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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89화 (489/575)

[489] 디 임팩트 20권 14화

“마왕을 모욕하지 마, 가만 안 둘 거야.”

“악마, 악마.”

“이씨!”

리타는 흑마법을 펼쳐 그녀를 닮은 거대 얼굴을 만들어 짐브리오를 삼켜 버렸다.

펑 소리를 내며 거대 얼굴이 사라진 자리엔 걸쭉한 분비물에 온몸이 젖은 짐브리오가 누워 있었다.

“헤헤, 꼴좋다.”

“내가 참는다.”

짐브리오는 욕조 안의 물로 얼굴을 닦아 낸 후 돌아왔다.

“로니올은 어때?”

“절 부하로 삼으려 애를 쓰더군요.”

“예상대로군. 어디 보자, 얼굴이 불편하진 않지?”

짐브리오는 매부리코의 중년인으로 변장한 도현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 모습으로 변장시키기 위해 짐브리오와 어베인은 꽤나 공을 들였다. 하루 이틀이 아닌 장시간 이 모습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속 피부가 가렵긴 하지만 참을 만합니다.”

도현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아직은 낯설었다.

“여기 침대는 편안하네, 넓기도 무척 넓고. 열 사람이 자도 되겠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던진 리타는 지쳐 보였다. 어둠의 마왕이 강해질수록 그만큼 소모되는 마나의 양이 많아지고 심신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새벽에 한 번 더 로니올을 놀라게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응, 그 정도야 뭐.”

“여기서 좀 쉬자.”

짐브리오와 리타는 넓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잠을 청했다. 누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담한 행동이었다.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든 그들을 내려다보던 도현은 방의 불을 끄고 방문에 등을 기댔다.

누군가 들어오려면 그가 기댄 방문을 밀고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그가 버티고 있는 한, 방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올 사람은 이 별장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노드빌 경은 어디에 있는 걸까?’

어베인이 본성에 있는 정보 상인을 만났지만 그와 관련된 소식은 어디서도 들을 수가 없었다.

대공의 자녀들을 구출하려다 벌어진 어떠한 소란도 지금껏 없었다.

노드빌은 아직 기회를 엿보는 것 같았다.

‘내가 로니올의 측근이 된다면 갇혀 있는 대공의 자녀들을 구할 기회가 찾아올까?’

그러기를 바라며 도현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 * *

새벽별이 반짝이는 깊은 밤.

달게 잠을 자던 로니올은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번쩍 눈을 떴다.

한쪽 눈알이 튀어나온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 도끼를 들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헉!”

그는 머리맡에 놓아 둔 검을 뽑아 위에서 내려오는 커다란 도끼를 막았다.

불꽃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 자식이!”

침대에 누워 괴물의 도끼를 막아 낸 그는 재빨리 침대를 내려오며 옆으로 검을 그었다.

마나가 깃든 그의 검은 공간을 가르며 괴물의 다리를 베었고, 사람 크기의 괴물은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다 로니올의 검에 머리를 잃고 번쩍이는 빛과 함께 소멸되었다.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호기롭게 외치던 그는 방 안에 우뚝 커니 서 있는 여러 괴물들을 뒤늦게 발견했다.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며 그는 외쳤다.

“경비병! 경비병!”

그는 고함을 치며 그를 향해 달려드는 괴물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 괴물들은 리타가 소환한 어둠의 병사들로, 생김새가 매우 음산하고 흉해서 실제 싸움 능력보다는 상대방을 공포에 빠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다.

방 안의 집기와 침대가 박살이 났다.

‘뭐야, 이것들은. 어디서 뛰쳐나온 거야!’

바닥을 구르며 괴물과 정신없이 싸우던 그는 숲에서 만났던 악마가 떠올랐다.

‘설마 이것들도 악마들인가?’

그는 다리를 잡는 괴물의 머리를 걷어차며 방문을 쳐다봤다.

어찌 된 일인지 이 소란에도 밖에서 그를 지켜야 할 경비병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은 로니올은 몸을 날려 방문을 부수고 복도로 나가 봤다.

경비병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젠장!’

그는 뒤를 쫓는 괴물들을 피해 다급히 복도를 내달렸다.

콰앙!

