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465화 (465/575)

[465] 디 임팩트 19권 15화

알리언의 언덕

한낮에 벌어진 전투의 흔적 위에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시체를 수습하고 병장기를 정리한 사자 동맹군 병사들은 베일 연합군으로부터 빼앗은 거점에 그들의 깃발을 꽂고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알리언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이 거점은 붉은 성 주변까지 흘러 들어가는 긴 강과 면해 있어서 강을 가까이서 감시하는 역할까지 했다.

거점 전투를 지휘한 거구의 장수 호탄은 오만한 표정으로 언덕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봤다.

“밀튼 영주도 별거 아니군, 이런 오합지졸을 보내 언덕을 지키게 하다니.”

언덕을 지키던 2천의 밀튼 병사는 7백 명 이상 되는 사상자를 내고 언덕에서 퇴각했다.

온몸에 문신을 두르고 코에 둥근 고리를 한 호탄은 자신처럼 기괴한 문신을 한 직속 부하들에게 팔을 올리며 외쳤다.

“내일은 아예 밀튼의 본진까지 쓸어버리자!”

“와아아!”

천여 명 가까운 그의 부하들은 입으로 소리를 내며 근육질의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들은 밀림의 전사들로 큰돈을 약속받고 전쟁에 참가했다.

개개인이 인간 사냥꾼이라고 불릴 정도로 잔인하고 흉포했다. 그렇기에 나름 용맹한 밀튼 영주의 병사 2천이 지키고 있던 이 언덕을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형님, 위에서는 이곳을 지키라고 했지 않습니까?”

“알게 뭐야, 적을 죽이면 좋은 일이지. 밀림에서 산다고 우릴 무시하는 영주 녀석들에게 우리의 진가를 알려 주자.”

호탄은 팔에 묻은 적의 피를 혀로 길게 핥으며 잔인한 눈빛을 흘렸다.

최근에 사자 동맹군 측에 합류한 그는 이번 전쟁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형님,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용당하기 쉽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적당히 싸워 주며 돈을 벌어서 돌아가죠.”

“동생아.”

호탄은 눈빛이 날카로운 친동생의 턱을 장난스럽게 만지며 말했다.

“난 밀림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예?”

“큰 공을 세워서 샤르비티에게 정식으로 영지를 받을 거다. 귀족이 되고 영주가 되는 거야. 너도 그러고 싶지 않냐?”

형의 말에 동생의 눈빛이 흔들렸다.

“강자들이 수두룩합니다, 병사들은 수십만씩이나 있고. 우리 전사들이 용맹하고 강하지만 그들에 비하면 작은 힘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눈에 띄는 공을 세워야 한다는 거다. 이 지역을 방어한다는 밀튼 영주를 잡아 죽이면, 너와 나의 명성이 올라가겠지.”

“무슨 수로 말입니까? 언덕을 지키는 병사들과는 다른 정예 병사들이 밀튼을 보호하고 있을 텐데요. 그 수도 만 명이 훌쩍 넘고 말입니다. 헛된 생각 그만 품으시고 지휘부에서 시키는 일이나 적당히 해 주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자고요.”

“이 자식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며 반대하는 동생에게 호탄은 주먹질을 하려고 했다.

그 순간, 언덕 아래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적이다! 크아아악!”

흠칫한 호탄은 칼을 뽑아 들고 급히 언덕 아래를 살폈다.

짐승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들이 밀림의 전사들을 죽이며 언덕을 향해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대체 저것들은 뭐야? 사람이야?’

높은 언덕에서 어두운 아래를 내려다보던 호탄은 주변의 부하들에게 급히 명했다.

“불화살을 쏴라!”

수십 발의 불화살이 어둠을 밝히며 언덕 아래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명확하지 않았던 적의 모습이 호탄의 눈에 드러났다.

몬스터처럼 눈빛이 붉은 병사들이 그의 부하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있었는데, 신체가 잘려도 다시 붙는 기괴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일이?”

수십 명의 괴물 병사들이 밀림의 전사들을 학살하듯 잡아 죽이며 해일처럼 언덕 정상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쩌쩌저쩡!

