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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64화 (464/575)

[464] 디 임팩트 19권 14화

“싸우다 보니 영주님의 오른손 검만 보이게 됐습니다.”

“네 스승은 쌍수검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검사다. 검 한 자루로도 대적할 자가 드물 텐데, 하물며 쌍수검을 사용하게 되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이 되지? 곁에서 네가 지켜봤으니까.”

딘은 에드의 턱 밑에 아슬아슬하게 멈춘 그의 단검을 회수하며 말을 계속 이었다.

“네 스승처럼 쌍수검을 익히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처럼 필요할 때 의외의 한 수를 선보이는 임기응변은 누구든 가능해. 내가 왼손이 없는 사람처럼 싸워도 넌 항상 다른 한 손을 대비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영주님.”

사실 도현에게 이미 배운 바였지만, 에드는 딘의 노련한 검술 운용에 그만 함정에 빠진 것이다.

‘알고서도 또 실수를 했어. 실전이었다면 이미 난 죽은 사람.’

고향 마을에서 도적단을 궤멸시키는 큰 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붉은 성으로 오는 도중 몇 차례 싸움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아직 에드는 경험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심계가 깊은 검사와 싸우게 되면 실력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억울하게 죽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다.

검술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 해서 자만해선 안 된다.

“다시 한 번 해 볼까?”

“네, 영주님.”

뒤로 몇 걸음 물러난 에드는 곧 딘과 어우러져 남이 보기에 실전처럼 보이는 치열한 검술 대련을 이어 갔다.

그 모습을 풀이 자란 뜰에 누워서 한가롭게 구경하던 짐브리오는 길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웬일로 영주가 저리 열심히 가르치는 거지?”

“그에겐 아들이 없어요.”

제멋대로 길게 자란 풀잎을 뽑아내며 뜰을 깔끔하게 정리 하던 로나가 조용히 대꾸했다.

그녀 주위엔 반쯤 색이 바란 녹색 풀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녀의 행동을 잠시 바라보던 짐브리오가 말했다.

“후계자로 생각하는 건가, 자신의 영지를 물려줄?”

“언제가 그는 이런 말을 했어요. 자신은 자식을 갖지 못하는 몸이라고.”

“그런 얘기를 네게 했다고?”

누워 있던 짐브리오가 벌떡 일어나며 한참 싸움에 몰두하고 있는 영주 딘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음침한 인간이네, 뭐 그런 얘기를 네게 해?”

“그때 같이 들었잖아요, 톨리핀의 집에서 술 마실 때. 자기가 기억을 못 하고선.”

“아, 그랬나?”

짐브리오는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풀 위에 누웠다.

“영주는 에드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뼛속까지 그놈의 귀족 타령하며 영주라는 자부심으로 사는 인간이 에드를 후계자로 낙점한 걸 보면.”

“확실한 건 아니에요,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거지.”

“나중에 리드만 사제님이 돌아오면 슬쩍 물어봐야겠다. 사제님은 영주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 테니까.”

리드만 사제와 어베인은 외출을 한 상태였다. 이미 그들에겐 붉은 성에 거주할 수 있는 허가증이 내려졌기 때문에 성내를 돌아다닌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이번엔 잘 피했네.”

영주 딘의 기습적인 단검 공격을 회피한 에드는 몸을 회전시키며 발로 딘의 턱을 걷어차는 대찬 모습을 보여 줬다.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짐브리오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앉은 자세로 뜰의 풀을 정리하는 로나의 뒷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아니, 근데 왜 풀은 뽑고 그래? 그냥 놔둬도 지내는 데 불편하지 않잖아?”

“보기 흉하잖아요.”

“어차피 두 달 뒤엔 난장판이 될 곳이야.”

도현은 그들에게 돈조르니와 나눈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내용 중에 핵심은 두 달 뒤 샤르비티의 총공격이 예상되고, 그때 전쟁의 승패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야, 정 주지 마.”

짐브리오의 말에 풀을 뽑던 로나의 손이 조금씩 느려졌다. 그녀의 귀에는 ‘정 주지 마.’라는 짐브리오의 마지막 말이 사라지지 않고 메아리쳐서 우웅거렸다.

도현과 지구라는 곳에 있다는 그의 여자가 안개처럼 희미하게 뒤섞여 그녀의 눈앞에 어른거리다 사라졌다.

“그래도 있을 땐 깨끗하게 지내는 게 좋잖아요.”

“자식, 말 안 듣네.”

