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498화 (498/575)

[498] 디 임팩트 20권 23화

“그는 저를 뒷골목 포주 정도로 취급합니다. 상인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아비의 후광을 등에 업고 대상단의 주인이 된 자가 속이 이리 좁으니 차후에 어찌 베일 가문이 그자를 신뢰하고 거래를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벌써부터 작은 상단의 주인들이 그에 대한 불평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너무 오만하다고 말입니다.”

“빌어먹을 자식이군, 감히 할아버지 기념식장에 입김을 불어 넣다니. 알았어, 내가 기념식을 준비하는 관리에게 말을 해 두겠다, 네 자리를 마련해 두라고.”

“감사합니다, 로니올 님.”

욕조에서 일어난 로니올은 물기를 닦아 내고 옷을 갈아입었다.

“뭐 더 할 말이 있나?”

“새벽에 벌어진 사건과 관련해서 드릴 정보가 있습니다.”

“새벽에 벌어진 사건이라니? 무슨 일이 있었나?”

로니올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포만드를 쳐다봤다.

그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해가 높이 뜬 지금에서야 일어나서 집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했다.

바깥출입을 안 한 도현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아! 아직 모르시겠군요. 알레드로 경이 새벽에 죽었습니다.”

“숙부가 죽었다고?”

깜짝 놀란 로니올이 포만드 앞으로 걸어갔고, 관심 없는 척 서 있던 도현도 속으로 놀랐다. 알레드로는 제거 대상으로 찍힌 샤르비티의 사촌들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왜?”

“도시에 퍼진 소문으로는 샤르비티 님이 보낸 친위대에 반항을 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친위대가 그를 죽였다고?”

“예. 알레드로 경이 헤브론의 금광에서 금을 빼돌렸다고 합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자 샤르비티 님이 도시에 들어온 알레드로 경에게 친위대를 보냈는데, 부하들을 방패 삼아 반항하다가 친위대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숙부가 죽은 사실을 전해 들은 로니올은 크게 기뻐하며 웃어 댔다.

“거참, 잘됐군. 어차피 살아 있어 봐야 내 앞에 걸림돌만 될 자들이 숙부들 아닌가! 하하하!”

“한데, 저는 소문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포만드의 은밀한 목소리에 로니올은 웃음을 거두며 그를 응시했다.

“다른 이야기?”

“그렇습니다. 뒷골목에 흘러 들어온 확인되지 않은 정보이긴 하지만, 샤르비티 님의 친위대가 알레드로의 집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그의 집은 파괴되고 병사들도 큰 피해를 당했었다고 합니다.”

“친위대가 손을 쓴 게 아니란 뜻이냐? 그럼 누구 짓인데?”

“범인은 한 명으로, 아름다운 여자 얼굴이 그려진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 합니다.”

가면.

도현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어젯밤에 짐브리오가 그를 찾아와 철가면 휴반트가 이 도시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을 전하고 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새벽에 큰일을 저지른 범인이 가면을 쓰고 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여자 가면은 또 뭐지? 에드가 다리 위에서 봤다는 존재는 여자 가면을 쓴 자가 아니었는데.’

가면이야 얼마든지 바꿔 쓸 수 있는 문제긴 했지만 어색한 일인 건 사실이었다.

“알레드로 숙부는 자신의 호위대가 강하다고 자랑하고 다녔는데, 여자 가면을 쓴 자가 혼자서 그 짓을 했다고? 솔직히 믿어지지 않는데.”

로니올은 포만드가 가지고 온 정보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범인이 따로 있다면 구태여 아버지의 친위대가 움직여 거짓 소문을 만들어 낼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뒷골목 정보가 다 맞는 건 아니잖아?”

“물론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뒷골목 이야기일 뿐, 필요하신 만큼만 선택해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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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올은 기념식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가기 전에 알레드로의 집을 방문했다.

친위대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수십 명의 도시 수비대 병사들만 파괴된 집 주변을 형식적으로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샤르비티의 아들을 알아본 병사들은 그를 감히 제지하지 못하고 길을 터 줬다.

또각또각.

