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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임팩트-504화 (504/575)

[504] 디 임팩트 21권 4화

여차하면 독 암기를 뿌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손에 든 독 암기를 뿌릴 수가 없었다. 용병대장의 검이 그의 목을 순식간에 꿰뚫어 버렸기 때문이다.

“너 같은 놈은 내 용병대에 있을 자격이 없다, 퉤!”

죽어 가는 부하의 얼굴에 침을 내뱉은 그는 피가 묻은 검을 들고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너! 사형수로 감옥에 있던 널 구한 사람이 누구지?”

지목을 받은 대머리 용병이 누런 이를 드러냈다.

“대장입니다.”

“그래! 바로 나다! 이 녀석뿐만 아니라 방 안의 너희들은 모두 내가 도움을 주고 지금까지 내 용병대에서 먹고 마시고 인생을 즐기게 도와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작은 불안함에 나를 배신하려고 해! 그게 사내인가!”

“아니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거다!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것! 이게 우리 용병들의 숙명이야!”

“맞소!”

용병대장의 거친 웅변이 용병들의 마음을 거세게 불태웠다.

“가자!”

용병대장을 따라 수십 명의 용병들이 정원을 가로질러 이동했다.

저택의 외곽 경비는 도시 수비대 병사들이 맡고 있었고, 내부는 호위대로 들어온 이들이 맡고 있어서 이들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경비들은 용병대장의 부하들로 그들도 정원을 이동하는 무리에 합류했다.

“사다리!”

용병대장의 은밀한 지시에 목재 사다리 두 개가 도현의 방이 위치한 3층 창가에 걸쳐졌다.

“녀석의 방 안에 모두 진입한 후에 한꺼번에 석궁을 쏘며 놈을 공격한다. 브차 향 때문에 깊이 잠들었겠지만, 방 안에 진입할 때 소리 내지 않도록 주의하고.”

“알겠습니다, 대장.”

용병들은 숙련된 동작으로 사다리를 이용해 높은 곳에 위치한 도현의 방 안으로 은밀하면서도 빠르게 들어갔다.

방 안은 복도와 연결된 문틈 밑에서 들어온 브차 향으로 인해 흰 연기가 자욱했다.

물에 젖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수십의 용병들은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도현의 침대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등불 몇 개가 어둠을 불사르며 도현의 방을 은은히 밝히고 있었다.

반원 형태로 침상을 포위하듯 다가선 그들은 긴장 가득한 눈빛으로 침상에 누워 있는 도현을 노려봤다.

도현은 미동도 없이 낮게 코를 골며 잠이 든 모습이었다.

‘놈, 이제 끝이다.’

용병대장은 두건 속에서 미소를 지으며 부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그 순간 수십여 명의 용병들이 일제히 석궁을 쐈다. 철판 갑옷도 뚫어 버릴 수 있는 강력한 위력의 석궁이었다.

잠이 든 도현에게는 치명적인 한 수였고, 용병들은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도현의 몸에서 피가 튀어 오르길 기다리던 용병대장과 용병들은 놀라운 광경에 몸이 굳어졌다.

날아가던 화살들이 도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푸르스름한 반투명한 막에 가로막혀 불꽃을 만들며 튕겨져 나갔기 때문이다.

“많이도 몰려왔군.”

침대를 내려온 도현은 그들 앞에 섰다.

“넌 마법사구나!”

도현이 마법을 펼쳤다고 생각한 용병대장이 검을 뽑으며 박력 있게 외쳤다.

“공격해! 어차피 이리된 거 정면 승부다!”

용병들은 작은 방패로 몸을 보호하며 일정한 진형을 이루고 접근해 왔다.

그리 넓지 않은 방에 수십 명이 대형을 이루며 다가오자 그 위압감이 상당했다.

“후우, 후우.”

투구에 뚫린 구멍 사이로 그들의 숨소리가 거칠게 퍼져 갔다. 상대는 화살도 통하지 않는 강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겁은 먹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눈 속엔 끝을 보겠다는 독기가 철철 넘쳐흘렀다. 위험한 전쟁터에서 단련된 용맹함이었다.

“죽이자!”

“우와와와!”

