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 디 임팩트 18권 13화
넌지시 물어보는 아저씨의 행동에 에드는 딴청을 부렸다.
“요즘 도적들이 기승이라는데 걱정이네요. 아까 마을 시장에서 들으셨죠? 며칠 전에 호수 근처 마을에 도적 떼가 들이닥쳐 사람들을 해치고 약탈해 갔다는 얘기요.”
“나도 들었다. 하지만 걱정 마라. 설마 우리 마을까지 그놈들이 오겠냐?”
“그건 그렇지만 도적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요. 마을 시장에서 관리들이 얘기하는 걸 엿들었는데, 그들도 불안해했거든요.”
에드는 짐마차 한쪽에 놔둔 호신용 검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영주님이 베일 가문의 대공을 돕기 위해 영지의 병사들을 몽땅 보내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도적들은 언제나 존재해 왔다. 새삼스럽게 걱정은.”
그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건 그렇고. 에드, 넌 누구에게 검술을 배운 거냐? 네 아버지도 입을 꾹 다물고 있던데.”
“죄송하지만 저도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왜 말 못 해? 그게 무슨 엄청난 비밀이라고.”
“비밀이라기보단, 저는 그분을 존경하거든요. 제가 지금보다 검술이 더 완벽해져서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땐 자신 있게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아니에요.”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에드의 눈빛엔 스승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는 약간의 집안일을 돕는 시간을 제외하곤 매일 늦은 밤까지 호검술과 호심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보고 싶다. 그분은 어디에 계실까?’
도현을 생각하던 그의 귀에 아저씨의 놀란 목소리가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웬 연기가!”
“예? 연기요?”
자리에서 일어선 에드는 언덕 너머 방향을 응시했다. 검고 흰 연기가 뒤섞여 하늘로 자욱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 마을이다!’
언덕을 넘어가면 바로 마을이었다. 불길한 연기는 그곳에서 발생한 것이다.
“아저씨, 서두르세요! 마을에 불이 난 것 같아요!”
“알았다! 꽉 잡아!”
짐마차는 빠른 속도로 언덕을 향해 달려갔고 잠시 뒤 그들은 언덕 너머 마을에 도착했다.
숲을 배경에 두고 생성된 마을 태반이 불타고 있었고, 곳곳에 시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짐마차를 몰고 내려온 호모도와 에드는 끔찍한 마을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신을 재빨리 수습하고 짐마차에서 뛰어내린 에드는 눈앞의 시신들을 살폈다.
검에 찔리고 베인 상처가 대부분이었다. 어떤 시신은 머리가 부서진 채 뇌수를 흘리고 있었다. 등에 화살이 꽂힌 시신도 보였다.
‘마을이 습격당했다.’
에드는 짐마차에서 검을 꺼냈다. 마을은 불타고 시신만 보일 뿐 살아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에드는 미친 듯이 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집은 마을 뒤편이었다.
그러다 그는 뒤를 돌아봤다.
“내 딸, 내 딸!”
홀로 딸을 키우던 아저씨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마을과 조금 떨어진 숲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입술을 깨문 에드는 다시 그의 집을 향해 맹렬히 달려갔다. 달려가면서 그는 도처에 쓰러져 죽은 마을 사람들을 목격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와 같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다크캐슬에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봐 왔지만 남이었기에 관심도 없었고,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20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와 그의 자식들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가슴이 무너졌다.
‘어떤 개 같은 자식들이!’
달리면서 검을 뽑은 에드는 용케 불이 붙지 않은 그의 집으로 몸을 굴리며 진입했다.
“아버지! 토밀!”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옷가지가 널려 있고 가구들은 부서진 채 바닥에 뒹굴었다.
집 안을 수색한 흔적이었다.
‘피?’
부모님의 방으로 길게 핏자국이 연결되어 있었다.
에드는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집에서 기르던 동생의 개가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토밀!”
동생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른 에드는 집 안 곳곳을 뒤졌다.
“에드.”
집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에드는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얼굴에 피를 잔뜩 묻힌 아버지가 방패와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
“놀랄 것 없다, 이마가 찢어졌을 뿐이니까. 따라와.”
