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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37화 (437/575)

[437] 디 임팩트 18권 12화

긴 시간을 들여 조사를 모두 마친 베르노프는 피곤한 얼굴로 뒤돌아섰다. 장시간 마법을 유지했더니 뼈가 뒤틀리는 고통이 찾아왔다.

한동안 휴식을 취한 그는 탑처럼 쌓인 수백 개의 푸른색 두개골 앞에 섰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군.”

윌벤슨의 말에 베르노프는 검은 해골 지팡이로 허벅지를 긁으며 웃었다.

“나도 좀 뜻밖이라네.”

“잘됐어. 수백 명의 고대 병사가 움직이면 사자 동맹군 녀석들이 얼마나 놀라겠는가?”

윌벤슨은 수염을 훑어 내리며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스므차 녀석이 죽지 않았다면 이 고대 병사들로 그놈을 사냥하러 갔을 텐데 말이야. 참으로 아쉽네.”

형제들과 한쪽 팔을 그에게 잃은 베르노프는 원한 깊은 눈빛으로 이를 갈았다.

그들의 대화를 한쪽에서 듣던 칼라치는 표정 없는 얼굴로 수백 개의 두개골을 응시했다.

“어서 끝내고 나갔으면 좋겠네.”

동굴 속 추위와 기다림에 지친 헬구스가 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의 바람대로 베르노프는 금지된 소환술로 고대 병사들을 깨우는 작업에 들어갔다.

선별된 고대 병사의 두개골 주위에 마법진을 그린 뒤 그 위에 황금 가루와 자신의 피를 뿌렸다.

“아직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이여! 빛이 없는 무덤 같은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자들이여! 내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니, 주저하지 말고 나의 앞에 나서거라!”

음산한 주문을 외운 베르노프는 들고 있던 검은 해골 지팡이로 땅을 내리쳤다.

그 순간 마법진 안에 탑처럼 쌓인 수백 개의 두개골이 일시에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지?”

사라진 두개골을 찾아 뒤를 돌아보던 헬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동굴 안쪽에 수백의 고대 병사들이 유령처럼 서 있었다.

“오! 나의 종들이여! 나의 부름을 받고 나왔구나! 하하하!”

이제 해골 지팡이로 저들을 흡수해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면 된다.

“자, 이제 이곳으로 들어오너라.”

얼핏 광기까지 내비치는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베르노프가 검은 해골 지팡이를 전방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유령처럼 서 있던 수백의 고대 병사들이 검은 연기로 변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공을 부유하던 수백의 검은 연기들은 잠시 후 베르노프의 지팡이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침을 삼키며 그 모습을 주시하던 베르노프는 지팡이를 꽉 움켜쥔 상태로 그들을 기다렸다.

‘이제 나만의 군대가 생기는 것이야.’

기분 좋게 미소를 짓던 그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의 지팡이로 향하던 수백의 검은 연기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근처에 서 있던 칼라치를 향해 쏜살처럼 내리꽂혔기 때문이다.

찰나간에 수백의 검은 연기를 받아들인 칼라치는 주체할 수 없는 강한 힘에 몸을 부르르 떨며 짐승처럼 포효했다.

“크아아아아!”

새끼 돼지

먼지를 뒤집어쓴 일곱 명의 여행객이 술집에 들어서자 안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들이 그들을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곧 관심을 돌렸다.

작은 마을의 이 술집은 마을 사람보다는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여러 길로 갈라지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의 특성 때문이었다.

원래 이곳엔 커다란 도시가 있었지만 수십 년 전 전염병이 도시를 강타했다.

도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했고, 영주는 전염병이 다른 도시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체는 물론 도시의 모든 집과 건물 들을 불에 태우고 파괴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 자리에 작은 마을이 새로 들어선 것이다.

“저기에 앉지.”

어베인의 말에 사람들은 벽 쪽에 위치한 빈자리로 걸어갔다.

일곱 명의 여행객은 붉은 성으로 가는 도현과 그 일행이었다. 약 보름 전 브링틱을 떠난 그들은 열흘 가까이 되는 항해 끝에 항구도시 누마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베일 가문의 전쟁과 관련된 새로운 정보를 수집 한 뒤, 육로로 이동 중이었다.