복도의 문이 부서지며 갑자기 괴물이 튀어 나와 그의 몸을 덮쳤다.

“이것 놔!”

주먹으로 뇌수를 흘리는 괴물의 얼굴을 힘껏 친 그는 벌떡 일어나 뒤에서 날아온 화살을 막아 낸 뒤 복도를 다시 뛰었다.

‘악마 사냥꾼 로이에게 가자. 별장에 있는 병사들은 너무 약해!’

상인 포만드는 밤에 마차를 타고 떠났고, 현재 이 별장엔 백여 명에 불과한 병사들이 전부였다.

이들로는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괴물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는 낮에 일을 겪은 뒤라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는 난간을 부수며 3층에서 1층으로 뛰어내렸다.

“크윽!”

등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이 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나 위를 올려다봤다.

괴물들이 3층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지독한 놈들.”

그는 1층 홀을 둘러봤다. 이곳에도 병사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그는 별장 본건물을 벗어나 뒤에 배치된 부속 건물로 뛰었다. 그곳에 악마 사냥꾼 로이의 숙소가 있었다.

“로이! 로이!”

“엎드리십시오!”

도현의 우렁찬 목소리에 로니올은 몸을 던지며 땅에 바짝 엎드렸다.

그 순간, 도현이 날린 검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날아가 로니올을 쫓던 어둠의 병사들을 단숨에 쓸어버렸다.

그 놀라운 모습에 로니올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십니까?”

“그, 그렇소.”

비틀거리며 일어선 로니올은 조금 전까지 그를 괴롭히던 괴물들이 사라진 공간을 멍하니 쳐다봤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별장은 조용했고, 뒤늦게 별장 소속 일꾼들과 잠을 자던 병사들이 나타나 로니올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네놈들은 모두 다 짐승 같은 놈들이다! 주인이 싸우고 있는데 잠이나 쳐 자고 있어! 개돼지만도 못한 자식들!”

검을 들어 병사와 일꾼들을 베려던 그의 손목을 도현이 붙잡았다.

“그러지 마십시오. 힘없는 자들이 아닙니까?”

“…….”

도현과 눈싸움을 하던 로니올은 천천히 검을 내렸다. 여기서 화를 내면 도현과 멀어질 것 같았다.

“모두 꺼져, 꺼지란 말이야!”

서슬 퍼런 로니올의 눈빛에 병사들과 일꾼들은 바람처럼 흩어졌다.

“대체 날 공격한 저 괴물들은 뭐지?”

“악마입니다.”

“악마? 정말 저놈들이 악마란 말이오? 낮에 본 숲의 악마와는 크기부터 다른데? 약하기도 하고.”

“악마도 등급이 있습니다. 저놈들은 제일 약한 존재입니다.”

도현은 검을 검집에 넣으며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숲에서 나타난 건 그렇다 쳐도 왜 내 방에까지 저런 놈들이 나타난 거지? 혹시 그 이유를 알고 계시오?”

“음.”

도현은 뒷짐을 지고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무거운 그의 표정에 로니올은 불안해졌다.

“말해 보시오. 왜 그러는지 알고 싶으니까.”

“특정한 사람 주변에 악마가 종종 모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고대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로니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앞으로도 이런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해결책은?”

“악마가 로니올 님을 포기하고 사라질 때까지 별다른 해결책은 없습니다.”

로니올은 휘청거렸다. 악마가 또 나타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그는 도현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평소의 그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왠지 그를 지켜 줄 사람은 눈앞에 도현밖에 없어 보였다.

“날 도와주시오. 악마가 나를 노리는데, 이대로 떠날 거요?”

도현은 말이 없었고 로니올은 애가 탄 눈빛으로 재차 애원했다.

“당신은 악마 사냥꾼이 아니오? 내가 당신이 아니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영주의 아들이니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아버지는 붉은 성의 대공과 큰 싸움을 앞두고 있고, 이복동생을 지지하는 간악한 자들은 호시탐탐 날 제거할 생각에 빠져 있소.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내 입으로 악마 얘기를 꺼낼 수가 있겠소? 당장 불길한 자로 매도되고 내 위치가 흔들릴 수 있는데. 그러니 당신이 날 도와주시오. 이 일은 우리끼리만 아는 걸로 하고 말이오.”

