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440화 (440/575)

[440] 디 임팩트 18권 15화

어제 있었던 도적단의 습격에서 살아남은 마을 생존자들은 죽은 가족과 이웃들의 시신을 모아 매장한 후, 합동으로 장례식을 치렀다.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작은 마을이라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알고 있던 그들은 유대감이 강한 만큼 그 슬픔이 배가됐다.

에드도 가족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장례식을 지켜보던 도현은 조용히 몸을 돌려 언덕을 내려갔다.

불에 타고 무너진 마을의 집들이 을씨년스럽게 도현을 맞이했다.

꿀꿀꿀.

짐마차에 그대로 방치된 새끼 돼지들이 마차 안에서 밖을 보며 울어 댔다. 어린 돼지들도 마을의 분위기에 눌려 감히 짐마차 밖으로 못 나오는 것 같았다.

“힘들 때 너희들이 왔구나.”

새끼 돼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은 도현은 다시 한 번 마을을 둘러봤다.

“마을을 복구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어.”

삶의 터전을 버리고 갈 수 없었는지 얼마 안 되는 생존자들은 이곳에 남기로 결정했다. 에드네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스승님! 스승님!”

도현은 에드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에드가 마을로 달려오며 초조한 목소리로 그를 찾고 있었다. 짐마차에 가려진 도현을 그는 미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도현은 몇 걸음 걸어 짐마차 옆에 섰다.

“거기 계셨군요! 윽!”

에드는 달려오다 크게 인상을 썼다. 어제 도적단과 싸우다 입은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는 꾹 참고 짐마차 옆에 서 있는 도현 앞에 도착했다.

“왜 그렇게 뛰어오는 거냐.”

“스승님이 안 보이시기에 혹시 떠나신 건 아닌가 싶어서요.”

에드는 장례식 도중 사라진 도현이 그대로 훌쩍 떠났을까 봐 두려웠다.

“별걱정을 다하는구나. 오늘은 떠나지 않아.”

“그럼…… 내일은 떠나신다는 말씀입니까?”

시무룩해진 제자의 표정에 도현은 피식 웃었다.

“말꼬리를 잡는구나.”

“죄송합니다.”

에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제 도적들과 싸울 땐 성난 호랑이 같았는데 지금은 순박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다. 이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는 형편이야. 내일까지 머문 후, 모레 떠날 생각이다.”

“그러시군요.”

에드의 눈빛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외람되지만 무슨 일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잠시 망설이던 도현은 꿀꿀대는 짐마차의 새끼 돼지를 돌아보며 답했다.

“베일 가문의 전쟁에 참전하기로 했다.”

“예? 베일 가문의 전쟁에요?”

에드도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 지역의 영주만 하더라도 그 전쟁에 병사들을 대규모로 파병 중이다.

“누구 편에 서세요?”

“대공이다.”

“아! 대공 편이시군요. 그런데 왜 도우시려는 겁니까?”

에드는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았다.

“그것까진 네가 알 필요 없다. 네가 지금 알아야 할 일은 이 무겁고 어두운 마을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나에게 검을 배워야 한다는 거다. 집중하기 어렵겠지만.”

도현은 헤어지기 전에 제자인 에드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네 마음속에 있는 슬픔을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한다. 할 수 있겠지?”

이틀에 불과한 시간 동안 도현의 검을 얼마나 흡수할지는 에드의 집중력에 달려 있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부진 음성과 눈빛으로 에드는 크게 대답했다.

“믿어 보마. 눈빛이 흐릿해지면 너는 그날로 내게 죽는 거야.”

도현의 과격한 표현에 오히려 에드는 미소를 보였다. 스승의 관심과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목재를 준비하려면 고생 좀 하겠어.”

“어쩔 수 없지.”

불탄 집의 잔해들을 거둬 내던 마을 사람들은 새로 집을 지을 생각에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마을 바로 뒤편 숲의 나무는 집을 지을 목재로 적합하지 않아서 제법 거리가 있는 산에서 나무를 잘라 와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 저게 뭐야?”

놀라는 마을 사람들 목소리에 루드는 뒤를 돌아봤다.

도현이 거목을 통으로 잘라 머리 위로 들고 날듯 달려오고 있었다.

