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 디 임팩트 18권 14화
깊은 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피에메로 도적단의 야영지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그곳을 향해 에드는 소리 없이 접근했다.
‘한 놈도 놓치지 않고 다 죽일 거야.’
야수의 눈빛을 한 에드는 한 발 한 발 도적단의 야영지로 다가갔다.
경계를 서는 몇 외에는 도적들 대부분이 모닥불을 피워 놓은 주위에 뒤엉켜 잠을 자고 있었다.
몸을 숙인 상태에서 에드는 수풀을 기어갔다.
저 앞에 잡담을 나누며 경계를 서는 두 사내가 보였다. 그들은 낮에 벌인 약탈을 화제 삼아 낄낄댔다.
“살려 달라고 빌기에 활로 눈을 쏴 줬지.”
“너무했군. 나처럼 목을 쳐서 고통 없이 죽여 줬어야지.”
“그런가? 크크크.”
“소변 좀 보고 올게.”
“아까 늑대가 보이던데 그거 안 물리게 조심하라고. 소변보다 물건이 잘리는 수가 있어.”
“미친.”
동료와 농담을 주고받은 사내는 경계를 서는 자리에서 벗어나 오줌을 누기 위해 수풀로 들어섰다.
사내가 바지를 내리고 오줌을 누려는 순간, 에드의 검이 번개처럼 튀어나와 사내의 물건을 자르고 목까지 베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사내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즉사했다.
목이 반쯤 베인 시신을 나무에 기대어 놓은 에드는 소변을 보러 간 동료를 기다리다 길게 하품을 하는 도적의 목구멍에 검을 찔러 넣었다.
“크르르르.”
검에 목이 관통된 도적은 공포에 물든 눈빛으로 에드를 쳐다보다 서서히 눈을 감았다.
도적의 시신을 앉혀 놓은 에드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2인 1조로 경계를 서는 또 다른 도적들이 보였다. 그들은 다른 방향을 감시하고 있어서 둘 다 등을 보이고 있는 상태다.
피가 묻은 검을 들고 에드는 대담하게 바로 그들의 등 뒤까지 다가갔다.
등 뒤에서 들리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발소리에 경계를 서는 도적들은 야영지에서 잠을 자던 동료가 다가오는 줄로 착각했다.
“이봐.”
에드의 속삭이는 목소리에 두 사내는 뒤를 힐끔 쳐다봤다.
그 순간, 에드의 검이 수평으로 움직였다.
번쩍이는 검광이 어둠을 갈랐고, 두 도적의 수급은 몸과 분리돼 거의 동시에 공중으로 솟구쳤다.
나무토막처럼 쓰러진 시신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차가운 시선으로 도적들의 시신을 내려다본 에드는 몸을 돌려 야영지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술판을 벌였는지 곳곳에 술통이 어지럽게 굴러다녔다.
‘개새끼들.’
에드는 서너 개의 큰 모닥불 중 제일 가까운 모닥불 주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수십 명의 도적들에게 걸어갔다.
‘왜 그랬어. 재물만 털어 가지, 왜 다 죽였어!’
에드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호모도 아저씨와 그의 딸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왜 죽였냐고!’
마음속으로 울분에 찬 질문을 던진 에드는 잠이 든 도적들 사이를 바람처럼 돌아다녔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피바람이 몰아쳤다.
“컥!”
“허억!”
잠을 자다 목이 베인 도적들은 짧은 신음 소리를 내다 이내 잠잠해졌다.
그들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모닥불에 닿으며 치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뭐, 뭐야?”
잠귀가 밝은 도적은 악귀처럼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다니는 에드를 발견했다.
그가 놀란 사이에 서너 명이 더 피를 뿌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어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든 악귀가 그를 향해 달려왔다.
도적은 에드의 기세에 몸이 굳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노력 끝에 간신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적이다!”
목이 터져라 외치던 그의 심장에 에드의 검이 벼락처럼 빠르게 들어갔다 나왔다.
푸훗.
심장에서 힘 있게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를 보며 도적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깨닫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퍽!
