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 디 임팩트 20권 12화
사냥터엔 대공이 별장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존재했다. 그는 그곳에서 머물며 아버지에게 쌓인 화를 풀어낼 심산이었다.
숲으로 그들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을 탄 도현이 나타났다.
‘여긴 대공의 사냥터인데.’
지도에 붉은 글씨로 표시된 숲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었다.
‘사냥하러 온 건가?’
지도를 접어 품에 넣은 도현은 말에서 내려 숲으로 진입했다. 그는 한 마리 새처럼 자유롭게 숲의 나뭇가지를 밟으며 이동했다.
숲을 순찰하는 일단의 기마병들이 보였고, 그들을 지나치자 호수를 낀 별장이 하나 나왔다.
경비를 서는 병사들 너머로 로니올이 보였다. 그는 별장의 관리인을 이유 없이 마구 때리고 있었다.
“저 인간이 또 오다니, 이번엔 얼마나 머물다 갈까?”
“아마 며칠은 놀다 가겠지. 재수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보나 마나 샤르비티에게 혼이 나고 왔을 거야. 지난번에도 아버지 욕을 그렇게 했잖아.”
별장에 소속된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렸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나무 위에 몸을 숨긴 도현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대공이 어서 돌아와야 할 텐데.”
“그러게. 예전이 좋았잖아. 한데, 돌아올 수 있을까?”
별장 일꾼들이 멀어지며 그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도현은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서 팔짱을 낀 채 별장을 지그시 응시했다.
‘여기가 좋겠군.’
* * *
별장 소속 일꾼 두 명은 맨발로 숲을 뛰었다. 뾰족한 돌과 가시가 발바닥에 상처를 냈지만 그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통증에 사내들은 상의를 찢어 피가 나는 발바닥을 칭칭 감았다.
“사냥개들이 피 냄새를 맡고 쫓아올 거야.”
공포에 물든 일꾼들은 별장에서 관리하는 사나운 사냥개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악마 같은 새끼!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로니올은 짐승 사냥이 흥미가 떨어졌는지 인간 사냥을 시작했다. 그 대상은 별장의 일꾼들이었다.
“계곡을 통과해 북쪽 산으로 가자. 남쪽엔 숲의 순찰병들이 돌아다니고 있어.”
그들은 무릎까지 오는 계곡물을 통과 한 후, 낮은 언덕을 기어 올라갔다.
그때 화살 하나가 날아와 언덕을 기어오르던 사내들 사이에 꽂혔다.
“다음엔 네놈들 머리다!”
계곡물 반대편에서 화살을 날린 로니올이 수십 명의 부하들과 함께 웃고 있었다.
“살려면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 할 것이다! 하하하!”
사색이 된 일꾼들은 언덕을 넘어 북쪽 산을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 들로 무성한 숲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놈의 숲! 너무 넓어!”
“그래도 달려! 멈추면 죽는다고!”
경사진 언덕을 넘어 수십 필의 말이 뒤를 쫓고 있었다. 사나운 사냥개의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틀렸어. 더는 못 가겠어.”
숨이 턱까지 차오른 사내는 동료의 등을 떠밀었다.
“난 두고 가.”
“미련한 소리 하지 마. 힘을 내!”
포기하려는 동료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던 사내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로니올의 모습에 절망하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이런 허약한 놈들을 봤나! 살려는 의지가 이렇게 약해서야!”
화를 벌컥 낸 로니올은 말 위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두 놈 다 얼굴에 구멍을 내 줄 것이다.”
“사, 살려 주십시오.”
일꾼들은 엎드려 애원을 했다.
“어서 일어나서 도망쳐라. 심장이 터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리란 말이야!”
광기 어린 로니올의 눈빛과 으르렁거리는 사냥개들의 모습은 일꾼들에게 악몽처럼 다가온 지옥이었다.
그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일꾼들은 다시 힘을 내 도망치기로 했다.
“그래! 그렇게 도망치란 말이다! 하하하!”
로니올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그들을 마음껏 비웃으며 뒤쫓았다.
“색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부하들이 아부를 해 왔다.
“이제 슬슬 지겨워진다.”
