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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497화 (497/575)

[497] 디 임팩트 20권 22화

“제, 제발. 크아아아아!”

남은 한쪽 발목도 망가트린 휴반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기절한 모비롱을 발치에 두고 유베린을 돌아봤다.

지금까지 하는 행동을 보면 그의 적은 아닌 것 같았다.

“멀지 않은 곳에 원형경기장이 있소. 그 지하엔 오래전 폐쇄된 감옥이 하나 있지. 그자를 괴롭히기엔 적절할 것 같소만.”

“날 도와주려는 목적이 뭐냐?”

“일단 마차에 타는 게 어떻소? 내 부하들이 양쪽 길을 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오.”

유베린이 길 한쪽에 세워진 마차를 가리켰다.

잠시 고민하던 휴반트는 축 늘어진 모비롱을 짐짝처럼 마차 안에 쑤셔 넣고 그 옆에 앉았다.

그의 발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마차 내부를 더럽게 만들었지만 유베린은 개의치 않은 목소리로 마부에게 지시했다.

“원형경기장으로 가자.”

말 네 마리가 끄는 제법 큰 마차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휴반트는 길 곳곳에 배치된 검은 복장의 사내들이 도시 수비대를 알레드로의 집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통제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당신은 이곳에서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나 보군.”

“그런 편이오.”

고저 없는 그의 대답을 들은 휴반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영혼이 없는 것처럼 들리는 저 특색 있는 목소리가 생소하지 않게 다가왔다.

마차를 타기 전에도 그렇게 느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의 그 졸린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는군.”

“내 목소리는 흔한 편이 아닌데.”

유베린은 피식 웃으며 창밖을 응시했다. 마차는 다리를 건너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 날 돕는 건지 이제 말해 봐. 샤르비티가 내게 접근하라고 하던가?”

“나중에야 알겠지만 오늘 밤 일은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내 재량으로 부하들을 동원했으니까.”

“당신이?”

예상과는 조금 다른 대답에 휴반트는 살짝 놀란 시선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유베린을 응시했다.

“꽤 오래전이오. 사막을 횡단하다 모래 폭풍이 심해 사막의 어느 마을에서 하룻밤을 쉬고 간 일이 있었소. 모래 폭풍은 밤새워 마을을 괴롭혔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을의 반은 모래에 파묻혔더군. 그곳에서 한 청년을 만났소. 뜨거운 사막의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철가면을 쓴 청년. 그는 누구에게 정식으로 검을 배워 본 적은 없는 듯했지만 이미 일정한 검의 경지에 올라 있더군. 하지만 더 큰 검의 세계로 가기에는 벅차 보였지.”

“다, 당신은!”

“그래서 그에게 약간의 가르침을 준 적이 있었소. 훗날 그가 어디까지 성장하나 기대감을 가지면서 말이요. 한데 그는 내 예상을 뛰어넘어 이렇게 강해져서 내 앞에 나타났구려, 휴반트.”

유베린은 여자 가면을 쓴 휴반트를 보며 웃지 않아 굳어진 양쪽의 입 근육을 어색하게 움직여 봤다.

오래전 사라진 미소가 마차 안에서 빛을 발했다.

“날 기억하겠소?”

“당신이었군요. 사막의 두건으로 얼굴을 온통 가려서 보고도 못 알아봤습니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휴반트는 진정으로 기뻐했다.

그가 유베린을 만난 건 고향을 떠나 사막 마을에서 홀로 살며 검과 씨름을 하던 때였다.

10년도 더 된 과거의 일로, 사막 지하에서 씨드와 고대의 검술을 얻기 전이다.

몇 시간에 불과한 가르침이었지만 휴반트는 그때를 기점으로 실력이 일취월장했고, 그것이 있었기에 난해한 고대의 검술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할 수 있었다.

“당신의 이름이 유베린이었군요.”

이름도 알려 주지 않고 훌쩍 떠나 버린 그를 이런 곳에서 만난 게 믿기지 않는지 휴반트의 목소리는 옅게 떨렸다.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사랑하는 연인인 에린이 죽는 날, 그의 부친도 집 안 침상에서 술을 마시는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다.

여기 이렇게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스쳐 가는 인연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휴반트의 감정은 남달랐다.

“왜 눈물을 흘리는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나오는군요.”

물끄러미 휴반트를 응시하던 유베린은 마차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차는 원형경기장 지하로 연결된 문을 막 통과하고 있었다.

한동안 원형경기장 지하로 달리던 마차는 철문이 가로막고 있는 넓은 공간에 이르러 멈춰 섰다.

“폐쇄된 감옥은 아니군요.”

철문 앞을 지키는 검은 복장의 사내들을 보며 휴반트가 말했다.

“백 년도 넘게 폐쇄돼 있던 감옥이 맞긴 하네. 다만, 최근에 죄수들이 생겼을 뿐이지. 문을 열어라.”

“예!”

굳게 닫힌 철문이 열렸고, 그 안으로 유베린과 휴반트가 들어갔다.

“자네가 겪은 일은 알고 있네. 멍청한 알레드로는 모비롱을 받아들여서는 안 됐어.”

유베린은 뒤를 돌아봤다.

그의 부하들이 축 늘어진 모비롱을 양쪽에서 부축해 따라오고 있었다.

“이곳을 마음껏 이용하게, 저자를 가둬 놓고 매일 고문을 해도 좋으니까 말이야.”

“저 때문에 샤르비티와 척을 지는 건 아닙니까? 제가 알레드로를 죽였는데 말입니다.”