에드의 냉정한 발길질에 머리가 옆으로 꺾인 그는 혀를 길게 내민 채 숨이 끊어졌다.
“적의 공격이다! 일어나라!”
죽은 도적의 경고가 통했는지 야영지가 발칵 뒤집어졌다.
여기저기서 무기를 들고 일어나는 수많은 도적들의 모습을 보며 에드는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래, 깨어나라. 잠이 든 상태에서 죽는 건 너무 편안한 죽음이었어.’
호심공을 통해 모인 내공을 끌어 올린 에드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외쳤다.
“나는! 오늘 너희를! 다 죽일 것이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뭐 하느냐! 당장 죽여 버려!”
부두목의 지시에 집결한 백여 명이 넘은 도적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씹어 먹어 줄게.”
에드는 백여 명의 도적들이 입을 벌리고 고함을 치며 달려오는 모습이 아주 느리게 보였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이 바람을 타고 한참을 허공에서 머물다 땅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저들의 모습은 그렇게 느렸다. 그를 공격하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더 느려 보였다.
스승인 도현은 검의 경지가 올라가다 보면 사물의 움직임이 비약적으로 느려지는 구간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이해가 됐다.
‘정말 그런 거였어.’
에드는 느리게 내려오는 다섯 개의 검과 두 개의 도끼를 피해 내며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여러 번 찔렀다.
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놀라는 모습도 아주 느리게 보였다.
핏방울이 밤공기 가득한 허공에 뿌려지는 모습도 신기하게 다 보였다.
에드는 뒤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살기에 뒤를 돌아봤다.
반월 도끼가 그의 지척에 도달해 있었다.
‘피할 수 있어.’
코앞이었지만 역시 반월 도끼의 속도는 지루할 정도로 느렸다.
고개를 숙여 반월 도끼를 피한 에드는 앞에 보이는 사내의 다리를 베었다.
다리가 잘린 반월 도끼 사내가 아주 느린 동작으로 주저앉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에드에게는 주변을 둘러싼 사물의 모든 움직임이 그런 식으로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느림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몰입한 에드는 점차 위력적인 자신의 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도적들이 느리게 비명을 지르며 차가운 땅바닥으로 우수수 쓰러져 갔다. 치명상을 피한 자들은 에드의 검이 다시 날아들어 명줄을 확실히 끊어 놓았다.
-검을 쓸 때는 가차 없이.
스승인 도현이 그에게 강조했던 말이다. 에드는 스승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쓰러진 도적들의 시신을 밟으며 에드는 조금씩 전진했다. 이제는 누가 누구를 포위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백여 명이 넘었던 도적들의 수는 반도 안 남았고 그들의 표정은 겁에 질려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홀로 싸우는 청년이 우습게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군. 이대로 가면 정말 저 녀석 말대로 우리가 모두 죽을 수도 있겠어.’
멀찍이 떨어져서 싸움을 지켜보던 부두목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의문의 청년도 몸에 상처를 입긴 했지만 그저 스치는 정도에 불과했다.
반도 안 남은 부하들이 저 청년의 손에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하필 두목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피에메로는 밤에만 출몰하는 뱀을 잡으러 갔다. 뱀에 미친 인간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아니고서는 저 녀석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체 저 녀석은 누구지?’
차가운 눈빛으로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는 에드를 보며 부두목은 몸을 떨었다.
‘안 되겠어, 나라도 도망쳐야지.’
결심이 선 그는 뒤돌아서다 흠칫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피에메로가 서 있었다.
“두, 두목, 잘 오셨습니다.”
“저놈은 뭐냐?”
부하들과 싸우는 에드를 보며 피에메로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나서는 자고 있는 저희들을 습격한 놈입니다.”
“음.”
피에메로는 싸우고 있는 에드를 잠시 지켜보다가 뱀이 든 가죽 주머니를 부두목에게 넘겼다.
“검술이 제법인 놈이야. 마나도 어느 정도 있고.”
기사단의 부단장 출신답게 그는 범상치 않은 에드의 검술 실력을 꿰뚫어 봤다.
“죽이기엔 아깝고, 제압해서 부하로 만들면 좋겠어.”
