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2] 디 임팩트 20권 7화
“대공 부인의 가문에서 온 병력을 지휘하던 노드빌 경이 대공의 허락 없이 베일 본성으로 떠났습니다. 인질로 잡혀 있는 대공의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서요.”
“저런. 대공과 대공 부인 사이가 그 정도로 벌어진 건가?”
어베인이 혀를 찼다.
“두 사람 입장 차가 워낙 컸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스승님? 우리도 본성으로 조만간에 떠나지 않습니까?”
에드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글쎄, 우리 일과 노드빌 경의 일은 별도로 봐야 된다고 돈조르니 경이 강조하긴 했지만……. 대공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스승님, 만약 제가 적에게 사로잡히면 스승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에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도현의 얼굴을 봤다. 도현은 피식 웃으며 리타와 로나가 복원하고 있는 망토를 손으로 만져 봤다.
이게 마법 망토인 줄 알았다면 주의해서 검을 사용했을 것이다.
“너 혼자 빠져나와, 난 모르는 일이니까.”
“예?”
예상과 다른 스승의 대답에 에드는 충격을 받은 듯 입을 쩍 벌렸고, 사람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좀 도와줄까?”
리타와 로나는 괜찮다고 말을 하려 했지만 이미 도현은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이건 이쪽이고, 저것은 망토 하단 부위군.’
수십 개의 손이 환상처럼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며 마법 망토 조각들을 맞춰 갔다.
그의 검에 잘려지고 찢긴 망토 부위는 고유의 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렇게 만든 검의 주인인 도현은 어렵지 않게 그 조각들을 알아봤다.
“바늘.”
도현이 손을 내밀자 에드는 얼른 실이 꿰인 바늘을 건넸다.
“하나 더.”
두 개의 바늘을 쥔 도현은 능숙한 솜씨로 바느질을 했다. 아버지와 함께 살던 시절, 옷이나 도복을 수선하는 일은 그가 도맡아서 하다시피 했다. 대신 해 줄 사람도 없었고, 검만큼이나 바느질 솜씨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얼마 뒤, 망토가 제 모습을 완전히 찾았다. 비록 누더기처럼 보일지언정, 벨라가 몸에 둘렀던 망토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도현은 두 개의 바늘을 멋들어진 동작으로 탁자에 꽂고 되돌아섰다.
“재봉사 해도 되겠다. 도대체 못하는 게 뭐냐?”
짐브리오는 감탄을 하며 망토를 들어 몸에 둘러봤다. 거구인 그에게는 작았다.
“우리가 힘들여 한 걸 금세 끝내다니, 왠지 억울해.”
리타는 입이 나온 얼굴로 도현을 살짝 흘겨봤지만 얼굴엔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시간도 절약했고, 무엇보다 망토가 완전한 모습을 갖췄다는 건 빈틈없이 조각들이 맞춰졌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건 망토의 기능을 되살리는 일이다.
“스승님.”
-내가 알려 주는 마법진을 바닥에 그려라.
“네!”
힘차게 대답한 그녀는 락제프의 지시에 따라 복잡해 보이는 마법진을 바닥에 그려 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방에서 나가 문밖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율리비어스 방이 빈 것 같은데, 그는 나갔습니까?”
“근처 다른 집으로 옮겼네. 그는 자네를 만나고 싶어 하더군. 나중에 가 보게.”
어베인이 대답을 하는 순간, 방 안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법진 안에 놓여 있던 누더기 망토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밝은 빛을 발산한 것이다.
‘망토 표면에 푸른 빛들이 물결처럼 번지고 있다.’
일렁이던 빛은 망토로 잠시 후 흡수됐고, 망토는 공중에서 하늘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승님, 된 건가요?”
-망토를 두르고 은신하고 싶은 장소에 가서 마음속으로 숨고 싶다고 외쳐 봐라.
리타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대 위에 누웠다.
‘숨자!’
그 순간 그녀의 상반신이 사라지고 하체만 남았다.
“뭐야 저거, 무섭게 왜 두 다리만 남은 거야?”
