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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93화 (493/575)

[493] 디 임팩트 20권 18화

아버지를 제외하곤 그의 몸에 손을 댄 자는 지금껏 없었다.

“앞으로 술은 멀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없을 때 악마가 나타나면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데, 어떻게 견딜 수 있겠습니까?”

“별장이 문제가 아닐까? 돌아와서 며칠간 아무 일도 없는데.”

“그렇게 믿으신다면 저는 지금이라도 여기서 헤어지겠습니다. 악마 사냥꾼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차고도 넘칩니다.”

도현의 엄포에 로니올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급히 대꾸했다.

“알겠소, 술을 줄이지. 나도 악마에게 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도현은 로니올이 어찌 되든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가 별난 짓을 해 샤르비티의 노여움을 받아 기념식장에 참석도 못할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그래서 로니올이 술을 줄이면 그 염려가 조금은 줄어들 것 같아 술을 멀리하라고 한 것이다.

‘제단이 형태를 잡아 가는군.’

도현의 시선이 광장에 세워지고 있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로 향했다.

샤르비티의 부친 기념일에 사용될 석조 건축물은 그 높이가 무려 10층 정도 되는 계단식 제단으로, 수천 명의 인부들이 달라붙어 밤이 온 지금도 횃불과 화로의 불빛에 의지해 일을 하고 있었다.

광장은 수십만 명이 한꺼번에 운집할 수 있는 규모였는데, 광장 북쪽에 세워지고 있는 제단의 크기는 그 수십만을 압도할 만큼 굉장했다.

‘샤르비티가 이번 일에 들이는 공이 얼마만큼인지 짐작이 되는군.’

도현이 광장 방향을 계속 응시하고 있자 로니올이 말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념일에 사용될 제단이야. 작년 까지만 해도 뤼호른 가문과 접경 지역이었던 우리 영지에서 치렀는데, 올해는 장소가 바뀌었지.”

“제단에선 어떤 일을 하는 겁니까?”

“기념일은 6일간 지속되는데, 그 마지막 날 저 제단에서 아버지가 염소를 죽이는 의식을 치르시지. 그리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거야. 그러면 정식으로 기념일이 종료되는 것이지.”

말을 천천히 몰며 광장을 지나치던 로니올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혹시 저 의식과 내 주위에 생기는 악마가 관련이 있을까?”

“로니올 님도 제단 의식에 참석하십니까?”

“당연하지! 그것도 아버지 옆에서 염소를 죽이는 일을 보조한다고.”

“그렇군요. 흐음, 속단할 수는 없지만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악마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나타나는 경우가 자주 있으니까요.”

“그럼 어떡하지? 내가 저 의식을 없앨 수도 없고. 다친척하고 저 자리를 피해 볼까?”

로니올은 걱정 깊은 눈빛으로 도현을 쳐다봤다.

도현은 그의 말에 속으로 깜짝 놀랐다. 로니올이 제단 의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그가 로니올에게 접근한 의미가 사라진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의식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런가? 하긴, 저 의식은 아버지가 가장 중요시하는 행사인데 내가 빠지면 큰일이지. 로이, 그날 당신도 함께하자고.”

도현은 점점 멀어지는 광장을 보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꼭 참석하도록 하죠.”

* * *

내성 안엔 수많은 건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중 일부는 대공과 샤르비티군의 전투로 인해 부서진 모습으로 아직 복구되지 않은 채 남겨져 있었다.

‘꽤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었군.’

로니올의 호위 무사가 되어 내성에 발을 디딘 도현은 늑대들 수백 마리가 내성 경비병과 함께 움직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한데 특이하게도 늑대들은 머리가 두 개씩 달린 기괴한 모습이었다.

도현을 잠시 노려보던 늑대들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몰래 들어왔다간 저 녀석들의 먹이가 되는 거지. 전에 내성을 염탐하던 몇 놈이 저 녀석들에게 잡혀 먹히는 것을 봤는데, 아주 재미나더군.”

로니올은 낄낄대며 도현을 데리고 내성 거리를 걸었다. 그들이 타고 온 말은 내성 입구에 있는 마구간에 맡겨진 상태다.

