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 임팩트-509화 (509/575)

[509] 디 임팩트 21권 9화

“도시 전체가 일시적으로 물바다가 될 것이다. 광장에 모일 10만 병사들은 그들을 가로막는 물로 인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할 것이고, 수십만 군중은 물을 피해 높은 곳으로 도망가겠지. 물바다가 만드는 극심한 혼란 속에서 너희들은 샤르비티와 사촌들만 노리면 된다.”

“그게 가능해요? 도시가 잠길 정도의 물이라니.”

놀란 리타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괴이하고도 놀라운 마법진이었다.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네 머리로는 내 마법을 이해하기 힘들 거라고.”

“자꾸 무시하지 말라구요. 당신도 내 흑마법은 잘 모르잖아요!”

“그깟 흑마법 정도야.”

율리비어스는 코웃음을 쳤다.

“도시에 너무 피해가 크지 않겠습니까?”

도현이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오래된 도시라 그런지 곳곳에 오물 냄새가 진동하더군. 이참에 도시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도 도시 주민들을 위해서 좋지 않겠느냐? 그리고 무엇보다 광장에 도열할 10만 정병을 막을 만한 마법으로는 이것이 최선이다.”

싸우지 않고 수많은 군사들을 무력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었다.

“칼라치를 끌어들인 게 좋은 수이긴 하지만, 그 녀석 몸이 지금 정상이 아니다. 따라서 만일을 위해서 이 정도 마법을 대비책으로 가지고 있는 게 우리에겐 필요하다.”

딱딱 끊어지는 차가운 어조였지만 율리비어스의 말은 틀린 곳이 없었다.

“브링틱에서의 일이 기억나십니까? 거인들을 막으려다가 거인의 섬 자체를 호수에 가라앉혔죠.”

“그 일은 새삼스럽게 왜 끄집어내느냐?”

율리비어스는 불쾌한 눈빛으로 도현을 쳐다봤다.

“당신의 마법진은 놀랍지만 한편으론 불안합니다. 수십 년 전 의도치 않게 도시 하나를 멸망시킨 사건도 있었고 말입니다.”

“음…….”

율리비어스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이번엔 별일 없어야 합니다.”

“건방진 녀석. 감히 날 어떻게 보고!”

율리비어스는 마법진 앞에서 양팔을 활짝 펼쳤다.

“내가 이 마법진을 직접 통제해 물의 양을 조절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 없다.”

“그 말을 믿겠습니다. 마법진은 언제 완성되는 겁니까?”

“광장 건너편에도 설치해야 하니까, 최소 나흘은 걸린다. 그것도 내가 밤잠을 자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걸리는 시간이지.”

“힘드시겠군요.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런 말 할 필요 없다. 너와 내 목적이 같아서 도와주는 것뿐이니까.”

그는 벽으로 걸어가 그곳에 새로운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물의 마법을 위해선 방 전체에 빈틈이 없을 만큼 수많은 마법진이 채워져야 한다.

“우린 그만 가 볼게요. 나중에 식사 가지고 올게요.”

도현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던 리타의 발목을 율리비어스가 붙잡았다.

“넌 어딜 가느냐?”

“전 할 일도 없잖아요.”

“없긴 왜 없어? 내가 널 괜히 데리고 온 줄 아느냐?”

율리비어스가 손짓을 하자 반짝이는 가루가 그의 소매 속에서 빠져나와 리타의 눈앞에서 책으로 변했다.

“와아, 책을 분해해서 가지고 다니다니, 역시 대단하군요.”

“내가 1차 완성한 마법진 테두리 안에 책 속의 마법어를 정확히 써 넣어라. 한자라도 틀리면 마법진은 발동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할 수도 있잖아요?”

“그 일까지 내가 하기엔 시간이 촉박하다. 마나 소모도 심하고. 할 수 있겠지?”

리타는 책을 펼쳐 보았다. 복잡하고 깊이 있는 마법어가 가득했다.

‘이건 처음 보는 마법어들인데?’

흥미로운 마법어에 순간 빠져든 그녀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특기 중 하나인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된 것이다.

