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 디 임팩트 21권 5화
“꽤 쓸 만한 놈이었는데, 젠장.”
짜증이 난 얼굴로 접견실을 나와 침실로 향하던 그는 부하들의 비명 소리에 움찔하며 뒤돌아섰다.
“이게 무슨 소리야?”
“제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허리에서 두 자루 단검을 꺼낸 마부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복도 모퉁이를 돌다가 도현과 딱 마주쳤다.
“어?”
엉거주춤 서 있는 그의 명치에 도현의 손이 잔상을 남기며 왔다가 사라졌다.
“허억!”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낸 마부는 몸을 바르르 떨며 복도 한쪽에 쓰러졌다.
“비켜, 이 새끼야!”
로니올은 도현이 쓰러트린 마부를 발로 밀치며 안으로 걸어갔다.
복도 끝 침실에 들어가려던 포만드는 어리둥절함과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급히 로니올을 향해 뛰어왔다.
새벽이 가까운 한밤중에 로니올이 난데없이 들이닥쳐 부하들을 쓰러트리며 등장했으니, 그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오셨습니까, 로니올 님.”
“버러지 같은 놈.”
“예?”
“버러지라고 했다!”
로니올의 주먹에 턱을 얻어맞은 포만드는 뒤로 휘청거렸지만 넘어지지 않았고, 그 모습에 더 열이 받았는지 로니올은 복도에 장식된 그림 액자를 빼 포만드의 옆머리를 가격했다.
‘내 그림.’
머리에 충격을 받는 가운데서도 고가의 예술품을 아까워하던 포만드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외쳤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몰라서 물어!”
로니올은 손에 걸리는 그림이며 조각상이며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
침실로 향하는 좁은 복도는 부서진 예술품 조각으로 난장판이 되었고, 포만드는 예술품에 맞아 죽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씀을 해 주십시오!”
포만드는 답답함을 담아 목소리를 높였다.
“내 호위대로 보낸 그 용병들을 이용해 로이를 죽이려 했잖아, 이 자식아! 감히! 날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로니올은 더 이상 복도의 물건을 집어 던지지 않고 검을 빼 들었다.
그 모습에 포만드는 깜짝 놀라며 복도에 장식품으로 걸어 놓은 배틀 엑스를 본능적으로 떼어 냈다.
그 도끼는 그가 노예 검투사로 활약할 때 상대 검투사의 피를 흠뻑 들이마신 그의 애병이었다.
그래서인지 양손으로 긴 도낏자루를 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매우 자연스러웠다.
“뭐야, 지금. 그 도끼를 들고 나와 싸우겠다는 거냐?”
로니올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로니올 님, 전 로니올 님을 위해 황금이며 여자며, 온갖 것을 가져다 바쳤습니다! 한데, 어째서 제 얘기는 제대로 들어 보시지도 않고 이렇게 절 죽이려고만 하십니까!”
“화가 난 건 나야. 내가 그동안 널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데, 이따위로 날 배신해?”
“배신이 아닙니다. 저자는 수상한 자 입니다! 그래서 죽이려 한 것입니다!”
포만드는 로니올의 뒤에 서 있는 도현을 배틀 엑스로 가리켰다.
“뭐가 수상하다는 거야?”
“저자는 자기 입으로 악마 사냥꾼이라고 했지만, 전 지금껏 세상에 그런 자가 있다는 건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은밀하게 악마들을 사냥해 왔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 이상한 건, 저자가 등장하면서부터 로니올 님의 주변에 소위 악마란 것들이 나타난 게 아닙니까?”
“헛소리! 숲에서 나를 구한 건 바로 로이다!”
“사기꾼들은 먹잇감 주변에 여러 함정을 파 놓습니다. 그 함정 중 하나에 로니올 님이 걸려든 겁니다.”
포만드는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도현을 노려봤다.
“넌 악마 사냥꾼이 아니야. 일부러 로니올 님에게 접근한 거지.”
“질투에 눈이 멀었군.”
도현은 허리를 굽혀 부서진 그림의 일부를 집어 들었다. 숲의 한 장면인데, 사냥꾼이 샘물을 마시는 사슴을 노리고 있었다.