“흐음.”

도현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적당히 뜸을 들였다.

“제발 한 번만 날 도와주시오. 내가 대공이 되면 당신을 위해 뭐든지 하겠소.”

“좋습니다. 정 그러시다면 당분간 옆에서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도현이 허락하자 로니올은 안도하며 속으로 욕했다.

‘콧대 높은 자식. 내가 그렇게 사정하는데, 겨우 허락하는 군.’

두 사람은 별장 옆 호숫가를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말했지만 이 사실은 우리만 알아야 하오.”

“걱정 마십시오.”

“한데, 조금 전 당신은 숙소가 아니라 숲속에서 나오던데 어떻게 된 일이오? 잠을 잔 게 아닌가?”

뒤늦게 그 점이 이상했는지 로니올은 걸음을 늦추며 물었다.

“악마 사냥꾼은 끊임없이 자기 수련을 해야 합니다. 숲에서 검술을 수련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렇군.”

“제가 로니올 님을 지켜 준다고 해서 늘 붙어 다닐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없을 땐 스스로를 지키셔야 합니다.”

도현의 말에 로니올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마음 같아서는 악마 사냥꾼 로이의 목에 개줄이라도 묶어 개처럼 끌고 다니고 싶었지만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되도록 내 옆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지켜 주시오. 잠을 자는 시간이나 당신이 수련하는 시간까지 뺏고 싶진 않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아, 별장에 와서 마음 좀 풀어 보려고 했는데, 부하들은 사라지고 안 좋은 일만 생기는군. 동이 트면 본성으로 돌아갑시다. 당신의 거처는 내 집 안에 마련해 주겠소.”

로니올이 별장으로 들어가자 홀로 남은 도현은 주변을 돌아본 뒤, 어둠이 짙은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짐브리오와 리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획대로 일이 잘 풀렸습니다. 아침에 저자와 본성으로 돌아갑니다.”

“저 자식 의외로 단순한데? 혹시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이야.”

짐브리오의 말에 리타가 턱을 추켜세웠다.

“저 녀석이 단순한 게 아니라 열심히 뛰어 준 내 마왕과 병사들 덕분이라는 걸 명심해.”

“그럼, 그럼. 리타는 우리의 보배인걸.”

짐브리오는 껄껄 웃으며 리타의 얼굴에 자신의 까칠까칠한 턱수염을 비벼 댔다.

“아파! 저리 비켜!”

“흐흐흐.”

리타에게 머리를 얻어맞았지만 짐브리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자, 그만 가자고, 사람들이 결과를 궁금해할 테니까. 도현, 우리 먼저 성으로 돌아간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짐브리오가 말했다.

“네. 상황을 봐서 제가 그곳으로 찾아가겠습니다.”

성안엔 그들이 구한 낡은 집이 한 채 있었다. 낡았지만 집이 제법 넓어 여러 사람이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조만간 올 칼라치 일행도 마음만 먹으면 그곳에 머물 수 있었다.

멀어지는 짐브리오와 리타를 한동안 응시하던 도현은 나무에 기대 새벽하늘을 올려다봤다.

‘전쟁이란 가혹하군, 뭐든지 이용해야 하니까.’

냉정히 말하면 붉은 성의 대공과 샤르비티의 전쟁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바크 드라모스와 거래를 하고 한쪽 편에 서는 순간, 그의 입장이 달라졌다.

‘강한 쪽이 살아남겠지.’

그는 마법 주머니 안에서 샤르비티와 열세 명의 초상화를 꺼내 한 장 한 장 넘겼다.

이들이 죽으면 전쟁의 종식이 빨리 오게 되고,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차원 이동의 힘이 다하기 전에 목표를 이뤄 바크 드라모스에게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가 냉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동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초상화를 내려다보던 그는 그것을 둘둘 말아 마법 주머니에 넣은 후, 그곳에서 반으로 갈라진 넓은 철 조각을 꺼냈다.

‘철가면.’

유일하게 그와 검으로 대적할 수 있는 남자가 착용했던 물건이다.

씨드를 얻은 것으로 의심되는 남자. 철가면 휴반트.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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