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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49화 (449/575)

[449] 디 임팩트 18권 24화

그의 주위에서 수백 개의 검은 검이 환상처럼 나타나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것은 곧 하나로 합해지더니 도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세상에 파멸을 가져올 듯한 소름 끼치는 뿔 달린 괴물이 검신을 타고 회전하며 도현을 노려봤다. 검과 교감하는 휴반트의 마음이 검에 그대로 실린 것이다.

도현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휴반트의 검을 밑에서 올려 쳤다. 올려 치는 그의 검에 얼마나 큰 힘이 서려 있던지 세타이움 장검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해 부서질 것처럼 웅웅거렸다.

‘이 정도 힘이 아니면 저 검을 막지 못한다.’

콰아앙!

신의 재앙이 땅에 내린 듯 도현과 휴반트의 검이 부딪친 자리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미터 땅이 폭발을 일으켰다.

충돌의 여파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들의 검이 충돌할 때 생긴 눈부신 빛들이 사방으로 수백 미터나 퍼져 갔다. 그 빛에 눈이 노출된 베일 연합군과 사자 동맹군 병사들은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고 서로 싸우던 손을 멈춰야만 했다.

‘대단해!’

시력을 남들보다 빠르게 회복한 에드는 스승을 존경의 눈빛으로 응시했다.

그동안 스승이 작정하고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동행한 시간이 길지 않았을뿐더러 스승이 제대로 싸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스승의 진짜 싸움을 보게 됐다. 아주 강한 적으로 보이는 자와 숨 막히도록 빠르고 흉험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죽어라!”

시력을 회복한 사자 동맹군 측 병사 한 명이 뒤에서 에드를 노렸다.

몸을 옆으로 기울여 병사의 검을 피한 에드는 냉정하게 그 병사의 목을 베었다. 고통 없이 죽여 주는 게 적을 위해서도 나았다.

에드는 다시 스승과 휴반트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엉망이 된 땅 위에서 그들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휴반트는 싸움이 시작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눈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도현의 모습을 보며 심한 열등감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사내답게 잘생긴 외모에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은 검술 실력, 씨드를 얻은 자신 못지않은 거대한 마나의 힘.

사막에서 강해진 후 가슴 저 깊은 곳에 꽁꽁 묻어 둔 여러 감정들을 도현이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내가 저 정도 외모만 됐더라도 세상을 당당히 활보하고 다녔을 텐데. 에린도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됐을 테고.’

실력도 뛰어나고 외모도 훌륭한 도현을 시기하며 휴반트는 싸우는 도중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대체 왜!”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그를 향해 도현의 벼락같은 일 검이 날아갔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휴반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몸을 뒤로 뺐지만 완전히 피할 순 없었다. 도현의 검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쩌어억.

철가면이 금이 갔고, 이내 두 조각이 되어 땅으로 떨어졌다.

“안 돼!”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지른 휴반트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리며 즉시 숲으로 몸을 날렸다.

‘왜 저러는 거지?’

도현은 싸움을 포기하고 도주하는 휴반트가 이해되지 않았다.

철가면이 부서지기는 했지만 얼굴이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깊게 검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상을 입지도 않았을 그가 저렇게 혼비백산하며 숲으로 도망가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퇴각하라!”

넬리 경은 휴반트가 도주하자 더 이상 두고 볼 것도 없었는지 부하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이미 전의를 잃고서도 어쩔 수 없이 싸우던 사자 동맹군 병사들은 넬리 경을 따라 숲 방향으로 우르르 도망을 갔고, 수송부대 병사들은 기쁨에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놈들이 도망간다!”

도현은 검을 거두고 바닥에 떨어진 조각난 철가면을 집어 들었다.

‘놀라운 자야.’

철가면이 없었다면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씨드의 힘을 흡수한 후, 자신의 검을 막을 자가 있긴 할지 솔직히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자만심이 아니라 그만큼 씨드의 힘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얼음탑주도 그의 검을 견디지 못했을까.

