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475화 (475/575)

[475] 디 임팩트 19권 25화

“그렇다. 이제 파괴신의 파편을 꽂으면 파괴신이 강림해 붉은 성은 사라질 것이다.”

“좋아, 훌륭해. 샤르비티 님이 매우 기뻐하실 거야.”

들뜬 음성으로 답한 벨라는 제단을 한 바퀴 돌며 감상했다. 마법으로 만든 마법진과는 다른 신비로운 기운이 제단을 감싸고 있었다.

‘흥, 그래도 꼴에 파괴신의 신성력이 있긴 있었군.’

벨라는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파편을 어디에 꽂으면 되지?”

“내게 줘, 내가 꽂을 테니까.”

두 달간 쉬지 않고 돌을 다듬어 제단을 만드느라 손이 엉망이 된 푸베지토는 뼈가 보이는 손을 내밀었다.

“헛소리 마, 내가 꽂을 테니까.”

“그럼 사용하기 전에 한 번만 만져 보자. 파괴신의 파편은 내게 있어 성물이야.”

“안 된다고 말했어. 난 받은 지시대로 움직이는 사람이야. 당신도 샤르비티 님에게 받은 지시대로 움직여.”

“너무하는군, 날 못 믿다니.”

“임무에 충실해. 당신이 받을 보상을 생각하라고.”

푸베지토는 차가운 벨라의 눈을 잠시 노려보다가 제단 정상에 그려진 파괴신의 오른쪽 손을 가리켰다.

“저곳이다.”

벨라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눈부신 빛이 지하 공간을 가득 덮었다.

‘이상한 기운이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황금색 빛이 뿜어져 나오는 길쭉하고 뾰족한 파괴신의 파편을 집어 든 벨라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제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의 망토와 긴 머리카락이 손에 든 파편의 영향으로 마구 휘날렸고, 화로의 불꽃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요동쳤다.

‘제단과 반응을 일으키는 건가? 평소엔 괜찮았는데.’

그녀의 손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푸베지토! 제단에 가까이 가는 게 너무 힘들어!”

“파괴신의 신도가 아니면 그렇게 고통을 받는 것이다! 멍청한 것아!”

그는 고통받는 그녀를 비웃었다.

“그런다고 내가 당신에게 이것을 줄 줄 알아? 천만에!”

벨라의 눈이 붉게 변하더니 몸에서 강한 힘이 일어나 황금색 서기를 뿜어내는 파괴신의 파편의 힘에 대항했다.

“지시받은 대로! 내가 꽂을 거야! 이 빌어먹을 파괴신의 신도 녀석아!”

거친 고함 소리와 함께 그녀는 몸을 날려 제단에 그려진 파괴신의 오른손에 파편을 꽂았다.

그 순간 제단에 장식된 파괴신의 언어들이 허공으로 솟구쳐 제단을 감싸는 황금색 막을 형성했고, 제단에 가깝게 붙어 있던 벨라는 황금색 막에 밀려 뒤로 튕겨져 나갔다.

‘윽!’

속으로 고통을 참아 낸 그녀는 공중제비를 돌며 땅에 착지했다.

‘된 건가?’

그녀는 황금색 막으로 보호되는 제단을 바라보다가 푸베지토에게 물었다.

“발동된 거지?”

“그래, 이제 이곳은 끝났다.”

푸베지토는 제단에 반쯤 흡수된 파괴신의 파편을 보며 대꾸했다. 저것이 완전히 제단에 흡수되게 되면 파괴신이 강림하게 된다.

“서둘러 탈출해야 한다.”

“그래, 탈출해야지, 우리까지 여기서 죽을 수는 없으니까.”

벨라는 말을 하며 등을 보이고 서 있는 푸베지토의 뒤로 다가갔다.

그는 지팡이와 소지품을 챙기고 있었다.

그녀는 바닥에 놓인 망치를 들어 푸베지토의 뒷머리를 가격했다.

퍽 소리와 함께 머리가 반쯤 부서진 푸베지토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피가 묻은 망치를 툭 던지듯 내려놓은 그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죽어 가는 푸베지토에게 속삭였다.

“샤르비티 님에게 내가 받은 마지막 지시는 너까지 죽이라는 거였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잘 가.”

