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 디 임팩트 19권 8화
“그래도 언제까지 현 상황을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대공의 세력이 결집하고 있잖습니까.”
“공격해 오겠지.”
“그럼 샤르비티와 사자 동맹군이 총력전을 펼치는 시기는 언제라고 보십니까?”
“두 달 뒤네.”
돈조르니는 술을 한 모금 하며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두 달 뒤요?”
도현은 거의 확실하다는 듯 말하는 돈조르니의 자신감에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이유가 있습니까?”
“샤르비티는 매년 부친의 죽음을 기념하며 3일간 금식을 하네. 그때는 샤르비티뿐만 아니라 그 휘하에 있는 모든 자들이 금식을 하지. 금식이 끝난 뒤엔 다시 술과 음식을 먹는 축제로 또 3일을 보내고. 그렇게 6일을 보내고 나면 샤르비티의 군사들은 큰 종교의식을 치른 것처럼 샤르비티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다네. 적어도 한동안은 말이야.”
말을 끊고 도현을 잠시 바라보던 그가 상체를 기울였다.
“두 달 뒤가, 바로 샤르비티의 부친 기념일이네. 그는 병사들의 사기를 최고로 끌어올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그렇군요, 샤르비티는 그런 인물이로군요.”
주로 대공에게만 관심을 뒀던 도현의 의식이 멀리 본성에 자리 잡고 있는 샤르비티에게로 확장됐다.
‘특이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제사를 통해 밑에 사람들의 충성심을 더 끌어내다니. 6일간 그는, 주술사가 되는 건가?’
본 적 없는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높아졌다.
“두 달 뒤에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하실 겁니까?”
“자네가 있지 않나?”
“예? 저 말입니까?”
도현의 머릿속에 샤르비티의 10만 군사가 좀비처럼 변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환상이 떠올랐다.
“농담이네. 자네보고 그 많은 병력들을 상대하라고 할 수는 없지.”
돈조르니는 바다 건너 남부 대륙을 지그시 내려다봤다.
“진짜 대공을 도울 큰 세력은 아직 오지 않았네.”
도현의 시선이 그를 따라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남부 대륙으로 향했다.
“문제는 그들이 올지 안 올지 확답이 아직 없어서……. 하지만 그들의 도움이 없어도 난, 우리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네. 선조들이 만든 이 붉은 성이 샤르비티에게는 죽음의 성이 될 거야.”
돈조르니의 목소리엔 나이답지 않은 패기가 넘쳤다.
술을 반쯤 비운 도현은 술기운에 얼굴이 불그스레해진 돈조르니에게 차분히 물었다.
“제가 할 일을 알려 주십시오.”
“당분간 붉은 성에 머물고 있게, 필요할 때마다 자네에게 도움을 청할 테니까.”
잠시 생각하던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두 달 뒤, 붉은 성에서 결정되는 겁니까?”
“전쟁의 흐름은 작은 것 하나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가 있네. 지금은 그렇게 예측하고 있지만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네. 마치 자네가 올 줄 몰랐던 것처럼 말이야.”
탁자 위의 지도를 다시 벽에 건 돈조르니는 돌아서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서신에 주목했다.
아침에 급보로 날아온 정보원의 보고였다.
“그러고 보니 자네가 해 줄 일이 있었어.”
“무슨 일입니까?”
“아까 자네가 오면서 그랬지, 샤르비티라도 죽일 각오가 되어 있다고.”
도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본성으로 가 그를 죽이라는 뜻입니까?”
“그가 아니네, 대상인 압할라 녀석이지.”
“대상인 압할라요?”
돈조르니는 서랍에서 둘둘 말린 초상화를 펼쳐 보였다. 귀가 거대한 노인이 그려져 있었다.
“이자가 지금 멀지 않은 사자 동맹군 지휘부에 방문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네. 원래는 에이저를 혼자 보내려고 했는데, 자네가 있으니 에이저와 함께 가서 그를 제거하게.”
“이 사람은 왜?”
그림을 본 도현이 물었다.
“이자 때문에 대공의 자녀들이 붙잡혔네.”
대상인
밤이 깊어 가면서 산속의 기온이 빠르게 내려갔다. 몸이 얼 정도로 춥진 않았지만 땅에 나뭇잎을 두툼하게 깔거나 모포를 깔고 자야 아침에 감기가 걸리지 않을 것 같은 날씨다.
‘콧물이 나오네. 몸을 너무 혹사시켰나?’