주위를 살핀 루드는 에드를 데리고 과일나무 숲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다른 가족들은요? 무사해요?”
아버지의 뒤를 따르며 에드가 급히 물었다.
“우린 무사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도적들이 습격했다. 막아 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어. 싸울 수 있는 마을 사람도 몇 안 됐고.”
다크캐슬에서 생존해 온 루드는 단번에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가족과 일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과일나무 숲으로 피신했던 것이다.
아버지를 따라 과일나무 숲에 도착한 에드는 그곳에 모여 있는 서른 명가량 되는 마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엔 어머니와 동생 토밀, 리샤와 쿠린도 있었다. 그의 가족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에드는 기뻐할 수 없었다. 마을에 쓰러진 수많은 시신은 살아남은 그들의 이웃이자 친구였기 때문이다.
과일나무 숲에 숨어 생존한 마을 사람들은 슬픔 속에 오열하면서도 언제 또 도적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겁에 질려 있기도 했다.
“형! 흑흑.”
토밀은 에드를 껴안으며 눈물을 보였다.
“너 도적들과 싸웠어?”
“응, 이 검으로 찔렀어.”
토밀은 피가 묻은 작은 검을 형에게 보여 줬다.
“잘했어, 진짜 잘했어.”
에드는 놀란 동생의 머리를 팔로 감쌌다. 리샤와 쿠린도 검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에드에게 검을 배운 그녀들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며 마을 사람들과 이곳으로 피했다.
어머니는 커다란 벌목용 도끼를 들고 서 있었다. 다크캐슬에서 벌목으로 돈을 벌었던 그녀는 그 도끼로 도적의 머리를 두 조각 내 버렸다.
“아버지, 호모도 아저씨 딸은요?”
아들의 물음에 루드는 괴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 애는…… 죽었다.”
“아!”
에드는 순간 심장이 멎으며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 숲에 그녀가 보이지 않았을 때부터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들긴 했다.
‘역시 그녀는 죽었어.’
수줍어서 말도 못 하고 귀찮게 졸졸 따라다니던 아저씨의 딸이 이 순간 왜 이리 보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너도 왔으니 이제 큰 마을로 피신을 해야겠다.”
루드는 주도적으로 움직여 살아남은 사람들과 숲길을 이용해 마을을 떠나려 했다.
“에드, 마을 사람들과 먼저 출발해라. 난 호모도를 찾아서 데리고 갈 테니까.”
“제가 갈게요.”
“네가?”
“전 스승님에게 빨리 뛰는 법을 배웠잖아요. 제가 가는 게 빠르죠.”
뒤돌아선 에드는 몇 걸음 걷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마을을 약탈한 도적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서쪽 산을 통해 내려왔다 다시 그쪽으로 사라졌다.”
“그렇군요.”
“에드, 허튼 생각 마라! 도적들은 백 명도 훨씬 넘었다. 그들이 진짜 싸우려 했다면 여기 있는 모두가 죽었을 수도 있었어.”
루드의 걱정스러운 시선에 에드는 감정 없이 답했다.
“안 싸워요.”
에드는 과일나무 숲을 나와 마을로 향했다. 마을을 지나쳐 숲으로 들어간 그는 불탄 집 앞에 엎드려 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그는 참혹하게 목이 잘린 딸의 시신을 안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에드는 낮게 흐느꼈다.
“아저씨…….”
호모도의 심장에 단검이 박혀 있었다. 그는 딸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와 함께 사 온 새끼 돼지 열 마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검을 든 에드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누군가를 맹렬히 죽이고 싶은 감정은 처음이었다.
몸을 돌린 그는 도적들이 사라졌다는 서쪽 산을 응시했다.
“다 죽여 버리겠어!”
에드의 마을을 약탈한 도적들은 길게 꼬리를 물며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몸 이곳저곳엔 마을 사람들을 죽이며 묻힌 피가 얼룩져서 피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일반적인 도적들은 마을을 약탈해도 무자비한 학살은 피한다. 재물이 필요한 것이지 사람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눈에 보이는 마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잔인하게 죽였다. 마치 살인을 즐기는 것처럼.
잡다한 무기로 무장한 백여 명이 넘는 도적들은 산 중턱에 있는 골짜기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한 사내와 조우했다.
