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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55화 (455/575)

[455] 디 임팩트 19권 5화

“유, 율리비어스 님, 용서해 주십시오!”

애원을 하는 베르노프를 향해 해골 지팡이가 날아들었다.

으저적.

광대뼈가 함몰된 베르노프가 입으로 피를 토하며 켁켁거렸다.

“그때 너희들의 말을 믿고 멀리 사막까지 다녀왔다. 미심쩍기도 했지만 설마 했었다. 뒤에서 날 비웃었겠지?”

“아, 아닙니다. 전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생기지 않는구나.”

율리비어스는 베르노프의 해골 지팡이를 재차 휘둘렀다. 콧잔등이 박살 난 베르노프의 몸이 퍼덕거리며 좌우로 거칠게 흔들렸다.

“때리는 것도 귀찮군.”

피가 잔뜩 묻은 베르노프의 검은 해골 지팡이를 땅에 꽂은 그는 발을 빠르게 움직여 마법진을 그렸다.

달과 해를 닮은 마법진이 완성됐고 잠시 후 마법진에서 붉은 빛이 흐르기 시작했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베르노프는 불안한 시선으로 물었다.

“네놈들을 만나면 벌주려고 만든 마법진이다. 여기 붉은 빛이 달의 마법진으로 쏠리면 차가운 공기가 널 감쌀 것이고, 반대로 해의 마법진으로 붉은 빛이 이동하면 뜨거운 공기가  널 반겨 줄 것이다. 뼈가 얼고 살이 녹는, 춥고 뜨거운 고통을 번갈아 가면서 느껴 보도록 해.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야.”

그의 말대로 달의 마법진이 붉게 변할 때는 극한의 한기가 마법진에서 생성돼 칼로 살점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왔고, 얼마 뒤 해의 마법진이 빛을 발할 때는 용암처럼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살점을 녹여냈다.

“제, 제발 그냥 죽여 주십시오.”

“살고 싶다고 그러지 않았느냐? 내일 아침까지 버티면 널 풀어 주마.”

“그냥 죽여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고통에 지친 베르노프가 모든 걸 포기한 음성으로 애원했다. 하지만 율리비어스는 그럴 생각이 없는지 바로 근처에서 잠자리를 준비했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느냐?”

“죽여 주십시오.”

“내가 묻지 않느냐,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마법진으로 숲의 땅을 침대 모양으로 만든 율리비어스는 그 위에 누워 차가운 시선으로 베르노프를 올려다봤다.

거꾸로 매달린 상태에서 율리비어스의 감정 없는 눈과 마주친 베르노프는 몸을 부르르 떨며 답했다.

“붉은 성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사실 이 숲은 베일 가문 영지 안에 있는 곳으로, 붉은 성과 며칠 거리에 있었다.

“나와 행선지가 같구나. 말해 보아라, 그곳은 왜 가는 길이냐?”

“만날 사람이 있어서……. 크윽, 제발 죽여 주십시오!”

입에서 욕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억누르며 베르노프는 죽여 달라고 재차 애원했다. 살점이 녹아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누굴?”

냉정한 그의 물음에 베르노프는 몸부림치며 외쳤다.

“칼라치! 그 작자가 고대 병사를 흡수했단 말이오!”

베르노프는 율리비어스가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같아, 차라리 아는 것을 모두 빨리 말해 버리고 그의 자비를 구하기로 했다.

자비란 편안한 죽음이었다.

그는 브링틱의 거룩한 고대 병사의 무덤에서 칼라치에게 벌어진 일과 중도에 화가 나 칼라치 일행과 헤어진 일을 설명했다.

“하지만 난 억울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를 찾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가 잠들었을 때 몰래 그의 코를 통해 고대 병사의 기운을 빼내려고 말입니다.”

“또 브링틱이군. 그놈 때문에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인데 말이야.”

율리비어스는 씨드를 두고 다툰 도현을 떠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율리비어스 님, 절 지금 죽여 주신다고 약속하면 칼라치에게 흡수된 고대 병사의 힘을 당신이 갖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내가 무엇이 아쉬워 그 짓을 한단 말이냐, 소환술사인 네놈에게나 어울리는 힘이겠지.”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죽은 자들의 힘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나름 소환술사의 맥을 이어 온 베르노프가 의외로 강단 있게 말을 하자 율리비어스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그래, 세 녀석 중에 네놈이 가장 너의 스승에게 인정을 받았었지.”

