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 디 임팩트 18권 19화
“아, 아닙니다.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면 왜 그러는 건데?”
에드는 진땀을 흘리며 리타와 짐브리오를 번갈아 봤다.
자신을 두고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것 같기도 해서 무척 난감했다.
난처한 얼굴로 에드는 도현을 돌아봤다.
“스승님, 어디에 앉습니까?”
“그건 네가 결정해야겠지.”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어베인과 딘 사이에 먼저 앉았다.
“너 계속 서 있을래? 사내자식이 왜 이렇게 결단력이 없어? 아, 어느 쪽이야?”
짐브리오의 재촉에 에드는 눈을 질끈 감고 두 사람이 아닌 리드만 사제의 옆에 앉았다.
“순발력 있네.”
그의 결정에 짐브리오와 리타는 아쉽다는 눈빛으로 입맛을 다셨다. 두 사람 중 한 명을 선택했다면 계속 놀리면서 장난을 칠 수 있었는데, 그 함정을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온화한 미소를 지은 리드만 사제는 나무 접시에 음식을 담아 에드의 앞에 내려놨다.
“감사합니다.”
“난 리드만이네.”
리드만 사제의 소개를 시작으로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이 정식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여관의 식당엔 그들밖에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에드는 마치 집 안에 모여 인사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자네 제자 얼굴을 봐서 기쁘긴 한데, 그는 왜 데려왔나?”
어베인은 눈으로 에드를 바라보며 도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은 모두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다들 궁금한 얼굴로 도현을 응시했다.
“저와 당분간 같이 다니기로 했습니다.”
“베일 가문의 전쟁에도 말인가?”
“네, 실전을 경험하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틈틈이 검도 가르치고요.”
도현의 대답에 사람들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저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터에 죽으러 가는 건 아니다. 싸워서 이기러 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에드는 풍부한 실전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다만, 기본 실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리드만 사제처럼 싸움에 직접 뛰어들지 않을 사람이라면 모를까, 에드 같은 경우엔 도현의 옆에서 같이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너 싸움 좀 하냐?”
짐브리오는 잔에 술을 따르며 에드에게 넌지시 물었다. 다크캐슬에서 도현의 검술을 배웠다지만 아직 실력이 완성됐을 것 같지는 않았다.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할 줄 압니다.”
에드는 스승의 친구들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조금이면 뭐, 어느 정도? 서너 사람과 동시에 붙어서 싸워 봤어?”
“아니요. 조금 더 많은 사람들과 싸워 봤습니다.”
“그럼 열 명? 그래, 그 정도 실력은 되겠지. 아무렴, 도현의 제자인데.”
짐브리오는 미루어 짐작하며 술잔을 입게 가져갔다.
“백 명이 넘었습니다.”
“커헉.”
입안에 술을 뿜어낸 짐브리오는 놀란 얼굴로 에드를 쳐다봤다.
“백 명과 싸워 봤다는 거냐? 혼자서?”
“네, 마을을 습격한 도적들이었습니다.”
에드는 괜히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러운 표정으로 조용히 답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스승의 친구들에게 짐짝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놀라는 짐브리오와 주변 사람들에게 도현이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제가 가는 날 흉악한 도적단이 에드의 마을을 습격했습니다. 마을이 불타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죠. 그 복수를 하기 위해 에드는 산으로 간 그들을 추적했습니다. 제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홀로 백여 명의 도적들과 맞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더군요. 바닥엔 이미 죽은 자가 수십이었고요.”
도현은 말을 잠시 끊고 에드의 얼굴을 보다가 마저 설명을 했다.
“에드는 백여 명의 도적들을 모두 죽인 후 마을의 복수를 끝냈습니다.”
사람들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에드를 다시 봤다. 도현에게 검을 배운 지 얼마 안 된 청년이라고 생각해 조금은 가볍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적들의 수준이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설사 약한 도적 백 명이라도 혼자 싸워 그들 모두를 죽이려면 보통 검술 실력 가지곤 어림도 없을 것이다.