말을 탄 도현은 로니올과 함께 부서진 정문을 통해 집 내부로 들어갔다.

시신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곳곳에 핏자국이 널려 있어 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정원을 지나치던 도현은 땅이 수 미터 깊이로 파헤쳐지고 땅속 흙과 돌 들이 멀리 담장까지 날아간 사실을 확인했다.

‘분노해 있었군. 필요 이상으로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

말에서 내린 도현은 정원에 새겨진 검의 흔적을 살펴보며 어쩌면 이 일이 원한에 의해서 벌어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주 집이 엉망이 됐군.”

숙부의 죽음에 호기심이 생겨 찾아온 로니올은 철저히 파괴돼 주저앉은 웅장했던 집을 보며 혀를 찼다.

“내가 말이야, 원래 이 집에 살려고 했는데 숙부가 먼저 차지해 버린 거야. 젠장, 그래서 여기보다 작은 지금의 집으로 내 거처를 정한 거야. 잘 죽었다, 퉤!”

그의 행동에서 품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도현은 파괴된 구조물 사이를 돌아다니며 검의 흔적을 계속 확인해 갔다.

그러던 끝에 그는 돌기둥에 남은 특징적인 검의 흔적을 하나 발견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휴반트, 그가 여기에 다녀갔어.’

만진 돌기둥의 일부분이 먼지처럼 부서져 내렸다. 돌기둥엔 도현이 휴반트와 싸울 때 경험한 그의 검술이 배어 있었다.

‘수십 개의 검기가 엄청난 압력으로 이 집을 순간적으로 강타했을 거야. 화염이 일어나고 구조물은 검기의 힘을 견디지 못해 붕괴됐겠지.’

도현은 숙였던 허리를 펴며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왜 여기서 자신의 분노를 터트린 걸까?’

휴반트의 실력을 알고 있는 도현은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이런 형식적인 파괴를 보일 필요 없이 얼마든지 사람들을 해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가 그의 냉정을 흐트러트린 것 같았다.

‘그의 행동을 샤르비티가 친위대를 동원해 일부러 가려 주고 있다. 그동안 붉은 성의 전장에서 안 보인다 했는데, 그는 샤르비티 곁에 와 있었던 걸까?’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만 가자고, 관청에 가서 관리 놈을 혼내 줘야 하니까. 감히 내가 밀어주는 포만드를 물 먹이려 하다니.”

로니올의 말에 상념에서 깬 도현은 말에 올라탔다.

‘오늘 밤에 동료들을 만나야겠어.’

그동안 그는 짐브리오를 통해 서로 간의 정보를 교환해 오며 암살 작전을 진행시켜 왔다.

하지만 알레드로가 죽고 휴반트가 나타났다. 동료들과 모여 의논을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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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올의 일상은 술과 여자를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도현이 술을 줄이라고 해서 잠깐 줄이는 시늉을 했지만 그는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술과 여자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오늘 숙부 한 명이 죽었으니, 이제 나머지 열두 명만 죽으면 되겠군, 하하하!”

악사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여자가 따라 주는 술을 마시던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도현의 행동에 움찔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로이, 무섭게 왜 정색을 하고 그래?”

도현의 등장에 악사는 슬며시 연주를 멈추었고, 로니올의 품에서 교태를 부리던 여자도 몸을 바로 했다.

그들에게 도현은 움직이는 얼음덩어리나 마찬가지여서 괜히 눈이라도 잘못 마주치면 화를 당할 것 같았다.

“외출을 할 생각입니다. 내일 낮에나 돌아올 것 같습니다.”

“아니, 날 놔두고 어딜 간다는 거야?”

깜짝 놀란 로니올이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설마 이대로 떠나려고?”

“오랫동안 수련을 하지 못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몸과 마음을 닦고 내일 낮까지 돌아오겠습니다.”

“그동안 나는 누가 지켜 주고?”

“포만드가 보낸 용병들이 있잖습니까.”

“오늘 들어온 녀석들을 내가 어찌 믿을까. 그냥 집에서 수련을 하면 안 되나?”

도현은 저벅저벅 걸어가 술상이 차려진 탁자를 검으로 반 토막 내 버렸다.

