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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88화 (488/575)

[488] 디 임팩트 20권 13화

“더 물어보실 게 없다면 그럼 전 이만.”

도현은 갈색 후드로 얼굴을 반쯤 가린 뒤, 수도자 차림의 모습으로 뒤돌아섰다.

‘실력이 굉장한 자잖아. 저런 자를 부하로 둬야 하는데.’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숲으로 사라지려는 그를 로니올은  재빨리 막아섰다.

“보상을 하고 싶다, 날 구해 줬으니.”

“보상이라…….”

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로니올을 응시했다.

“악마 사냥꾼은 악마를 죽이고 대가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악마 사냥꾼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좋아, 그럼 그냥 내가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하고 나와 함께 이곳에서 멀지 않은 별장으로 가는 건 어떤가? 당신의 옷차림을 보면 매일 노숙을 하며 다니는 것 같은데, 내가 조금 도와주지.”

도현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다면 신세를 조금 지겠습니다.”

도현이 허락하자 로니올은 기쁜 표정을 지었다.

‘별장에 데리고 가서 어떡하든 설득해 내 부하로 만들어야겠다. 꽤 쓸모가 있을 거야.’

도현은 로니올과 함께 별장 방향으로 걸어가다 뒤를 돌아봤다.

멀리서 리타와 짐브리오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슬아슬했어. 하마터면 어둠의 마왕 손에 이 녀석이 죽을 뻔했으니까.’

타이밍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도현은 숲에서 발견한 말 한 마리에 로니올을 태웠다. 별장을 향하던 로니올은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아쉬워했다.

“이런, 그놈들을 죽였어야 하는데, 놓쳐 버렸군.”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로니올은 사냥감이었던 별장의 일꾼들에 대해 말하려다가 도현의 눈치가 보였는지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아무것도 아니네. 한데, 당신은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된 것이지? 이 일대는 대공의 사냥터라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인데. 순찰을 도는 병사들도 있고.”

“저는 북쪽 산을 넘어오다 강한 악마의 기운을 느끼고 이 숲으로 오게 됐습니다. 금지라 해도 악마가 있는 한,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악마의 기운을 느끼는 거지?”

호기심이 생긴 로니올이 말 위에서 물었다.

“수련을 통해 그들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신기하군. 악마 사냥꾼이 당신 말고 또 있나?”

“악마 사냥꾼은 대대로 1인 전승이 되어 왔습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요.”

“고대부터?”

“그렇습니다. 그 긴 역사는 아무도 모르고, 오로지 악마 사냥꾼만 알 수가 있습니다.”

도현은 락제프에게 들었던 고대의 악마 사냥꾼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자신의 이야기로 꾸며 냈다.

‘지금도 악마 사냥꾼이 존재할까?’

로니올에게 접근하기 위해 고대에 실존했다는 악마 사냥꾼으로 위장한 도현은 지금도 그런 사람이 존재할지 의문이 들었다.

해가 질 무렵 그들은 호수 옆에 환하게 불이 켜진 별장에 도착했다.

그곳엔 여러 대의 마차가 서 있었는데, 마차의 주인은 상인 포만드였다.

그는 행색이 엉망인 로니올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급히 다가왔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사냥을 갔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숲에 나타난 악마와 싸우다 이리됐다.”

말 등에서 내린 그는 별장 앞에 늘어선 병사들을 둘러봤다.

숲에서 도망친 그의 수하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다시는 그의 앞에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망할 자식들.”

욕설을 내뱉는 그에게 포만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악마라니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커다란 나무 크기의 악마가 나타나 날 공격했다. 부하들은 날 버려두고 도망쳤고, 난 용감하게 싸웠지.”

“이런 찢어 죽일 놈들을 봤나. 감히 그런 명예롭지 못한 짓을 하다니!”

분개한 포만드는 마차의 외벽을 주먹으로 쳤다. 마차가 크게 출렁일 만큼 그의 주먹엔 힘이 가득했다.

“제가 명예롭고 충성심이 강한 자들을 구해 보겠습니다.”