또한 검술 실력도 실력이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독심도 필요하다. 피를 흘리며 살려 달라는 도적들에게 무자비한 칼날을 휘두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의 복수라고는 하나, 어린 나이에 이미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정함까지 갖췄다.
“이 녀석 무서운 놈이네. 도현을 닮아서 그런가?”
짐브리오는 얌전하게 앉아 있는 에드에게 술잔을 건넸다.
“아무튼 잘 왔다. 그 정도 실력이면 눈치껏 살아남을 수 있겠네. 너, 그런데 네 스승이 어디서 온 사람인지 알아?”
“예,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면서 들었습니다. 다른 이야기들도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다니기로 한 이상 에드에게만 비밀을 만들 수는 없었다.
에드와 대화를 나누며 저녁 식사를 마친 그들은 2층 그들 숙소로 향했다.
한 방에 다시 모인 그들은 앞으로의 계획을 짰다.
“도처에서 싸움이 벌어져 붉은 성으로 가는 길에 몇 번은 싸움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네. 사자 동맹군이 점령한 지역에선 더더욱.”
전쟁 지역과 바로 인접한 몬테지오라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의 전황과 그쪽 소문들이 빠르게 유입되는 형편이었다.
“사자 동맹군은 그들이 발행한 허가증이 없으면 상인들도 다 죽일 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하네. 최근에 대공을 지지하는 ‘베일 연합군’의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부터 말이야.”
“브링틱이나 항구도시 누마에서 듣던 정보와는 좀 다르군요.”
“나도 좀 의외였네. 대공이 꺼져 가는 촛불처럼 느껴졌었는데, 여기 와서 들은 이야기들은 조금 달라. 아니, 그사이 상황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지. 아무튼 대공이 어떤 수를 썼는지 몰라도 몇몇 영주들이 베일 연합군에 군사를 대거 보내면서 전쟁의 기류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졌어.”
“희망이 좀 생기는군요.”
대공의 승리를 위해 싸워야 할 도현의 입장에서는 나쁜 징조가 아니었다.
“내일 떠나기 전에 마법 주머니에 물품을 꽉꽉 채우자고, 전쟁 물자든 뭐든. 어디서 뭐가 필요할지 모르니까.”
짐브리오는 마법 주머니를 꺼내 손바닥으로 주머니 겉을 탁탁 소리 나게 쳤다.
“있으면 자주 사용해야지, 흐흐흐.”
에드를 제외하고 모두 마법 주머니가 있기 때문에 많은 물품들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
화살
구름이 떠가는 푸른 하늘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나타났다. 수백 미터 상공에서 사방을 살피던 까마귀는 일단의 병사들이 숲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눈여겨보더니 방향을 바꿔 마을 쪽으로 이동했다.
3천여 명쯤 되어 보이는 사자 동맹군 소속의 병사들이 마을 외곽 지역에 주둔하는 게 보였다.
‘이쪽은 병사들이 꽤 많네.’
까마귀 마법으로 정찰을 하던 리타는 병사들 위를 지나 조금 더 앞으로 갔다.
곡식이 익어 가는 들판에서 일을 하는 많은 마을 주민들이 보였다. 그들은 전쟁 속에서도 그들의 생업을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았다.
정찰을 하던 까마귀는 잠시 후 수백 개의 검은 깃털로 변해 하늘에서 종적을 감췄다.
리타는 작은 숲에서 눈을 떴다. 주변엔 도현을 비롯한 일행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몬테지오를 떠난 지 오늘로 6일.
중간에 사자 동맹군 소속의 병사들과 싸움이 몇 차례 있긴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순조롭게 붉은 성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 밑바탕엔 리타의 까마귀 흑마법이 존재했다.
그녀는 까마귀로 변해 하늘에서 그들이 갈 방향을 미리 정찰한 후, 위험성이 적은 길로 안내했다.
마나가 워낙 많이 소모되는 까마귀 흑마법이어서 오래 지속하거나 자주 사용할 순 없었지만, 일행에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까마귀 흑마법을 사용한 리타는 약간 피곤한 얼굴로 정찰의 결과를 설명했다.