쿠웅!

거목이 마을 한복판에 떨어지는 순간,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잔가지가 다 쳐진 완벽한 통나무는 길이가 거의 20미터에 가까웠고 그 두께는 어른 두 명이 양손으로 감싸야 할 정도였다.

근처 산에서 자라는 거목으로, 집을 짓는 데 가장 좋은 나무였다.

“어떻게 저 무거운 나무를 들고 올 수가 있는 거지?”

마을 사람들은 너무 놀라 멍하니 거목 옆에 서 있는 도현을 쳐다보기만 했다.

에드의 검술 스승이라는 말을 루드에게 듣기는 했지만 저런 놀라운 능력까지 갖춘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루드는 정신을 차리며 도현에게 다가갔다.

“수십 명이 달려들어도 들 수 없을 무거운 나무인데…….”

“산에 몇 개 더 잘라 놨으니까 가지고 오겠습니다.”

“고맙소!”

루드가 환한 얼굴로 외치는 목소리에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순식간에 마을을 벗어나 인근 산으로 들어갔다.

그는 잘라 놓은 거목으로 향하는 길에 에드에게 들렀다.

에드는 도현에게 지적받은 호검술의 부족한 부분을 고민하며 아주 느리게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장례식을 치르며 슬퍼하던 에드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눈빛이 아주 고요하고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역시 자질이 특출해. 다크캐슬에서 신법의 묘리를 금방 습득하더니 검도 마찬가지야.’

정신력도 아주 훌륭했다. 도현의 걱정과는 달리 에드는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잘 극복해 내고 있었다. 아니, 극복이라기보다는 검을 익히는 원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 같았다.

제자를 대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도현은 소리 없이 에드로부터 떨어져 비탈진 산에 누워 있는 거목에 다가갔다.

아까 그가 잘라 놓은 거목 중 하나였다.

허리의 검을 뽑은 그는 거목의 잔가지를 빠르게 쳐 냈다.

마을이 안정되려면 다른 무엇보다 그들이 머물 집이 우선 완성돼야 한다. 리샤와 쿠린으로부터 숲의 나무가 집을 짓는 데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들은 도현은 에드에게 검을 전수해 준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마을 사람들을 도울 요량으로 거목을 벌목했다.

“으차!”

엄청난 내공의 힘으로 거목을 들어 올린 도현은 산의 나무들을 요리조리 피해 땅으로 내려간 후, 빠른 속도로 마을로 달려갔다.

중간에 토밀이 거목을 들고 달리는 도현을 따라가며 외쳤다.

“스승님! 저 그 나무 위에 한 번만 타면 안 될까요?”

어제의 슬픔을 억지로 잊으려는 듯 토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도현은 토밀을 거대한 통나무 위에 태웠다.

“아저씨! 저희들도 태워 주세요!”

토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눈치를 보며 달려왔다. 도현은 땀이 흐르는 얼굴로 아이들을 내려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들도 거목 위에 태웠다.

“떨어지지 않게 나무에 바짝 엎드려 있어라. 알겠지?”

“네!”

토밀과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합창을 하듯 외쳤다.

피식 웃은 도현은 바로 갈 수 있는 마을을 외곽으로 빙 돌아서 한참을 태워 준 후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안 내려와, 이 녀석들아!”

루드가 불호령을 내리자 토밀을 비롯한 아이들은 후다닥 도망을 갔다. 그러나 그들은 곧 다시 돌아와 불탄 집의 잔해들을 나르며 어른들을 도왔다.

‘이 정도면 되겠지?’

쿠웅!

여덟 번째 거목을 내려놓은 도현은 땀을 닦다가 주위를 돌아봤다.

마을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루드, 통나무를 원하는 대로 잘라 드릴 수 있습니다.”

“고맙긴 하지만 너무 부려 먹는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걱정 말고 말씀하십시오.”

루드는 생존자 중 집을 가장 잘 짓는 남자를 불러왔다. 그는 도현을 어려워하며 그가 집을 지을 때 설계한 종이를 내밀었다. 그곳엔 뼈대로 쓰일 기둥과 각각의 나무 사이즈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걸 다 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대충 통나무를 몇 조각으로만 잘라 주셔도…….”