혀를 찬 짐브리오는 팔베개를 하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말을 타고 몇 시간 거리엔 베일 연합군과 사자 동맹군이 검을 겨누며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은 푸른 하늘을 감상할 만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붉은 성으로 오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는데, 어째 돌아가는 게 그들은 여기서 놀고먹고, 도현만 뛰어다닐 분위기였다.

이래선 도현을 돕기 위해 같이 온 의의가 사라진다.

“젠장, 내가 리타 대신 같이 갔어야 했는데.”

하늘을 보며 아쉬워할 때, 그의 눈앞에 십자형 목걸이가 불쑥 나타나 좌우로 흔들렸다.

“뭐야, 이거?”

짐브리오의 시선이 목걸이를 흔드는 팔의 주인을 따라갔다. 리타가 웃고 있었다.

“멋지지?”

“언제 왔어?”

벌떡 일어난 짐브리오는 리타를 바라봤다. 그녀 뒤엔 도현이 서 있었다.

도현이 등장하자 다들 하던 행동을 멈추고 그를 향해 다가왔다.

“스승님, 다녀오셨습니까?”

에드는 허리에 검을 찬 모습으로 제법 의젓하게 말했다. 어른들과 같이 다니며 검술뿐만 아니라 겉모습까지도 좀 더 어른스러워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도현에겐 어딘지 미숙하고 허점이 많아 보이는 생기발랄한 청년이었다.

“영주님께 검은 많이 배웠느냐?”

“제자가 부족해서 아직 많이 배우지 못했습니다.”

“허허, 아니야, 아주 빠르게 배우고 있네. 사실 배울 게 없지, 스승이 차고 넘칠 만큼 가르치고 있는데.”

영주 딘은 헛기침을 하며 에드의 어깨를 토닥였다.

“난 그저 자네가 없을 동안 에드와 검술 상대가 되어 주면 족한 입장이야.”

“아닙니다, 영주님. 영주님의 검술과 경험은 배울 점이 많습니다.”

도현이 자신을 치켜세우자 딘은 빙그레 웃으며 양 갈래로 기른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아무튼, 다치지 않고 둘 다 무사히 돌아왔군.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됐나?”

“잘 끝냈습니다.”

도현은 지휘부를 빠져나온 압할라를 숲길에서 어떻게 잡게 됐는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에이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굉장한 강자가 압할라의 호위로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의외였는지 다들 놀라워했고, 그 사람이 과거에 에이저의 목숨을 구해 준 이였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랐다.

“에이저 경이 아주 난처했겠어. 아마 그 혼자 갔다면 압할라를 놓쳤을 것 같군.”

도현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게 압할라에겐 불행이었다.

“그런데 폴허먼이란 이름은 생소한데?”

“그땐 저도 그가 누군지 자세히 듣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에이저 경에게 그의 정체를 듣게 됐죠.”

“그가 누군데?”

짐브리오가 물었다.

“침묵의 기사단에서 추방된 기사라고 하더군요.”

도현은 말을 하며 품속에서 리타가 주운 오래되고 낡은 책자를 꺼내 보여 줬다.

“현장에 이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오는 길에 에이저 경에게 보여 줬더니, 그의 물건 같다고 하더군요.”

폴허먼의 정체는 그때 듣게 된 것이다.

도현은 그 책자를 에이저에게 주려고 했지만, 그는 도현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받지 않았다.

-그 책에는 침묵의 기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율법이 적혀 있네. 난 활쟁이고 자네는 검사 아닌가? 읽어 보고 귀찮으면 버리게. 사실 이 책자 자체로는 큰 가치가 없네. 돈을 주면 이 책자와 비슷한 것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오래전 기사단에서 추방됐다는 폴허먼이 여태 소지했다는 것은 나름 추억이 깃든 의미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에이저라고 모르진 않았지만,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폴허먼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고, 현재의 것은 현재의 것이지. 19년 전, 그는 검을 추구하는 구도자로서 세상을 떠돈다고는 했지만 마음속에 큰 벽이 있었네.

-벽요?

-그는 자신의 얼굴에 검상을 남긴 기사단장의 그늘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고 있더군. 자네가 주운 그 책자가 그의 것이 맞는다면, 그는 여전히 19년 전, 내가 느꼈던 기사단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일 거야. 강해지기 위해선 뛰어넘어야지, 왜 자꾸 그 안에서 머물려 하는지 모르겠어. 그 책자는 추억이 아니라 그를 가둬 두고 있는 족쇄네. 그러니 읽어 보고 귀찮으면 버리라고 자네에게 말했던 거야.

도현은 에이저와 나눈 이야기를 떠올리며 동료들이 책자를 돌려 보는 것을 잠시 지켜봤다.