“그는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으니 개의치 말게.”

끼이이익.

녹슨 철문이 열리며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났다.

“으으, 여기가 어디야?”

막 깨어난 모비롱을 유베린의 부하들이 감방 안으로 밀어 넣더니 그의 신체를 쇠사슬에 고정시켰다.

“휴반트! 거기 있나 휴반트! 제발 말로 하자고! 난 네 여자를 죽이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의 짓이야!”

복도에 서 있던 휴반트는 유베린의 부하들이 감방 안에서 나오자 홀로 걸어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지금부터는 이자와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부하들이 내 집을 알려 줄 걸세. 찾아오게.”

돌아선 유베린의 귓가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

비명소리를 들으며 어두운 복도를 걷던 그는 어느 감방 안을 들여다봤다.

쇠사슬에 몸이 고정된 청년이 보였다.

그는 대공의 아들 중 한 명이었다.

“한동안 지루하지 않을 게다.”

기름통

술에 취해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난 로니올은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창문 밖을 내려다봤다.

상인 포만드가 일단의 사내들을 데리고 정원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뭐냐?”

“남부 대륙에서 전쟁터를 누빈 용맹한 용병들입니다. 항구도시 하누쿠에 이들이 머물고 있단 소식을 듣고 제가 계약을 맺어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

숲에서 직속 부하들을 모두 잃고 허전해하던 로니올은 전장에서 살아온 수십 명의 용병들을 빠르게 훑었다.

갖가지 무기로 몸을 장식한 저들의 모습이 어딘지 우스워 보였다.

“실력을 보고 싶은데.”

로니올의 말에 포만드는 얼굴에 흉터가 가득한 용병대장에게 눈짓을 했다.

순식간에 자리를 잡은 용병들은 여러 진형을 이루며 집단전을 선보였고, 얼마 뒤에는 두 명씩 짝을 이뤄 실전처럼 싸웠다.

노련함이 묻어나는 그들의 싸움 방식을 위에서 내려다보던 로니올은 뒤에 서 있는 도현에게 슬며시 물었다.

“로이, 당신이 보기에 어떤가? 그런대로 쓸 만한 것 같지 않나?”

“그것은 제가 답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전 그저 악마 사냥꾼으로서 로니올 님의 주변에 있는 것뿐이니까요.”

“그래도 한마디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난 당신을 내 왼팔로 생각한다고.”

그의 넉살에 도현은 못 이기는 척 답했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들으나 마나 한 대답이군.”

그는 투덜거리며 아래를 향해 손짓했다.

“그만!”

그의 지시에 정원을 엉망으로 만들며 실력을 선보이던 용병들이 무기를 거두며 대열을 갖췄다.

“너희들은 앞으로 날 목숨으로 지켜야 한다! 내게 충성을 보이면 너희들의 앞날은 내가 보장하겠다!”

3층 창문에 서서 웅변하듯 소리치는 로니올을 향해 용병들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힘주어 대답했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포만드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하다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마음에 안 들어.’

이유가 뭐든 로니올이 저자를 가까이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자가 온 후로 로니올은 그의 도박장과 술집에 발길을 끊었고, 자연스레 그와의 관계가 멀어졌다.

‘그래선 안 되지. 로니올, 내가 네놈에게 투자한 황금이 얼마인데.’

로니올이 베일성에 머문 지난 몇 달간 그는 여자며 술이며 금화며 힘이 닿는 만큼 바쳐 왔다.

손해를 볼 순 없었다.

로니올이 창가에서 사라지자 포만드는 용병대장에게 귓속말을 했다.

“로니올 님의 옆에 서 있던 놈의 얼굴을 잘 봤겠지?”

“물론이오.”

“내가 말한 자가 저자네. 잘할 수 있겠지?”

“걱정 마시오, 계약 맺은 대로 저자를 죽여 줄 테니까.”

용병대장은 누런 이를 보이며 차갑게 미소를 지었다.

“믿겠네.”

포만드는 그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로니올이 커다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그 근처에 도현이 무심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도현을 힐끔 쳐다본 포만드는 로니올에게 말했다.

“저들이 마음에 드십니까?”

“뭐,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더군. 하지만 역시 아버지의 친위대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가 나.”

“그들과 굳이 비교한다면야 그렇지만…… 뛰어난 자들입니다. 믿고 부려 보십시오.”

“나도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에 갈 듯한데, 저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

로니올이 뒷머리를 욕조에 기대며 편안한 자세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잘됐군. 수고했다. 너의 충성심은 잊지 않겠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해 봐.”

포만드는 뒤에서 지켜보는 도현이 의식됐는지 헛기침을 한번 했다.

“둘이서만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웃기지 말고 그냥 얘기해. 로이는 날 지키는 자다.”

무안을 당한 포만드는 민망했는지 목에 건 금목걸이를 괜히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끌었다.

“뭐 해, 말하지 않고.”

로니올의 재촉에 포만드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뗐다.

“이번 기념식에 알믄을 비롯한 상단의 주인들이 모두 참석한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렇다고 하더군. 그들이 돈을 모아 광장의 제단을 만들었으니까. 아버지가 그 점을 배려해 제단 한쪽에 그들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들었어. 한데, 왜?”

“제 자리가 없습니다.”

“제단을 만드는 데 돈을 내지 않았나?”

“물론 충분히 기부를 했습니다만 대상인 압할라의 아들 알믄이 제 자리를 없앴습니다.”

도현은 압할라의 아들 알믄이 거론되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얘기를 귀담아들었다.

“이유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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