“흥! 당신을 믿어야 될지 모르겠군. 괜히 당신 말을 들었다가 아버지에게 또 혼만 났다고. 알고 있나?”

“여관 주인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저도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내막은 알지 못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누를 끼친 점 백번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코가 땅에 닿을 만큼 용서를 빈 그는 마차를 소매로 가리켰다.

“별장에 혼자 있기 적적하실 것 같아서 미녀들과 진귀한 술을 준비했습니다. 모두들 나오너라!”

마차 문이 열리며 달빛이 빛을 잃을 만큼 아름다운 여성들이 내렸다.

“인사드리옵니다.”

곱게 화장을 한 미녀들이 하늘거리는 자태로 엎드리자 포만드에게 화가 나 있던 로니올은 금세 얼굴이 밝아졌다.

로니올의 표정을 살피던 포만드는 박수를 쳤다.

“너희들은 어서 별장 안으로 들어가서 로니올 님의 시중을 들 준비를 해라!”

미녀들은 별장으로 곧 사라졌고, 포만드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제 충심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점만 알아주십시오. 한데, 악마라니, 대체 어떻게 숲에 악마가 나타난 것입니까? 혹시 거대 몬스터라도 나타난 게 아닙니까?”

“내가 잘못 보기라도 했단 말이냐! 내가 이렇게 직접 일을 겪었는데!”

그의 호통 소리에 포만드는 표정이 굳어졌다.

‘이 인간이 미친 것인가? 아니면 정말 악마가 나타난 것인가?’

쉽게 단정 짓지 못하던 그의 시선이 도현에게로 향했다. 얼굴을 반쯤 가린 수도사 차림의 그는 바위처럼 미동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사냥터에서 돌아온 자는 로니올과 저자뿐이었다.

“로니올 님, 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는 내가 위기에 빠졌을 때 도와준 은인이다.”

“은인요?”

자존심 강하고 제멋대로인 로니올이 은인이라고 표현할 정도면 숲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한 건 아마도 저자일 것이다.

포만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자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도현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대체 저놈의 정체는 뭐지?’

* * *

“악마를 사냥해 왔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구려. 한데 거참 이상합니다. 난 상인으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지만 악마 사냥꾼의 존재는 처음 듣습니다.”

포만드는 음식을 우물거리며 도현을 응시했다.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미심쩍은 눈빛이 가득했다.

별장 만찬장에 차려진 화려한 저녁 음식을 입에 넣던 도현은 무뚝뚝한 어조로 답했다.

“그런다 해서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악마 사냥꾼은 믿든 안 믿든 이 세상과 함께한다.”

“그러기엔 당신의 존재가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포만드는 자신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내를 더 대우하는 듯한 로니올의 인상에 속이 뒤틀리고 있었다.

“포만드, 내가 초대한 손님에게 무례하다. 네가 세상일을 다 아는 것이냐?”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만 작은 일을 크게 부풀려서 이득을 보려는 자들이 세상엔 넘쳐 납니다.”

“그가 날 도운 게 작은 일이냐!”

로니올은 술잔을 내려놓으며 포만드를 노려봤다.

“악마 사냥꾼 로이는 나를 도와주고 그냥 떠나려던 사람이다. 붙잡은 건 나야. 그를 모욕하지 말고 그냥 저녁이나 먹어.”

“제가 주제넘게 참견을 한 것 같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로니올 님.”

로니올에게 사과를 한 포만드는 도현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무언의 사과를 했다.

“로이, 그동안 많은 악마들을 상대해 왔을 텐데, 어디 재밌는 얘기 좀 해 줄 텐가?”

“악마 사냥꾼은 그가 해 온 일에 관해 밝히지 않는 것이 전통입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아, 그런가?”

정중한 도현의 대답에 로니올은 아쉬운 눈빛으로 술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본론을 꺼냈다.

“숲에서 나를 만난 것도 인연인 것 같은데, 내일 떠난 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야. 그러지 말고 내 사람이 되는 건 어떤가? 난 당신처럼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해.”