사슴의 순박한 눈망울과 사냥꾼의 살기 짙은 눈빛이 대조를 이루며 묘한 긴장감을 쏟아 냈다.
“넌 그저 내가 로니올 님 곁에 있는 게 싫을 뿐이야. 그게 날 죽이려 한 이유고, 그게 다지.”
“뭐야?”
“너의 말대로 내가 일부러 접근했다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게 뭐라고 생각하나?”
“그건…….”
포만드는 일순 말문이 막혔다. 도현은 포만드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다가오면 머리를 쪼개 버리겠다!”
성난 얼굴로 배틀 엑스를 위협적으로 휘두르던 포만드의 두 눈이 커졌다.
언제 빼앗겼는지 몰라도 그의 무기가 도현의 수중에 들어가 있었다.
“이건 이렇게 사용하는 건가?”
도현의 내공이 주입되자 배틀 엑스의 날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다음엔 날 직접 찾아와 의심을 풀어. 애꿎은 용병들이나 죽게 하지 말고.”
도현이 횡으로 배틀 엑스를 휘두르자 깜짝 놀란 포만드는 급히 바닥에 엎드렸다.
포만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배틀 엑스는 천둥 치는 소리를 내며 벽에 박혔다.
꽝!
수 미터 길이의 복도 벽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주저앉았고 넓은 집 전체가 진동을 일으켰다.
쿠쿠쿠쿵쿵.
복도엔 그로 인한 먼지가 가득했다.
먼지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도현은 배틀 엑스를 바닥에 엎드려 있는 포만드의 손에 쥐여 줬다.
“집이 너무 약해. 튼튼히 지어야겠어.”
포만드는 로니올을 향해 걸어가는 도현의 뒷모습을 보며 땀을 분수처럼 흘렸다.
‘이렇게 강한 자였나?’
도현의 실력을 눈앞에서 실제로 목격한 포만드는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용병들을 사주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가 의심스럽다면 전 바로 떠나겠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 있을 이유가 뚜렷이 없으니까요. 악마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 같고.”
도현이 두말없이 떠나려 하자 로니올은 급히 그를 붙잡았다.
벽을 부수는 놀라운 도끼질을 보니 더욱 곁에 두고 싶었다.
악마든 뭐든 그는 강한 부하가 필요했다.
“네 이놈! 포만드! 로이를 모욕하다니 죽여 버리겠다!”
로니올은 검을 들고 달려가 포만드의 목을 치려 했다. 하지만 곱게 죽어 줄 포만드가 아니었다.
배틀 엑스로 방어를 하며 침실까지 도망친 그는 원형 침대를 가운데 두고 빙빙 돌며 살려 달라고 간청을 했다.
“로니올 님을 위한 충심에서 비롯된 행동인데 어찌 죽이려 하십니까!”
“닥쳐!”
침대를 뛰어넘은 로니올은 발끝으로 포만드의 가슴을 때려 넘어트린 후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쳤다.
눈이 커진 포만드는 급히 대리석 바닥을 굴러 간신히 그의 검을 피해 냈다.
마나를 사용한 로니올의 검은 대리석 바닥에 긴 줄을 만들며 불꽃을 일으켰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이지 않겠습니다.”
“날 정말 화나게 하는 건, 그 용병 녀석들이 네놈 지시를 받고 나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거야. 그것도 모르고 네놈을 신뢰했다니.”
로니올의 검을 피해 몇 차례 더 도망 다니던 포만드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죽음을 피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배틀 엑스를 대리석 바닥에 버리고 두 무릎을 꿇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순교자처럼.
그리고 처연한 목소리로 울먹였다.
“좋습니다. 억울한 면이 있지만 이 또한 저의 부족함이니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부디, 꼭 대공이 되십시오.”
“연극하지 마, 이 자식아!”
로니올은 검을 내리칠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안타까울 뿐입니다. 주변에 로니올 님의 친구는 몇이나 됩니까? 누가 지지를 해 주고 있습니까? 로이는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언젠가 떠나야 할 악마 사냥꾼일 뿐, 진정 곁에서 손발이 되어 줄 유능한 사람은 바로 저입니다. 미래를 보십시오, 샤르비티 님이 붉은 성의 대공과의 전쟁에서 승리 후, 얼마나 격한 권력 다툼이 내부에서 일어날지. 그때 누가 로니올 님의 곁에 서 있겠습니까? 현재로선 저 외에 또 누가 있습니까?”