“대장, 이 술집 자리가 원래는 광장 분수대였다고요?”

술과 음식을 먹던 리타가 어베인에게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내 기억으론 그래. 아마 이쯤이었을 거야.”

어베인은 젊었을 때 이 근방을 몇 번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땐 전염병이 퍼진 도시가 사라지기 전이었다.

“굳이 도시를 파괴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영주는 자신의 영지 전체에 전염병이 창궐할까 봐 두려웠던 모양이야.”

“그래도 효과는 어느 정도 본 게 아닙니까, 전염병이 퍼지지 않았으니.”

짐브리오는 말을 하며 괜히 자신의 손등이나 얼굴을 확인했다. 예전 전염병이 퍼진 도시에 왔다는 게 은근히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결과만 보면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군. 하지만 상당히 아름다웠던 이 도시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야.”

어베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사라진 이 도시에 추억이 있나 보군요.”

“조금 있지. 젊은 내 모습은 제법 봐줄 만했거든. 이 도시의 여자와 짧지만 사랑을 나눴네.”

“그분은 어떻게 됐어요?”

로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흥미로운 시선으로 물었다.

잠시 머뭇거린 어베인은 아련한 눈빛으로 답했다.

“도시에 전염병이 퍼졌을 때 죽었어. 내가 다시 찾아왔을 땐 도시와 함께 불타고 있었지.”

“슬프다.”

리타는 도현의 소매에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잔 것이로군.”

영주 딘은 양 갈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신이 그녀를 좋은 곳으로 인도했을 겁니다.”

리드만 사제의 위안에 어베인은 술잔을 기울였다. 이미 오래전 일이다.

“제가 괜한 걸 물어봤군요.”

도현은 사라진 도시와 어베인 사이에 이런 슬픈 추억이 있으리라고는 예상 못 했다.

“아니네. 누군들 이런 아픔이 없겠나?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맞소, 대장.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짐브리오는 자신도 사랑의 아픔이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술집에서 간단히 술과 음식으로 배를 채운 그들은 얼마 후 말을 타고 마을을 벗어나 세 갈래 길 앞에서 멈춰 섰다.

붉은 성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왼편이었지만 도현은 일행과 달리 말 머리를 약간 틀어서 중앙으로 향하게 했다.

“그럼 며칠 뒤 몬테지오에서 보세.”

몬테지오는 붉은 성으로 가는 길에 존재하는 도시로, 베일 가문의 전쟁 지역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네, 늦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도현은 동료들과 눈인사를 한 후, 말의 허리를 찼다.

“제자 잘 만나!”

뒤에서 리타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그래!”

손을 한번 흔들어 준 도현은 말의 속도를 높였다.

항구도시 누마에서부터 도현을 태우고 온 갈색 말은 주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달려갔다.

바람을 가르는 말 위에서 도현은 에드네 가족을 떠올렸다.

‘그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도현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에드네 가족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만날 기회가 언제 또 생길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쪼개 그들을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에드와 그의 동생 토밀, 부모인 루드와 앤, 그리고 디엘르의 시녀로 있다가 자유의 몸이 된 10대 소녀 리샤와 쿠린까지. 그들이 모두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에드.’

그는 어리지만 책임감 깊고 검에 대한 자질도 뛰어난 열여덟 살 청년이다. 도현은 다크캐슬에서 그를 제자로 삼아 호검술 일부와 호심공을 전수해 주기까지 했다. 이계에서 삼은 첫 제자인 만큼 에드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은 조금 각별했다.

‘검술이 어느 정도 발전했을지 궁금하군.’

빠르게 달리던 말의 속도를 천천히 줄인 도현은 말의 등에서 새처럼 몸을 날렸다.

‘여기서부터는 산을 이용하자.’

제자의 얼굴을 보고 몬테지오에서 동료들과 제시간에 맞춰 만나려면 서둘러야 한다. 베일 가문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바크 드라모스가 인정할 만큼 발이 빠른 도현은 순식간에 작은 산 몇 개를 넘었다. 말을 탔다면 산을 우회해 돌아가야 하는 먼 길이었다.

‘이쪽이 맞지?’