날카로운 빛이 흐르는 검을 들고 돌아선 도현은 로니올에게 한 자 한 자 끊어 말했다.

“별장에서 제가 말씀드렸을 겁니다. 저는 수련을 해야 한다고.”

“그, 그거야 그렇지만.”

“오늘은 술을 그만 드시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십시오. 그리하면 큰일은 없을 겁니다.”

서슬 퍼런 도현의 눈빛에 로니올은 들고 있던 술잔을 여자에게 건넸다.

“모두들 나가, 술자리는 여기서 끝낸다.”

도현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아쉬운 건 그였다.

“꼭 돌아오겠지?”

“물론입니다.”

검을 검집에 넣은 도현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뒤돌아섰다.

복도로 나오자 용병대장이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그를 스쳐 계단을 내려가던 도현은 무슨 생각인지 다시 돌아와 용병대장에게 말했다.

“누가 내 침대에 이런 걸 올려놨던데. 이것에 대해 뭐 아는 거라도 있소?”

도현은 압정처럼 생긴 독이 묻은 못을 몇 개 보여 줬다. 그가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면 못에 찔렸을 것이다.

“모르겠습니다, 나도. 누가 그딴 짓을 했지?”

“시녀 중 한 명이 내 방에서 나오는 당신 부하를 본 것 같다고 하던데.”

“큰일 날 소리 하지 마시오. 감히 샤르비티 님의 아들이 계시는 이곳에서 우리가 그런 미친 짓을 할 것 같소?”

용병대장은 걸걸한 목소리로 터무니없다는 듯 말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소. 시녀가 잘못 본 거라고 말이오.”

도현은 말을 하며 양 손바닥으로 독이 묻은 못을 비벼서 모래처럼 만들어 버렸다.

그 놀라운 광경에 용병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내일 낮에 돌아올 테니 그동안 경계를 게을리하지 마시오. 내 방에 침입자가 들어올 정도면 당신 부하들이 집 안의 경비를 어설프게 서고 있다는 증거니까.”

“알았소, 주의하리다.”

도현은 손에 든 못의 잔해를 벽에 뿌렸다. 불꽃이 일어나며 돌로 된 벽이 까맣게 변해 버렸다.

‘포만드가 시킨 일이겠지.’

도현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포만드의 눈빛을 잊지 않고 있었다.

“대장, 저놈 괴물 아니오? 내가 설치한 독 암기를 맨손으로 가루처럼 만들다니.”

도현이 멀어지자 근처에 서 있던 키 작은 자가 다가와 새카맣게 탄 벽을 보며 놀라워했다.

“병신 같은 새끼, 시녀에게 들키기나 하고 말이야.”

용병대장은 낮은 목소리로 욕을 하며 독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부하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죄송합니다, 대장.”

“어설프게 작업했다가 놈의 경각심만 일으켰잖아.”

“이제 어쩌죠, 놈이 우릴 의심하는 것 같은데? 포기할까요?”

부하의 말에 용병대장은 커다란 손으로 그의 뺨을 후려쳤다.

“닥쳐, 이 자식아! 누가 포기해,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놈이 아무리 강해도 잠을 잘 때는 빈틈이 보일 거야. 그때 조용히 끝을 낸다.”

고집스러운 용병대장의 말에 뺨을 맞은 키 작은 용병은 끽소리도 못 냈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하는 거냐?”

복도 밖으로 나온 로니올이 검을 뽑아 들고 그들을 가리켰다. 그는 도현이 없어 불안했는지 벗어 뒀던 갑주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로니올 님을 잘 지킬 수 있는지 부하 녀석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흠,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는 놈들이구나.”

두 사람을 가볍게 훑어본 로니올은 방 안으로 돌아와 의자에 걸터앉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약해졌지?”

그는 방 안에서 완전무장한 채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에이! 젠장!”

갑옷을 벗어 던진 그는 검을 옆에 내려놓고 술병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러다 큰 바람이 불어 창문이 덜컥거리자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벗어 놓은 갑옷과 검을 챙겼고, 심지어 투구까지 머리에 썼다.

‘혹시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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