“악마 사냥꾼은 한곳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내가 대공이 되면 당신에게 영지를 하사하지. 악마를 사냥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을 위해 사는 것도 좋잖아?”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저의 소명이 있습니다.”

“혹시 달리 필요한 게 있어서 거절하는 건가? 그렇다면 말해 봐. 얼마든지 들어줄 수가 있어.”

도현은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저었다.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도현의 눈빛과 말투에 로니올은 자존심이 상했다. 더 매달리고 싶었지만 너무 비굴해 보였고, 포만드의 시선도 부담됐다.

그는 접시를 집어 던지며 외쳤다.

“음식 맛이 이상하다! 치워라!”

애꿎은 음식에게 화를 푼 그는 고개를 돌려 도현을 응시했다.

“잠을 자며 한번 내 제안을 생각해 보시오.”

어색해진 식사 시간이 끝난 후, 도현은 시녀의 안내를 따라 별장에 딸린 손님방으로 향했다

만찬장에 둘만 남자 포만드는 술을 한 모금 하며 물었다.

“그가 탐이 나시는 모양입니다.”

“당신은 숲에서 그가 어떻게 악마와 싸웠는지 못 봐서 그래. 수백 명을 붙여 놔도 그만 있으면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 정도입니까?”

“그러니 내가 저자의 건방진 모습도 어느 정도 허락한 것이다. 빌어먹을, 아버지 주변엔 강자들이 수두룩한데, 왜 내겐 아무도 없는 거냐고!”

로니올은 식탁을 내려치며 포만드를 쳐다봤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어? 저자를 내 부하로 만들 방법 말이야.”

“저는 상인입니다. 상대방을 설득도 해 보고 협상으로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지요. 그런데 저자의 눈빛을 보니 설득과 협상이 통할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쉽지만 포기하십시오.”

“부하들도 다 죽고, 이제 누가 날 지켜 주지?”

“용병들 중 쓸 만한 자들을 구해 보겠습니다.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포만드는 자신 외에 의지할 대상이 로니올에게 생기는 게 싫었다.

‘로니올이 망하면 나도 망한다.’

1할의 가능성을 두고 로니올에게 자신의 운명을 건 포만드는 눈을 빛냈다.

* * *

욕조 안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던 도현은 알몸의 미녀가 들어오자 헛기침을 했다.

“무슨 일이지?”

“시중을 들기 위해 왔습니다.”

얼굴을 보니 포만드가 데려온 여자 중 한 명이었다.

“되었다. 난 시중이 필요 없다.”

“소녀가 마음에 들지 않사옵니까?”

고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미녀는 욕조 안으로 들어와 도현의 품에 안겼다.

당황한 도현은 여자를 떼어 내고 욕조 밖으로 나와 옷을 걸쳤다.

“왜 저를 피하십니까?”

미녀는 도현의 허리를 휘감고 머리를 등에 기댔다. 여자의 목소리는 아주 달콤했고, 육체는 부드러웠다.

“너무하십니다.”

보통의 남자였다면 여자의 교태에 무너졌겠지만 도현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떨어져라.”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한껏 교태를 부리던 미녀는 눈을 깜빡이며 뒤로 물러났다.

“혼자 있고 싶으니 그만 나가거라.”

도현의 차가움에 여자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방에 벗어 놓은 옷을 입고 도망치듯 방에서 나갔다.

“좋은 구경을 할 뻔했는데 아쉽네.”

창가에 매달려서 방 안을 살피고 있던 짐브리오는 입맛을 다시며 훌쩍 방 안으로 넘어왔다. 곧이어 리타도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때문에 여자를 돌려보낸 거지?”

팔짱을 한 리타가 도현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아마도.”

“뭐야!”

발끈하는 리타를 보며 도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까는 수고했어. 어둠의 마왕이 아주 제 역할을 해 줬어.”

“어둠의 마왕을 악마로 둔갑시키다니, 불쌍한 나의 마왕.”

리타는 방문을 살짝 열어 복도를 살폈다. 엿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돌아선 그녀에게 짐브리오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악마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지. 그 외모하며 포악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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