잠시 후 그녀의 몸에서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방 안의 집기들이 들썩거렸고, 급기야 그녀는 허공에 둥둥 떠서 무게 없는 존재처럼 방 안을 부유했다.

옆으로 날아가고 거꾸로 물구나무선 채로도 날아다니는 기이한 그녀의 변화에 도현은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뭔가 그녀의 내면에서 마법적인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았다.

“괜히 책을 줬군, 못된 것.”

율리비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책을 회수하려 했다.

“조금만 더 보게 해 주시죠. 어차피 그녀의 도움 없이는 제시간 내에 마법진이 완성되기 어렵다고 했지 않습니까?”

“음.”

율리비어스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뻗었던 손을 밑으로 내렸다.

도현의 말대로 그녀는 그의 조수가 되어 시간 내에 마법진을 완성시켜야 한다.

도현은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봤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광장과 그 속에 우뚝 솟은 거대한 제단이 보였다.

10층 구조의 계단식 제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모양이었지만 하단에서 꼭대기까지 통하는 계단이 여러 곳 존재했다.

수천의 친위대들이 저 제단을 중심으로 경비를 펼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로니올을 따라 제단의 아래층이 아닌 상층부에서 그날 기념식을 관람할 수 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군.”

율리비어스가 다가왔다.

“벨라가 달아났다.”

“예? 벨라가 말입니까?”

창가에서 몸을 뗀 도현은 의아한 눈빛으로 율리비어스를 바라봤다.

율리비어스가 붉은 성을 떠나기 전까지 대공 부인의 고문으로부터 그녀가 살아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녀가 탈출했다는 건 더욱 놀라운 사건이었다.

“고문을 받아 몸이 정상이 아니었을 텐데요.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까?”

“그 몸으로는 경비가 심한 지하 감옥을 탈출할 수 없었을 테지.”

“그럼 외부에서?”

“천만에. 그것은 아주 영악했다. 대공 부인의 고문을 받고 죽은 척을 한 것이지.”

죽은 척했다는 그의 말에 도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시체를 태우고 뼈를 갈아서 버리라는 대공 부인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병사들이 그녀를 시체 보관소에 잠시 보관한 사이 사라졌거든. 다음 날 붉은 성 외곽의 한 마을에서 그녀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그 일로 인해 대공 부인이 앓아누웠다. 재미난 일이지.”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속였는지 모르겠군요. 죽음을 연기했다니.”

도현은 고대 유적터 지하에서 그에게 저주를 내뱉던 벨라의 차가운 눈동자를 떠올렸다.

“대공 부인이 그녀에게 우리들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조르니가 그렇잖아도 그 얘기를 너에게 전하라 하더군. 대공 부인은 너의 임무를 모르고 있다고 말이야. 그러니 벨라가 샤르비티를 찾아가도 그리 걱정할 건 없다.”

열린 창문으로 찬 바람이 세게 몰아쳐 왔다.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도현은 창턱에 손을 얹고 광장을 응시했다.

‘벨라, 정말 끈질긴 여자군.’

* * *

환한 낮이었지만 사방이 높은 집과 벽에 둘러싸인 좁을 골목길은 햇볕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생기 없는 밝음만이 길을 뒤덮고 있었다.

해가 조금이라도 기울면 다른 곳보다 이른 어둠이 찾아오는 이곳을 절뚝이며 걷는 사람이 있었다.

‘다 왔어, 조금 만 더 가면 돼.’

벨라는 옆으로 비틀린 무릎에 손을 대고 힘을 주었다.

으드득.

뼈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며 한동안 더 걸을 수 있게 됐다.

“캐서린. 네년을 내 손으로 기필코 죽이고 말겠다.”

대공 부인의 모진 고문으로 인해 그녀의 신체는 정상인 곳이 거의 없었다.

붉은 성을 탈출해 베일성까지 오는 여정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샤르비티 님이 날 다시 신뢰할까?”

임무를 실패한 그녀는 어두운 얼굴이 되어 골목길에 등을 기대고 잠시 숨을 돌렸다.

베일성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내성으로 가 샤르비티에게 자신이 복귀했음을 알리고 싶었지만 차마 면목이 없었다.