냉정한 얼굴로 일어난 그녀는 황금색 막에 둘러싸인 제단을 힐끔 쳐다본 뒤, 입구로 걸어갔다.

“완벽해, 이제 나만 탈출하면 되는 거야.”

푸베지토가 만든 마법의 벽을 제거하려던 그녀는 그 자리에서 몸이 굳었다.

‘저자가 여기에 어떻게!’

도현이 위장된 동굴의 벽 앞에 서 있었다.

* * *

“스승님, 이상하네요. 분명히 우물과 연결된 곳은 여기 이 지하 공간밖에 없는데요. 그자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횃불을 든 에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고대 유적터에서 수상한 자가 우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위에서 우물을 살피던 에드는 망설임 끝에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었다.

사람이 우물 안으로 들어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적의 첩자인가 싶기도 해서다.

첩자라면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도 불타올랐고.

하지만 그가 우물에 들어가려는 순간, 그의 몸을 덥석 붙잡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도현이었다.

에드가 고대 유적터로 갔다는 로나의 말을 듣고 때마침 도착한 그는 상황을 파악한 후 제자와 함께 우물과 연결된 지하 공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제가 헛것을 본 것 같습니다.”

지하 공간을 둘러봐도 수상한 자를 찾을 수가 없자 에드는 급기야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가 의심을 했다.

그러나 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잘못 보지 않았다. 우리가 찾지 못하는 것일 뿐.”

도현은 허리를 숙여 부서진 목재를 예리한 시선으로 살펴봤다. 반쯤 꺾인 목재에는 누군가가 걷어찬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방금 전 누군가가 이곳을 지나간 건 확실하다. 우물과 연결된 작은 통로에도 사람이 오간 흔적이 미세하지만 남아 있었고.”

“그럼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말씀이군요.”

에드가 횃불을 이리저리 비추며 말했다.

스승과 달리 그는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놀라운 시력이 없다. 그래서 마법 주머니 안에 보관 중이던 횃불을 이용해야만 했다.

“에드.”

“네, 스승님.”

“집으로 가 동료들을 데리고 와라. 마법을 이용해 숨어 있다면 너와 내 힘만으로는 찾아내기 어려울 수가 있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도현은 제자를 보내기로 작정했다. 만약 에드가 목격한 자가 적의 첩자라면 잡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에드는 신법을 이용해 빠르게 우물 밖으로 나갔고, 도현은 마법 주머니 안에서 새로운 횃불을 하나 꺼내 불을 붙였다.

어둠 속에서도 잘 보이긴 하지만 불빛에 의지해 보는 것과는 그래도 차이가 있었다.

작은 차이로 적의 흔적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에 도현은 에드가 떠나자 횃불을 밝힌 것이다.

“어디로 숨은 걸까…… 그리 큰 시간 차이도 나지 않았는데. 지하 공간은 막혀 있고.”

벽을 더듬으며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도현의 눈빛이 돌연 강해졌다.

‘이건 무슨 기운이지?’

도현은 몸을 틀어 벽을 마주 보았다.

‘벽 안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벽을 노려보던 도현은 대력금강수를 일으켰다. 진한 청색 강기가 그의 손에 맺혔다.

그는 망설임 없이 힘껏 벽을 후려쳤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마법의 벽이 깨지며 벽으로 위장된 작은 동굴이 나타났다.

도현은 동굴 안의 모습에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가 느꼈던 강한 기운은 황금색 막에 둘러싸인 알 수 없는 제단에서 뿜어져 나오던 것이었다.

‘대체 저건 뭐지?’

천천히 내부를 살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간 도현은 제단 근처에 쓰러져 있는 검은 옷의 노인에게로 먼저 다가갔다.

안에는 이 노인밖에 없었다.

뒷머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진 노인은 아직 숨이 붙어 있긴 했지만 빠르게 죽어 가고 있었다.

“내 말 들립니까!”

몸에 자극을 줘 대화를 시도했지만 노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을 더 노력해도 마찬가지였다.

도현은 결국 노인과의 대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저 수상한 제단은 또 뭐고?’

동굴 내부를 다시 한 번 빠르게 훑어본 도현은 강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범상치 않은 제단을 향해 다가가려 했다.

