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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45화 (445/575)

[445] 디 임팩트 18권 20화

주둔지 지휘관은 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떠나는 휴반트를 뒤에서 욕했다. 투구도 아니고 철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하는 짓도 개 같았다.

뒤에서 욕설을 내뱉던 지휘관은 주변의 부하들이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미간을 찌푸렸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손으로 얼굴을 만져 보려는 순간, 그의 얼굴이 반으로 쪼개지며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왜?’

주둔지 지휘관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누구에게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말을 몰고 가던 휴반트는 뒤를 힐끔 쳐다봤다. 지금쯤 주둔지 지휘관의 얼굴이 두 조각 났을 것이다.

‘뒤에서 내 욕을 하게 놔둘 줄 알았나?’

휴반트는 철가면 속에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휴반트 경, 영지로 복귀하는 겁니까?”

옆에서 말을 모는 부하의 물음에 휴반트는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그럴 수는 없지. 이대로 가면 영주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게 아니겠느냐?”

“그러시면?”

“대공을 잡으러 간다.”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헬구스는 사자 동맹군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가는 곳마다 놈들이 마을과 성을 차지하고 있군.”

벌써 열흘 넘게 마을에 들르지 못했다. 술이 떨어져 미칠 지경이었다. 잠자리와 음식은 대충 해결해도 술은 마을에서 구하지 않는 한 어떻게 마련할 방도가 없었다.

“대체 밀튼 영주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거요? 이 부근에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소?”

헬구스는 짜증 섞인 눈빛으로 옆에 서 있는 윌벤슨을 응시했다.

“아무래도 대공이 있는 붉은 성으로 간 것 같네. 적들의 방어막이 튼튼해 그곳까지는 미처 가지 못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말이야.”

“그럼 이제 붉은 성으로 가야 한다는 거요?”

“그래야 하지 않겠나?”

윌벤슨이 웃으며 말하자 헬구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웃음이 나오시오? 난 밀튼 영주를 만나 술 마실 생각만 했는데.”

“그 생각, 잠시 뒤로 미루면 되잖은가?”

“안 되니까 그러지!”

헬구스는 언덕을 내려가는 윌벤슨과 비버의 등을 보며 씩씩댔다.

“이봐, 칼라치, 이러지 말고 몰래 마을에 숨어 들어가 술 한 통만 어깨에 짊어지고 오자고.”

“술이 마을에만 있는 건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리야?”

“윌벤슨이 사자 동맹군 부대 하나를 습격하자더군.”

칼라치의 말에 헬구스의 눈이 살짝 커졌다.

“뭐라고? 녀석들을?”

“그는 고대 병사의 힘을 흡수한 나의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어 해.”

“미친 마법사 같으니라고. 그런 이유로 대규모 적과 싸우라는 게 말이 돼? 안 그래, 이디언?”

헬구스는 이디언에게 그렇지 않느냐는 식으로 동의를 구하며 쳐다봤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칼라치를 위해 도움이 되는 싸움이에요.”

“어째서?”

그녀는 언덕을 내려가고 있는 윌벤슨을 보며 답했다.

“칼라치는 고대 병사의 힘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건 실전을 통해서밖에 배울 수 없잖아요.”

“음, 그런가?”

“한두 명으로는 어림도 없어요. 최소 수백 명은 돼야 이 사람이 마음껏 그 힘을 사용해 볼 수 있으니까요.”

그날 오후, 칼라치는 넓은 강에 세워진 아치형의 다리를 지키는 사자 동맹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가 다닐 정도로 폭이 넓고 튼튼한 다리는 중요한 교통로 중 하나로 사자 동맹군은 이곳을 장악해 서쪽의 붉은 성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면 멀리 강을 돌아가야 한다.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석조 다리인 만큼 다리 앞엔 천여 명이 넘는 병력이 주둔하는 작은 요새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누구든 다리를 건너기 위해서는 먼저 작은 요새의 성문을 통과해야 한다. 다리의 입구가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요새를 향해 칼라치가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의 출현에 사자 동맹군 소속의 병사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혼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허가증이 있는 이 지역 마을 사람일 거라 막연히 추측했다.

