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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03화 (503/575)

[503] 디 임팩트 21권 3화

“송구하오나 전 이 정보를 팔기 위해 왔습니다.”

“몇 년 전엔 허리를 숙이며 배를 팔라고 간청하던 자가 오늘은 내 목숨을 거론하며 흥정을 하러 왔군. 죽고 싶은 게냐!”

마리지스가 호통을 치자 선실의 공기가 차가워졌고, 뒤에 늘어서 있던 호위 무사들은 포만드의 어깨를 양쪽에서 잡아 아래로 내리눌렀다.

대번에 무릎이 꿇려진 포만드는 다급히 소리쳤다.

“어찌 들어 보지도 않고 이리 막 대하시는 겁니까?”

“넌 내 목숨이 흥정의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냐? 그것도 하찮은 네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기대라고?”

“제 입에 영주님의 목숨뿐만 아니라 옆에 계신 보게슨 님의 생명 또한 걸려 있습니다.”

뜻밖의 말에 마리지스와 보게슨의 시선이 마주쳤다.

“풀어 줘라.”

“예!”

호위 무사들은 포만드의 곁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몸이 자유로워진 포만드는 어깨를 주무르며 선실 바닥에서 일어섰다.

“무엇을 원하느냐?”

“성안에 있는 한 사람을 죽여 주십시오. 제가 원하는 건 그뿐입니다. 약속해 주신다면 제가 알고 있는 바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마 두 분은 제게 이 정보를 듣는 순간, 놀라실 게 틀림없습니다.”

“한 사람을 죽여 달라……. 설마 내성 안에 있는 그는 아니겠지?”

마리지스는 샤르비티를 순간 떠올리며 물었다.

“그건 영주님의 능력 밖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쁘군. 그럼 누구냐?”

잠시 뜸을 들이던 포만드는 은밀한 눈빛으로 답했다.

“대상인 압할라의 아들 알믄입니다.”

“알믄?”

마리지스의 미간에 주름이 몇 개 생겼다.

죽은 압할라의 뒤를 이은 알믄은 대상단의 주인으로 일개 상인으로 치부할 대상이 아니었다.

샤르비티와 가까운 관계였고, 더 나아가 그의 집안은 대륙에서 힘깨나 쓰는 대상인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를 죽였다간 그가 통치하는 남부 베일의 항구도시에 어떤 위험이 찾아올지 몰랐다.

물론, 알믄을 죽인 게 그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는 전제하였지만.

아무튼 대상인이 된 알믄을 손대는 건 영주인 그라도 꺼려지는 일이었다.

“알믄을 죽여야 할 만큼 네가 가지고 온 정보가 가치가 있는가?”

마리지스의 목소리는 바닥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물론입니다. 알믄이 대단하다 하여도 두 분의 목숨과 비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 봐.”

기다리기 지쳤는지 보게슨이 들고 있던 고기의 뼈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포만드를 노려봤다.

곰 한 마리가 눈앞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 포만드는 보게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노예 소년에게 들었던 정보를 토해 냈다.

“뭐라! 샤르비티가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마리지스와 보게슨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거의 동시에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정보는 누구를 통해 얻은 것이냐!”

“알믄과 도시 수비대장이 밀담을 나누는 것을 그 집안의 노예 소년이 엿들은 것입니다.”

“이런 개 같은!”

보게슨의 눈에서 불길이 솟아났다.

포만드의 입에서 나온 정보의 핵심은 샤르비티가 기념일에 맞춰 도시에 들어온 사촌들을 기념일 마지막 날 제단이 있는 광장에서 제거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분노하는 보게슨을 진정시킨 마리지스는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포만드에게 물었다.

“네 말을 뒷받침할 증거는 있느냐?”

“어찌 증거가 있겠습니까, 그들끼리 나눈 대화가 전부인 것을. 하지만 알믄과 도시 수비대장이 그러한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은 분명하고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밀담을 엿들었다는 그 소년은 어디에 있느냐?”