세 명씩 짝을 이룬 용병들이 짐승 같은 함성을 지르며 도현을 매섭게 공격했다.

“기회를 줬는데, 안타깝군.”

도현은 검을 뽑을 생각도 없었다.

상대가 양쪽에서 검을 찔러 오자 그는 부드러운 팔 동작으로 검신의 옆면을 연속으로 때려 중심을 흩뜨려 놓은 뒤, 벼락처럼 빠른 발길질을 날렸다.

쾅! 쾅!

격한 폭발음과 함께 철판을 붙인 작은 방패들이 산산조각 났고 방패로 몸을 보호하던 용병들은 우수수 벽으로 날아갔다.

쿠웅! 쿵쿵쿵!

벽이 들어갈 만큼 세차게 처박힌 용병들은 온몸의 뼈가 부서지는 충격 속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죽어라!”

이를 갈며 도현을 뒤에서 창으로 찌르던 자는 도현의 손날에 창대가 반으로 부러지자 소스라치게 놀라다 도현의 주먹에 갑옷이 박살 난 채 침대로 날아갔다.

“그건 던지면 곤란해.”

뒤쪽에서 폭발성이 있는 기름병을 던지려는 용병에게 도현은 창날을 번개처럼 집어 던졌다.

“크윽!”

복부에 창날이 박힌 용병은 기름병을 든 상태로 도현을 노려보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기름병에 붙은 심지의 불은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에 젖어 꺼졌고, 그사이 도현은 그를 향해 싸움을 걸어오는 용병들을 다가오는 족족 쓰러트렸다.

이때 기회를 엿보던 육중한 체격의 용병이 가죽 가방에 넣고 다니던 물건을 기습적으로 도현에게 던졌다.

쇠줄로 제작된 그물망이었는데, 일단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은 물건이었다.

단단하기도 하고 고무처럼 신축성도 있어 검으로도 잘 잘리지 않는 특수한 물건이다.

“됐다!”

기습적으로 날린 쇠 그물망이 도현의 전신을 휘감자 용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도현은 쇠 그물망 곳곳에 묻어 있는, 칙칙하게 굳어 있는 오래된 피의 흔적을 표정 없이 바라보다가 대력금강수를 펼쳐 쇠 그물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

그 모습에 용병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마, 말도 안 돼!”

쇠 그물망을 사용했던 거한 앞에 도현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꽝!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거한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창문을 뚫고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으아아아!”

3층에서 떨어지는 용병의 비명 소리가 방 안의 용병들의 가슴을 일순 서늘하게 만들었다.

“뭐 하고 있어! 계속 공격해!”

용병대장은 부하들을 독려하며 스스로 몸을 던져 도현을 공격했다.

어려서부터 정식으로 검을 배워 검술이 상당한 그는 수십 년간 갈고닦은 그만의 빠른 쾌검술로 도현의 목과 배를 동시에 노렸다.

쉬쉬쉬쉭.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며 그의 검이 도현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상하다. 왜 내 검이 저 녀석의 몸 주변에서만 맴돌고 있는 거지?’

시간이 매우 느리게 가는 착각 속에서 그는 자신의 검이 도현의 주변에만 머물러 있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제발 내 검에 하나라도 맞아라!’

하지만 여전히 상대방은 그의 검 속을 유유히 걸어 다니며 남은 그의 부하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젠장!’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여 명의 부하들이 피투성이로 변했다.

멀쩡하게 살아남은 건 그밖에 없었다.

“이제 그만하지.”

도현의 주먹이 용병대장의 얼굴에 작렬했다.

투구가 획 돌아갈 정도로 충격을 받은 그는 이가 몇 개 부러진 상태로 서랍장에 처박혔다.

“누가 시켰지?”

“흐흐흐.”

용병대장은 부러진 이를 뱉어 내며 웃기만 할 뿐 누가 시켰는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포만드인가?”

“알면서 왜 물어보는 것이냐? 어서 날 죽여라!”

“널 죽이는 건 내가 아니다.”

도현은 말을 하며 뒤를 돌아봤다.

로니올이 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잠결에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놀라 검을 챙겨 복도에 나왔다가 도현의 방까지 온 것이다.

그는 싸움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도현이 용병대장을 제압한 후에야 들어왔다.

