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5] 디 임팩트 20권 10화
청년의 검을 날려버린 로니올은 주먹으로 청년의 턱을 올려 친 뒤, 비틀거리는 그의 복부에 검을 쑤셔 넣었다.
피를 울컥울컥 쏟아 내며 청년은 분한 눈빛으로 아버지 옆에 쓰러졌다.
단숨에 두 명의 투숙객을 죽여 버린 로니올은 반쯤 닫힌 여관 문을 걷어차고 진입했다.
그 순간, 탁자 뒤에 숨어 있던 두 명의 사내가 활을 쏘았다.
팅팅!
검으로 화살을 막은 로니올은 입꼬리를 좌우로 밀어 올렸다.
“좋아, 아주 좋아.”
콰앙!
단단한 갑옷으로 탁자를 부수고 돌진한 그는 활을 버리고 검을 들고 덤비는 두 사내의 팔과 다리를 베었다.
“상처를 잘 치료해 주어라. 이놈들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뒤따라온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그는 단숨에 2층으로 뛰어올랐다. 무거운 갑옷을 입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매우 날렵했다.
“여관 주인, 어디 있나?”
쾅!
문을 부수고 들어간 그는 여관방을 하나씩 조사했다. 2층부터 3층까지 샅샅이 조사한 그는 여러 명을 죽이고 마지막엔 지하 창고에 이르게 됐다.
“여관 주인이 이곳에 계셨군.”
투구를 벗어 부하에게 넘긴 그는 쌓아 놓은 감자 포대에 등을 기대어 반쯤 누워 있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의 주변에는 전서구로 쓰이는 여러 마리의 새들이 목이 꺾여 죽어 있었고, 화로에는 불탄 종이의 흔적들도 보였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네놈이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
독약을 삼키고 죽어 가는 늙은 여관 주인은 마음껏 로니올을 비웃었다.
“밤에 올 것 그랬나? 하여간 이놈의 성격이 좀 그래, 치밀하지 못하다니까.”
눈을 찌르는 앞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 넘긴 로니올은 감자 포대에 천천히 앉았다.
“그래도 괜찮아. 조사해 보면 네 여관을 자주 드나든 사람이 누군지 정도는 다 알아낼 수 있으니까. 네가 이렇게 죽어도 그들을 보호할 순 없다.”
“네 아비는 반역의 대가로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것이다. 퉤엣!”
입으로 피를 게워 내던 노인은 붉은 침을 뱉었다.
신발에 침이 튄 로니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천한 게 감히!”
“으하하하! 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네놈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 제 발로 사지로 걸어 들어오다니. 고맙구나!”
죽어 가던 노인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발끝으로 화로를 넘어트렸다.
그 순간, 불길이 확 일어나며 감자 포대 옆에 수북이 쌓여 있던 기름통에 불이 붙었다.
“이런 젠장!”
화들짝 놀란 로니올과 그의 부하들은 앞다투어 지하 창고를 벗어나 여관 창문을 향해 뛰었다.
콰아아앙!
큰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화염이 지하 창고는 물론 여관 전체를 한순간에 집어삼켜 버렸다.
불기둥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그 위력은 대단했다.
폭발의 영향으로 주변을 포위하던 병사들은 폭풍을 맞은 것처럼 사방으로 밀려 났고 여관의 잔해에 부상을 당한 자들도 여럿 발생했다.
“하아, 하아.”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창문을 부수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로니올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폭발의 영향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으아아악! 살려 줘!”
제때 탈출하지 못한 부하 몇이 불길에 휩싸여 몸부림치고 있었다.
검을 든 그는 부하들의 심장에 검을 일일이 꽂아 그들의 고통을 줄여 줬다.
그나마 몇 없는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때문에 죽어 가자 그의 마음은 무척이나 쓰라렸다.
‘빌어먹을, 늙은이!’
* * *
도현은 불타고 있는 여관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저 폭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가 슬퍼하겠군.’