괴물 병사의 무기에 피부가 스친 자들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팔과 몸통이 산산조각 나며 잔인하게 죽어 갔다.

피가 난무했고 죽어 가는 자들의 비명 소리가 언덕 전체를 지배했다.

“이 개 같은 자식들!”

아까운 부하들의 희생에 머리끝까지 분노한 호탄은 자리를 피하자는 동생의 말을 무시하고 칼을 들고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다 죽여 버리겠다! 사람이든 괴물이든 모조리 다!”

기세 좋게 내려가던 그의 목이 돌연 분리되어 몸과 따로 놀았다.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언덕을 내려가던 호탄의 몸뚱이는 잠시 후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허무한 죽음이었다.

“형님!”

뒤에서 지켜보던 호탄의 동생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형의 이름을 불렀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호탄의 동생은 형을 죽인 자를 노려봤다.

그는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게 기른 적발 거한으로 거대한 방패를 들고 서 있었다.

믿을 수 없게도 저 거대한 방패를 검처럼 휘둘러 형의 목을 단숨에 잘라 버린 것이다.

“퇴각! 퇴각하라!”

호탄의 동생은 살아남은 부하들을 향해 목청을 높여 외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형을 죽인 원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으핫!”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마나로 빛나는 도끼가 칼라치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바위라도 부술 엄청난 힘이 도끼에 서려 있었다. 호탄의 동생은 실력 면에서 그의 형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강렬한 눈빛을 띠며 도끼를 들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호탄의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칼라치는 방패로 머리를 막았다.

콰앙!

굉음과 함께 칼라치의 두 발이 땅속으로 깊숙이 밀려들어 갔다.

“제법이군.”

칼라치는 살짝 감탄을 하며 허공을 올려다봤다. 방패의 반동을 이용해 재차 하늘로 치솟은 호탄의 동생이 매서운 눈빛으로 다시 하강하며 도끼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방패를 막을 정도는 아니야.”

번쩍이는 빛이 호탄의 동생 몸을 양쪽에서 가격했다.

쾅!

칼라치의 두 방패 사이에 끼어 몸이 납작해진 호탄의 동생은 반쯤 부서진 얼굴로 칼라치를 노려보다가 서서히 눈을 감았다.

두 형제의 시신을 잠시 내려다보던 칼라치는 고개를 들어 언덕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분신과 같은 고대 병사들이 도망치는 적을 쫓아가며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었다.

그는 언덕 정상에 올라 사자 동맹군 깃발을 뽑아 반으로 꺾어 버린 후, 헬구스가 들고 있던 깃발을 그 자리에 대신 꽂았다.

낮에 빼앗긴 알리언의 언덕을 하루도 되지 않아 되찾은 것이다.

“역시 고대 병사는 대단하군, 흉악한 밀림의 전사 녀석들을 다 쫓아내 버리다니.”

헬구스는 검은 연기로 변해 칼라치의 몸속으로 다시 스며드는 고대 병사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보면 볼수록 탐나는 녀석들이었다.

“이제 밀튼의 병사들이 오기를 기다리면 되겠군.”

헬구스는 값비싼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밤하늘에 푸른 빛이 번쩍이다 사라졌다. 숲에서 대기 중인 밀튼의 병사들이 이 신호를 보게 되면 곧장 달려올 것이다.

알리언의 언덕을 공격한 건 칼라치와 헬구스 단둘뿐이었다.

“수고했네, 칼라치. 이제 밀튼 영주도 자넬 만만히 못 볼 거야. 증명을 해 보였으니까.”

윌벤슨을 따라 밀튼 진영에 합류한 그들은 그동안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이번에 큰일을 하나 해낸 것이다.

칼라치는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그가 날 어찌 보든 상관없네.”

“하긴.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리지만, 자네 정도의 능력이면 굳이 밀튼 밑에서 일을 하며 땅이나 받기를 원할 필요가 없지. 생각해 보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고. 자네 몸속엔 수백의 고대 병사들이 있어. 이 전쟁터를 떠나도 자네가 마음만 먹으면 어딘들 땅을 얻지 못하겠는가?”

