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 디 임팩트 18권 17화
동생들이 걱정할까 봐 전쟁터에 간다는 말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리샤가 말을 꺼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에드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이 이럴 때 떠나려 해서 너희들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이 과정은 내게 꼭 필요한 거야. 스승님의 검을 좀 더 빠르게 배우기 위해서라도.”
방 안은 조용해졌다. 전쟁터에 간다는 에드를 다들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형, 안 가면 안 돼? 형이 도적들을 다 죽일 만큼 강한 건 알지만 전쟁터엔 훨씬 강한 사람들이 많을 거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가는 거야. 그들과 싸우며 강해지기 위해.”
“그러다 죽으면?”
리샤가 아름다운 눈으로 물었다. 그 눈빛에 마음이 잠시 흔들리던 에드는 힘주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안 죽어.”
“어떻게 장담해?”
“난 스승님의 제자니까. 그리고 너희들의 형이자 오빠니까. 엄마, 아빠의 자랑스러운 아들이니까. 이런 내가 죽을 거 같아?”
근거 없는 말이었지만 에드의 말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에 토밀과 리샤, 쿠린은 그 말을 진짜라고 받아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내일 주인님이 허락 안 하시면 어쩔 거야?”
“할 수 없지, 받아들일 수밖에. 자, 다들 가까이 모여 봐.”
동생들과 머리를 맞댄 에드는 서로 어깨동무를 하도록 시켰다.
“만약 내가 떠나도 항상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해. 내가 알려 준 검술은 매일 반복해 연습하고. 할 수 있지?”
“응.”
“돌아와서 확인할 거야.”
에드가 씨익 웃자 동생들도 그를 따라 씨익 웃었다.
이른 새벽, 횃불로 어둠을 몰아내며 산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도적단의 최후를 확인하러 간 토벌대였다.
서쪽 산을 내려온 그들은 마을 근처에 세워 놓은 그들의 마차에 산에서 수습해 온 백여 명이 넘는 도적들의 시신과 소지품들을 던져 넣었다.
도적들의 시신은 늑대와 날짐승 들의 먹이가 되어 정상적인 게 하나도 없었다.
“바로 출발해.”
까마귀 용병대 대장은 도적단이 괴멸됐다는 증거품을 담은 시신 마차와 경과를 적은 편지를 부대장에게 주어 출발시켰다.
계약을 맺은 영주의 관리가 확인하면 용병대의 의무도 끝난다.
‘희생도 없이 돈을 벌었군.’
까마귀 용병대 대장은 이번 토벌 건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싸우지 않고 계약이 끝났기 때문이다.
‘피에메로, 그자가 정말 도적단을 이끌고 있었다니.’
도적단의 두목이 기사단 출신 피에메로라는 말이 떠돌긴 했지만 확인된 정보는 아니었다. 그러나 도적들이 몰살된 산에서 기사단 고유의 문장과 피에메로의 이름이 표시된 검과 반지를 발견했다. 그것으로 보아 도적단의 수괴는 그가 틀림없었다.
‘그자는 검술이 매우 뛰어나서 상대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자라고 들었어. 만약 그자와 내가 붙었다면…… 장담할 수 없었을 거야.’
부하가 내미는 술병을 받아 목을 축이던 그는 바위에 앉아 있는 도현을 뒤늦게 발견했다.
“잠을 안 잔 거요, 아니면 일찍 일어난 거요?”
까마귀 용병대 대장이 웃으며 물었다.
“일찍 일어난 겁니다.”
“지나치게 일찍 일어났군. 아직 이른 새벽인데 말이오.”
“고민거리가 있어서.”
“무슨 고민 말이오?”
“그럴 일이 있습니다.”
까마귀 용병대 대장은 자신이 마시던 술병을 도현에게 내밀었다. 도현은 술병을 받아 크게 한 모금했다.
“시원하게 아주 잘 마시는군, 독한 술인데.”
술병을 다시 건네받은 까마귀 용병대 대장은 도현의 옆에 주저앉았다.