도처에 늑대와 함께 움직이는 경비병이 존재했고, 검은색 일색의 복장을 한 날카로운 눈빛의 사내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그들은 샤르비티의 친위대로 일당백의 전사로 알려져 있었고, 그 수도 수천 명이나 됐다.

반란이 벌어진 날, 검은 옷의 샤르비티의 친위대가 나서서 대공의 내성 방어를 뚫지 못했다면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샤르비티의 핵심적인 전력인 셈이다.

검은 옷을 입은 전사들의 정체를 나름 듣고 있던 도현은 예리한 시선으로 거리에서 마주치는 그들을 훑어봤다.

‘개개인이 뛰어난 자들이다. 죽음을 초월한 수련을 거쳐 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기운이 느껴져. 대체 누가 저런 자들을 길러 냈을까?’

샤르비티의 친위대는 기념식장에 배치될 게 분명하다. 그때 도현은 저들과 싸워야 한다.

죽음의 두려움도 이겨 낸 자들과 싸우는 것은 피곤할 일이 될 게 확실하다.

대상인 압할라의 호위대 백여 명은 실력이 출중하면서도 죽음도 아랑곳하지 않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 줬었다.

감탄하면서도 벨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자들이 백여 명이 아닌 수천 명이 버티고 있다는 건 아무리 강한 도현이라 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곳부턴 나 혼자 들어가야 돼.”

샤르비티가 있는 집무실 건물 앞에서 로니올이 말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쏟은 웅장한 집무실 건물을 보며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십시오. 전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혼자가 된 도현은 집무실 건물 앞에 늘어선 수십여 명의 친위대들을 가볍게 둘러보며 옆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무실이 있는 건물 앞은 넓은 공터였지만 곳곳에 배치된 화로의 불빛으로 인해 대낮처럼 밝아서 어둠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혼자 벌받는 기분이군.’

친위대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이 안에 샤르비티가 있다는 말이지…….’

도현의 손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저곳으로 뛰어 들어가면 샤르비티를 죽일 기회가 올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는 손에 힘을 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내성의 지하 감옥은 서쪽에 있다고 했지.’

도현은 대공의 자식이 갇혀 있는 지하 감옥을 생각하며 서쪽을 응시했다.

한동안 그러고 있는데, 옆에서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도현은 천천히 그 시선을 좇아 고개를 돌렸다.

등에 두 자루의 검을 찬 검은 옷의 중년인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중년인은 저벅저벅 걸어와 도현에게 물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넌 누구냐?”

고저 없는 독특한 중년인의 음성을 잠시 음미하던 도현은 정중하게 답했다.

“로니올 님의 호위 무사입니다.”

“그분의 호위 무사라고?”

유베린은 도현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너 같은 자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이름이 무엇이냐?”

“로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부터 그분을 모시게 됐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베린은 등에 찬 검 한 자루를 뽑아 벼락처럼 내리쳤다.

도현은 검을 뽑아 머리 위에서 그의 검을 막아 냈다. 천둥 치는 소리와 함께 건물 유리창이 와자작 소리를 내며 수십 장이나 동시에 깨졌다.

또한 둘 사이에 돌바닥은 깊숙이 주저앉았다.

간단한 한 수였지만 둘은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충돌을 일으켜 주변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대장님!”

집무실 건물 앞을 지키던 친위대들이 빠르게 달려와 도현의 주변을 에워쌌고, 건물 안에서도 검은 복장을 한 수백 명이 달려 나왔다.

“물러가라. 별일 아니다.”

유베린의 한마디에 친위대들은 썰물처럼 물러나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로니올 님이 과분한 자를 얻었군. 대단한 실력이야.”

유베린은 등 뒤의 검집에 검을 꽂아 넣었다. 도현도 검을 회수해 검집에 넣었다.

“난 유베린이다. 샤르비티 님의 친위대장이지. 로니올 님이 아니라 샤르비티 님을 위해 일해 볼 생각이 없나?”

“말씀은 감사하나, 로니올 님이 아시면 섭섭해하실 겁니다.”

도현은 거절했다.

“아쉽군.”

유베린은 몸을 돌렸다. 로니올이 허겁지겁 뛰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유베린 대장!”

유베린과 도현이 충돌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로니올이 따지듯 물었다.