로니올의 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저는 지금 보잘것없는 작은 상인에 불과하지만, 갈수록 세력을 넓혀 결국 대상인이 될 겁니다.”
“베일 가문의 대상인은 알믄이다.”
“그도 언제가 죽겠지요, 누군가에게. 제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로니올 님의 단단한 기둥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포만드는 이마를 바닥에 붙이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로니올의 판단뿐이었다.
검을 들고 한참을 망설이던 로니올은 도현을 쳐다봤다.
“이자 죽이고 싶지 않은데, 괜찮겠나?”
도현은 엎드려 있는 포만드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뜻대로 하십시오.”
“일어나라.”
로니올은 검을 검집에 넣으며 말했다.
엎드려 있던 포만드는 안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 더 이상 헛짓거리 하지 말고 개처럼 나를 섬겨.”
“명심하겠습니다.”
포만드는 고개를 돌려 도현에게도 사과를 했다.
도현을 죽일 수 없다면 차라리 가까이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상인의 처세다.
* * *
포만드의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나온 로니올과 도현은 말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기념일을 앞둔 새벽 거리는 평소보다 조용했고, 로니올을 알아본 도시 수비대 소속의 순찰병들은 그가 지나갈 동안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내일이면 기념일이 시작되는군. 3일간은 술도 마시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다니, 짜증 나 죽겠군.”
말을 천천히 몰며 길을 가던 로니올은 투덜거렸다.
6일 동안 진행되는 기념일의 첫 3일은 금주와 금식 기간이었다.
샤르비티의 병사들은 물론, 로니올도 그것을 엄격히 지켜야만 한다.
물론 금식을 한다 해서 물만 마시는 건 아니다. 맛없는 풀죽 한 사발씩은 허용이 된다.
그 이후 나머지 3일간은 반대로 술과 고기를 마음껏 즐기는 축제 기간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날, 광장에서 기념일의 종료를 알리는 제단 의식이 성대하게 거행된다.
“하아, 그 계집도 이제 살날이 며칠 안 남았군.”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공의 딸 말이야. 전에 내가 말했잖아, 기념식 마지막 날 광장에서 사형에 처해질 거라고.”
“아, 그녀 말이군요.”
도현은 관심 없는 척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 평생 그녀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거든.”
“그렇습니까?”
“로이도 그녀를 직접 보면 그녀의 미모에 놀라게 될 거야. 말하다 보니 그녀가 보고 싶네. 사형 날에는 가까이서 볼 기회도 없는데.”
말을 하며 갈등하던 로니올은 돌연 말고삐를 당기며 말을 멈춰 세웠다.
“안 되겠어, 그년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얼굴이라도 가까이서 봐 둬야지.”
“그녀에게 가겠다는 겁니까?”
“물론이지.”
로니올은 말 머리를 돌렸고, 도현은 그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녀는 어디에 갇혀 있습니까?”
“궁금해?”
로니올이 쓰윽 쳐다보자 도현은 헛기침을 하며 전방을 응시했다.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원형경기장 지하에 갇혀 있어. 그곳엔 오래전 폐쇄된 감옥이 있거든. 대공의 자식들이 갇혀 있다고 알려진 내성의 감옥이나 주둔지 감옥엔 그들이 없어. 모두 함정이지.”
“그렇군요.”
도현의 눈빛이 깊어졌다.
“아버지가 허락하면 그녀를 가지고 싶은데, 아버지가 허락해 주실 리가 없지. 빌어먹을.”
아쉬움과 욕망이 뒤섞인 눈빛으로 로니올은 원형경기장을 향해 말을 몰아갔다.
도현은 다리를 건너며 멀리 위치한 원형경기장을 응시했다.
‘대공의 자식들이 저곳에 있었다니.’
그의 동료들이 자리 잡은 숙소와 원형경기장은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그들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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