짐브리오는 황당한 얼굴로 다가가 리타의 발을 툭툭 쳤다.
“야, 일어나. 다 보인다.”
“다시 해 볼게.”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망토를 뒤집어썼다.
‘숨자!’
그녀의 모습이 책상과 동화돼 완벽히 사라지는 듯하더니 이번엔 얼굴이 떡하니 나타났다.
“이렇게 숨었다간 창이 네 이마를 관통하겠다.”
짐브리오는 리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슬쩍 떠밀었다. 실망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에게 말했다.
“스승님, 이거 반쪽짜리 마법 망토가 됐어요. 이래선 쓸모가 없잖아요.”
-그건 네 능력이 부족해서다.
“네? 제 능력요?”
-그래, 네 마법 실력이 지금보다 한 단계만 더 높았다면 마법 망토의 기능을 완전히 복구할 수 있었을 게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다행이긴. 어느 세월에 한 단계 더 높은 마법사가 되겠다는 거냐?
스승이 자극을 주자 리타는 발끈 했다.
“두고 보라고요! 전 한다면 하는 사람이거든요!”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거라.
스승의 비웃음 섞인 말에 리타는 씩씩거렸다. 일부러 약을 올린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도현! 걱정 마. 내가 이 요사스러운 고대의 마법 망토를 완벽히 만들어서 네게 줄게. 너라면 이걸 훌륭히 이용해서 샤르비티를 상대할 수 있을 거야.”
“무리할 필요 없어. 그게 없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낼 거니까.”
“아니, 꼭 완벽히 만들 거야.”
고집스러운 그녀의 눈빛에 도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기 리타, 배고픈데 저녁은 언제 만들어 줄 거야?”
짐브리오가 눈치를 보며 슬며시 물었다.
“알아서들 먹어. 난 바빠.”
쿵.
문이 닫히자 복도에 선 사람들은 서로 멋쩍은 얼굴로 바라보다 하나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베일성
“멍청한 녀석들. 도대체가 쓸모가 없어. 공격 마법만 잔뜩 알고 있지, 기본적인 마법진의 구성 원리를 이해하는 녀석들이 이렇게 없다니.”
밤늦게까지 붉은 성의 마법사들에게 성벽 주요 지점에 설치할 마법 구조물에 관해 교육을 한 율리비어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그 버릇장머리 없는 계집이 똑똑해 보이던데.’
율리비어스는 흑마법을 익힌 리타를 떠올리다가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는 도현과 리타가 사는 집을 지나쳐 그의 새로운 집에 도착했다.
불 꺼진 집 앞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경계를 하는 그를 보며 어둠 속에 앉아 있던 도현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접니다.”
도현을 알아본 율리비어스는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어두운 집 안을 향해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고, 그때마다 집 안에 놓인 초에 하나씩 불이 들어왔다.
“피곤해 보이는군요.”
도현의 말에 율리비어스는 표정 없이 답했다.
“멍청한 마법사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만큼 짜증 나는 일은 없다.”
“붉은 성의 마법사들을 말하는 겁니까?”
“그놈들 빼고 누가 있겠느냐?”
율리비어스는 그들을 낮게 평가했지만 사실, 그들의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 그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었다.
대충 짐작을 한 도현은 별말 없이 율리비어스의 맞은편에 앉았다.
탁자를 사이에 둔 둘은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왔으면 용건을 말해야지, 왜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냐?”
“오히려 제가 할 말입니다. 집을 옮기면서 저를 보고 싶다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찾아온 겁니다.”
“아, 그랬었지.”
율리비어스는 마치 지금 생각난 것처럼 반응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을 기울여 두 개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러곤 그중 하나를 도현 앞으로 밀었다.
“며칠 전 사건이 궁금해서 말이다. 어떻게 파괴신의 파편이 만든 재앙을 막았지? 내가 아는 바로는 일단 파편이 힘을 발휘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는데 말이야.”
술잔 넘어 보이는 율리비어스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이 나고 있었다.
도현은 그의 눈빛을 천천히 받아 내며 술을 조금 마셨다.
“힘이 닿는 만큼 막았습니다.”
