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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94화 (494/575)

[494] 디 임팩트 20권 19화

작은 배

로니올이 잠든 시간을 이용해 도현은 은밀히 집을 나오려 했다. 그런데 그 전에 한발 먼저 그의 방을 방문한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이 잘릴 수 있다.”

도현은 내뻗은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났다.

날카로운 검이 목 근처에서 사라지자 복면인은 숨을 돌리며 반쯤 넘어온 창문을 완전히 넘어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소리를 안 내려 노력했는데, 역시 스승님한테는 안 되는 군요.”

복면을 벗은 에드는 머리를 긁적였다.

“짐브리오 대신 네가 여긴 웬일이냐?”

도현을 만나러 오는 건 짐브리오의 몫이었다. 담도 잘 넘고 남의 시선을 피해 몰래 들어오는 일은 그의 전문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짐브리오 아저씨가 한번 도전해 보라고 해서요. 자꾸 해 봐야 담을 넘는 것도 는다고 해서…….”

“들켰구나, 멍청한 녀석.”

짐브리오는 도현의 방문을 열며 태연히 등장했다. 도시 수비대 소속 병사들이 로니올의 집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없는 것처럼 나타난 것이다.

“넌 도둑이 되기 글렀다. 숨어만 다닐 게 아니라 적들로 위장도 하고 대범하게 코앞을 왔다 갔다 해야지.”

그때 복도가 시끄러워졌다.

“잘 확인해 봐! 수상한 자가 들어온 것 같으니까!”

짐브리오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병사들에게 발각된 것 같은데요?”

“험, 가끔 실수도 할 수 있다.”

헛기침을 한 짐브리오는 밖에 병사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조용히 서 있다가 도현에게 말했다.

“노드빌 경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 * *

노드빌과 그의 수하 30여 명은 한밤중에 조용히 산속 토굴에서 나왔다.

그들의 얼굴은 비장했다.

“너희들의 충성심은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

“아닙니다, 사령관님!”

노드빌의 수하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그들은 대공 부인 가문에서 가장 강한 노드빌의 직속 부하들로, 한 명 한 명이 적들에게 두려움을 줄 만한 강자였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담긴 시선으로 충성스러운 부하들을 차례로 훑어보던 그는 산을 내려와 숲으로 향했다.

샤르비티의 8만 대군은 본성 근처 평원에 주둔 중이었는데, 그곳에 대공의 자식이 갇혀 있었다.

대공의 자식은 내성 지하 감옥에도 갇혀 있지만, 그들은 이곳을 노리기로 했다. 샤르비티가 버티고 있는 곳보다는 그래도 떨어져 있는 저곳이 구해서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숲에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샤르비티의 병사들같이 탈바꿈한 그들은 숨을 죽이며 숲으로 샤르비티의 바위산 전투군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바위산 전투군은 붉은 성을 떠받치고 있는 바위산을 공략하기 위한 전문 병사들로, 그들은 샤르비티의 특명하에 몇 달 전부터 험한 암벽을 등반하는 훈련을 매일 해 오고 있었다.

붉은 성의 깎아지른 바위산을 맨손으로 기어 올라가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체력과 수없는 반복 훈련밖에는 답이 없었다.

벨라와 푸베지토에게 붉은 성을 파괴하라는 밀명을 내렸지만, 만일에 그것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샤르비티는 치밀하게 준비를 해 왔던 것이다.

멀리서 지친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천 명의 바위산 전투군이 고된 훈련을 마치고 밤늦게 주둔지로 복귀하는 중이었다.

그들의 주둔지는 바로 대공의 자식이 갇혀 있다고 알려진 8만 대군의 진영이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합류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실수해선 안 돼.”

노드빌의 말에 눈빛이 야수처럼 빛나는 그의 부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바위산 전투군으로 위장해 저들 틈에 끼어 주둔지에 침투할 작정이었다.

열흘 넘게 바위산 전투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살펴보며 저들의 행동 방식을 익혀 온 그들은 숲을 통과하는 수천 명의 병사들을 지켜봤다.

긴 대열이 차츰 끝을 보일 때쯤 그들은 어둠과 약간은 어수선한 행군 사이를 파고들려 했다.

그때 바람처럼 나타난 매부리코 중년인이 그들 앞을 가로 막았다. 중년인은 변장한 도현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노드빌의 부하들은 일제히 노드빌을 응시했다. 어찌할 건지 묻는 시선이었다.

노드빌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계획한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

노드빌은 말없이 딱 버티고 서 있는 도현을 노려보며 뒤로 천천히 물러났다.

그의 움직임에 맞춰 서른 명의 부하들도 침묵 속에서 뒤로 조금씩 이동했다.

양측이 기묘한 대치를 이루는 사이 바위산 전투군은 숲을 통과해 버렸다.

결국 바위산 전투군에 침투하려한 그들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꿇려라!”

분노한 노드빌의 지시에 그의 수하들이 도현을 향해 벌 떼처럼 달려들었다. 생포가 목적인 듯, 그들은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도현도 검을 뽑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의 손발을 맨손으로 가볍게 막아 내다가 어느 순간 벼락처럼 수십 개의 손 그림자를 만들며 그들을 일제히 뒤로 튕겨 냈다.

쿠웅!

낮은 울림을 동반한 소리와 함께 노드빌의 수하들이 태풍에 휩쓸린 것처럼 뒤로 밀리는 장면은 보고도 믿기 힘든 놀라운 광경이었다.

“넌 누구냐!”