여관 주인은 본성에서 활동하는 첩자들의 중심 역할을 하던 사람이다. 뛰어난 무력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저 자리에서 여관을 실제로 운영해 오던 평범한 사람이다.
그는 아들을 한 명 두었는데, 그가 바로 압할라의 출현을 돈조르니에게 알린 정보원 길데릭이었다.
부자가 나란히 정보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젠 사자 동맹군 지휘부를 감시하는 길데릭만 남게 된 것이다.
“도현, 어떻게 하지?”
사람들 틈에 섞여 여관의 상황을 살피던 리타가 낮은 음성으로 물었다.
그들이 여관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안에서 일이 벌어진 후였다. 그들이 나설 틈도, 그렇다고 나설 수도 없는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승리의 탑으로 가자.”
앞서간 동료들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은 자리를 떠나기 전, 불타는 여관 앞에 서 있는 젊은 사내에 관해 주변 사람에게 물었다.
“저분은 샤르비티 님의 장자 로니올 님이시오.”
“그렇군요.”
어쩐지 초상화에서 본 샤르비티와 외모가 많이 닮았다.
돈조르니 경은 저자를 낮게 평가했다. 인질로 납치를 해도 샤르비티에게 아무런 고민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의 가치를 지닌 남자.
샤르비티의 장자라고는 하나 품성과 능력이 부족해 따르는 자들도 거의 없다고 했다.
‘로니올 베일.’
도현은 흥분한 얼굴로 여관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젊은 사내를 잠시 눈여겨보다 에드와 리타를 데리고 승리의 탑으로 향했다.
* * *
“아무래도 대공의 정보원들과 접촉하는 건 될 수 있으면 피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도현의 말에 여관방에 모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는 게 좋겠지, 중요한 시기니까.”
그들은 원래 길데릭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여관에 숙소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활동을 시작하려 했다.
하지만 길데릭의 아버지는 여관과 함께 최후를 맞이했고, 그들은 대공의 정보원들 도움 없이 앞으로 있을 암살 작전의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시켜야 한다.
“일이 처음부터 순탄치 않군.”
영주 딘은 양 갈래로 기른 콧수염을 훑어 내리며 담담히 말한 뒤, 옆에 앉아 있는 리드만 사제를 응시했다.
“하지만 일곱 신이 총애하는 리드만 사제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으니 분명 일이 잘 풀릴 거야. 그렇지, 리드만?”
“이런 말씀드리기 괴롭지만, 이번 일에 대한 기도에 응답이 전혀 없습니다.”
리드만 사제가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왜요? 왜 기도 응답이 없어요? 일곱 신은 늘 희망 섞인 답을 주셨다고 했잖아요.”
리타의 말에 리드만 사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용 바크 드라모스 때문인 것 같다. 신과 용은 태초부터 사이가 안 좋았거든.”
일곱 신이 함께한다며 항상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리드만 사제의 고백 섞인 말에 방 안의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다.
“젠장, 용이든 신이든 난 모르겠고, 우리가 잘하면 되는 것이지 않소?”
짐브리오는 3층 창문 사이로 밖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밤이 찾아온 거리엔 마차와 사람 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는 여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시도 밖을 살피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자네 말이 맞네. 일곱 신의 응답이 없는 경우엔,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법이지. 내 말에 신경 쓰지 말게.”
리드만 사제는 큰일을 앞둔 도현의 기를 죽이는 것 같아 미안했는지 도현을 보며 급히 말했다.
하지만 도현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듯, 리드만 사제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꾸 없이 그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로나는 도현의 팔을 살짝 흔들었다.
“아, 미안해요.”
깊은 생각에서 깨어난 도현은 자신을 쳐다보는 동료들의 시선에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사실 리드만 사제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보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로니올 베일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그 녀석을?”
어베인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도현을 응시했다.
“그자는 갑자기 왜?”
“성공적인 작전을 위해선 기념식에 참석할 샤르비티와 사촌들 곁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그 방법을 우리는 찾아내야 하고. 한데, 그 일과 로니올이 관계가 있나?”
