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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91화 (491/575)

[491] 디 임팩트 20권 16화

인간이 보여 줄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 앞에 영주관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영주의 혈족은 사색이 되었다.

“수천의 병사들이 어찌 한 사람을 감당하지 못한단 말인가!”

“이, 이것 보시오, 모비롱 경, 생각보다 너무 강하지 않소?”

“도망칩시다! 곧 이 안으로 들어올 것 같소!”

휴반트를 죽일 수 있다고 자신감을 표출한 모비롱을 비난하던 그들은 영주관이 크게 진동하자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수천의 병사들로도 막을 수 없는 자를 영주관 안의 병사와 그들만으로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빌어먹을!”

모비롱은 주먹으로 벽을 쳤다. 벽이 무너지고 복도가 나왔다.

그는 복도를 빠르게 걸어 사방이 벽인 작은 방에 도착했다. 초췌한 모습으로 갇혀 있던 에린이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가만있어!”

달려들던 에린의 뺨을 후려친 그는 그녀의 멱살을 잡고 뒷문으로 영주관을 빠져나왔다.

그곳엔 도망치려는 영주의 혈족으로 가득했다.

“오, 아직 그녀를 안 죽였군! 다행이오!”

“맞소. 그놈이 이 여자를 아끼니 인질로 잡고 협상을 하면 우리 목숨은 구할 수 있을 거요.”

비명이 난무하는 영주관 쪽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했다.

“협상? 웃기는군.”

모비롱은 검을 뽑아 에린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붉은 피가 그녀의 가슴을 적셨다.

“나의 병사를 죽인 대가로 그놈에게 깊은 슬픔과 고통을 주겠다.”

죽어가는 에린을 내팽개친 그와 영주의 혈족은 영주관 뒤편의 길을 이용해 영주관을 벗어났다.

콰앙!

영주관 꼭대기 층이 박살나며 휴반트가 땅으로 뛰어내렸다.

쿠웅!

그의 양팔 안에는 죽은 벨피타 영주의 시신이 들려 있었다. 영주관 안에서 에린을 찾지 못한 그는 영주의 시신만을 챙겨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대로 놔두면 불타고 있는 영주관 안에서 존재감도 없이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에린을 인질로 잡고 도망간 게 틀림없다.’

영주관 안에서 모비롱과 영주의 혈족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에린이 그들에게 잡혀갔다고 믿었다.

그는 영주의 시신을 나무 밑에 내려놓았다. 에린을 구한 뒤, 그는 영지를 떠날 생각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그는 이곳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수천 명의 병사들을 죽였다. 그 병사들과 관련된 주민들은 그를 악마 보듯 할 것이다.

‘에린도 기꺼이 나를 따라올 거야.’

그는 말을 타고 저들이 탈출했을 걸로 예상되는 영주관 뒤편의 길로 향했다.

어두운 빗길을 달리던 그는 조금 전 스쳐 지나간 물체가 마음에 걸려 뒤를 돌아봤다.

말에서 뛰어내린 그는 엎드려 있는 여인을 바로 눕혔다. 가슴이 붉게 물든 여자는 뜻밖에도 그가 사랑하는 여인, 에린이었다.

“에린!”

크게 그녀의 이름을 부른 휴반트는 피가 샘솟는 그녀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힘 있게 눌렀다.

그러나 아무리 손으로 막아 봐도 가슴의 피는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숨소리는 갈수록 희미해졌다.

‘죽는다, 그녀가 죽는다. 안 돼! 제발 신이시여!’

휴반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빗속에서 몸부림쳤다. 손을 쓰기엔 그녀의 상처가 너무 깊었다. 절망이 엄습했다.

“에린!”

그는 비통한 마음을 담아 온 힘을 다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마음이 통했는지 죽어 가던 에린이 극적으로 눈을 떴다.

“휴반트…….”

“에린!”

그녀가 깨어나자 휴반트는 몸을 떨며 그녀를 응시했다.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나 때문에…….”

“소……소원이 있어요.”