60이 훌쩍 넘은 노인이 된 베르노프는 율리비어스의 말이 이해가 안 됐다.

“돌아가신 스승님과 제대로 얘기를 나눈 사이도 아니면서 나에 대해 어떻게 안다는 겁니까?”

“어리석은 놈. 너는 모를 것이다. 네 스승은 나를 수시로 찾아와 귀찮게 했다. 소환술과 관련해 도움을 얻기 위해.”

“그럴 리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베르노프는 눈을 크게 떴다.

“하도 귀찮게 해서 죽음의 입구를 떠나 다른 곳에 거처를 정할까도 생각했었지. 아무튼 네놈 스승은 내게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그 제자 놈들이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죄송합니다. 35년 전, 그때 전 아직 어렸습니다.”

율리비어스는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베르노프를 잠시 노려보다가 흙침대에서 내려와 다가갔다.

“죽음의 입구에서 묘지기나 평생 할 것이지 세상에 나와 이 무슨 험한 꼴이냐.”

“후, 후회 없습니다. 그래도 스승님처럼 답답하게는 살지 않았으니까요.”

“죽여 주마.”

“고맙습니다.”

가시넝쿨에 휘감겨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그의 눈가에 눈물이 샘솟았다.

악착같이 오랫동안 살아 보려 했는데, 결국 악명이 자자한 마법학의 대가 손에 오늘 죽게 됐다.

율리비어스가 손짓을 하자 가시넝쿨이 살아 있는 뱀처럼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와 베르노프의 코와 입을 막아 버렸다.

대공

에이저의 집에서 하루를 보낸 도현은 돈조르니가 보낸 병사들을 따라 대공의 공관으로 향했다.

붉은 성 중심부에 위치한 대공의 공관은 또 하나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무척 경비가 삼엄했다.

“대공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들어가세.”

마중 나온 돈조르니와 공관 정문을 통과하던 도현은 시선을 위로 올렸다. 마법사로 보이는 노인 두 명이 공관 성벽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베일 가문의 상징인 울부짖는 사자가 수놓아진 로브를 걸친 그들은 금방이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으로 도현을 공격할 것만 같았다.

“저들은 대공 친위대 소속의 마법사들이네.”

도현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자 옆에서 걷던 돈조르니가 그들의 정체에 대해 나직한 목소로 설명했다.

“친위대에 마법사들도 있었군요.”

“어떤 경우라도 대공의 목숨은 지켜져야 하니까. 원래 열한 명의 마법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일곱 명으로 줄었네.”

“네 명은 어떻게 된 겁니까?”

“본성에서 벌어진 반란군과의 전투에서 대공을 지키다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했네.”

“그렇군요…….”

명예로운 죽음이란 말이 도현에겐 아직 낯설었다.

“붉은 성은 외부인의 침입이 쉽지 않은 구조 같은데, 공관의 경비가 철저한 것 같습니다.”

정문을 지나친 도현은 수백 명은 거주할 수 있을 것 같은 상당한 규모의 공관 건물로 향하며 물었다.

“세상일에 완벽이란 없네. 붉은 성을 넘어 공관 안으로 암살자가 들어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겠지. 실제로 암살 시도가 있기도 했고.”

대공이 죽으면 전쟁의 구심점이 사라진다. 지원을 온 외부 세력은 결속력이 약해져 철수할 것이고, 그리되면 난공불락의 붉은 성이 존재해도 손쉽게 무너질 것이다.

“대공이 곧 베일 가문이네.”

흰머리가 가득한 돈조르니의 말 속엔 대공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했다.

‘가문을 정말 사랑하고 있군. 젊었을 땐 가문을 떠나 모험가로서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며 지냈다던데.’

도현은 어젯밤 에이저와 술을 마시며 돈조르니가 젊었을 때 얼마나 재밌는 사람이었는지 듣게 됐다.

‘상인의 딸과 잠자리를 가지다 들켜 도망 다니던 사람이, 가문이 흔들릴 때 목숨을 바쳐 지켜 주려 하고 있어.’