“숲이 끝나는 언덕 너머 마을에 사자 동맹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어.”
“몇 명이나?”
“3천 명 정도. 조금 더 많을 수도 있고. 마을 옆을 지나가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도현과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전쟁터 깊숙이 들어가고 있는 게 맞긴 하군. 적의 병력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면 말이야.”
갑옷에 피가 얼룩진 영주 딘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갑옷에 묻은 피는 어젯밤에 만난 사자 동맹군의 것이었다.
숲에 야영을 하던 그들을 밤에 수백 명의 사자 동맹군들이 덮쳤는데, 어두운 숲 속에서 그야말로 피가 튀고 뼈가 잘리는 전투로 번졌었다.
그들을 물리치는 과정에 딘은 실로 오랜만에 마음껏 검을 휘둘렀다.
-전쟁터의 검은 오로지 죽이기 위한 검이야.
딘은 옆에서 싸우던 에드에게 이렇게 말하며 적의 투구와 얼굴을 동시에 반으로 잘라 버리기도 했다. 그 피의 흔적이 딘의 갑옷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리타의 정보를 바탕으로 일행은 마을을 지나치는 빠른 길을 포기하고 중간에 방향을 틀어 오른쪽 산으로 들어갔다. 3천 명과 싸우기보다는 조금 고생하더라도 산을 넘기로 한 것이다.
철가면 휴반트는 대공의 지원 세력이 가끔 이용한다는 산의 길목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자 동맹군의 지휘부는 병든 벨피타 영주의 대리인으로 온 그를 치열한 전장이 아닌 이곳으로 보냈다.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진 바도 없었고 같이 온 군사라고 해 봐야 기병 수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철가면 휴반트는 잠자코 그들의 지시를 따랐다. 벨피타 영주의 얼굴을 봐서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이 산속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것도 슬슬 한계에 부딪치고 있었다.
‘가서 다들 죽여 버릴까?’
사자 동맹군 지휘부에 소속한 수십여 명의 영주들을 죽여 자신을 홀대한 책임을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산속 바위에 앉아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그는 손에 든 돌 조각을 가루로 만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산을 내려간다.”
그의 지시에 지루하게 산에서 매복하고 있던 수백의 병사들이 이동을 위해 그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빠르게 모여들었다.
“휴반트 경!”
그때 병사 한 명이 달려와 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뭐냐?”
“산을 지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대공 측 군사들인가?”
“복장으로 봐서는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몇 명이지?”
“모두 여덟 명입니다. 여자 둘에 여섯은 남자. 여자 중 한 명은 어린 소녀였습니다.”
부하의 보고에 휴반트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중저음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놈들은 무시한다.”
이미 위에서 시킨 일 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난 너희들의 부하가 아니야. 벨피타 영주가 너희들을 도우라고 해서 왔을 뿐이지.’
휴반트는 부하들을 이끌고 산을 그대로 내려와 버렸다. 그는 인근에 있는 마을 외곽의 주둔지로 가 맡겨 놓은 말들을 찾아 부하들에게 돌려줬다.
기병인 그의 부하들은 오랜만에 만난 말의 상태를 점검하느라 바빴다.
“휴반트 경, 산은 어쩌고 이대로 떠나려는 거요?”
3천 명의 병력을 지휘하는 사자 동맹군 소속의 지휘관이 물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지나가는데, 내가 얼마나 더 그곳에서 시간을 낭비해야겠소.”
“그래도 위에서 내려온 임무는 지켜 줘야 우리 사자 동맹군 지휘 체계가 유지되는 게 아니겠소?”
“내가 저 산을 비운다 해서 대세에 영향이 있겠소? 내가 그리 중요한 존재인가? 그렇다면 나를 저런 곳에 보내서는 안 되지.”
휴반트는 냉소를 흘리며 뒤를 돌아봤다.
말을 점검한 그의 부하들이 수백 필의 말에 올라타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만 떠날 테니 위에 보고를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하시오. 가자!”
철가면 휴반트를 필두로 수백의 기병들이 몰려오자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주둔지 병사들이 일제히 반으로 갈라졌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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