허리의 은색 검을 뽑은 피에메로는 마나의 힘을 전신에 퍼트렸다. 강렬한 기파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네놈이 뭔데 내 제자를 부하로 만들겠다는 거지?”
허공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피에메로는 깜짝 놀라며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웬 사내가 하늘에 둥둥 떠 있었다.
“누구냐?”
“제자를 만나러 온 스승이다.”
하늘에 떠 있던 도현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피에메로의 앞에 나타났다.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파악도 못 한 피에메로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도현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검이 도현의 몸에 닿기 전에 그의 전신이 수십 조각으로 변해 버렸다.
후두두둑.
강자라고 소문난 피에메로가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처참하게 죽자 곁에 서 있던 부두목은 몸을 덜덜 떨었다.
“사, 살려…….”
“같이 가.”
도현의 허리에서 뻗어 나온 빛줄기가 부두목의 전신을 휘감았다. 조각난 육체가 진한 피비린내를 내며 땅을 뒤덮었다.
“음…….”
도현은 몸을 틀어 백 대 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제자를 아픈 눈빛으로 바라봤다.
다크캐슬을 떠나 고향에서 행복하게 살겠거니 하고 찾아왔는데 뜻밖의 불행이 에드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마을에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약탈당한 마을 근처에서 루드를 만난 도현은 에드가 도적단을 쫓아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그 뒤를 따라온 것이다.
“크아아악!”
마지막 도적을 끝으로 에드의 검이 멈췄다.
도적들의 피와 그 자신이 흘린 피로 피범벅이 된 에드는 천천히 도현을 향해 걸어와 무릎을 꿇었다.
“스승님.”
“싸우는 걸 보니 그동안 놀지 않고 열심히 검을 수련했구나.”
도현은 허리를 숙여 피가 묻은 제자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제자는 울고 있었다.
“스승님을 봬서 정말 기쁜데, 웃을 수가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슬픈데 웃을 수는 없지.”
“호모도 아저씨의 딸에게 조금 더 잘해 줄 걸 그랬습니다. 그 애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누구도 미래를 알 수는 없다. 너의 책임도 아니고.”
도현은 시체가 쌓여 있는 도적단의 야영지를 길게 둘러봤다.
“그만 내려가자. 네 아버지가 널 많이 걱정하고 있다.”
제자의 양 어깨를 붙잡은 도현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업혀라.”
“아닙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
“네가 지친 걸 다 알고 있어.”
강제로 에드를 업은 도현은 바람 같은 빠르기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경사진 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휙휙 내려가는 스승의 몸놀림에 에드는 슬픔 속에서도 감탄했다.
‘난 스승님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
“에드.”
“예, 스승님.”
“눈 좀 붙이거라.”
“괜찮습니다.”
에드는 대답을 한 지 얼마 안 돼 바로 잠이 들었다. 슬픔과 분노가 일으킨 감정의 파도가 도현이 나타나며 잔잔해지자 몸 전체를 감쌌던 긴장감이 뚝뚝 녹아내린 것이다.
‘아슬아슬했어.’
사실 그가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도적단 두목에게 에드가 큰 봉변을 당할 상황이었다. 제자를 만나러 온 선택은 정말 잘한 것이었다.
스승과 제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루드를 비롯한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은 과일나무의 숲에 모여 마을의 미래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다.
“도적들도 죽은 마당에 굳이 마을을 버릴 이유가 없지.”
“맞아, 다른 마을에 가서 뭐 해 먹고살 거냐고, 경작지와 과일나무는 모두 이곳에 남아 있는데.”
“이대로 마을을 떠나면 죽은 도적들이 우리를 비웃을 거야. 도적과 맞서 싸우다 죽은 내 아들을 위해서라도 난 마을에 남을 거야.”
마을 촌장이 죽어 그 대신 회의를 주도하던 루드는 사람들의 의견이 한곳으로 모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은 정든 고향 마을을 떠나는 대신 마을을 재건하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에드와 도현이 도적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였다는 소식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희생자들의 장례식 먼저 치릅시다.”
루드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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