인을 떠올렸다. 그들 중 한 명이 돈조르니 베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당신의 정체를 알고 있습니까?”

“모르고 있다. 내 얼굴도 못 보고 갔지. 그러니 너도 그의 앞에서는 내 정체에 대해 말을 아껴라.”

“제라이즈가 그럼…….”

“내 여러 이름 중 하나다.”

바크 드라모스는 대답을 하며 산더미처럼 쌓인 보물을 길게 둘러봤다.

“내 집을 방문했으니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지. 여기 있는 것들을 들고 갈 수 있을 만큼 챙겨라. 널 다시 브링틱으로 공간 이동 시켜 줄 테니까.”

보물을 가지고 가라는 말에 도현은 헛기침을 했다.

“정말입니까?”

“물론이다.”

바크 드라모스는 큰 선심 쓰듯 말했다.

‘챙겨 가 봐야 보물 상자 한두 개 정도겠지.’

무겁고 부피가 큰 보물 상자 하나만 해도 그 안에 든 물건들의 가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바크 드라모스의 집 지하에 있는 보물 창고엔 고대부터 그가 모아 온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도현은 품속에서 마법 주머니를 꺼냈다.

그 순간 바크 드라모스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아니, 네놈이 어떻게 마법 주머니를?”

“자수정 속에 갇혀 있던 고대 마법사가 그의 제자를 통해 만들어 줬습니다.”

도현은 락제프와 리타 얘기를 하며 부지런히 마법 주머니 안에 보물들을 집어넣었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로 진귀한 보물이 가득 담긴 상자 위주로 마법 주머니 안을 채워 갔다.

‘너무 많이 담아 가나?’

슬며시 걱정이 되기 시작한 도현은 뒤를 힐끔 돌아봤다. 바크 드라모스는 태연히 서 있는데, 그 뒤에 팔이 긴 사내와 두꺼비를 닮은 사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보물이 많은데, 이 정도는 뭐…… 괜찮겠지?’

용주는 도현에게 누누이 강조했다. 기회 있을 때 챙겨 놓으라고.

도현은 눈을 질끈 감고 끝까지 마법 주머니 안을 보물로 채웠다.

더 이상 보물 상자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마법 주머니가 차자 도현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마법 주머니를 품 안에 소중하게 보관했다.

커다란 보물 상자가 서른 개도 넘게 들어간 것 같았다. 브링틱에 있는 동료들과 보물을 나눠 가져도 지구에 가지고 갈 보물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다 됐습니다.”

“음.”

도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바크 드라모스는 고개를 돌려 시종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왜 여기 들어와 있는 것이냐?”

“주, 주인님, 저, 저희들에게는 보물을 안 주시면서…… 저자에겐.”

시종들은 억울하고 서러웠는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말을 더듬었다.

“나중에 내가 이곳을 떠나면 이 보물들을 누구에게 주겠느냐? 그만 나가 있어.”

“정말이십니까? 그러시고선 또 이곳으로 돌아오실 거잖습니까?”

“나가.”

“미리 보물을 저희에게 나눠 주시면…….”

“안 나가면 죽여 버리겠다.”

바크 드라모스의 눈에서 번갯불이 튀어나오자 두 시종은 놀라며 허겁지겁 보물 창고를 나갔다.

‘이거 괜히 미안한데.’

검은 용에게 꽉 붙잡혀 사는 시종들의 뒷모습이 도현은 안쓰러워 보였다.

“어제 잤던 방에 놓고 온 것이 있느냐?”

“없습니다.”

“브링틱으로 보내 주마. 좋은 결과를 기다리겠다.”

“잠시만요. 아직 할 얘기가 남아 있습니다.”

다급한 도현의 말에 허공에 뻗었던 손을 내리며 바크 드라모스가 도현을 응시했다.

“뭐냐?”

“미완성 마법진을 완성시켜 주실 수는 없습니까?”

도현은 팔의 타투를 보여 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용의 능력이라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낯짝 두꺼운 놈을 봤나. 차원 이동은 네 힘으로 알아서 해, 그 부분은 내가 도와줄 수 없으니까.”