그의 부하들은 공터에 천막을 치고 뒤늦게 잠을 자려고 했다.
“잠 좀 자고 낮부터 마을 일을 도울 생각이오.”
“용병대가 마을 재건을 돕는다고 했더니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더군요.”
“서로 주고받는 것이지 뭐.”
화통하게 말을 한 그는 피에메로의 죽음에 관해 물었다.
“도적단의 두목은 이 지역 영주의 부기사단장이었던 피에메로란 자요. 혹시 알고 있었소?”
도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랐습니다.”
“음, 모르고 있었군.”
술을 마신 그는 도현의 옆모습을 보며 넌지시 물었다.
“험, 그런데 말이오. 아직 혼자면 우리 용병대에 들어오는 게 어떻소? 서로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지금은 혼자가 아닙니다. 같이 다니는 일행이 있습니다.”
“아, 그러시오?”
까마귀 용병대 대장은 아쉬움을 삼키며 술병을 기울였다.
“난 오늘 떠날 겁니다. 내가 없더라도 마을 재건에 힘써 주십시오.”
“걱정 마시오, 내 이름을 걸고 도와줄 테니.”
“감사합니다.”
도현은 헬스콧에서 우연히 만난 용병대 대장과 다시 이어진 인연이 신기해서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바위에서 일어섰다.
“피곤할 텐데 그만 눈 좀 붙이시죠.”
“만나자마자 이별이로군. 우리 용병들 인생이 그렇지.”
까마귀 용병대 대장은 거친 손을 내밀었다. 도현은 그의 손을 맞잡아 악수를 했다.
“또 봅시다.”
“네.”
도현은 몸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에드의 집 앞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루드와 마주쳤다.
“왜 나와 계십니까?”
“잠이 잘 안 와서…… 혹시 결정은 내리셨소?”
다크캐슬에서부터 친하게 지내 온 루드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 도현이 담담히 답했다.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도현의 대답에 루드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고맙소. 그 녀석이 실망은 안 하겠군.”
“에드 성격에 당신이 가지 말라고 했다면 그대로 따랐을 겁니다. 왜 허락한 겁니까?”
“좋은 스승을 따라간다는데 어떻게 막겠소. 그곳이 전쟁터라도 보내야지.”
그의 대답에 도현은 잠시 말이 없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좋은 스승이라면 그를 데리고 간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날이 밝자 도현은 에드를 데리고 마을을 떠났다. 멀리서 마을 사람들과 에드네 가족이 손을 흔들어 줬다.
“에드.”
“네, 스승님.”
스승을 따라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찬 에드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쟁터에 가면 내가 늘 네 옆에 있어 줄 수는 없다. 그땐 네 스스로 몸을 지켜야 해.”
“걱정 마세요, 스승님.”
힘차게 외치던 에드의 목에 도현의 검이 소리 없이 다가와 닿았다.
차가운 검의 감촉과 싸늘한 스승의 눈빛에 들떠 있던 에드의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너무 장담하지 마. 그럴 때 방심하게 되니까.”
“……알겠습니다, 스승님. 새겨듣겠습니다.”
검을 거둔 도현은 산을 향해 신법을 발휘했다.
“목적지는 몬테지오다. 뒤처지면 그냥 놔두고 갈 거야.”
스승의 경고에 에드는 부리나케 도현의 뒤를 쫓아갔다.
몬테지오
에드는 스승인 도현과 몬테지오로 가는 여정 중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검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가 스승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스승의 진짜 정체에 관해서…….
모닥불 앞에서 고기를 뜯어 먹던 에드는 스승의 얘기에 너무 놀라 먹던 고기를 땅에 떨어트렸다.
놀란 눈으로 모닥불 너머 스승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던 에드는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리며 떠듬떠듬 물었다.
“이, 이계에서 오셨다고요?”
“어떤 말을 해도 놀라지 않을 거라더니 왜 그리 놀라지?”
도현은 단검으로 고기 한 점을 잘라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물었다. 하지만 그도 에드가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됐다.