“뭐든 말하시오. 다 들어줄 테니까.”

“당신 얼굴을 보고 싶어요.”

휴반트의 몸이 굳어졌다. 그는 잠자리에서 조차도 그녀에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의 흉한 외모를 본 그녀가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게 소원이란 말이오?”

“그래요.”

휴반트는 잠시 주저하다가 얼굴을 가린 철가면을 떼어 냈다. 코가 없고 얼굴이 뒤틀린 흉한 모습이 에린의 눈에 크게 들어왔다.

“아! 당신은 이렇게 생겼군요.”

그녀는 손을 들어 울고 있는 휴반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말아요.”

“이렇게 생겨서 미안하오.”

“내 눈엔 아름다워요. 진작 봤다면 더 좋았을 텐데…….”

“거짓말.”

“정말이에요.”

짧은 미소를 지은 그녀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에린…….”

휴반트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깊게 오열했다. 자신의 반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이토록 큰 상실감을 어디서 보충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난 행복한 사람인가, 아니면 불행한 사람인가?’

아마도 그녀가 죽지 않았다면 평생 그는 얼굴을 그녀에게 숨겼을 것이다.

휴반트는 그녀를 으스러져라 안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벨피타 영주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녀를 영주의 시신 옆에 나란히 눕힌 그는 손에 상처를 내어 그 피를 그들에게 뿌렸다.

“에린을 이렇게 만든 네놈들을 반드시 죽여 주겠다.”

복수를 맹세한 그는 영주관 뒤편의 길을 통해 모비롱과 그 일당들을 뒤쫓았다.

그의 눈은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영혼까지 갈기갈기 찢어서 다 씹어 먹어 줄 테다.’

밤이 지나고 동이 텄다.

성을 벗어나 저들의 흔적을 따라 달리던 그는 양 갈래 길에서 멈춰 섰다. 그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얼마 뒤 도망치는 영주의 혈족을 발견했다.

휴반트는 오는 도중 챙긴 몇 자루의 창 중 하나를 들어 말을 타고 앞서가는 자들을 향해 던졌다.

콰앙!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말과 사람이 동시에 허공으로 솟구쳤다.

팔다리가 끊긴 영주의 혈족이 길가에 즐비하게 쓰러졌다.

“으으으, 내 다리.”

“제, 제발 살려 줘.”

말에서 뛰어내린 휴반트는 여러 명의 혈족 사이를 오가며 모비롱을 찾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모비롱은 어디 있지?”

“그는 우리와 중간에 헤어졌소.”

“어디로 갔나?”

“알려 주면 살려 줄 텐가?”

비교적 부상이 덜한 중년인이 비굴한 모습으로 물었다.

“살려 주지.”

“그는 베일 가문의 영지로 도망쳤을 거요.”

“그곳으로 갔다고? 날 놀리는 건가?”

휴반트는 들고 있던 창으로 중년인의 허벅지를 찔렀다. 중년인은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말했다.

“저, 정말이오. 모비롱과 알레드로 베일은 친구 사이오. 우리에게 가는 곳을 숨기고 떠났지만, 그가 갈 곳은 그곳이 제일 유력하오. 가장 힘센 친구니까.”

“알레드로 베일은 어떤 인물이지?”

“샤르비티의 사촌으로 반란을 도운 사람이오. 자신만의 성도 가지고 있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휴반트는 도망치는 자에게 창을 던졌다.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난 사내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 난 살려 주겠지? 약속대로 그가 갈 만한 곳을 말해 줬으니까.”

“에린은 누가 죽였나?”

칠흑처럼 어두운 고대의 검을 꺼내며 휴반트가 물었다.

“그가 죽였소, 모비롱 말이오. 이번 일도 다 그자 때문에 생긴 거요.”

고개를 끄덕인 휴반트는 얼굴에 착용한 철가면을 벗었다.

“내 얼굴을 잘 봐 둬. 지금부터 네놈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선사할 사람이니까.”

그는 부상당해 쓰러져 있던 영주의 혈족을 숲으로 모두 끌고 들어갔다.