바크 드라모스는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차원 이동은 서로 다른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라 그도 신들의 눈치를 보며 이곳에 머물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니 도현까지 도울 수는 없었다.

“내가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저 위에 사는 거만한 존재들에게 날 공격할 명분을 줘선 안 된다고. 차원 이동과 관련된 문제는 네가 노력해서 풀 수밖에 없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허리에 손을 얹은 도현은 바크 드라모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준비됐습니다.”

철가면

브링틱으로 공간 이동을 한 도현은 주위를 둘러봤다. 바크 드라모스의 공격으로 모양이 바뀐 폭포가 시원하게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이제 내가 전설의 용까지 만나게 되다니.’

도현은 조금 전까지 검은 용과 대화를 나누고 온 게 꼭 꿈만 같았다.

폭포 물에 시원하게 세수를 한번 한 그는 뒤돌아서다 움찔했다.

흑거미를 탄 리타가 울먹거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도현을 찾기 위해 동료들과 밤새워 산과 주변 일대를 수색했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도현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것은 공포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도현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죽은 거 아니었구나?”

“걱정 많이 했지?”

도현의 미소에 리타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으앙! 너 정말 미워!”

흑거미에서 내린 리타는 도현의 품 안에 뛰어들었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미안해.”

도현은 리타의 등을 토닥였다. 그녀는 자신을 진짜 가족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아, 나중에 리타와 어떻게 헤어져야 하지……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할 텐데.’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 오는 것 같았다.

펑펑 울던 리타는 눈물을 거두며 도현의 품에서 떨어졌다.

“치이, 창피하게 너무 울었네. 다친 데는 없어? 그 인간 굉장히 강해 보였는데.”

“등과 옆구리에 조금 부상을 입긴 했어. 하지만 괜찮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

“다행이야. 잠깐만.”

그녀는 말을 하다가 호주머니에서 자수정을 꺼냈다.

“스승님, 보셨죠? 안 죽었잖아요! 왜 저를 겁주세요!”

-내가 언제 도현이 죽었다고 말했냐?

“발뺌하지 마세요. 아까도 그만 포기하고 마법 공부나 하라고 했잖아요.”

-도현이 무사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냥 기다리면 될 일을 무슨 큰일이 난 것처럼 울며불며 찾아다니기에 한 소리야.

“거짓말. 스승님은 냉혈한이에요.”

-아니, 이 녀석이 정말! 버릇이 없구나!

“그 스승에 그 제자 아니겠어요?”

-너 같은 제자 없다.

“여기 있거든요!”

그녀는 혀를 날름거렸다. 락제프는 그녀를 무시하며 시선을 도현에게 맞췄다.

-어제 갑자기 나타난 그자는 누구냐? 리타가 소환한 어둠의 마왕을 한순간에 없애 버린 걸 보면, 보통 마법사가 아닌 것 같은데.

리타도 궁금한 얼굴로 도현을 봤다. 어제는 도현도 모르는 눈치였지만 지금은 알고 있을지 모른다.

도현은 이들이 받을 충격을 예상하며 천천히 답했다.

“그는 바크 드라모스였습니다.”

-바크 드라모스!

락제프의 눈동자가 자수정 전체를 휘감을 만큼 커졌다. 수천 년을 자수정 속에 갇혀 지낸 그는 세상일에 흥미도 없고 감정의 기복도 큰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용이 나타났다는 말에는 그도 놀라움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용이 나타났다니…….

“어제 그 인간이 전설의 검은 용이었다고?”

충격에서 깨어난 리타가 확인하듯 되물었다.

“응, 그의 집에 초대받아서 하룻밤 보내고 왔어.”

“정말?”

“궁금하겠지만 조금만 참아. 자세한 얘기는 동료들이 모이면 해 줄게.”