“끝을 내시지요. 개를 풀어 놓을까요? 개에게 죽는 모습도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래서 쓰나. 내게 즐거움을 준 녀석들인데, 마지막은 자비를 베풀어야지.”
차가운 미소를 지은 로니올은 손짓을 했다.
“양쪽을 차단해라.”
“예!”
두두두두두.
수십 필의 말이 힘이 다한 일꾼들을 양옆으로 추월해 일렬로 달리며 압박했다.
말을 피해 일꾼들이 달릴 수 있는 공간은 오로지 전방 밖에 없었다.
‘아버지, 날 무시하면 언젠가 후회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어금니를 문 그는 말을 몰며 활을 들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신세이나, 그의 검술 솜씨와 활 솜씨는 뛰어난 편에 속했다.
화살은 표적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제일 뒤처진 일꾼의 뒤통수를 겨눴다.
강한 힘이 실린 그의 강철 화살촉은 녀석의 머리를 반쯤 부수며 파고 들어갈 것이다.
시야를 가리는 나뭇잎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를 놓으려 했다.
바로 그때 일꾼들의 왼쪽 측면을 달리던 부하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괴물이다!”
‘괴물?’
로니올은 겨눴던 활시위를 내리며 옆을 응시했다.
악마가 지상에 나타나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의심되는 괴물이 날개를 펄럭이며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외형은 인간을 닮았지만 신장은 10미터가 넘었고, 머리 양쪽엔 붉은 뿔이 돋아나 있었다.
‘뭐야, 저건?’
우저쩍! 쿠웅!
거치적거리는 나무를 몸으로 단숨에 박살 내며 다가온 괴물은 손에 든 거대한 일자 창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일꾼의 왼쪽 측면에서 달리던 로니올의 부하들은 말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허공 높이 떠오른 그들이 땅에 떨어졌을 땐, 미라처럼 온 몸의 수분이 사라진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퍼석.
고목나무처럼 마른 시신이 된 병사들의 몸통을 거대한 발로 짓밟은 괴물은 인간의 뼈로 만들어진 날개를 힘껏 펄럭이며 괴성을 질렀다.
캬아아아아!
그 포효 소리는 깊고도 우울해서 듣는 사람의 영혼을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었다.
이 괴물은 리타가 소환한 어둠의 마왕으로, 예전보다 한층 강해져 있었다.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았지만, 위력만큼은 놀라운 존재였다.
‘빌어먹을, 왜 저런 게 여기에 나타난 거야!’
로니올은 부하들이 괴물을 상대하는 동안 말을 몰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가 도망치자 괴물과 싸우던 그의 부하들도 뿔뿔이 흩어져 제 살길을 찾아갔다.
“도망가지 말고 저놈을 막아!”
뒤들 돌아보며 소리쳤지만 압도적인 괴물의 힘에 놀란 그의 부하들은 그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저런 쓸모없는 놈들. 내가 얼마나 잘 대해 줬는데.’
말고삐를 움켜쥔 그는 말을 다그치며 최대한 속도를 냈다. 괴물이 그를 쫓아오고 있어서 심장이 벌렁거렸다.
‘왜 나만 쫓아오는 거야, 젠장!’
괴물과 시선이 마주친 로니올은 상체를 반쯤 돌려 화살을 날렸다.
우드득. 우드득.
괴물이 이빨로 화살을 잡아 그를 노려보며 씹어 먹고 있었다.
그 모습에 머리끝이 삐죽 솟은 그는 쓰러진 나무를 뛰어 넘다가 말에서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거대한 창이 그의 몸을 뒤덮으며 내려왔다.
‘허억!’
로니올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굴려 창을 피한 후 나무가 빼곡한 지역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지역보다 나무가 더 울창해서 덩치가 큰 괴물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늦추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괴물의 움직임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민첩했다. 그가 빼곡한 나무 지역에 들어서기 전, 괴물이 앞을 가로막으며 손바닥을 휘둘렀다.
퍼억!
갑옷이 산산조각 난 로니올은 입에서 피를 뿌리며 땅에 처박혔다.
“크으으으.”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참으며 그는 땅을 기었다. 저 앞에 그의 검이 떨어져 있었다.
‘기어서 가다간 괴물한테 밟혀 죽겠군.’