그러나 그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일반인으로 보기 힘든 장대한 체구와 등 뒤의 거대한 철 방패가 부각됐다. 한가로웠던 성문 앞의 분위기도 약간은 달라졌다.

“허가증.”

병사가 장갑 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칼라치는 손을 내민 병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투구 사이로 제법 날카로운 눈빛이 새어 나왔다.

그 뒤를 봤다.

투구와 갑옷으로 몸을 보호한 병사들 수십 명이 요새 성문 앞을 지키고 서 있었다.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허가증이 확인되면 성문이 열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앞을 지키는 용맹한 병사들이 검을 휘두를 것이다.

칼라치는 고개를 들어 시선을 위로 향했다.

돌로 지어진 요새 성벽 위엔 활을 든 궁수들이 잔뜩 늘어서서 그를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내 말 안 들려? 허가증.”

“고향이 어딘가?”

“뭐?”

“눈을 감고 잠시 고향을 떠올려 보게. 자네가 태어난 곳과 자라 온 동네, 그리고 부모님과 형제들도.”

“뭔 헛소리야 그게?”

“죽기 전에 추억을 되살려 보란 말이었어.”

칼라치의 주먹이 병사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 심장을 파괴했다.

“허억!”

입을 벌린 병사의 눈빛이 투구 속에서 급격히 빛을 잃어 갔다.

“적이다!”

성벽 위에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

티티팅팅팅팅.

한 손으로 거대한 철 방패를 풍차처럼 휘둘러 화살 세례를 막아 낸 칼라치는 성문 앞을 가로막은 수십 명의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잘 훈련된 병사들이었지만 칼라치의 방패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쾅!

철 방패에 온몸의 뼈가 조각조각 난 병사들이 우수수 날아가 성문에 처박혔다.

쾅쾅!

서너 명이 동시에 입으로 피를 뿜으며 성벽 위의 궁수들에게 날아갔다.

궁수들은 몸의 뼈와 장기 들이 너덜거리는 처참한 모습으로 높은 성벽 위에 걸쳐진 동료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지만 맡은 바 임무를 잊진 않았다.

“기름병 투척!”

수십 개의 기름병이 떨어지고 그 위에 불화살이 박혔다.

화르르르.

성문과 성벽 주변에 일시적으로 거대한 불의 띠가 형성됐다.

칼라치도 그 불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독히도 뜨거운 열기와 검은 연기가 그의 호흡을 방해했다.

그러나 칼라치는 여유가 넘쳤다. 성문 앞을 지키던 수십 명의 병사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운 그는 불길을 뛰어 넘으며 거대한 철 방패로 성문을 내려찍었다.

쇠처럼 단단한 두꺼운 나무 성문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났다.

성문을 한 방에 부숴 버린 그는 부서진 성문의 조각들을 손으로 뜯어내며 안으로 진입했다.

넓은 요새 안엔 언제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무장한 천여 명의 병력이 그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그중엔 마나를 사용하는 푸른 갑옷의 전사들도 수십 명이었고, 마법사로 보이는 자도 껴 있었다.

“넌 누구냐!”

요새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가 큰 소리로 물었다. 단신으로 성문을 부수고 들어올 정도면 이름 있는 강자 같았다.

“내 이름은 칼라치다.”

이름을 밝힌 칼라치는 들고 있던 방패를 바닥에 꽂은 후, 양팔을 크게 펼쳤다.

‘나오너라, 나의 병사들이여!’

그의 심장 저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검은 기운들의 일부가 칼라치의 전신을 통해서 일시에 튀어나왔다.

공중을 부유하던 검은 기운들은 사자 동맹군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잠시 후, 수십의 고대 병사들이 실체화돼 칼라치의 좌우로 도열했다.

그들의 손엔 생전에 사용했던 무기들이 들려 있었는데, 매우 음산한 기운이 줄기줄기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 뭐야, 저것들은?”

“시체처럼 창백한데?”

갑자기 나타난 수십의 고대 병사들로 인해 요새 안의 긴장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칼라치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저들을 죽여라.’

그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눈빛이 붉어진 고대 병사들이 입으로 괴성을 지르며 사자 동맹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상대가 대응을 하기도 전에 수십의 고대 병사들은 해일처럼 그들을 덮쳐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

“크아악!”