“겁에 질려 있어서 돈을 주고 멀리 보냈습니다. 그 소년은 충분히 자기 역할을 했으니까요. 알믄의 집에 사람을 보내 조사해 보십시오. 그날 도시 수비대장이 왔고, 또 집안에 노예 소년 한 명이 사라진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음.”

마리지스와 보게슨은 의자에 앉아 침묵을 지켰다.

포만드가 가지고 온 정보는 그들의 정신을 송두리째 마비시킬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배신.

대공을 배신한 샤르비티가 사촌들을 배신하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었다.

마음 한편에 그런 두려움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알레드로의 죽음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그는 성안에서 샤르비티의 음모를 눈치챈 거야. 그것이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이고. 망할 자식!”

보게슨은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 한 번에 비우고는 포만드를 응시했다.

“이 사실을 다른 자들에게도 팔고 다녔나?”

“천만에요. 제 입에서 이 정보를 듣는 건, 두 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입니다.”

“다른 사촌들을 놔두고 왜 내게 온 것이지?”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한 마리지스가 술을 따르며 물었다.

“저와 거래를 하고 약속을 이행할 분은 사촌들 중, 영주님이 가장 유력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푸훗! 내가?”

마리지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띠며 선실의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비가 멈춘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가깝게 보였다.

“욕심이 때론 독이 되어 돌아오는군.”

남부 베일의 작은 항구도시의 통치자 마리지스에겐 꿈이 있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섬 같은 거대한 배를 만들어 바다를 항해하며 사는 것이다.

지금 타고 있는 마리지스호도 상당히 큰 배였지만 이런 배를 여러 척 합해야 할 만큼 거대한 배.

수천 명이 생활할 수 있는 움직이는 도시 같은 배.

그 꿈을 위해선 막대한 자금과 배를 건조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그가 통치하는 작은 항구도시에선 그런 큰 배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끝났군.’

밤하늘에 그리던 그의 거대한 배는 산산조각이 나 어두운 강 속으로 처박혔다.

“포만드, 넌 붉은 성의 대공 편인가?”

“아닙니다, 전 샤르비티 님의 편입니다.”

“한데,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지?”

“그저 알믄이 얄미워서입니다. 그에게 호된 맛을 보여 주고 싶어서요.”

잠시 어두운 강을 바라보던 마리지스가 낮게 말했다.

“알겠다. 돌아가거라.”

“그럼 약속을 지켜 주시리라 믿고 그만 가 보겠습니다.”

포만드가 탄 배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갑판 위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마리지스는 천천히 몸을 돌려 보게슨에게 다가갔다.

“그만 떠나는 게 좋겠습니다.”

“도망치잔 말인가?”

“힘으로는 샤르비티를 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로 간단 말인가? 이대로 간다면 우린 양쪽에서 공격받을 처지가 돼. 붉은 성의 대공과 샤르비티 양쪽 말일세.”

보게슨의 격앙된 목소리 속엔 그의 영지를 걱정하는 염려가 가득했다.

“영지는…… 버려야 될 겁니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말입니다.”

“자넨 그 말이 쉽게 나오나? 사촌들을 만나 힘을 규합해 보세. 비록 파벌로 갈려 있는 처지지만 그들도 목숨이 달려 있기 때문에 힘을 합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야.”

“안타깝지만 적어도 서너 명은 우리 말을 듣고 오히려 샤르비티에게 달려갈 겁니다. 힘을 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무거운 눈빛으로 말을 한 마리지스는 몸을 돌리다가 우뚝 섰다.

보게슨이 그의 팔을 붙잡은 것이다.

“난 이대로 떠날 수 없네. 샤르비티에게 권력만 쥐여 주고 이대로 떠날 수가 없다고!”

“어쩌시려고요?”

“붉은 성의 대공에게 가겠네! 다시 그의 편이 되어 싸우겠어!”

마리지스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공은 우리를 받아 주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몸을 결박해 끓는 기름에 넣어 고통스럽게 죽게 하겠지요. 대공은 예전부터 공과에 따른 판단이 냉혹하리만치 확실하지 않았습니까?”