“날 속일 생각은 하지 마. 그것은 인간의 수단으로 막기엔 버거운 힘이야.”
“당신도 말입니까?”
“나?”
율리비어스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도현은 그가 웃는 모습이 낯설었다.
웃음을 거둔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댄 자세로 도현을 깊이 응시했다.
“물론 나야 다른 경우지, 난 평범한 인간이 아니니까.”
그의 눈빛과 행동에선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내가 너 대신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그것을 막았을 것이다. 나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놀랍군요, 저는 꽤 고생을 했는데.”
“말해 봐라. 대체 무슨 힘으로 파편의 힘을 막았지? 그것은 너의 검으로 꺾일 대상이 아니었어. 넌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냐?”
“명색이 씨드를 차지한 검사가 아닙니까? 씨드를 복용해 보셨습니까?”
“…….”
“물론, 없겠죠.”
도현은 빙그레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더했다.
“제가 말씀드려도 모를 겁니다. 그 힘은 씨드를 차지한 사람만이 알 수 있으니까요.”
“날 놀리는 것이냐?”
“천만에요. 그냥 그렇게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율리비어스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현이 씨드를 들먹이는데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칼라치는 왜 만나러 간 것이지?”
“그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 제자에게 들었다.”
도현은 돌아가면 에드의 입단속을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샤르비티와 열세 명의 반역자들을 기념일에 제거하는 작전은 비밀스러운 일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칼라치와 헬구스는 어쩔 수 없이 알게 된 경우였고.
율리비어스가 한편이라고는 하나 굳이 해당 당사자가 아닌 이상은 비밀에 부치는 게 좋았다.
“그와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그를 만나는 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한데 왜 관심을 갖는 겁니까? 붉은 성 방어로 바쁘실 텐데.”
“그자는 특별한 존재니까. 너 역시 특별한 존재고. 특별한 두 존재가 만나는 일은 아주 흥미롭고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일이지.”
“그가 왜 특별합니까?”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텐데. 브링틱에서 수백의 고대 병사들을 흡수하지 않았느냐?”
도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어떻게 정확히 알고 있는 거지? 칼라치가 제 입으로 떠들고 다니진 않았을 테고.’
“그러고 보니 너희 둘은 공통점이 있어. 둘 다 브링틱에서 각기 힘을 얻었으니 말이다.”
율리비어스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는 너의 친구인가?”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친구라면 친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럼 그의 미래가 어떨지 듣고 싶겠군.”
“칼라치의 미래를 당신이 알고 있습니까?”
도현은 피식 웃으며 술잔을 내려놨다.
“난 알고 있다. 농담처럼 들리나?”
율리비어스의 표정은 진지했다.
* * *
‘태양이 뜨고 있군. 또 하루가 시작되는 건가, 아니면 하루를 또 빼앗기고 있는 건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대공 알조베티 베일은 집무실 창가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샤르비티와 전쟁을 벌이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었지만, 어젯밤은 유독 힘든 시간이었다.
‘가문을 지켜도 아내와 자식들은 모두 잃겠군.’
술에 취해 복잡한 머릿속을 달랬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냉정한 모습을 언제나 잃지 않아야 한다. 그게 베일 가문의 대공이었다.
“백도현을 불러오라!”
이른 아침에 호출을 받은 도현은 제법 안면을 익힌 대공의 친위대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집무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공은 석상처럼 창가에 서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대공을 뵙습니다.”
“가까이 오게.”
도현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갔다.
대공이 등을 보인 채 이 정도 거리까지 허락했다는 것은 도현을 깊게 신뢰한다는 의미였다.
“숙부에게 어제 보고를 받았네. 칼라치가 알커서스의 땅을 원한다고?”
“그렇습니다.”
“주겠다고 하게. 대신, 그만한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도 전하고.”
“예, 대공.”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가?”
대공은 여전히 먼 곳에 시선을 두며 물었다.
“제가 전쟁을 돕는 건, 제라이즈가 저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난 그를 모르네, 본 적도 없고. 날 도우려는 자네만 보일 뿐. 원하는 걸 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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