“침묵의 기사단은 불규칙적으로 소수의 인원을 뽑아 검을 가르치고 세상에 내보낸다고 들었네. 그곳의 출신이라고 그 당사자들이 말하기 전까진 잘 드러나지 않지.”

딘은 폴허먼의 손때가 묻은 소책자를 가볍게 훑어보다가 도현에게 되돌려줬다.

리타는 도현이 마법 주머니에 침묵의 기사단 책자를 집어넣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손에 든 십자형 목걸이를 흔들며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모았다.

“이게 뭔지 다들 보라고요!”

“뭐긴 뭐야, 목걸이지. 그건 왜?”

짐브리오는 시큰둥한 얼굴로 목걸이를 쳐다봤다.

“그냥 목걸이가 아니거든.”

“압할라가 가지고 있던 거냐?”

“그건 내가 따로 챙겼고. 이건 뭐냐면 대공 부인이 내게 선물로 준 거야.”

“뭐? 대공 부인이?”

짐브리오는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그녀의 손에 들린 십자형 목걸이를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 보니 십자형 목걸이 가운데에 베일 가문을 상징하는 울부짖는 사자가 정교한 솜씨로 새겨져 있었다. 베일 가문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을 한 목걸이라는 뜻이었다.

“그걸 왜 네게 준 거지?”

“압할라를 죽이는 데 공을 세웠다고. 헤헤, 그뿐인 줄 알아? 대공도 만나고, 조금 전엔 점심도 같이했다고.”

“도현. 리타 말이 사실이냐?”

짐브리오는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배 아픈 표정을 지었다.

“젠장, 대공과 대공 부인을 만나고 선물까지 받아 오다니.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했는데.”

“부럽지?”

리타는 짐브리오를 잠시 더 약올리다가 로나를 돌아봤다.

“로나, 이 목걸이 가질래? 난 사실 이런 목걸이 취향이 아니거든.”

“아니야, 나도 목걸이는 많잖아.”

“아, 그렇지. 도현이 준 보물 상자에 잔뜩 들어 있었으니까.”

“내가 보기엔 그 목걸이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그냥 착용해. 혹시 나중에 대공 부인을 다시 만나게 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말이야.”

로나의 지적에 리타는 미처 그 점을 생각지 못했다는 듯 박수를 쳤다.

“맞아, 그렇기도 하네? 차고 있어야겠다. 그래야 나중에 전쟁 끝나고 나서 우리에게 땅을 달라고 대공 부인에게 부탁 할 수 있으니까.”

“야, 야, 베일 가문은 대공 거야, 대공 부인이 아니라. 줄을 서려면 제대로 서.”

“이 씨, 왜 머리를 건드려! 죽을래!”

리타가 흑마법을 사용하려 하자 움찔한 짐브리오는 그녀의 머리에서 얼른 손을 내렸다.

“리드만 사제님과 어베인 대장이 안 보이는군요. 어디 가셨습니까?”

뜰에 모인 동료들을 둘러보며 도현이 물었다.

“고대 유적터에 가셨어요.”

로나의 대답에 도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고대 유적터요? 이곳에 그런 게 있어요?”

“네, 우리도 오늘 아침에야 알았어요.”

로나의 말에 따르면 붉은 성이 세워지기 전부터 이 바위산 정상 위엔 고대인들의 성이 존재했다고 한다.

긴 세월이 흘러 그 성은 폐허로 변했고, 그 위에 붉은 성이 축성된 것이다.

“로나는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웃집요.”

“이웃집요?”

도현의 시선이 로나의 손짓을 따라 왼편으로 향했다.

담 너머 그들이 사는 집보다 규모가 작은 2층 집이 보였다.

“저기에 누가 사는데요?”

“붉은 성 주민요.”

붉은 성엔 병사들이 집단으로 머무는 병영을 제외하고도 수백 채의 집이 존재했는데, 그중 일부는 붉은 성을 관리하는 일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붉은 성에 상주하는 주민들이었고, 그들은 150여 년간 이곳에 대대로 머물며 붉은 성을 돌봐 온 사람들이다.

“예전부터 붉은 성을 관리하던 일꾼들이에요. 그래서 이곳의 역사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죠.”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건 그녀의 특기 중 하나였다.

붉은 성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발로 뛰며 직접 이 성에 대해 알아봤고, 옆집에 사는 붉은 성 주민과도 친분을 다져 놨다.

그 모든 건 도현이 어제 압할라를 죽이기 위해 출발함과 동시에 이뤄졌다.

“대단하네요, 로나.”

도현의 칭찬에 로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고대 유적터에 가 볼래요?”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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