헬구스는 호탄 형제가 마시려고 준비한 술통을 열어 술을 한 모금한 후, 그것을 칼라치에게 건넸다.

말없이 술을 마시는 칼라치를 보며 헬구스가 넌지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베일 가문의 전쟁에서 그만 빠지자는 거네. 오늘 한 일이면 윌벤슨의 체면은 세워 준 셈이니, 우리가 떠난다고 해도 윌벤슨도 별다른 말을 못 할 거야.”

“내가 백도현과 싸울까 봐 그러는 건가? 그래서 떠나자고 자꾸 옆에서 부추기는 거야?”

술통에서 입을 뗀 칼라치는 담담한 시선으로 헬구스를 보며 물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린가? 갑자기 백도현은 왜?”

“시치미 떼지 마, 그가 밀튼의 진영에 잠시 머물다 붉은 성으로 떠난걸 알고 있으니까. 자네를 만난 것도 알고 있어.”

“헉! 그걸 자네가 어떻게!”

헬구스는 놀란 눈빛으로 칼라치를 응시했다.

“밀튼 영주와 만나기로 했는데 자네가 보이지 않기에 찾아다녔지. 그때 자네가 도현과 만나고 있는 걸 목격했어. 이디언이 나타나자 도현은 자리를 피했지만, 난 그 전부터 보고 있었지.”

“그랬었군. 이거 참 부끄럽군.”

헬구스는 평소와 다른 진지한 얼굴로 술통의 술을 꿀꺽꿀꺽 소리 내어 몇 모금 마셨다.

“미안하네, 칼라치. 일부러 속인 건 아니야. 둘이 잘됐으면 하는 심정에서 차마 자네에게 그를 봤다고 말을 못 한 거지.”

“오해하고 있군. 이미 그에 대한 사적인 감정은 다 털어 냈어, 그가 브링틱에서 이디언을 구해 준 날.”

“아, 그랬었나? 역시 자넨!”

“하지만 승부욕까지 버리진 못하겠더군.”

칼라치는 씁쓸한 어조로 술을 마시며 언덕 아래의 강을 내려다봤다. 아버지인 스므차가 죽고, 이제 남은 건 도현밖에 없었다.

도현이라도 꺾어서 그의 목표 중 하나를 달성하고 싶었다.

“다크캐슬에선 자넬 싫어했지만 지금은 하나뿐인 친구라고 생각하네. 자네가 도현과 싸우다 잘못되는 걸 보기 싫어.”

“내가 그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네. 자네는 고대 병사를 흡수하며 본신의 능력이 몇 배나 강해졌지. 고대 병사를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을 제외하고도 말이야. 하지만 도현도 만만치 않아. 내 느낌에 그는 거인의 섬에서 씨드를 얻은 것 같거든. 그가 시인은 안 했지만 말이야.”

“짐작하고 있네, 그랬을 것 같았어.”

칼라치는 술을 마시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도현은 대공을 돕기 위해 왔다고 했어. 아마 붉은 성이나 주변 아군의 진영에 머물고 있을 것 같은데, 찾아갈 텐가?”

헬구스는 긴장한 얼굴로 칼라치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칼라치는 말없이 강을 보다가 천천히 답했다.

“일단 전쟁이 먼저겠지, 그와의 싸움은 그 뒤의 얘기고. 사실 그보다 먼저 만나고 싶은 자가 생겼어.”

“그가 누구인가?”

“사자 동맹군인 철가면 검사 휴반트.”

“철가면 휴반트?”

생소한 이름이었다. 궁금해하는 그에게 칼라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그에 대해 설명했다.

“궁수 중에는 최강이라고 전장에 소문이 난 에이저 경이 그에게 죽을 뻔했다더군.”

“그런 일이 있었나?”

“그 싸움 현장에 있었던 보급품 수송부대의 지휘관이 밀튼 영주와 술을 마시며 한 얘기야. 옆에 있던 윌벤슨이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내게 전해 준 것이고.”

칼라치는 당시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율이 일어났었다.

-혹시 그자가 스므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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