“사,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소!”

“거짓말이다.”

휴반트는 산채로 그들의 피부를 벗긴 후 개미굴에 던져 버렸다. 개미굴에서 끝없는 비명 소리가 울려 나왔다.

그들의 죽음을 확인한 휴반트는 말에 올라탔다.

다른 녀석들을 다 죽여도 모비롱을 잡지 못하면 복수는 한 게 아니다.

‘넌 반드시 내 손에 죽어야 한다.’

* * *

한낮의 해가 힘을 잃어 서서히 기울어질 무렵, 칼라치와 이디언, 헬구스는 샤르비티가 통치하는 본성에 도착했다.

칼라치는 얼굴을 뒤덮다시피 한 모자를 살짝 들어 드넓은 도시를 응시했다.

‘크군.’

이곳에 며칠 더 일찍 도착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무리하지 않았다. 중간에 이디언과 산과 숲을 통과하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나름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는 모자를 내리고 이디언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서 도시를 구경하던 헬구스는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붉은 성과 가까운 서쪽 지역은 전쟁 분위기가 물씬 나는데, 여기는 전혀 딴판이군.”

헬구스는 비교적 자유로운 도시의 분위기에 살짝 놀란 것 같았다.

그는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도시의 규모에 감탄하기도 했다.

“내가 살던 왕국의 수도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규모야. 듣던 거보다 굉장한데?”

건물들은 높고 아름다웠고, 성곽 밖 상선이 오가는 거대한 강에서 흘러온 강줄기는 도시까지 유입돼 작은 배들이 도시 사이를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바람이 불때마다 거리의 나무들이 흔들렸고 물품을 실은 마차와 말 들이 사람과 뒤섞여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사람도 물자도 건물도 모든 게 번성하고 많다. 수백 년 베일 가문의 중심지다웠다.

“입 좀 다물어요. 거리마다 사람들을 주시하는 감시자의 시선이 안 느껴져요?”

이디언의 타박에 헬구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험, 미안해. 이곳을 보니 왕국 수도가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어.”

자유로운 도시의 이면엔 샤르비티가 펼쳐 놓은 감시의 시선이 숨어 있었다.

의심스러운 행동을 했다간 저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을 것이다.

그들은 얼마 후, 도현이 칼라치에게 알려 준 여관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 여관은 새카맣게 불타고 무너져 있었다.

“뭐야, 이거? 왜 이 모양이 된 거야?”

헬구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그들은 불탄 여관에 가까이 가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여관이 저 지경이 됐는데, 도현은 어디서 만나지?”

뜻밖의 상황에 그들이 낮은 목소리로 의논할 때, 한 청년이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랜만입니다, 구역장 님.”

구역장이라는 말에 칼라치와 헬구스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청년을 응시했다. 다크캐슬에서 구역장으로 군림했던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넌…….”

칼라치는 청년이 누군지 곧 알아봤다. 전보다 더 어른스러워졌지만 예전 그 얼굴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은 다크캐슬에서 도현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했던 루드의 아들 에드였다.

“네가 왜 여기에?”

“세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네, 백도현 님을 여관에서 만나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에드가 비밀스러운 일을 정확히 알고 있자 칼라치는 주변을 쓸어 보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 거냐?”

“백도현 님이 제 스승님이십니다.”

“그가 너의 스승이라고?”

칼라치는 에드를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훑어봤다. 그러고 보니 눈은 별빛처럼 맑고 깊었고, 자연스럽게 내려온 두 팔은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는 자세를 은연중 취하고 있었다.

다크캐슬에서 봤던 애송이 녀석이 더 이상 아니었다.

‘그는 제자까지 키웠군.’

칼라치는 문득 그가 부러워졌다.

“여관은 발각됐습니다. 스승님은 다른 곳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절 따라오십시오.”

매일 여관 근처에서 칼라치를 기다려온 에드는 그들을 한적한 낡은 집으로 데리고 갔다.

“어서 오시오. 우리 정식으로 만나 인사를 나누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소. 나는 어베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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