“씨드 얘기보다 더 놀라운 얘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세상에…… 다른 세계에서 오셨다니. 절 놀리시는 거 아니죠?”
어제는 스승으로부터 거인의 섬 이야기를 들었다. 몬테지오에서 스승을 기다리는 친구들과 함께한 모험 이야기였다.
그 놀라운 이야기에 빠져 에드는 밤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원래 말 안 해 주려 했는데, 몬테지오에 있는 내 친구들과 만나면 자연스레 네가 듣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아서 미리 말해 주는 거다. 그때 놀라지 말라고.”
스승의 얼굴엔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
“마셔라.”
도현이 모닥불 너머로 술병을 툭 던졌다. 술병이 땅에 떨어지기 전 재빨리 낚아챈 에드는 술을 몇 모금 마셨다.
술기운으로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에드는 스승이 어떻게 지구라는 곳에서 이 세계로 오게 됐는지 듣게 됐다.
“그럼 차원의 힘이 다되면 스승님은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겁니까?”
“그렇다. 그 전에 돌아가지 않으면 난 영원히 이 세상에 머물러야 해.”
에드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도현을 응시했다. 아직 뭐가 뭔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지만, 스승의 진짜 집이 이곳이 아닌 차원 너머 다른 세계라는 게 묘하게 서운했다.
“그냥 이쪽 세상에서 사시면 안 됩니까? 제자가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도 보시고요.”
에드의 말에 도현은 피식 웃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에드, 나도 그러고 싶지만 저쪽 세계에도 너처럼 나를 좋아하고 기다려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도.”
“아! 그럼 안 되겠네요. 사랑하시는 분이 그곳에 계시다면 당연히 가야죠, 하하하!”
에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바로 깨닫고 어색한 웃음을 터트렸다.
“지구에도 너처럼 호검술을 배우는 제자들이 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전 어떻습니까?”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모닥불을 뒤적였다. 붉은 불씨가 허공으로 비상했다.
“네가 최고다.”
“와우!”
벌떡 일어선 에드는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스승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었다.
“앉아.”
도현의 조용한 한마디에 에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모닥불 앞에 다시 앉았다.
“남은 시간은 1년이 안 된다. 아니, 훨씬 짧지.”
그의 말에 에드의 눈빛이 깊어졌다.
“누구든 이별을 한다. 그 이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서로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달렸지.”
말을 잠시 끊은 도현은 고개를 약간 숙인 에드를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름다운 이별을 만들어 보자. 전쟁터에서 다치지 말고.”
“예…….”
“너무 그렇게 처질 필요 없다. 차원의 힘을 보충하면 언제고 난 이 세상을 또 방문할 수 있으니까.”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던 에드는 고개를 들어 도현에게 웃음을 보였다.
“꼭 그러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스승님.”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텐데도 에드는 믿음직스럽게 대답했다.
제자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도현은 모닥불 위에 구워진 고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 리타가 챙겨 준 향신료가 뿌려져서 그런지 사슴 고기는 맛이 훌륭했다.
“저어, 스승님, 대공의 전쟁에 참전하는 이유를 이제 들을 수 있습니까?”
“오늘 그 이야기까지 들으면 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질 텐데.”
“그래도 듣고 싶습니다.”
도현은 듣고 싶다는 제자에게 바크 드라모스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계의 용요!”
에드는 먹으려던 고기를 또다시 떨어트리고 말았다. 스승의 정체도 감당하기 버거웠는데 이계의 용까지…….
아무래도 오늘 밤 잠은 다 잔 것 같았다.
모닥불을 정리한 그들은 산등성이를 타고 이동했다. 에드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하자 도현은 몬테지오에서 기다릴 동료들을 좀 더 빨리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 것이다.
도현과 함께 이동하며 신법이 조금 더 다듬어진 에드는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스승님, 지구에 있다는 스승님의 여인은 어떤 분이십니까?”
“궁금하냐?”
“예! 많이 궁금합니다!”
뒷짐을 지고 신법을 발휘하던 도현은 홍영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다. 저 별처럼 말이야.”
도현은 밤하늘에 별 무리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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