도현은 흩어져서 자신을 수색하고 있을 동료들을 찾기 위해 몸을 날렸다. 그들도 리타처럼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리타! 톨리핀의 집에 먼저 가 있어! 다른 사람 만나면 내가 무사하다는 말 전해 주고!”

“알았어! 멀리 가지 말고 빨리 와! 길이 어긋날 수도 있으니까!”

“그래!”

바람에 도현의 목소리가 은은히 실려 왔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도현을 뒷모습을 바라보던 리타는 자수정을 자신의 눈높이에 맞췄다.

락제프의 눈동자가 보였다.

“스승님, 들으셨죠? 용이래요, 용.”

-용의 능력이면 날 바로 소멸시킬 수 있을 텐데…….

“스승님,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널 믿었다간 영원히 이곳에서 고통받아야 할 것 같아서 그런다. 바크 드라모스에게 날 없애 달라고 부탁해 봐야겠어.

“용이 해 줄 것 같아요? 안 해 줄걸요.”

입술을 삐죽인 그녀는 섭섭한 얼굴로 자수정을 호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웅크린 자세로 등을 돌리고 잠을 자던 휴반트는 눈을 뜨자마자 먼저 자신의 철가면이 벗겨지지 않았는지부터 확인했다. 차가운 감촉이 얼굴과 손끝에서 느껴지자 휴반트는 안심을 했다.

“일어났어요?”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잔 영주의 딸이 부드러운 말과 함께 휴반트의 상체를 뒤에서 껴안았다.

둘 다 벌거벗은 몸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체온이 느껴졌다. 철가면을 쓴 휴반트는 우람한 자신의 등에 매달려 체온을 전달하는 영주의 딸을 와락 끌어안았다.

“당신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어.”

“이미 당신은 나를 위해서 많은 걸 하고 있잖아요.”

아름다운 영주의 딸 에린은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휴반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이제 우리 사이에 이런 철가면은 어울리지 않아요. 그만 벗는 게 어때요? 난 당신의 얼굴을 보고 싶어요.”

“그건…… 어려워.”

휴반트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양손으로 철가면을 쓴 얼굴을 감쌌다. 그의 얼굴은 몬스터보다 못생기고 흉악했다.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 때문에 그는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떨어져 외톨이로 성장했다.

외로움과 외모에 대한 자괴감으로 똘똘 뭉친 그는 검이 곧 친구였고 대화의 상대였다.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둘이 있을 땐 답답한 그 철가면을 벗어요.”

“나중에.”

침대에서 일어선 그는 옷을 입고 허리에 검을 찼다. 뒤를 돌아보니 영주의 딸이 화려한 옷으로 나신을 감추고 있었다.

“뒤돌아서요.”

남자의 시선이 부끄러운 듯 보조개가 깊게 팬 미소를 보이며 에린이 수줍게 말했다.

‘세상이 불공평하지만은 않아. 나에게 이러 추악한 외모를 줬지만 내가 가진 힘으로 이런 아름다운 여성과 미래를 약속하게 됐잖아.’

철가면 검사 휴반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버지는 벨피타 영주의 하급 관리였지만, 자신은 벨피타 영주의 딸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신분을 뛰어넘는 대단한 일이었다.

부친의 품을 떠나 사막의 오지 마을에서 홀로 외롭게 검을 수련하던 그는 7년 전에 사막의 유사에 휩쓸려 지하로 빨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고대의 유적과 마주쳤다.

고대의 검술과 마나 수련법을 익혔을 뿐만 아니라 사막 지하에서 자라나던 전설의 씨드까지 차지했다.

그럼에도 그는 바로 세상으로 나오지 않고 고대의 검술을 극한까지 연성하고 씨드의 힘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하늘 아래 두려울 게 없다.

6년간 갇혀 지내던 사막의 지하 공간을 부수며 세상으로 나온 휴반트는 달빛이 흐르는 사막 한가운데서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증명하듯 수십 년 전 이름을 날린 강자들과 마법사들을 은밀히 찾아가 그들의 목을 잘라 버렸다.

어떤 자도 그의 상대는 될 수가 없었다.

왕이나 돼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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