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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80화 (480/575)

[480] 디 임팩트 20권 5화

사자는 사자를 낳는다. 하지만 가끔 돌연변이가 튀어나올 수도 있었다.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나온 로니올이 그랬다.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능력은 갈고닦지 않는다. 지도력도 부족하고 남을 잘 포용할 줄도 모른다.

성격이 급해 싸움질이 끊이지 않는다.

샤르비티의 아들이라는 후광이 없었다면 길거리에서 칼을 맞고 벌써 죽었을 운명이다.

그나마 사자의 피를 이어받은 부분은 외모에 있었다. 쭉 뻗은 팔다리와 훈훈한 외모.

젊었을 적 샤르비티의 외모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내 말을 가지고 와!”

화가 잔뜩 난 그는 말을 타고 내성을 둘러싼 도시 안으로 진입했다.

그의 뒤로 수십 기의 말들이 함께했다. 실력이 뛰어난 호위 무사들이었다.

“저리 비켜!”

거리의 사람들을 말로 헤치며 통과한 그는 담이 높은 어느 저택 앞에서 말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녀석이 어제 일을 보고 했는지 몰라도 찾아서 죽여 버리겠어!”

탁자를 내려치는 그를 향해 집주인 포만드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상점이 불타고 수십 명의 사람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샤르비티 님에게 보고가 올라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대공의 첩자를 잡다 그리된 일이잖아!”

“문제는 죽은 자들이 선량한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흥!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그는 대공의 첩자로 의심되는 자가 운영하는 상점을 습격했다. 결과적으로 또다시 아버지의 눈 밖에 나는 일을 초래한 꼴이 됐지만.

“아버지는 이보다 더한 일도 수시로 벌이잖아. 죄가 있건 없건 말이야. 한데 왜 나한테만 그러는 거냐고. 뺨까지 때리다니, 너무하잖아.”

“샤르비티 님은 그래도 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의 주인이시지 않습니까?”

“주인?”

술을 마시던 로니올은 포만드를 빤히 응시했다.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 두툼한 입술과 각진 턱, 중년의 나이라고 믿기지 않는 탄력이 묻어나는 근육질의 몸매를 소유한 그는, 본성 뒷골목 출신의 상인이다.

지금도 본성에 술집과 도박장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었다.

“넌 왜 내게 붙은 것이냐? 남들은 날 망나니처럼 보던데.”

“샤르비티 님의 뒤를 이을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것 말고, 진짜 이유를 대 봐.”

“전 노예 출신입니다. 어깨에 흉터는 노예 문신을 지워 버린 흔적이지요. 노예도 영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습니다.”

“미천한 자가 영주가 되겠다? 크크크.”

술을 비운 로니올은 어깨를 들썩이며 철탑처럼 서 있는 포만드를 올려다봤다.

“아, 미안해. 미천한 자라고 표현해서 말이야. 기분 나쁘지 않지?”

“물론입니다.”

포만드는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답했다.

“내가 대공이 되면 널 영주로 삼겠다. 까짓것, 아무나 하면 어때, 내 말만 잘 들으면 되지.”

호탕한 척 말을 한 그는 손짓을 했다.

“가까이 와 봐.”

포만드가 다가와 귀를 대자 그는 속삭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복동생들이 거슬려. 그들을 죽였으면 하는데, 네가 나서 줘야겠어.”

아직 어리지만 몇 년 후면 성인이 될 이복동생들이었다. 그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아버지의 성격상 적자라는 이유만으로 자리를 물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집무실의 경고는 진짜 경고였다.

이복동생들이 죽으면 아들이라고는 그밖에 남지 않는다. 견제 세력이 없어지면 주위의 힘은 자연히 그에게 몰릴 수밖에 없다.

“할 수 있겠어?”

“시도해 보는 건 어렵지 않으나, 그것은 로니올 님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행위입니다.”

“뭐야?”

“세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제 손을 거치더라도 그 배후로 의심될 사람은 자연히 로니올 님이 될 것입니다.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지요.”

“불안해서 그래. 아버지는 냉정한 사람이거든.”

포만드는 두툼한 입술을 벌리며 미소를 지었다.

“전 노예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절 노예로 만든 주인을 죽이고 그의 자리를 차지했지요. 될 사람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될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건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습니까? 길게 보시고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미력하게나마 제가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 * *

칼라치를 만난 도현은 붉은 성으로 돌아와 돈조르니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알커서스의 눈 내리는 땅을 원한다고?”

되묻는 돈조르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왜 하필 그 땅을?”

“이유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이 아니면 이번 일을 돕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흐음, 시기가 너무 안 좋아. 자네가 없는 사이 일이 하나 벌어졌어.”

“일이라뇨?”

돈조르니는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시선을 천장에 두었다.

“대공 부인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네. 노드빌이 소수의 인원을 데리고 진영을 이탈했네. 샤르비티에게 붙잡혀 있는 대공의 자식들을 구하러 간 것이겠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캐서린이 직접 가문의 사람을 이용한 것이다.

도현은 대공 공관에서 마주쳤던 노드빌 경을 잠시 떠올렸다. 한눈에 봐도 그 성격이 굳세고 의지가 강해 보이는 남자였다.

“혹시나 싶어 사람을 풀어 노드빌의 진영을 감시했는데, 눈치챘는지 다른 사람을 그로 위장시켜 놨더군. 오늘에서야 그가 사라진 사실을 발견했네.”

“그럼 대공께서는…….”

“아직까진 별말씀이 없으시네. 하지만 그 눈빛을 보면 알 수가 있지. 분노하고 계시네.”

“노드빌 경이 성공할 수 있을 까요?”

“성공이라…….”