“일단 몸부터 추스르고, 샤르비티 님을 만나자.”

그녀는 힘을 내 모퉁이를 돌다가 맞은편 골목길에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엿들었다.

“기념일이 끝나고 샤르비티가 군사를 이끌고 붉은 성으로 진군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나도 그 소문은 들었어. 벌써 수많은 배에 식량과 전쟁 물자들을 실어서 사자 동맹군 쪽에 보냈다더군.”

“젠장, 이러다 우리 징집되는 거 아니야? 난 샤르비티를 위해 싸우고 싶지 않다고.”

“걱정 마. 그랬으면 벌써 징집해서 훈련을 시켰겠지.”

“샤르비티는 왜 반역질을 해서 불안하게 만드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짐수레를 끌며 샤르비티 욕을 하던 그들 앞을 벨라가 가로막아 섰다.

“너희들 지금 감히 누굴 욕하는 거냐?”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흠칫한 그들은 더듬거리며 변명을 했다.

“누, 누가 욕을 했다는 거요?”

“내가 다 들었다.”

벨라는 얼굴을 가린 후드를 벗었다. 그녀 얼굴은 고문으로 인한 화상 자국과 칼에 베인 흉터가 가득했다.

입술도 퉁퉁 부어서 말이 옆으로 새어 나올 지경이었다.

“네놈들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줄까?”

차가운 그녀의 눈빛은 두 사내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자, 잘못했소.”

짐수레를 놓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그들은 벨라를 지나쳐 재빨리 골목 저쪽으로 사라져 갔다.

“한 번만 더 그따위 말을 지껄이면 네놈들을 찾아가 껍질을 벗겨 놓을 것이다!”

그들을 노려보던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뒤돌아섰다.

“하찮은 것들이 감히 누굴 욕해.”

샤르비티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한 그녀는 모퉁이를 돌아 약간 경사진 언덕길에 접어들었다.

“얼마 만에 만나는 건가?”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 이 언덕 골목에 있는 집에 살고 있다.

젊은 외모와 달리 실제 나이가 40에 이르는 그녀는 동생 가족을 만날 생각을 하며 마음속 긴장감이 조금씩 풀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막상 동생 집 근처에 이르러 망설였다.

고문으로 흉측하게 변한 외모와 먼지를 뒤집어쓴 초라한 모습이 동생 가족에게 어떻게 비칠지 뒤늦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샤르비티의 직속 부하로서 은밀한 임무를 주로 수행한 그녀는 베일성에 사는 그녀의 동생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다.

“여자 영주가 되어 당당히 동생 앞에 서고 싶었는데……. 이 꼴이 뭐람.”

손톱이 다 빠진 그녀는 거북이 등처럼 변한 손을 힘없는 눈빛으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래도 날 반길 거야, 동생은 착하니까.”

그녀는 힘을 내 남동생 집으로 향하다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2층으로 된 동생 집의 모든 문과 창문이 두꺼운 판자로 못 박음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죄인 레듀모의 모든 재산은 몰수됐음. 이 집을 구매하려는 자는 관청으로 올 것.

“죄인이라니, 왜 내 동생이?”

그녀는 집 앞에 꽂힌 푯말에 당황하며 주위를 돌아봤다.

아무리 봐도 동생 집이 확실했다. 그녀는 잘못 찾아온 게 아니다. 푯말에 적힌 내용도 남동생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쿵쿵쿵쿵.

옆집을 두드리는 그녀의 손길이 바빠졌다.

창문으로 찾아온 사람을 확인한 작은 체구의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 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예?”

“저 집 말이에요. 레듀모의 집.”

중년인은 고개를 내밀어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녀가 누구를 말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난 모르오. 그만 가시오.”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그의 인상에 벨라의 눈빛이 대번에 싸늘히 바뀌었다.

“저 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잖아!”

그녀 손에서 나온 강력한 힘이 작은 체구의 중년인을 뒤로 날려 버렸다.

우당탕탕.

집 안의 집기와 함께 넘어진 중년인의 주위로 그의 가족들이 모여 들었다.

아내와 어린 두 딸.

겁에 질린 그들의 모습에 벨라는 더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한 자 한 자 끊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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