바크 드라모스는 인간이 아닌, 거의 불사의 존재였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반면 이 철가면을 착용한 휴반트는 엄연히 인간이고 오랫동안 검을 깊게 수련해 온 뛰어난 검객이었다.

‘그자도 씨드와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닐까?’

도현은 휴반트가 사라진 숲 쪽을 잠시 응시하다가 뒤를 돌아봤다.

베일 연합군과 함께 사자 동맹군을 상대한 그의 제자와 동료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그는 옆으로 시선을 더 돌렸다. 휴반트와 싸웠던 노인이 짐마차 한쪽에 몸을 기댄 상태로 수송부대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님, 괜찮으십니까?”

에드는 제일 먼저 달려와 스승인 도현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난 괜찮다. 넌 다친 곳 없지?”

“네.”

에드는 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스승님은 최고이십니다. 철가면도 스승님의 상대는 안 되는군요.”

“그는 내게 패해 도망간 게 아니다.”

“예? 그럼 왜 싸우다 몸을 피한 겁니까?”

“글쎄……. 그 이유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조각난 철가면을 제자에게 준 그는 어느새 주위에 몰려든 동료들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뭐야, 그 철가면 새끼는, 엄청나게 강하던데.”

짐브리오는 손쉽게 도현이 이길 줄 알았다가 의외로 싸움이 길어지자 깜짝 놀랐었다.

“혹시 그자도 씨드를 먹은 게 아닐까?”

리타는 다른 사람이 들을까 봐 신경 쓰며 목소리를 한껏 낮춰 말했다.

“씨드가 시장에서 파는 물건도 아니고, 아무렴 그랬으려고…….”

짐브리오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얘기를 하다가 점점 자신 없는 눈빛으로 말끝을 흐렸다.

“어찌 됐건 강한 적이 출현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주의해야겠어요.”

로나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현과 맞붙어 싸울 수 있는 능력자의 등장은 아주 달갑지 않은 사건이었다. 그것도 적으로 나타났으니까.

에이저와 대화를 마친 수송부대의 지휘관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도와줘서 고맙소. 당신들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소.”

지휘관은 특히 철가면을 쫓아 준 도현에게 고마워했다. 에이저도 어쩌지 못한 철가면을 그가 물리쳤기 때문이다.

“한데 당신들은 누구요? 여긴 전쟁 지역이라서 여행자들이 돌아다닐 만한 곳이 못 되는데.”

“우리는 대공을 돕기 위해 붉은 성으로 가는 길입니다.”

도현의 대답에 지휘관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 그렇소?”

지휘관은 놀라운 강자인 도현이 한편이라는 게 적잖이 기뻤다.

“그런데 저분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도현이 짐마차에 위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며 물었다.

“저분은 에이저란 분이시오.”

“그렇군요.”

“붉은 성으로 가는 길이라면 내 부대와 함께 움직입시다. 가는 방향이 같으니 말이오.”

도현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지휘관이 사상자들을 수습하고 짐마차를 다시 출발시키기 위해 준비를 하는 동안 도현과 일행은 에이저에게 걸어갔다.

짐마차 위에서 몸을 회복하던 에이저는 도현이 가까이 다가오자 밑으로 내려와 고마움을 표시했다.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네. 구해 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자넨 누군가?”

에이저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자신의 화살을 손쉽게 모두 막아 낸 철가면은 보통 강자가 아니었다. 그 정도라면 대륙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최강의 강자라 부를 수 있었다.

자신의 강함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날카로운 인물인 에이저는 자신의 죽음보다 철가면의 등장이 일으킬 파장이 두려웠었다. 그의 친구인 돈조르니, 로제로, 커크도 철가면에게 죽을 것 같다는 암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두려움을 준 철가면 사내를 눈앞의 사내가 이겼다. 에이저는 진심으로 이 사내가 누군지 궁금했다.

“자넨 누군가?”

에이저가 다시 물었다. 도현은 대답하기 전, 바크 드라모스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비 오는 밤, 두 노인이 찾아왔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바크 드라모스에게 도움을 청한 돈조르니였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동행자였다.