결국 중간에 포기한 그는 큰대자로 누워 가까이 다가온 괴물의 면상을 올려다봤다.
“살려 주면 안 될까?”
캬아아아!
어둠의 마왕은 입을 벌려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창으로 로니올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젠장!’
로니올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숲에 왜 이런 괴물이 살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됐고,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다 아버지 탓이야!’
마지막 순간까지 무정한 아버지를 탓하던 그의 귓가에 큰 금속성이 들렸다.
슬며시 눈을 뜬 그는 그를 대신해 거대한 창을 가로막고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눈 떴으면 피해 있어.”
반말이 거슬렸지만 로니올은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땅을 기어서 괴물로부터 멀어지려 애썼다.
“어둠의 존재여, 네가 있을 곳은 이곳이 아니다.”
중년인으로 변장한 도현은 검을 뽑아 어둠의 마왕과 실제로 싸우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싸워선 로니올의 눈을 속이기 어려울뿐더러 그가 강자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힘을 로니올에게 보여 줄 필요성이 있었다.
10미터에 이르는 어둠의 마왕과 중년인으로 변장한 도현의 싸움은 힘이 넘치고 격렬했다.
콰아앙!
어둠의 마왕이 휘두른 창에 나무들이 박살 나고 도현이 휘두른 검에 땅이 뒤집어졌다.
‘굉장하다!’
로니올은 감탄하는 시선으로 도현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둠의 마왕이 창을 휘둘러 소환한 악령들을 도현이 빠르게 없앤 뒤, 마왕의 뿔을 잘라 버린 것이다.
캬아아아!
뿔이 잘린 어둠의 마왕은 번쩍이는 빛과 함께 숲에서 사라져 버렸다.
난장판이 된 숲에 정적이 찾아왔다.
스르릉.
검을 회수한 도현은 말없이 그곳을 떠나려 했다.
“자, 잠깐!”
로니올은 아픈 몸을 이끌고 도현에게 다가갔다.
“구해 줘서 고맙다. 실력이 굉장하…….”
말을 걸던 로니올은 도현의 차가운 눈빛에 움찔하며 말끝을 흐렸다.
‘무슨 눈빛이 이렇게 차갑지? 눈 속에 얼음이라도 처넣었나?’
상대방의 기세에 위축된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깨달은 로니올은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냈다.
“난 베일 가문의 대공이 되실 영주 샤르비티 베일의 아들 로니올 베일이다. 신분을 밝혀라.”
어베인과 짐브리오의 도움을 받아 매부리코에 표정 없고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으로 변장한 도현은 로니올의 위아래를 살피며 말했다.
“영주의 아들이라고?”
“그렇다. 곧 대공이 되실 분의 아들이지.”
“믿기지 않는데? 영주의 아들이 숲에서 홀로 뭐 하고 있는 거지?”
도현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자 로니올은 반지를 보여 줬다.
“이것은 우리 가문의 상징이다. 난 이 숲에서 사냥을 하던 중 네가 없앤 괴물을 만났다. 부하들은 그 녀석에게 죽거나 도망을 쳤고. 정 의심이 되면 나와 함께 이 숲에 있는 대공의 별장에 가 보면 된다. 모두들 나를 알아볼 테니까.”
“그러셨군요. 몰라뵀습니다.”
도현은 무뚝뚝하지만 조금은 공손한 어조로 말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전 악마 사냥꾼입니다.”
“악마 사냥꾼?”
“그렇습니다.”
로니올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악마를 사냥하고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 보지 못했다.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그들을 죽여 왔으니 말입니다.”
“아까 본 게 악마가 확실한가?”
“악마는 여러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몬스터 속에 들어가기도 하고, 독특한 괴물의 모습을 띠기도 하지요. 때론 사람의 몸속에 기생하며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합니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군. 그래서 그렇게 실력이 대단한 건가?”
로니올은 도현의 환상적인 검술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 사냥꾼은 처음 들어 봤지만 왠지 그의 말이 그럴듯해 보였다.
“이름이 무엇이지?”
“로이라고 합니다.”
도현은 다크캐슬에서 사용했던 가명을 말했다. 그때 로이는 일곱 신을 모시던 가짜 사제의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악마 사냥꾼이 됐다.
“악마 사냥꾼 로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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