사자 동맹군 지휘부 중 한 곳을 산에서 감시하던 정보원은 가죽으로 만든 장갑으로 콧물을 훔쳤다.
길쭉한 콧물이 끊어지지 않고 장갑에 붙어서 늘어졌다.
“에이 씨.”
이 민망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는 서둘러 늘어진 콧물을 끊어 냈다. 아무도 지켜보는 이가 없었지만 그는 제법 깔끔한 성격이라, 그 자신이 못 견뎠다.
“능력이 뛰어나도 고생이야.”
칼도 좀 쓰고, 시력도 남다르고, 추적과 은신에 뛰어난 그는 사자 동맹군 지휘부 주변을 감시하는 정보원으로서, 수개월간 이 일을 해 오고 있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며 매일 긴장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일이라, 대공에 대한 충성심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못 견디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래도 보람은 있군. 압할라, 그 자식이 온 걸 붉은 성에 알렸으니.”
압할라는 베일 가문과 거래하는 대상인으로서 대공의 신망을 받던 자였다.
그런 자가 쫓기다 그의 집을 찾아온 대공 부인과 그녀의 자녀들을 사로잡아 샤르비티에게 바치려 했다.
대공 부인은 간신히 압할라의 부하들 손에서 벗어났지만, 자녀들은 꼼짝없이 사로잡혀 샤르비티에게 넘겨졌다.
“껍질을 벗겨 죽여도 시원찮을 놈, 배신자 새끼.”
뼛속까지 대공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한 그는 압할라를 욕하며 산 밑 들판에 펼쳐진 지휘부 진영을 노려봤다.
그때 멀지 않은 왼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밤공기를 뚫고 날아왔다.
움찔한 그는 슬며시 뒷걸음질 쳐 수풀 속에 몸을 납작하게 엎드렸다.
잠시 후, 부스럭거리는 소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눈빛이 날카로운 사자 동맹군 수색병들이었다. 그들은 산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가벼운 가죽 갑옷 차림에, 활과 검으로 무장했다.
‘빌어먹을 자식들! 잠도 안 자나? 이 시간에 왜 수색을 하고 난리야?’
사자 동맹군 수색병들은 수시로 지휘부 주변을 수색해 대공의 정보원들이 지휘부로 드나드는 인물과 물자 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 죽은 정보원들의 수도 꽤 됐다.
숨죽이며 수색병들이 지나치기를 기다리던 그는 물컹한 물체가 엎드려 있는 그의 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뱀?’
다리가 짓눌릴 정도로 묵직한 걸 보면 초대형 뱀이었다.
쉬쉬쉬쉭.
뱀의 입에서 나는 은밀하고 축축한 소리가 점점 다가오는가 싶더니 잠시 후엔 주먹만 한 얼굴을 가진 뱀이 그의 목덜미를 거쳐 얼굴까지 도달했다.
‘젠장.’
뱀과 시선이 마주쳤다.
캬아아악.
뱀의 입이 쩍 벌어지더니 그의 얼굴을 통째로 삼키려 했다.
견딜 수 없는 공포와 위협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단검으로 뱀의 아랫목을 깊숙이 찔렀다.
뱀이 몸부림치며 그의 몸을 감싸고 힘을 주었다.
‘몸이 부서질 것 같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속에 그는 단검으로 뱀의 몸을 마구 찌르며 살아남으려 애썼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신히 뱀을 죽인 그는 무거운 뱀의 몸체를 몸에서 떨어트리며 숨을 헐떡였다.
팔 벌리고 누운 그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야, 이 새끼들아, 뱀과 싸우는 거 지켜보니까 좋냐?”
10여 명의 사자 동맹군 수색병들은 그를 발견했지만, 빙 둘러 서서 뱀과 그가 싸우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일어서.”
“됐다, 그냥 여기서 죽여라. 힘도 없어.”
“편안하게 죽으려고?”
어둠 속에서 적들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곧 다가올 이들의 야만적인 고문을 생각한 그는 단검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단검은 수색병이 휘두른 검에 막혔다.
“말했잖아, 편안하게는 못 죽는다고, 흐흐흐.”
차라리 뱀의 먹이나 될 걸 그랬나 싶은 깊은 후회를 할 때, 돌연 은빛 망토를 걸친 전사가 나타나 양손 도끼로 수색병들을 단번에 쓸어버렸다.
서걱서걱.