“실력이 뛰어나 보여 시험해 본 것뿐입니다. 그럼.”

유베린은 획 돌아서서 집무실 건물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건방진 자식! 제멋대로군.”

로니올은 입술을 씰룩이며 도현을 쳐다봤다.

“갑시다, 저자는 상대할 자가 못 되니까.”

도현은 집무실 건물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위로 올렸다.

꽤 높은 곳에서 누군가 그와 로니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샤르비티였다.

도현은 그를 못 알아본 척하며 로니올과 함께 그곳을 벗어나 내성의 입구로 걸어갔다.

‘주목받아서는 곤란한데…….’

내성에 발을 디디자마자 샤르비티의 친위대장을 만난 건 좋지 못한 흐름이었다.

“무슨 일로 샤르비티 님이 부르신 겁니까?”

도현은 말에 올라타며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기념일이 가까웠으니 집 안에서 자중하며 지내라더군. 문제 일으키지 말고. 젠장, 누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 아무튼 그것도 그렇고 별장에서의 일도 물어보시던데, 누군가 보고를 한 것 같아.”

“뭐라고 하셨습니까?”

“대충 둘러댔지. 내 주변에 악마가 나타난다고 말을 할 수는 없잖아?”

로니올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인상을 잔뜩 썼다.

“제 얘기도 하셨습니까?”

“하긴 했지. 사냥터에서 날 구해 준 용병으로 말이야. 실력이 뛰어나서 내가 호위 무사로 고용했다고 했어.”

말을 천천히 몰아 내성 밖으로 나온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유베린 그자가 당신에게 왜 관심을 보였는지 모르지만, 그자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 돼. 로이, 당신은 날 지켜 줘야 한다고.”

“전 그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한데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건 사실 아는 사람이 매우 드문 일인데, 그는 아버지와 계약을 맺고 기존의 친위대들을 비밀리에 훈련시킨 훈련단장이야. 그런데 지난번 대공과의 전투 때 친위대장이 대공과 싸우다 죽는 일이 벌어졌거든. 그 이후로 그가 훈련단장과 친위대장직을 겸하고 있지.”

“그렇군요.”

도현은 그를 시험한 유베린을 떠올렸다. 서로 검을 겨룬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도현은 그 속에서 유베린의 검이 거친 황야의 검처럼 삭막하고 강하다는 걸 느꼈다.

그는 굉장히 뛰어난 검사임이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뛰어난 친위대를 육성해 내다니, 사람을 제대로 키울 줄 아는 능력도 갖춘 사람이다.

“그자는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빌어먹을 자식.”

유베린을 욕하던 로니올은 멀리 광장의 제단을 보며 탄식했다.

“그나저나 결국 그녀는 저곳에서 죽겠군.”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주 오는 마차를 피해 말을 몰며 도현이 물었다.

“대공의 딸. 우리에게 붙잡혀 있는데, 기념일 마지막 날 제단의 의식이 끝나고 그녀의 오빠들과 함께 제단에서 처형될 거야.”

로니올은 도현을 자기 사람으로 인식했는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털어놨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기 그지없어. 죽이는 게 아까울 정도로.”

사촌지간이었지만 로니올은 대공의 딸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저곳에서 그들을 처형한다고?’

도현의 시선이 거대한 제단 건설 현장으로 향했다.

“붉은 성의 대공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사람이 분명해, 우리 아버지만큼이나.”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달랑 있는 세 명의 자식들이 인질로 잡혀 있는데, 꿈쩍도 안 하잖아. 어떠한 협상도 없는 데다 구해 내려는 수작도 안 부리고. 기념일이 끝나고 아버지와 함께 출정해서 싸우게 될 텐데, 걱정이야. 그런 냉정하고 독한 자와 붉은 성에서 싸우게 될 생각을 하니까.”

한숨을 길게 내쉰 그는 문득 도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로이, 전쟁터까지 함께 가주는 거지?”

광장의 제단을 응시하던 도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샤르비티와 그 사촌들을 제거할 때 로니올 이자도 그의 검이나 칼라치의 손에 의해 죽게 될지 모른다.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던 도현은 광장 제단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기념일이 끝난 후에 얘기 나누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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