“괴물이다!”

고대 병사의 팔을 잘랐지만 팔이 다시 달라붙었다. 그 고대 병사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팔을 자른 푸른 갑옷의 전사의 목을 송곳니로 물어뜯었다.

찌이익.

살점을 뜯어낸 고대 병사는 들고 있던 낫으로 푸른 갑옷 전사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렸다.

“으아악!”

목에서 가랑이까지 단번에 찢어진 푸른 갑옷의 전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숨이 끊어졌다.

“마물!”

사자 동맹군에 속한 중년의 마법사는 지팡이를 휘둘러 여러 개의 번개 구체를 날렸다.

그중 하나에 적중당한 고대 병사가 괴로운 표정으로 땅에 넘어지며 몸부림쳤다. 그러나 고대 병사는 잠시 후 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을 공격한 중년의 마법사를 공격했다.

주위에 서 있던 병사들이 마법사를 보호하려 했으나 고대 병사는 그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검으로 마법사의 머리를 내리쳤다.

쩌어엉.

마법사의 몸이 순식간에 얼더니 파삭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 조각이 되었다.

마법사를 죽인 고대 병사는 옆으로 검을 길게 휘둘렀다. 그의 검에 스친 자들은 한순간에 몸이 얼며 폭발을 일으켰다.

“사, 상대할 수 없어! 도망가야 해!”

“물러나지 마라! 끝까지 싸워!”

요새 지휘관은 고대 병사 한 명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빈틈을 보였고, 그 순간 고대 병사의 창이 지휘관의 복부에 박혔다.

“이놈!”

마나의 힘으로 몸이 얼어 가는 것을 버티던 그는 창을 든 고대 병사의 목을 검으로 내리쳤다.

그러나 그의 검이 고대 병사의 목에 닿기 전, 옆에서 달려온 또 다른 고대 병사가 하얗게 언 철퇴로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퍼석.

머리가 부서진 요새 지휘관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수는 사자 동맹군이 훨씬 많았지만 수십의 고대 병사들은 압도적인 잔인함과 파괴력으로 그들을 몰아붙였고, 삽시간에 요새 안은 피의 대지로 변해 갔다.

“상대가 안 돼!”

겁에 질린 사자 동맹군 병사들 수십 명이 요새 안에 연결된 다리를 통해 강 건너 반대편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뒤를 고대 병사가 쫓아갔다.

“으아악!”

허리가 잘린 병사가 쓰러지며 석조 다리 위에 붉은 피를 뿌렸다.

동료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를 들으며 간신히 다리를 건넌 병사들은 다리의 출구라 할 수 있는 거대한 문을 두드렸다. 이 문을 넘어서야지만 이 다리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야 이 개자식들아! 문 열어!”

“괴물이 쫓아오고 있어!”

다리 양쪽엔 요새가 한 군데씩 존재했는데, 그들이 있던 요새는 이미 무너졌고 남은 요새는 이곳이 유일했다.

그러나 이 요새의 규모는 매우 작고 채 백여 명이 안 되는 병력만 상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반대편 요새가 화염에 휩싸이더니 날뛰는 고대 병사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후, 완전히 공포에 휩싸여 문을 열어 줄 생각이 없었다.

목이 터져라 외쳐도 문이 안 열리자 급기야 두려움에 휩싸인 다리 위의 병사들은 뒤에서 쫓아오는 고대 병사들을 피해 강으로 뛰어들었다.

수심이 매우 깊고 폭이 넓은 강에서 허우적대던 그들은 필사적으로 강변을 향해 헤엄치려 했지만, 악착같이 쫓아온 고대 병사들이 그들의 몸을 난도질했다.

강이 피로 물들고 죽은 수십여 명의 병사들 시체가 그 강에 반쯤 잠긴 채 떠내려갔다.

콰앙!

고대 병사들은 반대편 요새도 그냥 두지 않았다.

말을 타고 눈치 빠르게 도망친 몇을 제외하곤 반대편 요새의 병사 백 명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임무를 완수한 그들은 검은 연기로 변해 칼라치의 몸속으로 다시 스며들어 갔다.

‘대단해, 수십 명으로 작은 요새를 점령해 버리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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