싸늘한 시선으로 엉망이 된 도현의 방 내부를 둘러보던 로니올은 중상을 입은 한 용병이 그의 발목을 붙잡자 눈썹을 위로 올리며 검을 내리쳤다.

“커헉!”

용병의 목을 잘라 버린 로니올은 시체를 넘어 도현에게 다가갔다.

“이 미친놈들이 왜 이 짓을 한 것이지?”

“포만드가 시킨 일입니다.”

로니올은 벽에 기대 헐떡거리는 용병대장의 목에 검을 들이 댔다.

“로이의 말이 사실이냐?”

“…….”

“대답을 해!”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로니올 님을 호위하는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포만드는 한 가지를 더 요구했습니다.”

용병대장은 도현에게 시선을 두며 말을 이었다.

“그는 저자의 목숨을 원했습니다.”

“포만드 이 자식이 감히 날 농락하다니!”

화가 난 로니올의 검이 부르르 떨렸다.

“절 죽여도 좋으나, 제 부하들에겐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용병대의 책임자인 제가 이 모든 일을 계약한 당사자이니까 말입니다.”

“이 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로니올의 검이 간청하던 용병대장의 목에 서서히 박혀 들어갔다.

“내가 너희들을 한 놈이라도 살려 둘 것 같나, 응? 피곤해 죽겠는데, 너희들 때문에 잠에서 깼잖아!”

서걱.

용병대장의 목을 베어 버린 그는 피 묻은 검을 들고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 버려!”

“예!”

복도에서 대기 중이던 도시 수비대 병사들이 방 안으로 들어와 긴 창으로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용병들을 참혹하게 찔러 죽였다.

이들은 본래 집 외곽을 지키고 있다가 집 안의 소란을 접하고 달려온 것이다.

복도로 나온 로니올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집 안의 일꾼에게 외쳤다.

“말을 대령해라!”

도현은 한밤에 외출 준비를 하는 로니올에게 물었다.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포만드에게. 날 기만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로이도 같이 가자고. 원한다면 포만드, 그 녀석의 목을 직접 칠 수 있게 허락할 테니까.”

“곧 기념일인데, 일을 크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까?”

도현은 이대로 조용히 기념일을 기다리고 싶었다.

“포만드의 일은 기념일이 끝난 뒤에 처리하시죠.”

“화도 안 나나? 당신 목숨을 그가 노렸는데 말이야?”

“전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 당신은 용서가 될지 몰라도, 난 용서가 안 돼. 하찮은 상인 놈이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려고 해?”

“제가 물건이라는 뜻입니까?”

도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아, 로이 당신이 물건이라는 게 아니고,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지금 당신은 나와 함께 있으니까 말이야.”

말을 얼버무린 그는 말을 타고 포만드의 집으로 향했다.

어쩔 수 없이 도현도 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포만드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지는군.’

* * *

“요즘 들어 장부에 공백이 많다. 누군가 내 돈을 훔쳐 가고 있다는 뜻이다.”

뒷골목 술집과 도박장을 관리하는 포만드의 부하 몇이 눈치를 보며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사람이 줄어서 그렇습니다. 곧 예전처럼 돈이 들어오겠죠.”

부하의 말에 포만드는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잔말 말고 내일까지 장부를 정상으로 만들어 놔! 아니면 네놈들 대신 다른 녀석들에게 그 자리를 넘길 테니까!”

“수입이 줄었는데 어떻게 돈을 채워 놓습니까?”

턱에 혹이 난 사내가 반발을 하자 원형 탁자 뒤에 서 있던 포만드의 마부가 허리에서 단검을 꺼내 사내의 목을 베어 버렸다.

핏물이 쏟아진 원형 탁자는 피가 흥건했다.

남은 관리인들의 표정이 하얗게 변했다.

“내일까지야.”

손가락을 하나 펴 관리인들에게 강조한 포만드는 그들을 내보냈다.

마부와 둘만이 남자 포만드는 인상을 쓰며 시체가 정리된 원형 탁자를 가리켰다.

“이 멍청한 녀석! 내가 위협만 하랬지 죽이라고 했나!”

“죄송합니다, 주인님.”

음침한 인상의 마부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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