“다녀왔습니다, 두목!”
머리를 길게 길러 한쪽 눈을 가린 금발의 중년인은 모닥불에 구워진 뱀을 으적으적 씹으며 손짓했다.
“수고들 했다. 쉬어.”
도적들은 산골짜기에 넓게 퍼져 경계를 서는 한편 마을에서 약탈한 고기들로 저녁 준비를 했다.
“두목, 뱀 고기 질리지 않습니까?”
부두목의 질문에 금발의 중년인 피에메로는 뾰족한 송곳니를 보이며 웃었다.
“너도 뱀 고기에 맛을 들리면 다른 고기는 먹지 못할걸. 먹어 봐.”
뱀의 머리 부위를 보며 부두목은 손사래를 쳤다.
“저는 됐습니다. 많이 드십시오.”
“이 좋은 게 싫다니.”
송곳니로 노린내가 나는 뱀의 대가리를 꽉 문 피에메로는 꼭꼭 씹어 먹으며 부하들을 둘러봤다.
“몇 놈 비는 것 같은데.”
“역시 두목의 눈은 대단합니다, 흩어져 있는데 그걸 바로 알아채시다니. 마을에서 다섯 놈이 죽었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용감하게 싸운 녀석이 있었나 보군.”
“그저 방심하다 당한 겁니다.”
“마을 사람들은 많이 죽였나?”
이 사이에 낀 뱀 고기를 손톱으로 긁어내며 피에메로가 물었다.
“지시하신 대로 일부만 살려 두고 다 죽였습니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그들이 당한 일을 겁에 질려 소문내고 다닐 겁니다.”
“영주 놈의 반응이 궁금해지는군. 작은 마을의 일이라고 무시할까?”
피에메로는 기분 좋은 얼굴로 발밑에 던져 놓은 술병을 들어 입에 댔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그것들이 계속 무너지고 파괴되면 결국엔 영주에 대한 원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파괴한 마을이 몇 군데나 되지?”
“음, 오늘 이 마을까지 합하면 모두 일곱 마을입니다.”
“일곱 군데라…… 그것밖에 안 됐나? 난 좀 더 많은 줄 알았는데 내가 착각을 했군. 더 열심히 해야겠어.”
“저어, 그런데 말입니다, 두목. 영주가 대공을 돕기 위해 병사들을 아무리 많이 보냈다고는 하나, 남은 병력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조금 불안합니다. 용병들이 소집됐다는 정보도 있던데요.”
부두목의 염려 섞인 말에 피에메로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몸 사리고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넌 내가 누군지 알고 있지?”
부두목은 차가운 피에메로의 눈빛에 바짝 긴장된 얼굴로 그의 눈치를 봤다.
피에메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주를 호위하는 기사단의 부단장이었다. 하지만 여러 사고를 친 끝에 실력이 있음에도 결국 기사단에서 축출됐고 떠돌이 신세가 됐다.
“감옥에서 죽을 놈을 살려 내 부두목 자리에 올려놨더니 감히 내게 이래라저래라 참견을 하려는 거냐?”
“그, 그게 아니라 저는 우리 도적단이 더욱 성장해서 더 큰 일을 도모해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도적놈들로 무슨 큰일을.”
피에메로는 어이가 없었는지 부두목을 비웃었다.
“도적놈은 그냥 도적놈일 뿐이야. 엉뚱한 희망 품지 말고 넌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돼. 알겠나?”
“알겠습니다, 두목.”
등을 보이며 멀어져 가는 부두목을 지그시 노려보던 피에메로는 지도를 꺼내 모닥불에 비췄다.
그가 지금까지 약탈한 마을은 비교적 작은 규모였다.
“슬슬 조금 더 큰 마을로 가 볼까?”
기사단에서 쫓겨날 때의 그 모욕감과 불명예는 평생 치유될 수 없는 상처였다.
“최선을 다해 널 괴롭혀 주지.”
영주를 이길 수는 없다. 하지만 밤잠을 설치게 할 수는 있다.
“기사단장 자리를 주지는 못할망정 날 쫓아내? 빌어먹을 자식!”
피에메로는 영주를 욕하며 거칠게 술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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