루드네 고향이 표시된 지도를 확인하며 도현은 계속 신법을 발휘해 달려갔다.

그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다크캐슬을 떠나 고향에 정착해 살고 있을 에드네 가족을 만날 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새끼 돼지 열 마리가 짐마차를 탈출하려 애를 썼다. 에드는 그런 돼지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좀 가만히 있어라!”

새끼 돼지들이 싸 놓은 똥을 온몸에 묻히며 에드는 마차 밖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치려는 돼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가 막아야 할 돼지 수가 너무 많았다.

꿀꿀꿀.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새끼 돼지 한 마리가 가림막이 낮은 짐마차 밖으로 힘껏 몸을 던지며 뛰어내리려 했다.

“이 자식이!”

다른 돼지에 신경 쓰느라 그 돼지를 시야에서 놓친 에드는 뒤늦게 손을 뻗었다.

짐마차 탈출에 거의 성공한 새끼 돼지가 기뻐하며 꿀꿀댈 때 에드의 손이 번개처럼 다가와 돼지의 뒷발을 꽉 움켜쥐었다.

“어딜 도망가, 이놈아!”

짐마차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새끼 돼지가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다.

“에드! 살살 다뤄라!”

짐마차를 모는 아저씨의 말에 에드는 불평을 쏟아 냈다.

“목에 밧줄이라도 채우면 이런 고생은 안 하잖아요.”

“새끼 돼지 목이나 다리에 밧줄을 걸면 나중에 잘 크지 않는 법이다. 토실토실 잘 커야지 나중에 팔거나 우리가 잡아먹을 때 좋지 않겠냐?”

“그건 미신이라니까요. 세상에 새끼 돼지 목에 밧줄 채웠다고 돼지가 안 큰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에드는 말하는 와중에도 몸부림치는 새끼 돼지들을 잡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돼지를 오래 키워 본 나는 그게 미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아, 정말 이건 말도 안 돼.”

에드는 얼굴에 묻은 돼지 똥을 닦아 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의 고향 마을은 어딘지 꽉 막힌 사람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그런 이상한 곳 같았다.

마을도 코딱지만큼 작아서 마을 사람이래야 다 합해도 백 명도 안 된다.

“거래를 아주 잘했어. 과일 한 마차와 약간의 돈을 주고 이렇게 튼튼한 새끼 돼지를 열 마리나 사다니.”

“아저씨, 우리 집엔 몇 마리나 주실 건데요?”

새끼 돼지들이 잠시 얌전해진 틈을 타 에드가 슬쩍 물었다.

“열심히 도와줬으니 두 마리 주마.”

“에이, 그건 아니죠. 세 마리는 주셔야죠. 제가 과일 다 따고, 마을 시장에서 과일 팔 때도 도왔잖아요.”

“흠, 세 마리라. 좋다, 기분이다, 세 마리 주마. 네 아버지하고 난 어려서 같이 큰 처지니 서로 돕고 살아야지.”

“고맙습니다, 아저씨.”

에드는 덜컹거리는 짐마차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날씨가 아주 화창했다.

“에드, 네 아버지가 널 큰도시로 보낼 생각인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에드의 아버지 루드는 검술 실력도 뛰어나고 마나까지 보유한 큰아들이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큰 인물은 무릇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 다크캐슬 같은 어둡고 험악한 곳에서도 잘 버텼으니, 영주의 성이 있는 도시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다.

아버지의 말을 잠시 떠올린 에드는 그의 다리를 베고 잠을 자는 새끼 돼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조금 더 있다가요. 동생도 아직 어리고 저도 수련을 더 해야 하거든요.”

“그 험악하다는 다크캐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이젠 좀 편하게 지내야지. 어디 가지 말고 우리랑 살자. 내 딸도 널 무척 좋아하잖아?”

에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저씨의 딸은 귀찮을 정도로 그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에드의 이상형은 아니었다. 이상형으로 따지면 오히려 그의 집에 함께 살고 있는 리샤가 그에 가깝다.

디엘르의 시녀였던 리샤는 아름답고 똑똑했다. 그에 비해 아저씨의 딸은 평범한 얼굴에 착하기만 했다. 수줍음도 많고.

“내 딸이 싫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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