“선물을 가지고 가면 그의 마음을 조금은 돌릴 수 있을 거야. 게다가 그는 병력에 있어 샤르비티에게 열세이니, 전혀 가능성 없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보게슨은 영지를 포기해 도망자 신세로 대륙을 떠돌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선물이라면?”

“알믄, 포만드가 원하던 대로 그를 죽여 그 수급을 챙겨 가세 . 알믄은 죽은 압할라의 아들이지 않나? 압할라 때문에 대공의 자식들이 잡혔으니, 그 원한이 적지 않을 터. 압할라의 죽음만으론 분명 화가 풀리지 않았을 거야.”

“알믄의 목이라…….”

곰곰이 생각해 보던 마리지스는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약합니다. 만약 대공에게 가려면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런가? 답답하군.”

보게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알믄의 목보다 백 배는 가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가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마리지스의 말에 보게슨은 급히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잡혀 있는 대공의 자식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샤르비티의 친위대장인 유베린이 숨겨 두지 않았나?”

이들은 외부에 알려진 감옥에 대공의 자식들이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엔 함정만 설치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도.

샤르비티의 사촌들조차도 그들이 어디에 갇혀 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마리지스는 멀리 도시가 있는 방향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전에 원형경기장에서 수백 명의 하급 관리들을 참수했습니다. 그때 알레드로가 그 일을 지휘했는데, 이상한 말을 해 주더군요. 폐쇄된 원형경기장의 지하 감옥에 친위대가 보인다고. 과연 친위대가 그곳에서 무엇을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요?”

“그럼 그곳이!”

“아마 그곳에 있을 겁니다.”

“고맙네. 자넨 자네 갈 길을 가게. 난 성안에 있는 내 부하들을 이끌고 그곳을 습격해 대공의 자식들을 구출해 내겠네.”

거대한 도르래가 작은 배를 강 위에 올려놨다.

마리지스호에서 작은 배로 옮겨 탄 보게슨을 말없이 내려다보던 마리지스가 높은 배에서 뛰어내렸다.

쿵!

바람에 옷자락을 펄럭이며 보게슨이 탄 배에 도착한 그는 강렬한 기세로 말했다.

“함께 가시죠.”

지하 감옥

“대장, 녀석이 잠이 든 것 같습니다.”

도현의 방을 엿보고 온 부하의 보고에 용병대장은 신중한 얼굴로 손짓을 했다.

“놈의 방에 브차 향을 피워 넣어라.”

남부 대륙에서 자라는 브차 나무의 껍질은 심신을 편안하게 해서 숙면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는 성분이 들어 있었다.

용병대장은 잠이 든 도현이 작은 소리에도 깨지 않도록 브차 나무를 이용하려 했다.

독 암기를 맨손으로 모래처럼 만들어 버리는 그의 능력은 용병대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물러나지 않고 되레 부하들을 선동해 끝까지 도현을 죽이려 했다.

“우리가 누구냐! 한번 한다면 끝까지 가는 용병대가 아니냐!”

방 안에 모인 부하들을 둘러보며 얼굴에 흉터 가득한 용병대장이 외쳤다.

“맞습니다! 그자를 죽입시다!”

전장을 같이 헤쳐 온 부하들은 손안에 무기를 흔들며 전의를 불태웠다.

“저어, 그런데 대장, 로니올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괜찮을까요? 그자를 무척 의지하는 것 같던데.”

독 암기를 도현의 침상에 뿌렸다가 본전도 찾지 못했던 사내가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로이는 호위 무사일 뿐이다. 우리도 호위 무사로 여기에 들어온 거야. 그자를 죽여 우리가 강하다는 게 증명되면 로니올은 그를 신뢰하던 시선을 우리에게 보낼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포만드에게 거금도 받을 수 있다.”

“대장 말대로 되면 좋겠지만…… 아무튼 불안합니다. 독 암기를 그렇게 쉽게 부수는 자는 여태껏 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는 은연중 이 일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자 전의를 불태우던 용병들의 눈빛이 흔들렸다.

“일어나.”

“예?”

“일어나!”

용병대장의 싸늘한 눈빛에 독 암기를 다루는 사내는 슬며시 독 암기를 손에 쥐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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