“주변 사람에게 인정을 받든 못 받든 그는 샤르비티의 장자입니다. 기념식장에 아버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겠죠. 그를 통하면 의외로 쉽게 샤르비티와 열세 명의 반역자들을 제 검의 영향 아래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을 매수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창가에서 밖을 살피면서도 귀는 도현에게 열어 놨던 짐브리오가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사람을 매수해 정보를 빼 오거나 이용하는 일은 짐브리오의 특기 중에 하나였다.
황금으로, 때론 위협으로.
그러나 샤르비티의 아들 로니올은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부류였다.
차라리 밑에 사람들을 매수하는 게 현실성 있는 선택이었다. 그것조차도 위험하고 힘들겠지만.
“압니다. 하지만 제가 그를 거론한 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전 그자의 측근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측근?”
“네. 그의 측근이 되어 기념일에 참석할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놀란 눈빛으로 도현을 응시했다. 측근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다. 긴 시간을 두고 서로 간에 신뢰가 쌓여야 한다. 능력도 인정받아야 하고.
겨우 한 달 남짓밖에 안 남은 기념일을 앞두고 로니올의 측근이 되는 건 무리였다.
그것을 도현이라고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약간의 연극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로이
붉은 성에서 죽은 파괴신의 사제 푸베지토 밑에는 그를 추종하는 광신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고대 파괴신의 교리에 따라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거나 은밀히 불을 질러 건물과 배를 파괴해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새 생명의 잉태는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어서 그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았다.
대륙을 떠돌며 악행을 일삼던 그들은 샤르비티의 부름을 받은 푸베지토와 함께 베일 가문의 최대 도시에 정착했다.
“살려 주세요.”
행색이 남루한 소년이 사지가 묶인 채 발버둥 쳤다.
“소년이여, 두려워 마라. 죽음 뒤에는 평화로운 삶이 널 기다릴 테니까.”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의식에 참여한 푸베지토의 추종자들은 저마다 소매 속에서 단검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그들의 단검에는 마른 피가 여기저기 달라붙어 있었다. 그 모습에 소름이 돋은 소년은 더욱더 몸부림쳤다.
“싫어요. 제발 살려 주세요. 전 배고파서 구걸한 죄밖에 없어요. 무섭다구요!”
눈물을 강물처럼 쏟아 내는 소년의 모습에도 10여 명의 추종자들은 냉정한 얼굴로 소년을 빙 둘러쌌다.
“아가야, 이 할미가 널 해치는 게 아니야. 좋은 곳으로 보내 주려는 거지.”
주름 가득한 노파는 자비로운 미소를 흘리며 단검을 소년의 심장에 가져다 댔다.
“나는 다리를 찌르지.”
“나는 눈.”
“나는 발바닥.”
“나는 옆구리가 좋겠군.”
남자와 여자, 늙은 사람부터 젊은 청년까지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일제히 단검으로 소년을 찔렀다.
그들의 눈 속엔 겁에 질린 소년의 모습이 꼭 한 마리의 지렁이 같았다. 아무런 힘도 없어서 건들면 이리저리 꿈틀대다가 몸이 여러 조각나는 존재.
번들거리는 광기의 눈으로 소년을 찌르던 그들은 기쁨의 괴성을 지를 준비를 하다 돌연 단검을 떨어트리고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
“케헥!”
사지가 제멋대로 꺾인 그들의 몸이 공중으로 서서히 떠올랐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집안의 천장까지 떠오른 그들은 관절이란 관절은 다 꺾이고 뽑히는 극한의 고통 속에 진저리를 치다 아래를 내려다봤다.
쌍검을 등에 찬 중년인이 바닥에 약간 뜬 상태로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있었다.
“너, 넌 누구냐!”
추종자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던 노파가 괴로워하며 물었다.
“난 너의 재앙이자, 죽음이다.”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은 사내는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넘긴 거지 소년을 내려다봤다.
오줌을 싼 소년의 몸에서 지린내가 훅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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