노드빌은 차가운 눈빛으로 검을 들고 나섰다. 도현은 앞으로 내뻗었던 두 팔을 천천히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조금 전 펼친 수법은 일전 모석청이 발견한 석실에서 얻은 대력금강수상의 권법 동작이었다.

원래는 강기를 손에 두르고 펼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노드빌의 수하들이 즉사를 피할 수 없었기에 강기를 두르지 않고 펼친 것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위력이 강해서 노드빌의 수하들이 걸치고 있던 샤르비티 병사의 갑옷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도현은 그의 권법에 당한 저들이 화난 얼굴로 벌떡 일어나 검을 뽑아 다가오는 것을 보며 차분히 답했다.

“노드빌 경, 전 대공이 보낸 사람입니다.”

“음…….”

도현의 대답에 노드빌은 무거운 신음 소리를 냈다.

“대공이 날 막으라고 보낸 거냐?”

“아닙니다.”

“하면 왜 나를 방해한 거냐,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헛된 죽음을 막고 싶었을 뿐입니다.”

도현이 말을 하며 다가서자 노드빌의 부하들이 검을 들고 그의 앞을 막아섰다.

도현은 걸음을 멈추고 사내들 어깨 너머로 보이는 노드빌의 눈을 응시했다.

“저와는 만난 적이 있을 겁니다.”

“난 너 같은 자를 본 적이 없다.”

“붉은 성에서 대상인 압할라의 목이 담긴 청동 상자를 들고 가던 남자를 기억하십니까? 돈조르니 경과 함께 있었는데 말입니다.”

도현의 말에 노드빌의 눈이 살짝 커졌다. 캐서린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복도에서 있었던 일을 사내가 거론한 것이다.

“그 용병은 다른 얼굴이었는데…….”

“이유가 있어 변장을 했습니다. 노드빌 경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면 꽤나 훌륭한 변장이지요.”

“모두 물러나라.”

노드빌은 부하들을 옆으로 물리며 도현과 마주섰다.

“헛된 죽음을 막고 싶었다니, 그건 무슨 말이지?”

“8만 명의 대군이 머물고 있는 저 주둔지에는 대공의 따님이 없습니다. 전혀 엉뚱한 여자가 있더군요.”

“그럴 리가! 저곳으로 호송되는 것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제 말을 믿으십시오. 저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있다고 알려진 주둔지 내 감옥엔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샤르비티가 그녀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게 확실합니다.”

도현은 이곳에 오기 전 리타에게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 까마귀 마법으로 며칠간 정탐한 끝에 주둔지 내에는 대공의 딸이 없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구출을 시도하더라도 실제 그들이 있는 장소에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저곳에 간다면 무의미한 희생만 치를 뿐입니다.”

노드빌은 굳은 얼굴로 근처에 있는 바위에 앉았다. 도현의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냈나?”

“적의 진영을 몰래 살필 수 있는 뛰어난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고생하며 알아낸 일입니다.”

노드빌은 도현을 지그시 응시했다. 맨손으로 그의 부하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것을 볼 때, 쉽게 볼 강자가 절대 아니었다.

“내성에 갇혀 있는 대공의 두 아들도 그럼 알려진 지하 감옥이 아닌 제3의 장소에 갇혀 있는 건가?”

“아직 그곳은 확인해 보지 못했습니다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간악한 샤르비티 녀석! 그런 치졸한 수를 쓰다니!”

손바닥으로 바위를 내려친 그는 허탈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려진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대공의 자녀들이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구출 작전을 시도조차도 못하고 물러날 상황이었다.

“혹시 대공이 자식들을 구하려고 자넬 보냈나?”

“전 다른 일 때문에 왔습니다.”

“다른 일이라니?”

“잠시 자리를 옮기시죠.”

뭔가 중요한 일을 말하려는 사람처럼 도현이 말을 아끼자 노드빌은 부하들을 숲에 남겨 두고 홀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한 도현은 엎드려서 물을 몇 모금 했다.

“본성 광장에 가 보셨습니까?”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내며 도현이 물었다.

“며칠 전에 가 봤네. 거대한 제단을 만들며 기념식을 성대하게 준비 중이더군.”

“기념일 마지막 날, 그곳에서 대공의 자식들이 처형될 예정입니다.”

깜짝 놀란 노드빌은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한가?”

“샤르비티의 아들, 로니올이 말한 사실이니, 거의 확실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기어이 그렇게 되는군.”

“안타까운 일이지만 노드빌 경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공의 자녀들이 어디에 갇혀 있건, 그날엔 광장에 무조건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으니까요.”

노드빌의 눈빛이 강해졌다.

“자네 말은 그때 구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광장에 모일 수많은 군중 틈에 있다가 기회를 노리실 수 있을 겁니다. 그날 광장에서 굉장히 혼란스러운 일이 벌어질 테니까요.”

“자네가 말하는 혼란스러운 일이란 게 뭔가?”

도현은 노드빌의 눈을 보며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를 물어보셨죠? 이제 답하겠습니다. 전 대공의 명을 받고 샤르비티와 그 사촌들을 제거하러 왔습니다.”

상상하지도 못한 도현의 말을 들은 노드빌은 각진 턱을 손으로 훑어 내렸다.

“그 혼란이란 게 그런 뜻이었군. 나만 미친 줄 알았더니, 대공이나 자네도 미쳤군. 적진 한복판에서 적의 수뇌부를 몽땅 죽인다고 하다니.”

“결과가 어찌 되든 광장은 큰 혼란에 휩싸일 겁니다. 그 틈에 대공의 자식들을 구해 보십시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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