당시 도현은 호기심에 그들을 잠시 지켜보다가 그들에 대한 관심을 끊고 바크 드라모스와의 일전을 준비했었다.

‘두 노인 중 누가 돈조르니인지 궁금했는데, 이 사람은 아니었어.’

도현이 철가면과 에이저와의 싸움에 개입한 이유는 바크 드라모스의 집을 방문한 두 노인 중 한 명이 바로 활을 들고 싸운 이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도현은 품속에서 에디보르의 목걸이를 꺼내 에이저에게 보여 줬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아니, 그 목걸이는!”

돈조르니의 고모가 유품으로 남긴 목걸이는 구름이 쉬어 가는 숲에 있는 제라이즈에게 넘어갔다. 친구인 돈조르니가 증표로서 보이며 그에게 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도현이 가지고 있으니, 에이저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구름이 쉬어 가는 숲에 있는 제라이즈가 절 보냈습니다.”

“그가?”

“네, 제라이즈에게 도움을 요청하셨잖습니까? 그 일을 위해 제가 왔습니다.”

에이저는 이 상황이 너무 놀랍고 반가워 그저 허허 웃음을 흘렸다.

“믿지 않았는데 정말 도움을 주기 위해 왔군. 돈조르니가 자넬 보면 정말 기뻐할 거야. 나와 함께 붉은 성으로 가세.”

“허억, 허억.”

휴반트는 미친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숲을 돌아다녔다. 숲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이 얼굴에 닿자 그는 몸부림을 쳤다. 민감한 그의 피부가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

“가, 가면이 필요해, 가면이.”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숲을 방황하던 그는 나무껍질을 급히 벗겨 목가면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해서인지 가면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으아아아!”

주먹으로 껍질이 벗겨진 거대한 나무줄기를 박살 낸 그는 땅에 엎어져 숨을 골랐다.

한동안 거친 호흡을 다스리던 그는 근처 나무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철가면이 쪼개지자 자신의 얼굴이 쪼개진 것처럼 심리적인 고통이 찾아와 견딜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목가면에 도전한 그는 가면이 완성되자 즉시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가빠 왔던 숨이 진정되고 머릿속도 맑아지기 시작했다.

“하아, 살 것 같군.”

풀 위에 누워 한동안 안정을 취하던 그는 천천히 일어났다. 가면이 없어 불안해하던 약한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바람이 불어 몸에 가득한 땀을 식혀 주었다.

휴반트는 검상을 입은 허벅지를 내려다봤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당해 피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내라고 믿었다. 필요하면 어떤 영주든 목을 취할 수 있는.

그런데 오늘 자신 못지않은 강자와 마주쳤다. 슬프게도 그는 외모까지 완벽했다.

깊은 우울함과 패배감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누군가 다가와 그를 위로해 줬으면 했다.

“에린.”

벨피타 영주의 딸이 몸서리치게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러 갈 순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약속을 했다. 대공의 목을 결혼식 선물로 준비하겠다고.

한동안 멍하니 바위 위에 앉아 있던 그는 주먹으로 바위를 내리쳤다.

쩌적.

바위가 두 동강이 났다.

“그래! 내가 왜 멍청하게 그 녀석과 검으로만 승부를 볼 생각을 했을까!”

그에겐 다른 힘이 존재했다.

바위를 부수고 일어선 그는 일단 진영으로 돌아가 여분으로 챙겨 온 철가면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백도현, 두고 보자.’

보급품 수송부대의 목적지는 밀튼 영주의 진영이었다. 밀튼 영주는 병사와 용병을 합해 모두 1만 5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붉은 성 주변에 자리를 잡았는데, 들판이 군막들로 가득했다.

보급품을 실은 수백 대의 짐마차가 연이어 진영 내로 들어오자 밀튼 영주 휘하에 있는 보급품 담당 관리들이 병사들을 지휘해 빠르게 짐을 내렸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에이저가 도현에게 말했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붉은 성으로 출발하세. 말을 타고 가면 해 지기 전에 붉은 성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네,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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