루드는 도현을 편하게 대했지만 마을의 목수로 불리는 이 남자는 도현이 아주 어렵게 느껴져 말이 조심스럽게 나왔다.

“음, 이렇게 잘라 달라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이건 정확히 어떤 모양입니까? 종이의 그림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데요.”

“이렇게 안이 파인 모양입니다. 그 위에 나무를 끼워 맞출 거거든요.”

“아, 못이 필요 없겠군요.”

도현은 남자의 집 구조가 못 없이 한옥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맞습니다. 뭘 좀 아시는군요.”

남자는 기뻐하며 웃다가 도현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들 옆으로 비켜 주시겠습니까?”

도현은 마을 한복판에 길게 늘어놓은 통나무 사이를 지나치며 검을 휘둘렀다.

쉬쉬쉬쉭!

번쩍거리는 검광이 통나무를 쉴 새 없이 지나쳤고 그럴 때 마다 집 재료로 사용될 목재가 일정한 형태를 띠며 나타났다.

기둥이 완성되는가 싶더니 일정한 크기의 반듯반듯한 널판도 만들어졌다. 심지어 복잡한 모양의 목재도 뚝딱 완성됐다.

“와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절로 탄성을 터트리며 놀라워했다. 특히 마을의 목수로 지칭되는 남자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검으로 이렇게 완벽한 목재 형태를 만들 수 있다니.

“역시 우리 주인님이야. 대단해.”

언제 왔는지 디엘르의 시녀였던 푸른 눈의 리샤와 쿠린이 감탄했다.

그들은 여전히 도현을 주인님이라고 칭했다. 도현은 그녀들에게 자유를 줬지만, 그는 그녀들에게 여전히 주인님이었다.

“리샤, 주인님이 떠날 때 혹시 우리를 데려가시지 않을까?”

주근깨가 얼굴에 난 귀여운 얼굴상인 쿠린이 말했다. 그러자 리샤는 고개를 저었다.

“불행히도 안 된다고 하셨어.”

“뭐? 너 벌써 물어본 거야?”

“응, 아침에. 우리에게 자유를 줬으니 그걸 누리래. 더 이상 우리들은 그분 종이 아니니까.”

“그래…… 하긴 에드 오빠 가족하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지. 앤 아주머니도 우리에게 잘해 주시고. 어제 그 일만 없었으면 참 행복했을 텐데.”

쿠린은 현재 생활에 만족했다.

“그래도 난 주인님과 함께했으면 좋겠어.”

“너 주인님 좋아하는구나?”

쿠린의 말에 리샤의 얼굴이 붉어졌다.

“뭘 좋아해. 디엘르로부터 구해 주셔서 고마워하는 거지.”

“꿈 깨. 주인님같이 강한 사람은 영주의 딸과도 결혼할 수 있을 텐데, 널 좋아하시겠어?”

“닥치지 못해!”

장난을 치는 쿠린의 머리를 쥐어박던 리샤는 옆에 도현이 서 있자 딸꾹질을 하며 손을 내렸다. 순식간에 통나무를 손본 도현이 어느새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왜들 싸우고 있지?”

“싸, 싸우는 거 아니에요.”

당황한 리샤는 쿠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우린 사이좋아요. 그렇지, 쿠린?”

“응.”

도현은 물끄러미 리샤와 쿠린을 바라봤다.

이들이 에드네 가족과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됐다.

“어제 다치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진정성이 담긴 따뜻한 도현의 말 한마디에 리샤와 쿠린은 가슴이 뭉클해져 한동안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도현이 에드의 마을에 머문 지 이틀째.

용병으로 구성된 도적 토벌대 백여 명이 뒤늦게 마을에 도착했다. 대공을 돕기 위해 많은 병력을 파견한 영주가 최근에 문제를 일으키는 도적단을 좌시할 수 없어서 용병들을 고용한 것이다.

용병들은 인근에서 도적단을 추적하다가 에드의 마을이 약탈당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급히 달려왔다.

용병들이 줄지어 마을로 들어오자 집을 짓던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그들에게 모였다.

“도적이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왔소. 그놈들을 찢어 죽여 줄 테니 어디로 갔는지 말해 주시오.”

거친 언사로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표출한 토벌대 대장은 마을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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