돈조르니는 쓴웃음을 흘리며 술을 한 모금 했다. 대공의 자녀들은 두 곳에 분산돼 갇혀 있다. 그곳엔 매섭고 치명적인 덫이 충분히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저들만으로는 두 곳은커녕 단 한 곳도 뚫지 못할 수 있었다.

샤르비티는 노드빌과 그 수하들의 목을 상자에 담아 대공을 조롱하는 편지와 함께 보낼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공의 자녀 중 한 명의 목도 담겨져 있을 수 있다. 대공을 자극하고 더욱 조롱하기 위해서.

“그는 성공을 바라고 가지 않았을 거네. 그저 대공 부인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기 위해 떠난 것일 뿐. 그런 사람에게 성공을 바랄 수 있겠는가?”

냉정한 그의 대답에 도현은 잠시 생각한 후, 조심스럽게 속내를 꺼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노드빌 경에게 힘을 실어 줘서 단 한사람이라도 구해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자네가 나서기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필요하다면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게.”

은색 술잔을 힘으로 우그러트린 돈조르니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자넨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네. 잊은 건가?”

도현의 시선이 지도가 사라진 벽면을 향했다. 그곳엔 현상금 포스터처럼 붙어진 샤르비티와 열세 명의 사촌들의 초상화가 부착돼 있었다.

그가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은 저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었다.

“자네가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기념일에 저놈들을 죽일 수 있는 기회는 멀어지는 거네. 자네도 더 위험해지고. 신중히 행동하게.”

“칼라치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알커서스의 땅을 그에게 주기 위해서는 대공 부인의 협조가 필요할 텐데요. 노드빌 경이 실패하면 협조를 바라기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공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가치 없는 척박한 작은 땅덩어리를 두고 감히 대공과 척을 질 상대는 없네. 아무리 대공 부인의 가문이라도 말이야.”

말을 하는 돈조르니의 눈빛은 차갑게 빛이 났다.

“대공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칼라치는 그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네.”

* * *

캐서린의 시녀는 그 수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벨라와 벨라에게 포섭된 시녀장 때문이었다.

벨라가 일으킨 사건 이후로 붉은 성은 내부 인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졌고, 그 과정에서 시녀장과 가깝게 지내던 시녀들까지 무더기로 감옥에 보내진 것이다.

“문을 열어라.”

“대공의 허락 없이는 열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깨가 산처럼 넓은 간수장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열지 못하겠느냐!”

캐서린의 호통 소리가 어두운 지하 감옥 복도에 길게 메아리쳤다.

쇠창살로 가려진 방 안에는 벨라가 갇혀 있었다. 그녀는 천장에서 내려온 수갑에 양 손목이 묵인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냐!”

“감히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요. 그래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외모처럼 우직한 그의 대답에 캐서린은 목소리를 누그러트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날 위해 문 하나 열어 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것이 제 임무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대공 부인.”

“벨라는 몇 달간 내 시녀로 지내며 날 기만해 왔네.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잠시면 되네, 그녀를 만나게 해 주게.”

“그것은…….”

“내가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겠나?”

캐서린이 다리를 구부리려는 시늉을 하자 간수장은 깜짝 놀라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마음이 아무리 야무지고 돌처럼 굳었다 해도 대공 부인을 상대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열어 드릴 테니 그만하십시오.”

식은땀을 흘린 간수장은 벨라가 갇혀 있는 감방 문을 열었다.

“오래 계시면 안 됩니다요.”

“고맙네.”

바닥까지 내려오는 긴 원피스를 입은 캐서린은 문턱이 높은 감방 안으로 들어갔다.

피 냄새와 오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혹독한 고문을 받은 벨라의 몸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다.

“벨라, 네 모습이 참으로 가련하구나.”

캐서린의 목소리에 죽은 듯 매달려 있던 벨라의 몸이 꿈틀거렸다.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그녀는 캐서린을 내려다봤다.

“내 아들과 딸도 너처럼 무서운 고문을 받으며 버티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찢어질 듯하다.”

“도, 동정하는 거야?”

고문을 받으며 하도 비명을 질러 목구멍 안에 피고름이 흐르고 있는 벨라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

“동정?”

코웃음을 친 캐서린은 뼈가 드러난 그녀의 무릎 상처에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아아아아악!”

아직도 지를 비명 소리가 남았는지 벨라는 뼈를 손톱으로 긁고 있는 캐서린의 행동에 즉각 반응을 일으켰다.

“천만에. 넌 붉은 성을 파괴하고 우릴 죽이려 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건, 지난 몇 달간 내가 자식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걸 옆에서 지켜봐 왔다는 것이지. 얼마나 속으로 날 비웃었을까? 응?”

손이 피범벅이 된 캐서린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불쌍하다는 듯 말했다.

“오오, 벨라, 네 미래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느냐? 하긴, 몰랐겠지. 나 역시 내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으니까 말이다.”

“캐서린! 더러운 년! 네년 자식들은 샤르비티 님이 처참하게 죽일 것이다! 나보다 더욱 혹독한 고문을 받고 말이야!”

그녀의 저주에 캐서린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내 자식들은 살아 돌아올 것이다.”

“누가 그들을 구할까? 네년 주위엔 아무도 그들을 구하려 나서지 않는데? 아! 노드빌? 그가 과연 당신 자식들을 구할 수 있을까?”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벨라는 끝까지 할 말을 다 했다.

“네년 자식들은 내 뒤를 따라올 것이다. 지옥 구덩이 속에서 네년 자식들을 기다릴 거야!”

“멋대로 지껄여 보거라. 가엾은 벨라여, 지금 네 모습이 어떤 줄 아느냐? 아주 초라하고 비참해서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구나.”

무릎에 넣었던 손가락을 뺀 캐서린은 감방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각종 고문 도구 등을 길게 둘러봤다.

“간수장, 조금만 더 있다 나가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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