옆에서 걷는 돈조르니를 잠시 응시하던 도현은 길게 숨을 들이켰다. 가슴이 팽팽해졌고, 검 손잡이에 올린 손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듣기론 반군들의 실질적인 수장은 대공의 사촌 중 한 명인 샤르비티라더군요.”

“맞네, 그자지.”

“우리에게 대공이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저들에게도 샤르비티는 중요하겠군요.”

“그렇다 할 수 있지.”

“만약, 그를 죽이면 이 전쟁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걸음을 멈춘 도현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돈조르니를 향해 뒷말을 이었다.

“전쟁은…… 끝이 나는 겁니까?”

도현의 차가워진 눈동자를 잠시 들여다보던 돈조르니는 품 안에서 반란에 동조한 대공의 사촌들 명단을 꺼냈다.

“그것으로는 전쟁이 끝나지 않네. 이들 모두를 죽이지 않는 한은.”

도현은 돈조르니가 내민 대공의 사촌들 명단을 받았다. 그 안에는 샤르비티를 포함한 열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샤르비티가 죽으면 그 뒤를 이어 이렇게 많은 자들이 반군의 수장 노릇을 하려고 할 거네. 그 때문에, 전쟁은 끝나지 않아, 이들 모두가 죽지 않는 한은.”

“우리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군요.”

도현이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단순히 샤르비티 한 명을 죽여서 끝날 전쟁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이쪽은 대공이 죽으면 모든 게 무너진다.

대공의 자식이라도 있다면 그가 뒤를 이어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대공의 두 아들과 딸은 적의 인질이 되어 잡혀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저들 열네 명을 모두 다 합해도 대공 한 명의 무게감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이야.”

가볍게 웃으며 말한 그는 도현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그런데 말일세, 자네 정말 샤르비티를 죽일 생각으로 조금 전 그런 말을 한 건가?”

“필요하다면요.”

전쟁을 빨리 종식시킬 수 있는 게 그 방법뿐이라면 도현은 과감히 움직일 각오도 되어 있었다.

‘내겐 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 안에 전쟁을 대공의 승리로 이끌고 바크 드라모스를 만나야 한다.’

이계에 머물 수 있는 타투의 힘이 길어야 7개월 남짓, 어쩌면 훨씬 더 짧을지도 모른다.

바크 드라모스는 차원 이동과 관련된 건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기 때문에 지구로 강제로 돌아가기 전까지 벌인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보기보다 무척 과감한 사내로군.”

빙그레 웃어 보인 돈조르니는 친위대가 지키고 서 있는 공관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무기를 맡겨 주십시오.”

도현은 친위대의 요구에 응해 별말 없이 허리에 찬 두 자루의 검을 빼 그들에게 맡겼다.

뒤돌아선 그는 기다리고 있던 돈조르니와 함께 왼쪽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햇빛이 창문을 통해 복도로 투사되고 있어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볼 때면 가끔 눈이 부셨다.

“이 성은 이전에도 꾸준히 관리가 되고 있었나 봅니다.”

“언제 사용될지 모르는 중요한 성이었으니까. 성이 완성된 이래로 가문의 대공들은 별도로 붉은 성을 관리하는 신하를 두었네. 수백 채의 집이며, 숲과 수로들, 식량과 무기, 이 모든 게 그래서 가능했지. 만약에 샤르비티가 붉은 성을 관리하는 신하를 포섭했다면 어려운 싸움이 됐을 거야.”

“샤르비티의 유혹이 심했을 텐데, 충직한 신하였나 봅니다.”

도현의 말에 돈조르니는 낮은 목소리로 껄껄 웃었다.

“그게 그런 게 아니네. 샤르비티는 애초에 본성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네. 멀리 떨어진 붉은 성까지 대공이 몸을 피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거야. 그러니 붉은 성을 관리하는 신하를 포섭할 생각조차도 안 했겠지.”

“그가 실수를 했군요.”

“땅을 치며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 그러나 우리 대공 역시 그런 큰 실수를 했네. 샤르비티가 딴마음을 품고 있다는 정보를 애써 무시했으니까.”

“대공께서 반란을 사전에 알고 계셨다는 겁니까?”

살짝 놀란 표정으로 도현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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