그때 죽어 가던 노인의 손끝이 꿈틀대는 게 보였다.

도현은 혹시나 싶어서 다시 몸을 숙이고 노인을 살펴봤다.

노인이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를 말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노인의 입술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그……그……년. 조심.”

“그년을 조심하라는 말입니까? 그년이 누구입니까?”

그러나 노인은 그년이 누구인지 밝히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했다.

“파……파괴신의…… 제단을…… 막아야 해.”

“파괴신의 제단?”

도현의 시선이 황금색 막이 쳐진 제단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노인이 말한 파괴신의 제단이 저것인 것 같았다.

“파……편. 파괴신의…… 파편을…… 부숴라. 곧 붉은 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헉!”

푸베지토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곧 숨이 끊어졌다. 도현이 질문을 던질 겨를도 없었다.

‘붉은 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단을 노려봤다.

노인의 말은 명확했다. 이곳에 설치된 저 파괴신의 제단을 막지 않으면 곧 붉은 성이 파괴된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흔적도 없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죽어 가던 자가 혼신의 힘으로 쥐어짠 마지막 말들이었으니까.

‘막아야 한다. 붉은 성이 사라지면 이 전쟁도 끝이야.’

그러나 그가 말한 파괴신의 파편이 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제단 어딘가에 있을 거야.’

도현은 그의 시선을 방해하는 황금색 막을 없애 버리기 위해 검을 뽑다가 뒤에서 들리는 미약한 소리에 번개처럼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이곳에서 빠져나갔다.’

본능적으로 알아챈 도현은 즉시 동굴을 나와 지하 공간을 살폈다.

망토 자락을 펄럭이며 우물로 이어진 통로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자가 보였다.

도현은 즉시 신법을 발휘해 순식간에 그를 따라잡았다.

벨라는 뒤를 돌아보다가 도현이 바로 뒤에 있자 그만 너무 놀라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대의 마법 망토를 사용해 동굴 입구에 은신해 있다 기회를 보고 도주했던 것이다.

‘내가 두려워 도망가는 줄 아느냐? 너와 싸우다 탈출에 지장이 생길까 봐서야!’

속으로 그렇게 외친 그녀는 입으로 바람을 크게 불었다.

천둥소리가 나며 공기가 돌처럼 변해 뒤에서 쫓아오던 도현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콰앙!

대력금강수로 그녀의 마법을 막아 낸 도현은 그녀를 매섭게 노려봤다.

“넌 그 시녀로구나.”

“그렇다! 어쩔 것이냐!”

벨라는 빠르게 달리면서 허리에 감긴 채찍을 휘둘렀다. 뱀처럼 꿈틀거리는 채찍은 용광로처럼 뜨거워서 도현이 피한 땅이 치직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죽어라!”

매몰차게 외치며 재차 채찍을 휘두르던 그녀는 억 소리를 토해 냈다. 웬만한 칼로는 흠집도 안 나는 그녀의 채찍이 갑자기 수십 개의 조각으로 변해 사방으로 꽃잎처럼 날아갔기 때문이다.

그녀의 채찍을 없애 버린 도현은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들고 있던 검을 빠르게 몇 번 휘둘렀다. 어둠 속에서 파랗게 보이는 도현의 검신은 벨라의 전신을 거미줄처럼 휘감으며 붉은 피를 만들어 냈다.

폭죽 터지듯 그녀의 몸에서 핏줄기가 터져 나왔다.

“아아악!”

긴 비명 소리와 함께 벨라가 땅에 처박혔다.

그녀를 돕던 고대의 마법 망토는 도현의 검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고, 그녀의 몸엔 많은 검상이 만들어져 있었다.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의 몸을 옆구리에 낀 도현은 지체 없이 제단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그녀를 제단 앞에 내동댕이쳤다.

“긴말 안 하겠다. 제단을 멈춰!”

도현은 직감적으로 벨라가 이 모든 일에 관련이 있다고 느꼈다. 에드가 봤다는 수상한 자는 아마 이 여자일 것이다. 더불어 노인도 죽이고.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피투성이가 된 벨라는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도현을 노려봤다.

“어차피 잡힌 몸, 다 같이 죽는 거야, 호호호!”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단이 격렬하게 진동하며 동굴의 천장에서 돌 조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