몸이며 뒤에 서 있는 나무며 통째로 두 조각을 내 버린 무지막지한 은빛 망토의 전사는 놀란 눈의 정보원을 지그시 노려보다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잘했다, 비골. 그만 돌아가.”
주인의 지시에 비골은 흐릿해지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헤헤, 많이 놀랐지?”
흑거미를 탄 리타는 어안이 벙벙한 눈빛으로 누워 있는 대공의 정보원에게 미소를 보였다.
“구해 줘서 고맙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그녀였지만 정보원은 함부로 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붉은 성에서 온 사람.”
“그럼 혹시, 돈조르니 경께서 보낸다는 사람이 당신입니까?”
“아니, 난 그냥 따라온 사람. 그가 보낸 사람은 바로 당신 뒤에 서 있잖아.”
“뒤에?”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는 뒤를 돌아다봤다. 경사진 바위 위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다.
에이저와 도현이었다.
그들은 압할라가 머물고 있다는 지휘부로 가는 길에 정보원을 구한 것이다.
“괜찮습니까?”
도현의 물음에 정보원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움직일 만합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보원 길데릭이라고 합니다.”
“돈조르니에게 들었네. 뛰어난 정보원이라고. 난 에이저라고 하네.”
“아, 에이저 경이셨군요.”
길데릭은 존경의 눈빛으로 에이저를 봤다. 에이저가 전쟁 중에 올린 성과를 그도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은색 활을 든 전투의 신.
다소 거창한 명칭이었지만 그만큼 사자 동맹군들에겐 두려움을 주는 이름이었다.
압할라를 죽이기 위해 그가 직접 온 것이다.
“고생이 많군. 압할라는 아직 저기에 있는가?”
에이저는 산 밑 지휘부를 지그시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
* * *
사자 동맹군의 군수품 상당 부분은 대상인 압할라의 상단을 통해 제공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전쟁이 길어질수록 수익이 올라가니 기뻐하겠지만 압할라는 그 반대였다.
“길어, 너무 길어.”
압할라는 지휘부 진영에 새로 설치된 그의 전용 막사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대공을 등지고 샤르비티라는 떠오르는 말로 갈아탄 그는 예상외로 길어지는 전황이 달갑지 않았다.
“불안해지는 구나, 아들아.”
푹신한 융단에 턱을 괴고 비스듬히 누워 있던 압할라는 바로 앉으며 무겁게 말했다.
그의 앞에는 상단을 이어 갈 중년의 아들이 조용히 차를 마시며 앉아 있었다.
“나는 샤르비티가 거사를 일으킨 그날, 붉은 성이 이미 샤르비티의 수중에 넘어갔을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캐서린과 그녀의 자식들을 붙잡으라고 명하지 않았겠지. 한데, 이 멍청한 샤르비티가 붉은 성의 관리를 포섭해 두지 않았다니. 바보인가, 아니면 자만심인가?”
압할라의 아들은 빙그레 웃으며 찻잔을 다탁에 내려놨다.
“또 그 말씀이십니까?”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하는 소리야. 그 일만 아니었다면 우리 상단은 이 전쟁이 누구의 승리가 되든 그 영향이 매우 적었을 것이다. 상단의 책임자로서 난 큰 실수를 한 거야.”
“상인이 어찌 모든 앞날을 다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느낌이 안 좋아.”
압할라는 주름이 가득한 손으로 찻잔을 들었다. 차는 이미 식어서 제맛을 음미하기 어려웠다. 입에 넣었던 찻물을 찻잔에 뱉어 낸 그는 천으로 입 주변을 닦은 후 말했다.
“사람에게 특유의 분위기가 있듯이, 모든 일에는 그 일을 둘러싼 복잡하고도 내밀한 분위기가 알게 모르게 흐른다. 그것을 잘 읽고 손해 보지 않게 결정 내리는 것이 상인이 할 일이지.”
압할라의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친에게 가르침 받아 온 것들이다.
“내가 왜 붉은 성이 코앞인 이곳까지 온 줄 아느냐? 길어지고 있는 대공과 샤르비티의 전쟁 때문이다. 싸움 한복판인 이곳에 오면 전쟁의 분위기가 내게 좀 더 생생하게 다가오거든.”
귀가 늘어져 거의 턱 끝까지 이른 압할라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양손을 활짝 펼쳤다. 마치 세상의 기운을 다 자신에게 끌어모으려는 행동 같았다.
“그런데…… 매우 좋지 않아. 이상한 기운이 이 전장을 뒤덮은 것 같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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